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8화 (18/203)

18화_도발

1.

“그래서? 진짜 손아름이랑 커피 마셨다고? 단 둘이?”

“어.”

박기영과의 매치 준비로 바빠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 놈들과 시합 다음

날 바로 뭉쳤다.

“야밤에 스토커 잡다가 마주쳐서?”

“어.”

전날 손아름과 우연히 만나 커피까지 마셨다고 하니 다들 놀라서는 질문 세례

를 퍼부었다.

“근데 셀카 하나도 못 찍고?”

“...어.”

그래. 왜 셀카 찍을 생각을 못했지?

“번호도 없고?”

“......어.”

번호 물어봤는데 안주더라.

“하. 재현아. 해서 이 새끼 또 허언증 도진 거 같은데?”

“아! 진짜라고 새끼들아!”

진짜 속고만 살았나.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그럼 어제 손아름이랑 갔던 카페 가보던가!”

“왜 또 정색을 하고 그러냐?”

“아오!”

저것들은 사람 놀리는데 도가 튼 놈들이다 정말.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해서 너. 어제는 기분 좀 다운돼 보이더니

오늘은 또 괜찮아 보인다?”

역시 정상인은 준현이 밖에 없다.

“뭐. 다운될 게 뭐가 있어. 시합에서 진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시합에서 진 것도 아닌데 어제 상태가 영 별로던데.”

나는 그냥 웃음으로 넘길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사실 어제 시합이 끝나자마자 친구놈들이 연락했을 때만 해도 다운돼 있었던

건 맞으니까. 재현이와 기태가 오늘 유독 억지 텐션으로 날 놀려대는 것도 우

리들만의 위로 방법 같은 거였다.

어쨌든 먼저 말하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가감 없이 어제 시합이 끝난 후의 소

회를 털어놨고.

“흠. 병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네.”

“음. 재현이 말에 한 표.”

나는 순간 후회를 할 뻔 했다.

사람이 기껏 고민을 털어놨는데 저 반응 봐라.

“야. 세상 다 재능빨이지. 그게 왜 고민이냐.”

“맞지. 맞지. 남들보다 공부 조금 덜 해도 성적 잘 나오는 애들도 재능이지.

키 큰 것도 재능이고. 나처럼 얼굴 잘 생긴것도 재능이지.”

“뭐래 미친놈. 어쨌든 재현이 말처럼 세상에 재능 아닌 게 뭐가있냐? 심지어

노력도 재능이라는데. 시험 칠 때 내가 남들보다 머리 더 좋다고 더 어려운

문제 푸냐? 결국 세상은 자기 재능 잘 살리는 놈이 잘 사는 거야. 그게 당연

한거지.”

그래.

저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됐는데 어제의 나는 진짜 뭔가에 씌었었나보다.

무슨 성인군자 납셨다고 그런 고민을 했던 건지. 쩝.

“어쨌든. 정 찝찝하면 어제 손아름이 했던 말처럼 노력 해. 적어도 너한테 진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 너랑 가졌던 시합이

자랑이 될 수 있게.”

와.

방금 준현이의 마지막 말은 뭔가 울림이 있었다.

나와 맞붙었던 사람들이 훗날 그 시합을 자랑할 수 있을 정도라. 그러려면 진

짜 얼마나 대단해져야 하는 거지?

“그나저나. 해서 너. 격투기는 계속 할 거냐?”

오늘 처음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재현.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의 머뭇거림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 어디까지 될지는 몰라도. 한번 해볼까 싶네.”

결심만이 남았다.

*******************

“편집장 님! 이것 좀 보세요!”

국내 최대 남성 잡지 중 하나인 ‘맨즈 라이프’의 피처 에디터 류은솔은 새로

운 기사거리를 찾아 웹 서핑을 하다가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뭔데?”

“얼마 전 종영한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우승자랑, 같은 프로그램 중도 하

차한 도전자의 시합 영상이요.”

총 영상 시간 20분짜리의 짧은 영상.

그 중 실제 시합 영상은 채 3분이 안되었는데, 그나마도 다각도 다시보기 영

상을 포함한 시간이었다.

실제 시합 시간은 총 1분 15초.

“근데. 이 중도 하차한 도전자. 이력이 조금 재미나네요.”

“이력이 재미나?”

“네. 이름은 강해서. 직업은 웹소설 작가. 스트리트 파이트 홍대 오디션에서

진짜 말 그대로 ‘현장 접수’로 오디션 통과. 이전까지는 운동 경력 전무. 프

로그램 출연 중 술집 폭력시비 건으로 하차했으나 진실이 밝혀지며 해프닝으

로 마무리. 지금은... 최두호 선수의 팀 피스트에서 운동을 하고 있네요.”

“믿을만한 정보야? 스트리트 파이트 쪽에서 약 친 거 아냐?”

“적어도 스트리트 파이트 쪽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시합 자체가 스트리

트 파이트와 스트릿 FC에 엄청난 데미지를 준 시합이거든요.”

류은솔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파악한 강해서와 전두형. 그리고 스트릿 FC와의

관계 등을 편집장에게 설명하며 정보의 신뢰도를 어필했다.

“재밌네. 전 대표가 차려놓은 밥상을 정말 생판 처음 보는 놈이 날름 받아 먹

은 거잖아? 속 좀 쓰렸겠어.”

“그러니까요. 재미있지 않겠어요? 저 인터뷰 다녀올까요?”

맨즈 라이프는 남성 잡지인 만큼 남성전용 제품과 패션. 이슈되는 인물이나

사건도 다뤘다.

국내에는 격투기 전문 잡지라는 게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에, 국내에 격투기 관련 이슈가 있을 때는 항상 맨즈 라이프에서 인터뷰를 따

곤 했다.

“지난번에 최두호 선수 인터뷰 따면서 매니저 연락처 받은 거 있는데. 먼저

접촉해서 일정 잡고 움직여볼게요.”

“그래. 재밌게 한번 뽑아봐.”

“네. 전두형 대표도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은 있지 않을 테니... 특집으로

후속기사 계속 생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편집장은 은솔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하며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는

걸로 긍정을 표한 후 자리를 떴다.

단 한 번의 공개 매치.

그리 규모가 크거나 중요도가 높은 시합은 아니었지만, 그 시합 내용이 파격

적이었던 만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해서였다.

2.

“그러니까. MMA에서는 타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박기영과의 시합 이후 하루를 쉬고 다시 찾은 체육관.

‘팀 피스트’는 곧 있을 두호 형의 시합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오늘

내 훈련을 담당해주시는 분은 팀 피스트의 선배 선수인 권창섭 선수였다.

“복싱과 종합격투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냐. 해서야.”

“음... 발을 쓸 수 있다? 테이크다운을 하고 그라운드 싸움이 있다?”

“정답이긴 한데. 내 기준으로는 절반의 정답이야.”

그러면 또 무슨 차이가 있지?

“일단 무기부터 다르지.”

“무기요?”

“그래. 복싱 글러브는 우리가 쓰는 오픈 핑거 글러브와는 모양도 다르고, 온

스도 달라. 보통 생체복싱은 14온스를. 프로로 가면 체급에 따라 다르지만 8

온스부터 12온스 글러브까지 다양하게 사용하지. 그러면 우리가 쓰는 글러브

는 몇 온스일까?”

“...”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요...

“물론 단체마다 공식 글러브가 다르긴 한데, 세계 최대 규모 격투기 단체인

WFC 기준 시합용 글러브가 4온스지. 스파링에서는 보통 높은 온스를 사용하지

만. 그러면 질문. 글러브의 온스가 시합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무래도 온스가 낮으면 거의 맨주먹에 가깝겠죠? 얇고 가벼우니 속도도 빠

르고.”

“맞아. 그게 결정적인 차이지. 복싱은 글러브가 크기 때문에 방어에도 유리하

고, 온스가 높은 만큼 데미지 전달 효율도 떨어져. 한마디로 타격만으로 KO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지.”

“아...”

권 선배의 이야기가 이해가 됐다.

“한마디로. 복싱에서는 웬만한 하드펀쳐가 아니면 원펀치 KO가 쉽게 나오지

않는데, 종합격투기에서는 잘만 들어가면 타격으로 KO가 잘 나온다는 말이지.

거기다 케이지는 복싱링에 비해서 도망치기도 편해서 타격 연계를 넣기가 어

려운 만큼 단 한 번의 펀치를 노리는 경우가 많아.”

아아.

그래서 그렇게 펀치를 휘두르는 선수들이 많았구나.

이제야 오랜 의문점 하나가 이해됐다.

나도 나름 복싱 만화를 섭렵하며 이론적으로는 아는 게 꽤(?) 많았는데, 이번

에 격투기를 배우게 되면서 실제 시합에서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다시피

하는 선수들을 보고는 조금 놀란 적이 있었다.

분명 만화에서는 주먹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몸의 중심을 잘 지키라고 했는데

막상 격투기 시합을 보면 WFC 선수들도 신체 밸런스 다 무너뜨려가며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복싱은 단 한방으로 시합이 끝나는 경우가 드무니까. 연타를 연계하기 위해

서도,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상하체 밸런스가 중요해. 하지만 종합격투기

는 아니지. 그냥 맞으면 끝이니까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지.”

역시. 프로 선수들이 그렇게 주먹을 휘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난 또. 괜히 선수들 영상 보면서 허접하다고 생각했네.

“어쨌든. 그런 이유로 MMA룰에서 타격이라는 건 갖추면 좋지만 절대 승리요소

는 못돼. 물론 해서 네 타격이 뛰어나긴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말이지.”

“넵!”

“그런고로 오늘은 코어 운동과 디펜스 레슬링 훈련을 한다. 오케이?”

“오케이!”

그렇게 짧은 이론 강의를 끝마치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려는데.

“해서야!”

안 코치님이 찾아왔다.

“너 맨즈라이프라고 아냐?”

“맨즈라이프요?”

그거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봤던 잡지이름 아닌가?

“맨즈라이프에서 해서 너한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저한테요? 인터뷰 요청을요? 왜요?”

“왜긴. 지난번 스페셜 매치 때문이겠지. 어쩔래?”

“엄...”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장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뷰를 하면 잡지에 내 이름과 인터뷰 내용이 나간다는 거잖아?

뭔가 내가 한 일로 긍정적인 관심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우쭐한 마음이 반이

라면, 생전 처음 접하는 잡지 인터뷰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머지 반이었다.

“싫으면 거절해도 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은솔 에디터가 인터뷰 거절

했다고 앙심 품을 사람도 아니고.”

은솔?

남성 매거진 에디터 이름이 되게 남자 같지 않다?

“어? 은솔 에디터? 지난번에 두호 형 인터뷰 따신 분 아니에요?”

반응은 나보다 권창섭 선수에게서 먼저 나왔다.

“와. 그 에디터님 완전 내 스타일이었는데. 해서 안 한다 그러면 제가 하면

안돼요?”

“너는 이슈가 없잖아 이슈가. 해서 넌 어쩔 거야. 할거야 말거야? 인터뷰?”

안 코치님이 또 당연한 걸 물어보시네.

“당연히 해야죠!”

이름부터 어여쁘신 은솔 에디터님이신데.

******************

-뻑! 뻑! 뻐억!

“컥!”

박기영은 연속된 펀치 세례에 이은 안면 발차기를 맞고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

졌다.

“박기영 선수! 다운! 스탑! 심판이 시합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박기영과 강해서의 시합 며칠 후.

불씨가 사그라들던 국내 격투기 커뮤니티 게시판에 새로운 장작이 던져졌다.

“이것 보세요. 여러분. 뭐? 강해선가 약해선가 그 듣보잡이 몇 분? 1분 15초?

저는 30초도 안걸렸습니다.”

스트릿 FC 미들급 챔피언 최창우의 너튜브 개인 채널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 이런 애들 데리고 최고의 주먹을 가리니 마니 하는

‘스트리트 파이트’가 문제야. 그 프로그램 때문에 스트릿 FC까지 욕먹잖아.

안그래요 여러분? 어차피 그거 다 짜고 치는거잖아. 가짜 사연에 운동경력 속

이고 출연하고. 방송이 다 그런거지 뭐.”

┕최창우 진짴ㅋㅋㅋㅋ 엊그제 시합 마친 선수한테 선넘넼ㅋㅋㅋ

┕둘이 체급을 봐라;;; 최창우는 미들급인데 지금 시합 없어서 평체 라이트 헤

비급 나오겠는데? 양심이 있어야지;;;

┕근데 박기영이랑 붙었던 강해서도 체급으로 치면 라헤급일걸?

┕않잌ㅋㅋㅋㅋ 암만 그래도 최창우는 챔피언인뎈ㅋㅋㅋㅋ 거 격투기지망생한

테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래도 재밌긴 하겠닼ㅋㅋㅋ 강해서가 최창우한테도 비빌 수 있을까?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박기영이랑 최창우는 급이 다름. 암만 상위 단체에서

무시당한다곤 해도 한 격투단체 챔피언인데 너무 무시하네.

국내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도 고개를 젓는다는 스피릿 FC의 악동.

오죽하면 전두형 대표가 SNS 금지령까지 내리며 관리하는 선수.

“이 영상 보고 열 받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복싱 룰로 붙든 맨주먹으로 붙

든 원하는 대로 붙어줄 테니까요 강해서 씨. 아니면 최두호도 좋고.”

최창우의 도발 영상은 결국 그 날 초록창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찍으며 격투

기 팬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중에게 까지 그 여파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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