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_매치의 속사정
1.
“이벤트 매치요? 스트리트 파이트 우승자랑?”
-그래. 물론 대전료나 매치 일정 등은 따로 조율해야지. 중요한 건 그에 응할
의지가 있냐는 거야.
이벤트 매치라.
우승자와의 시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자면 며칠을 거
슬러 올라가야 했다.
두호 형과 약속한 한 달이라는 시간 중 절반 가까이가 지나가던 시점쯤까지.
***********************
-뻑! 뻑!
“오케이. 자! 바로 뛰어! 세트 플레이!”
“아오...!”
두호 형과의 스파링이 끝난 다음 주 화요일 저녁.
며칠 동안 타격 연습은 고사하고 글러브 구경도 못 한 채 줄넘기와 웨이트.
체력 훈련 루틴만 죽어라 뺑뺑이 돌았다.
정말 몸이 걸레짝이 되어서 집에 돌아가는 일상의 반복.
이러다 진짜 차기작은 언제 쓰지?
-톡! 톡!
씻기도 귀찮아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스마트폰이 자꾸 시끄럽게 울려댔다.
“언 놈이냐...”
-재현 : 야 스파 보고있음?? ㅋㅋㅋㅋ
-기태 : ㅇㅇ 해서 8퍀ㅋㅋㅋㅋ 꼴찤ㅋㅋㅋㅋ
-재현 : 하차하길 잘했죠? 하차 안 했으면 강제 탈락당할 뻔했죠?ㅋㅋㅋㅋㅋ
-준현 : 야.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아직 열심히 하고 있는뎈ㅋㅋㅋㅋ 근데
손아름은 대체 언제 소개받음???ㅋㅅㅋ
아.
오늘 스트리트 파이터 본방 하는 날이구나.
지난 주말에 전두형 대표가 다녀간 이후 제작진 측에서도 한 번 더 연락이 오
긴 했었다.
그것도 메인 피디라는 신 뭐시기 하는 피디에게서.
그때의 통화를 떠올려보자면...
****
-안녕하세요 강해서 씨. 스트리트 파이트의 신재호 PD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는 일의 시시비비도 제대로 가리지 않고 저희가 경솔했던 것. 정말
죄송합니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저희도 먹고사는 일이다 보니
너무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아뇨.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논란을 만든 제가 문제죠 뭐.”
-모쪼록 마음 푸시고 프로그램에 복귀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전두형 대표가
해서 씨의 복귀를 반대한다 해도 이번에는 저희가 책임지고 복귀에 뒷말 나오
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책임을 지신다는 말씀은...?”
-사실... 지난번 강해서 씨의 하차에는 전두형 대표의 입김이 있었습니다. 하
지만 이번에는 전두형 대표가 뭐라고 하든 저희는 강해서 씨를 복귀시키고 싶
습니다. 원하신다면 원래 계셨던 열정 팀이 아니라 다른 팀으로 옮기실 수 있
게 해드리겠습니다.
“... 전두형 대표님이 지난 주말에 팀 피스트 체육관으로 절 찾아왔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트에 복귀하라구요. 저는 거절 의사를 밝혔구요. 해당 내용이
전달되지 않은 듯하네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사실 전두형 대표가 강해서 씨의 복귀에 찬성하며
본인이 책임지고 데려오겠다더니 며칠 만에 말을 바꾸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 하차 기사까지 난 도전자를 데려오는 건 조금 그런 것 같다며. 어
차피 중요한 도전자나 우승 후보도 아니니 그냥 이대로 가자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진 않은 것 같네요. 어쨌든 저는 확실히 의사 전
달했습니다. 하차 번복할 생각 없다구요.”
*****************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다.
하차는 제작진에서 원하는 방향이라더니. 자신과 계약하면 하차를 막아주겠다
더니.
그래놓고 계약을 거절하자 내 하차에 입김을 넣었다고?
역시 전두형 대표랑은 안 엮이는 게 정답인 것 같았다.
어쨌든 나름 단호하게 끊어내며 스트리트 파이트와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
이 났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내가 나오는 마지막 방송이니 본방 사수정도는 해줄까?”
마지막 의리라는 생각으로 본방 사수를 위해 지친 몸으로 침대 위를 뒹굴거리
며 티비를 켰더니 마침 스트리트 파이트 중간 대결의 결과와 제주도 전지훈련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 저 덩어리가 왜 저기 있지?”
그런데 나한테 후드려맞고 탈락했던 덩어리가 제주도 전지훈련 영상에 함께
있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나 싶어 스트리트 파이트 본방이 끝나자마자 빠른 다시
보기로 다시 프로그램을 정주행해보니.
“하. 진짜.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구라쟁이들이구만?”
오늘 방영분에 덩어리와 나의 데스매치는 나오지도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방송에서 내 모습은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엄살을 피우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었고, 이후 중간 평가에서 덩어리와의 대결 영상은 싹 날려 먹고 이
후 힘이 빠져 패배했던 영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1승 8패로 10명 중 꼴등.
그리고 짤막한 자막으로 방송 끝에 강해서 도전자가 개인의 사정으로 하차하
였음을 알리는 문구 한 줄이 끝이었다.
와. 이런 게 악마의 편집이구나 싶었다.
진짜 웬만하면 그냥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오늘 방송만 보면 나는 그냥 쓰레기였다.
다른 도전자들은 열심히 훈련하는데 혼자 놀면서 엄살이나 피우고 실실 쪼개
고. 그러다 중간 평가전에서는 자기 덩치보다 훨씬 작은 도전자한테도 쩔쩔매
며 패배하는 1승 8패의 꼴찌.
데스매치 내용도 싹 날려놓고 저 안민긴지 덩어린지 하는 놈은 제주도 전지훈
련에 참여해있고.
시기상으로 유추하건대, 내가 하차하자마자 저 덩어리를 복귀시킨 듯했다.
제주도 전지훈련 스케줄은 주말이었으니까.
참 대단하다 방송국 놈들.
-톡! 톡!
-재현 : 야. 그래도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 ㅋㅋㅋ
-기태 : 하차 동정 여론 나오다가도 들어가겠닼ㅋㅋㅋ 훈련도 제대로 안 받고
평가전도 꼴찌하곸ㅋㅋㅋ
-준현 : 너 재능러라며? 요즘 허언증까지 있음? 진짜 최두호랑 운동하는 거
맞긴 함?
-재현 : 어! 맞네! 소오름! 최두호도 다 구란거 아냐? 오늘 방송에 최두호 나
온다더니 안 나왔는데?
-해서 : 어 씨발? 그러네?
나는 그렇다 치고. 특별 코치로 참여했던 두호 형까지 싹 편집됐네?
아예 나와 관련된 부분으로 이목이 쏠릴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 뭐 그런 건가?
-기태 : 해서가 효인이랑 헤어지고 많이 힘들구나... 안 하던 구라까지 치고...
-해서 : 거기서 또 걔 이야기가 왜 나오지? 넌 안 되겠다. 10분 뒤 놀이터로
나와 새꺄
-기태 : 엉아는 지금 이쁜이들이랑 한잔 중이라서ㅋㅋㅋ ㅈㅅ
-재현 : 헐? ㅅㅂ 너 혼자 어디 갔어? 어디야 너!!
하.
가뜩이나 빡치는데 친구란 것들이 도움이 안 돼요.
아오!!
“악!”
뭔가 분기탱천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힘껏 일어나는데 온몸이 아팠다.
아. 왤케 서럽냐.
열 받고 억울하고 빡치는데. 몸은 아프고 하소연할 데는 없고.
-준현 : 힘내삼. 또 좋은 인연이 찾아오겠지.
그나마 위로해준다는 게 모쏠 현자라니.
내가 이번 생을 너무 대충 살았나 진지하게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뻑! 뻑!
“그만! 그만!”
팀 피스트의 메인 트레이너이자 최두호의 개인 트레이너이기도 한 안형석은
들고 있던 미트를 내리며 스탑 콜을 외쳤다.
“해서야. 너 뭔 약 먹었냐?”
“네?”
“아니다. 타격은 이쯤 하고. 몸 풀고 있어. 오늘부터 레슬링 훈련 들어갈 거
니까.”
“넵!”
군대도 아닌데 거수경례를 올리며 후다닥 뛰어가는 강해서를 보며 안형석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진짜 저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동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쌩 일반인이었다
고?’
처음 최두호가 갑자기 자신에게 쳐들어와 스트리트 파이트라는 프로그램에 특
별 코치로 출연하겠다 했을 때는 웬 미친 소리인가 했다.
스트릿 FC와 최두호는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스트리트 파이트에 특별 코치로 하루 다녀오더니 강해서라는 웬 생초
짜 하나를 데려왔다.
현재 최두호는 WFC 챔피언 도전권이 가시거리 안에 들어오면서 다음 랭킹 3위
와의 경기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
그런데 갑자기 격투기 경험도 없다는 일반인을 데려와 가르쳐 보겠다 하니 안
형석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진짜다!’
사실 안형석은 강해서를 데려온 첫날 그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랭킹전의 압박감으로 기행을 벌이는 최두호 또한 한 번쯤 호되게 혼을 내려
했다.
그들의 스파링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비시즌도 아닌, 랭킹전 준비로 한창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는 최두호의 컴비네
이션 사이로 파고드는 강해서의 킥. 뒤이어 최두호의 레프트에 반응해 뻗어낸
라이트 크로스 카운터까지.
평생을 격투기에 바친 안형석조차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기에, 조
금 더 두고 보자 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겨우 2주 정도가 지난 시점.
체력과 근력의 기초를 쌓아 가는 강해서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맘모스. 이 자식이 요즘 어디 있다 했었지? 아... 체육관 운영비 빠듯한데.
씨발.”
안형석은 조금 전까지 미트를 쥐고 있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느끼며 오
랜만에 옛 동료에게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우승자는 과연 누구? 박기영 vs 안민기!
-팀 ‘열정’의 안민기 vs. 팀 ‘의리’의 박기영! 과연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의 우승자는?
=드디어 일반인 격투기 프로그램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끝이 보인다.
총 40명의 예선 통과자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도전자는 열정 팀의 안민기
와 의리 팀의 박기영. 과연 수많은 화제를 낳은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결승 무대는 오늘 저녁 파프리카 tv에서 생방송으
로 중계될 예정이다.
└솔직히 우승은 안민기 아니냐? 쟤 타격 미쳤던데?
└ㅋㅋㅋㅋ진짜 격알못들ㅋㅋㅋㅋ 박기영이 그냥 이김 ᄏᄏ 안민기는 의리 팀
이었으면 조기탈락자임ㅋㅋㅋㅋ
└박기영이 그라운드가 좋긴 하지. 레슬링 선출이라 그라운드로 가면 안민기가
절대 못 이길 듯;;; 무조건 타격으로 승부 봐야지
└근데 진짜 둘 다 일반인 맞음?ㅋㅋㅋ 프로그램 취지가 일반인 격투기 프로그
램인데 하나는 레슬링 선출이고, 하나는 아마 복싱 선출이곸ㅋㅋㅋ
└프로 아니면 됐지 뭐 ㅋㅋㅋ 이거 보려고 파프리카 어플 깔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잡음이 많았지만 그래도 결승까지 온 마당이라 국내 격투기 갤
러리와 게시판에서도 꽤나 화제가 된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마지막 무대.
파프리카 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결승 무대는 치열한 접전 끝에 팀 ‘의리’
의 박기영 도전자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화끈한 KO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경기 내용이 꽤나 치열했고 준수했기에
판정승이지만 많은 시청자들 또한 응원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안민기 또한 판정승에 불복하지 않고 박기영 도전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그림을 보여줬고,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과 열정, 도전 등을 보여주며 스트
리트 파이트 시즌 2는 그 나름의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짓는 듯했다.
-님들? 이거 봄?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4화 편집된 장면이라는데?
=안민기 그라운드로 강해서한테 쌈 싸 먹히고. 데스매치 신청해서 10초도 안
돼서 떡실신 당하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심?
스트리트 파이트 도전자가 찍은 거로 보이는 한편의 영상이 격투기 갤러리에
올라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