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_편집된 진실
1.
-기, 길로틴 초크! 강해서 도전자! 길로틴 초크를 잡았습니다!
-탭! 탭! 강해서 도전자! 그만! 강해서 도전자 승!
-좋습니다. 강해서 도전자도 승낙을 하셨으니 돌발 리벤지 매치. 진행하겠습
니다. 다만 도전자분들의 의지로 성사되는 매치이니만큼 지는 쪽은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스, 스탑! 스탑! 경기 종료! 강해서 도전자 승!
쾅!
전두형은 탁상을 내려치며 앞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런 영상이 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냐고!”
강해서가 하차하면서 그의 분량을 덜어내기 위해 스트리트 파이트 제작진은
꽤나 애를 썼다.
먼저 안민기 도전자를 바로 복귀시키며 남은 모든 도전자들에게 비밀유지서약
서까지 받았다.
“그런데 왜 이런 영상이 떠도느냔 말입니다!”
영상은 제작진에서 촬영한 원본은 아니었다.
그날 체육관에 있었던 누군가가 촬영한 듯 한 화질과 화면구도.
“제작진도 현재 해당 날짜의 촬영 영상을 모조리 뒤지고 있습니다. 카메라 구
도와 시간 등을 체크해서 누가 촬영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신 PD는 나름대로 제작진에서도 영상의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중이
라 말 하고 있는데 전두형은 그 말을 자르며 짜증을 냈다.
“지금 와서 그 영상을 누가 찍었는지. 누가 올렸는지. 그게 중요합니까?”
└헐? 이거 언제임? 4화임? 5화임?
└이거 강해서 하차하기 전이넼ㅋㅋㅋ 중간평가로 1승 8패 꼴찌했던 날
└와 이걸 다 짤랐다고?ㅋㅋㅋㅋ 강해서가 중간평가 그라운드로 안민기 잡은
건 쏙 빼먹고 8패만 편집해서 보여준 제작진에 소오름
└그것보다 안민기 빡쳐서 데스매치하재놓고 떡실신한게 웃음버튼ㅋㅋㅋㅋ
└저거 데스매치면 안민기 탈락 아님? 근데 왜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나왔
음? 심지어 결승까지 갔잖아 혹시 너어?
└강해서 하차하니까 바로 다시 불렀나보짘ㅋㅋㅋ 이런 영상 터질 줄 몰랐나보
짘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강해서 진짜 재평가 시급한 거 아니냐? 그라운드로 안민
기 서브미션 승 따내고. 타격으로도 5초 컷인데. 박기영보다도 훨 쎈거 아님?
└ㄴㄴ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음. 안민기도 저 이후에 더 훈련하면서 기량을
올렸으니까.
└어쨌든 강해서 하차 안했으면 강해서가 다 씹어 먹고 우승했을 가능성이 ㅈ
ㄴ높아 보이는데?ㅋㅋㅋㅋ
└진짴ㅋㅋㅋ 호랑이 없는 산에서 ㅈ밥들이 싸운거였넼ㅋㅋㅋ
“이 여론. 어떻게 할 겁니까?”
스트릿 FC는 ‘스트리트 파이트’ 라는 예능을 통해 대중에게 격투기라는 스포
츠를 더욱 알리고, 나아가서 국내 격투기 단체인 스트릿 FC의 인지도 상승을
꾀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시즌2를 만든 것도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스트릿FC의 홍보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돈은 돈대로 쓰고, 프로그램과 스트릿 FC는 격투기 매
니아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박기영이 안민석이랑 판정까지 가서 겨우 이겼으니. 강해서가 결승 올라왔으
면 1라운드 KO 쌉가능한 부분 ㅇㅈ? ㅇㅇㅈ
이런 댓글이나 보려고 그 많은 돈을, 몇 주간의 시간을 투자한 게 아니었다.
“영상을 유출한 놈은 어떻게든 잡히게 되어 있는 거고. 당장 시급한 건 이 일
을 어떻게 수습할거냐는 겁니다.”
겨우 마지막 화까지 무사히 잘 방영하고 나니 이런 일이 터졌다.
프로그램의 신빙성과 스트릿FC의 격투기 단체로서의 신뢰도까지 언급되고 있
는 상황.
빠른 수습이 필요한 때였다.
“저. 전 대표님. 이것 좀...”
그때 전두형을 향해 속삭이며 자신의 스마트 폰을 건네는 스트릿 FC소속 선수
하나.
-박기영@Drive0
이번 스트리트 파이트 영상 건으로 많은분들이 질문을 주시고 있는데, 강해서
도전자와는 팀이 달랐기에 개인적으로 한 번도 만난적이 없어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다만 지난 영상들로만 봤을 때 강해서 도전자가 하차를 하든 하지 않
았든 스트리트 파이트의 우승자가 내가 되는데는 별 영향이 없었을 것 같다.
“이 새끼는 또 왜이래? 야! 박기영이 관리 안 해? 누가 붙었어?”
“스트롱 짐 김관장이 붙었을 겁니다. 전화를 안 받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트 상위 랭킹 4명은 모두 스트릿 FC와 선수 계약을 맺었다.
한마디로 전두형의 관리 하에 들어온 선수라는 것.
“야. 애들한테 SNS로 함부로 이번 일 꺼내지 말라고 그래. 특히 최창우같이
이런 더러운 판 좋아하는 애들 관리 잘 해.”
“네!”
“뭐하고 있어! 대답만 하지 말고 빨리 애들 연락 안돌려?”
아무래도 격투기라는 스포츠 자체가 약간의 쇼맨십이 필요하다보니 언론플레
이나 SNS를 활용하는 선수들이 더러 있었다.
아직 정확한 수습 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스트릿FC 소속의 파이터들 중
불필요한 글들을 싸지르는 애들이 생길까봐 전두형이 관리를 지시하는 사이.
“이거... 나쁘지 않은데요?”
신 PD는 나쁘지 않은 가능성을 보았다.
“뭐?”
“전 대표님. 박기영 선수. 기량이 어느 정돕니까?”
“박기영이?”
박기영이라.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국대까지 달아봤던 선수였다.
애초에 이번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자체가 박기영을 띄우기 위한 프로젝트
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박기영 선수와 강해서.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기영이랑 강해서라...”
박기영의 우승을 내정해두고 시작했던 스트리트 파이트였지만 중간에 돌발적
인 상황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강해서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지쳐있었다지만 현역 프로 파이터를 상대로 다운을 빼앗은 도전자.
천부적인 바디컨트롤과 보는 눈을 가진 재능 있는 선수.
하지만.
“기영이가 이길 거야.”
그래도 딱 거기까지였다.
강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체력과 근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레슬링으로 단련된 박기영은 튼튼한 목과 맷집을 가지고 있었고, 안민기와는
수준이 다른 그라운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재능의 크기로 따지자면 강해서가 부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장의 가치
를 따지자면 박기영에게 한 표를 던지는 전두형이었다. 거기다 상성도 박기영
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고.
“그러면. 진짜 한번 메이드해볼까요?”
“메이드 해보다니?”
“박기영 우승자와 강해서. 스페셜 매치 말입니다. 전 대표님과 박기영 선수의
말대로라면. 스트리트 파이트와 스트릿 FC에 던져지는 비난을 한 번에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거기다 파프리카 생중계까지 해버리면 화제성도 있구요.”
“스페셜... 매치?”
나쁘지 않다.
아니. 아주 괜찮다.
타격 센스가 압도적이지만 아직 베이스가 제대로 깔리지 못한 강해서와 엘리
트 체육인으로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그래플러의 시합.
이건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강해서를 설득하느냐가 관건일 듯 했다.
“강해서가. 아니, 최두호 그놈이 하려고 할까?”
“최두호 선수요?”
“그래. 최두호가 강해서를 케어하고 있거든.”
“흐음... 그런 건 저희가 전문이죠. 이런 건 어떨까요?”
************************
“이벤트 매치라...”
두호 형에게 연락을 받은 뒤 자세한 건 체육관에서 이야기하기로 한 뒤 집을
나섰다.
사실 이번에 운동을 하면서 꽤나 진지한 고민이라는 게 시작됐다.
웹소설 작가라고는 하지만 유료작품 하나를 완결친 이후 몇 달째 차기작을 쓰
지 못 하고 있는 신세였으니까.
아니.
그것보다는 생각보다 운동이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또...’
애매했다.
진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도 되는 건지 판단할 근거가 너무 부족했다.
나이 서른.
누군가는 이미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자신은 이제 와서 완전 새로운 분야에서 첫 발을 딛는다?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세상이라는 놈은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쯤
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야. 아직 나이 서른밖에 안된 놈이 뭔 생각이 그렇게 많아? 일단 해보고 아
니면 그만두면 되지.”
체육관에 도착해 이런 고민을 두호 형에게도 털어놓았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이 형은 운동한다고 뇌까지 근육인건지. 생각이 참 단순한 편이었다.
“어쭈? 그 표정은 뭐야? 되게 불만어린 표정이다?”
“네? 에이. 설마요. 현명하신 조언에 깊게 감명 받은 표정이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그래도 눈치는 빠른 형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아까워서 그래. 세계의 벽에 부딪히면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고 많은 시합을 봤지만... 너 같은 놈은 한번도 못 봤거든.”
“그거. 제가 대단하다는 의미죠?”
“모르지. 너와 같은 재능은 세계의 벽을 두드리지도 못했기에 볼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아직까지 너와 같은 부류가 나타난적이 없었던 건지. 적어
도 나는 아는바가 없어.”
“에이. 그게 뭐에요.”
“그러니까. 궁금하면 직접 부딪혀봐. 네 재능이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지.”
씨익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치는 두호 형.
“하하. 고마워요.”
-툭.
“뭘 이런 거 가지고.”
-툭!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퍽.
“이게 다 형이 할 일이지.”
-퍽!!
“아! 왜 때려요!!!”
“때리긴 네가 먼저 때렸지! 난 응원하는 차원에서 어깨를 두드린 거고!”
“응원 두 번만 했다간 어깨 빠지겠네! 악! 왜 때려요! 난 안 때렸는데 형은
두 대야! 악! 또!”
2.
강해서의 이벤트 매치 수락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전두형 대표와 스트리트 파이트 측은 강해서와 최두호가 혹시나 말을 바꿀까
싶어 SNS와 인터넷 기사들로 대대적인 판을 벌려고, 이미 격투기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에서는 박기영과 강해서의 이벤트 매치로 뜨거운 분위기였다.
“안 코치님. 해서. 오늘 괜찮겠죠?”
강해서에게 이번 이벤트 매치를 추천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합이라는 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최두호는 일말의 불안함을 떨치고자 안형
석 트레이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두호는 최근 WFC랭킹전 준비로 강해서의 훈련을 제대로 봐주지 못했기 때문
에 조금은 걱정이 있었다.
“뭘 걱정해. 강해서. 네가 데려왔잖아. 누구보다 ‘세계’를 가까이서 접한 네가.”
“뭐. 그렇긴 하죠. 그래도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걱정이 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박기영 선수는 엘리트 체육인에 국대까지 달았던 그라운드
의 스페셜리스트니까. 해서랑의 상성은 최악일거야. 일단 붙기만 하면 타격을
봉쇄하고 체력을 갉아먹으며 결국 침몰시킬 테니까.”
최근 강해서의 훈련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안형석은, 트레이너로서 데이터에
입각한 최대한 객관적인 대답을 먼저 내뱉었다.
“아마 전두형 그놈도 똑같이 생각했겠지. 체력도 근력도 부족한 해서의 바닥
을 아니까. 해서의 거리만 버티고 들어가면 무조건 이긴다. 그런 생각.”
“음...”
“두호야.”
“...네?”
안형석은 차가운 철창 위로 부서지는 눈부신 조명을 올려다보며 최두호를 불
렀다.
“내가 너랑 세계무대를 다니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그게 뭡니까?”
“어느 세상에나 타고난 재능의 불합리함이라는 게 있다는 거지. 그 중에서도
격투기라는 스포츠는 그 재능이라는 게 가진 불합리함이 더욱 심하지. 물론
두호 너도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고.”
“...”
“하지만. 내가 본 불합리함 중. 가장 큰 불합리함을 가진 놈이 강해서. 그놈
이다. 범인이 쌓아올린 노력과 시간을 비웃는 듯 한 불합리함. 세계라는 벽에
서나 느꼈던 그런 불합리함 말이다.”
두호 너보다도 말이다. 라는 뒷말은 차마 삼켜버린 안형석이었지만, 최두호는
굳이 듣지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강해서의 재능은 자신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걸.
“오늘 시합이 끝나면. 전두형 그놈은. 세계를 올려다보지 않고 국내 시장만
내려다본 과거를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럴까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그 불합리한 재능이 스스로 사그라들지 않도록. 지
켜보기만 하면 돼.”
어느새 케이지 안에는 오늘의 주인공. 강해서와 박기영이 올라와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모든 논란을 잠재울 스페셜 매치를 진행하도록 하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