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20화 (20/203)

20화_흑형이 너무해

1.

“괜찮겠어?”

‘맨즈 라이프’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권창섭 선수가 다가왔다.

“뭐가요?”

“인터뷰 말이야. 암만 그래도 원숭이 어쩌고는 조금 심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최창우와 관련된 인터뷰 내용 때문에 걱정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적당히 순화시켜서 기사 작성하겠습니다.”

“아이쿠. 그러면 감사하죠. 아! 저는 강해서 선수가 믿고 의지하는 팀 피스트

소속 선수 권창섭이라고 합니다!”

얼씨구.

내가 언제부터 권창섭 선수를 믿고 의지했지?

암만 봐도 목적이 내 걱정이 아니라 은솔 에디터님 같은데?

“아니에요. 에디터님. 저 생각해서 순화하시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요.”

“네?”

“너무 자극적인 기사를 쓰면 안 돼서 순화하는 거면 어쩔 수 없는데. 제 이미

지를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라면 굳이 순화해서 기사 쓰실 필요 없다구요. 원

문 그대로 나가도 됩니다. 영상 인터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최창우가 약이 바짝 올랐을 건데. 아쉽네.

“아아... 풉. 인터뷰 중에도 느꼈지만. 강해서 선수. 오래 봤으면 좋겠네요.”

“...네?”

오래 봤으면 좋겠다니. 무슨 의미지?

함부로 돌 던지지 마세요. 혼자서 온갖 의미 부여합니다 저.

“은근 마이웨이에 쇼맨십이 있는 것 같아서요. 정말 나중에 세계 무대에 나간

다면 필요하거든요. 그런 게. 꼭 세계 무대에 나가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

으면 좋겠어요.”

“아아. 그런 의미였군요. 난 또.”

“네?”

무슨 말인지 몰라 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은솔 에디터님.

그런 게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기사는 이르면 내일 중으로 저희 온라인 매거진 기사로 올라갈

거에요.”

“네? 잡지가 아니라요?”

“다음 달 잡지에도 기사가 실리긴 할 테지만, 요즘은 잡지보다 온라인 매거진

을 더 많이 보니까요. 온라인 기사는 그때그때 올라가요.”

“좋네요. 다음 달 잡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최창우 선수의 반응이요?”

“네.”

이런 건 떡밥이 식기 전에 해치워야 하거든.

인터뷰 기사가 다음 달에나 나온다고 했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대응해야 하

나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유나 tv도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아직 연락도 못 했네.’

맨즈 라이프 인터뷰를 하고 나니 문득 유나 tv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빚진 것도 있고, 또 박기영 선수와의 시합까지 찾아왔었으니까 인

터뷰 정도는 해줘야지. 물론 아직까지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지만.

“어쨌든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메일 주소를 주시면 기사 올라가기 전에

원고를 먼저 보내드릴게요.”

“제가 메일은 거의 안 들어가서. 그냥 폰으로 보내주시면 되는데.”

“그러면 연락처를 받아도 될까요?”

“당연하죠!”

자연스럽게 은솔 에디터님과 번호를 교환했다.

권창섭 선수가 옆에서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강해서. 아직 안 죽었으.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차후 새로운 활동 하게 되시면 꼭 연락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맨즈 라이프 인터뷰 팀이 떠나고.

톡. 토토톡.

-안녕하세요? 일전에 뵈었던 강해서라고 합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린 건 아닌

지 모르겠네요.

생각난 김에 유나 tv 측에도 바로 톡을 넣었다.

***************

“괜찮겠어?”

스트릿 짐 소속 트레이너인 윤성화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최창우를

향해 물었다.

“어. 성화 형.”

최창우는 스마트폰을 내려두며 윤성화를 돌아봤다.

“오늘 맨즈 라이프 기사. 봤지?”

“어. 재밌는 놈이야. 강해선가 뭔가.”

“...실력도 마냥 재밌지만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최창우가 강해서와 최두호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고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맨즈 라이프에 강해서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당연히 최창우와 스트릿 FC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그 내용은 최창우 앞에

서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합. 할 거냐?”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 대표님 의중이 중요하지.”

“... 신중해라. 넌 스트릿 FC의 간판스타야. 득 볼 게 없는 싸움이라고. 적당

히 받아넘기기만 해.”

“그래. 득 될 게 없는 싸움이긴 하지.”

최창우는 씁쓸하다는 듯 말을 씹어뱉었다.

이미 스트릿 FC라는 한 단체의 챔피언인 그가 랭킹도 전적도 부족한 강해서와

매치를 가져서 얻을 이득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스트릿 FC의 체면을 지킨다?

강해서라는 새싹을 밟는다?

애초에 챔피언인 그가 갓 격투기를 시작한 신인을 이긴다고 해서 지켜질 스트

릿 FC의 체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기 결과가 조금만 비벼져도 대중의 질타

를 맞겠지.

“뭐. 애초에 대표님이 허락도 안 하실 거다.”

“그렇겠지.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한번 넌지시 말씀드려봤는데 씨알도 안 먹히

더라고.”

지난 박기영과 강해서의 시합날.

스트릿 짐에서 전두형 대표를 만났던 최창우는 강해서와의 매치를 지나가듯

언급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칼에 거절당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너튜브로 영상을 올렸냐.”

“그렇게라도 안 하면 매치 가능성은 정말 제로니까.”

“아직도 두호에게 서운한 게 있는 거야?”

“... 아니야. 그런 거.”

윤성화는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최창우를 바라봤다.

스트릿 FC의 악동. 이슈메이커 등으로 불리는 최창우는 한때 누구보다 최두호

를 동경하고 따랐던 선수였다.

최두호가 라이징 FC에서 미들급 챔피언으로서 아시아에서 맞설 선수가 없었던

시절. 전두형은 최두호에게 당시 갓 신설된 국내 격투기 리그인 ‘스트릿 FC’

로의 이적을 제안했다.

굳이 세계의 벽에 부딪혀 실패하느니 국내 격투기계의 쓰러지지 않는 상징이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최두호는 결국 그 제의를 뿌리치고 세계의 벽에 몸을 던졌고, 그 결과

는 처참한 3연패였다.

당시 최창우는 최두호와는 달리 스트릿 FC와 계약을 맺었고, 이후 두 사람은

서로 걷는 길이 달라졌다.

“어차피... 어차피 최두호는 패배자야. 패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웰터 급으로

도망친.”

“그런데 왜 그렇게 집착해? 솔직히 네가 강해서 도발하는 거. 최두호 때문 아

니야?”

“아니라니까! 그냥 뭣도 안되는 놈이 격투기가 만만한 듯 나대는 꼴이 보기

역겨울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질 것 같아?”

“...”

“나 최창우야. 스트릿 FC 미들급 챔피언. 강해선지 뭔지 트럭으로 데려다 놔

도 문제없다고!”

“쉽지 않은 상대야. 그러니까 너도 계속 시합 영상 찾아보고 있었던 거 아냐?”

“...”

순간 최창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윤성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단순히 경력이 짧다. 수련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라는 말로 폄하 하기에

는 강해서의 실력은 진짜였다.

“나도 알아. 영상을 찾아보면 볼수록 절실히 느끼고 있어. 이놈은 진짜야.”

“알면 멈춰. 이기더라도 압도적으로 이기지 않으면 네가 손해야.”

“... 타격 센스는 확실히 나보다 좋을 거야. 아마 거의 확실하겠지.”

“그라운드는 너도 부족해.”

“맞아. 내 주력은 타격이니까.”

최창우의 베이스는 킥복싱이었다.

애초에 그라운드가 강한 선수가 아니었기에 강해서와의 상성은 오히려 나쁜

편이었다.

“그런데. 계속 영상을 보다 보니. 길이 보이더라.”

“...뭐?”

“얘. 싸움 경험이 적어.”

“당연하지. 이제 갓 시작한 신인인데.”

“아니. 시합 말고. 운동 말고. 싸움 자체의 경험이 적어. 그리고... 아마 맞

아본 경험도 거의 없을 거야.”

“무슨 소리야?”

“모든 시합이 클린 시합이야. 대단하지. 나도 저렇게는 못 할 거야. 정말 질

투가 날 정도로 좋은 눈과 판단력. 신체 밸런스야.”

“그런데?”

“맞은 경험이 없어. 저렇게 좋은 눈을 가지고 있으니 맞아봤을 리가 있나.”

“...”

“나는 안 맞고 때리겠다. 그거 이놈한테 안 통해. 타격 센스가 말도 안 되는

놈이니까.”

“... 맞고 치겠다?”

“그렇지. 알아도 못 피하고 봐도 못 피하게 때리려면. 난타전으로 맞으면서

때려야 돼. 내 타격 센스가 이놈보다 부족할지는 몰라도 힘이나 맷집까지 밀

리는 건 아니니까.”

“... 가능성 있네. 아니.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긴 해. 중요한 건...”

“그래. 경기 내용 때문에 욕먹을 수도 있겠지. 두세 대 맞더라도 한 대 맞추

면 되는 그런 싸움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뭐. 어쨌든 끝까지 서 있는

놈이 승자야. 알잖아?”

“... 하아. 꼭 해야겠어?”

“도와줘. 성화 형.”

도저히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최창우의 눈빛을 보며 윤성화는 그를 말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앞으로 타격과 맷집 훈련 위주로 훈련 스케줄 짠다. 아주 지옥 같을

거야.”

“당연하지!”

이왕 매치가 성사될 거라면. 경기 내용에서도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그렇게

훈련 일정을 짜야겠다고 생각하는 성화였다.

2.

“... 진짜로 하라구요?”

“아 그놈 진짜. 네 실력을 봐야 훈련 일정을 짠다잖아. 빨리 올라가!”

나는 안 코치님의 불호령에 어쩔 수 없이 스파링용 글러브를 끼며 케이지 위

로 올라갔다.

“케이지에 들어오는데 무슨 망설임이 그렇게 많아?”

그리고 이미 케이지 안에서 날 반기는 거구의 흑인 사내.

“코치님. 이분이 뭐라고 하는데요?”

참고로 난 영어를 전혀 못 한다.

나한테 뭐라고 해봐야 알아듣지 못한다고.

“신경 쓰지 말고 스파링 준비나 해. 몸 풀어!”

“네에...”

오늘 체육관에 오자마자 갑자기 성사된 스파링.

안 코치님이 말씀하시길 날 위해 어렵게 모신 타격 코치님이라고 했다.

이름인지 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맘모스’라고 불렀던 것 같다.

“진짜 시합이라 생각하고 긴장 늦추지 마. 맘모스 그놈. 그렇게 보여도 브로

일러 라이트 헤비급을 타격 하나로 씹어먹었던 놈이야.”

이게 어딜 봐서 라이트 헤비급이야.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이고 평체는 헤비급도 훌쩍 넘길 것 같은데.

거기다 브로일러면... WFC랑 양대 산맥이라는 세계 정상급 격투 단체잖아!

“이봐. 들어오라구.”

정말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흑인이 뭐라고 이야기하긴 하는데.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다.

거기다 이렇게 올려다보는 느낌. 너무 생소하고 낯설었다.

“안 들어오면 내가 먼저 들어가지.”

또 혼자 뭐라 중얼거리고는 스텝을 밟으며 내게 접근하는 맘모스.

-슥. 휙!

“왁!”

저 덩치에 저 속도가 말이 돼?

키가 크다 보니 단 몇 스텝 만에 양팔 거리 안까지 달라붙었다.

-후웅!

그리고 가볍게 뻗는 견제용 왼손. 그런데 뭔 견제용 펀치 소리가 이렇게 흉악해?

거기다 리치도 나보다 훨씬 길어서 받아치거나 피하고 때리기도 어려웠다.

“네 영상들은 이미 충분히 보고 왔어. 타격 센스가 뛰어나긴 한데, 그 정도는

세계 수준에선 그리 드물지도 않지.”

자꾸 뭐라는 거야 이 아저씨가.

“일단. 너는 조금 맞는 경험이 필요할 듯해.”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으며 본격적으로 주먹과 킥을 뻗는 맘모스.

-뻐억!

“크윽!”

나보다 큰 신체에서 뻗어오는 펀치는 위에서 내려찍듯 위압적이었고, 그에 대

비하는 사이 뻗어오는 레그 킥은 도저히 피할 타이밍이 없었다.

단 한 대의 발차기였지만 왼쪽 무릎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었다.

‘이건. 길게 끌고 가면 무조건 진다. 이기든 지든 빨리 승부수를 띄워야 해.’

거짓말이 아니라, 지난번 두호 형과의 스파링보다 훨씬 압박감이 컸다.

이게 타격이 주력인 상위 체급의 위엄인가 싶었다.

-후웅!

다시 빌드업을 쌓듯 뻗어오는 맘모스의 라이트 펀치.

나는 처음으로 타격 거리를 만들기 위해 상대의 거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래서 리치가 중요하다는 거구나.’

이제껏 나보다 신장이 작은 선수와의 시합이 대부분이었기에 리치가 긴 이점

을 잘 몰랐는데, 반대가 되어보니 신체적 불리함이 가져다주는 불합리함은 말

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후욱!

내 타격 거리를 만들기 위해 맘모스의 타격권 안으로 오른발을 크게 내디디며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몸통을 노리고 뻗어오는 맘모스의 레프트.

나는 몸을 왼쪽으로 당기며 맘모스의 레프트를 오른쪽 어깨로 받아냈다.

-휘익!

드디어 내 타격 거리를 만들어 냈을 때 앞굽이 자세의 내 오른발로 뻗어오는

맘모스의 레프트 로우킥

-쩌억!

-뻐억!

그걸 피하려면 다시 거리를 내줘야 했기에 타격을 감수하며 왼손을 수직으로

뻗어 올리며 맘모스의 턱에 훅을 꽂았다.

“큭!”

“커헙!”

와.

오른쪽 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조금만 집중을 놓으면 쓰러질 것 같은 상태.

그리고 맘모스는.

-쿵!

레프트 어퍼컷을 제대로 얻어맞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 마이 갓! 이거 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괴물이잖아?”

황망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며 또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는 맘모스.

“그래. 딱 이 눈높이지. 어디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어?”

미안한데 남자를 올려다보는 취미는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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