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_이미 늦었어
1.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출연자. 술집 난투극?
-그날 밤. 홍대에선 무슨 일이?
스마트폰 화면을 휙휙 올리며 요즘 인터넷에서 꽤나 시끄러웠던 격투기 프로
그램 출연자의 술집 난동 기사들을 검색하는 영은.
“영으나!!”
“아! 깜짝이야!”
그런 영은의 뒤로 고양이상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친구 유나가 다가와 그
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야. 놀랬잖아!”
“저 멀리서부터 불렀는데 대답이 없길래.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유나는 영은의 폰 화면을 슬쩍 힐끔거렸다.
“스트리트 파이트? 술집 폭력 시비? 이런걸 왜 보고 있어?”
“여기 술집이 내가 알바하는 가게잖아.”
“진짜? 여기 너네 가게야? 와. 대박. 직관했어?”
“직관은 무슨.”
“직접 봤냐구!”
“응. 그래서 기사 찾아보고 있었어.”
영은은 ‘대박. 완전 재밌었겠다. 거기서 방송했어야 했는데.’ 등의 반응을 보
이는 유나를 뒤로하고 몇 개의 기사와 몇 개의 댓글들을 더 찾아봤다.
“유나야.”
“응?”
“보통 이런 거로 구설수 생기고 그러면. 당사자들 피해 많이 입니?”
“당사자들? 뭐. 저 격투기 프로그램 참가자 같은?”
“응.”
영은이 지금 내적 갈등을 겪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인터넷에 기사들이 몇 개 올라오긴 했지만 초록창 실검을 아주 잠시 차지했을
뿐 이후 이렇다 할 후속 내용은 없었다.
강해서라는 손님이 조금 억울할 것 같기는 한데, 그 피해가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일반인인 영은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씨씨티비 영상 공개하면서까지 실드 쳐주거나 진실규명을 해줄 필요가 있을
까? 생각보다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있는데 혼자 설치는 거면 어떡하지?’
갈등의 내용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 억울했으면 먼저 와서 씨씨티비 영상을 받아 가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떡밥에 괜히 뒤늦게 장작 넣는 건 아닐까? 같은.
그래서 그런 부분을 잘 알 것 같은 유나에게 물어본 것이다.
“보자. 이 사람 프로그램도 하차했다고 기사 떴네. 아무래도 피해가 없진 않
겠지. 앞으로도 티비 같은데 나오면 흑역사처럼 계속 꼬리표가 붙어 다닐걸?
폭력성이다 뭐다 해서.”
“... 그러면. 이거 억울한 거 풀어주는 게 나을까?”
“억울한 거? 왜? 이 사람 주먹 휘두른 거 아냐?”
“어. 이 사람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도 않았어.”
“영상에선 엄청 위협적이던데...”
“그 영상이 되게 자극적인 부분만 잘 들려서 그래. 우리 씨씨티비도 있고. 내
가 찍은 것도 있어.”
“오올. 그 상황에서 알바가 말릴 생각은 안 하고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 저 덩치들을 내가 어떻게 말려. 혹시 경찰 오면 증거로 쓸 영상이나 찍
어두자 싶었지.”
어쨌든. 꽤나 피해가 있다는 거지?
유나는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영은이 네가 나서? 본인이 억울하면 알아서 해명하겠지.”
“우리 가게 단골이야. 나도 얼굴 아는 손님이고. 불쌍하잖아. 사실과는 다른
기사들 때문에 억울하게 프로그램도 하차하고.”
순간적으로 언젠가 자신이 서빙하다 안주와 접시를 놓쳤을 때 그가 자신과 접
시들을 잡아주었던 장면이 뇌리를 스치는 영은.
“어쨌든. 저 강해서라는 사람은 억울한 거고. 그걸 해소할 영상을 네가 가지
고 있다?”
“응? 응.”
“영은아.”
“응?”
“그거. 내 방송에서 깔까?”
영은의 친구 유나는. 구독자 20만이 넘는 너튜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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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걸 내 탓을 하면 안 되지 신 피디.”
“아니. 저희는 분명히 일이 어떻게 된 건지부터 파악하고. 그 이후에 처우를
결정하자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메인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신 PD는 답답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며칠 전 자신의 프로그램 참가자 하나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사화된 적이
있었다.
마침 본방이 방영되고 바로 다음 날 불거진 사건이라 제작진 측은 사건의 전
후를 파악한 후 참가자의 향후 처우를 결정하려 했다. 어차피 다음 방송까지
는 거의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때 분명 전 대표님이 이런 건 이야기 나왔을 때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지. 강해서 도전자를 하차시키자고는 안 했어. 그
건 신 피디 판단이었지.”
“하...”
물론 그 말은 맞다.
전두형 대표의 입에서 대놓고 ‘강해서 도전자를 하차시키자.’라는 말이 나오
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교묘하게 강해서 도전자가 하차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주도한
건 분명 전두형 대표였다.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은 앞으로 프로그램 시청률이나 다음 시즌에도 문제가
될 것이다.’, ‘만약 분란의 주인공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이다.’ 등의 발언으로 말이다.
프로그램의 최대 후원사 대표이자 메인 멘토인 전두형의 의견은 꽤나 절대적
이었다. 그렇기에 제작진 또한 강해서에게 하차를 요구했고, 하차 확인서까지
받았다.
중요한 건.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도전자 술집 난투극? 알고 보니 무죄!
-온라인에 만연한 마녀사냥.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너튜버 유나TV에서 밝힌 그날 밤 홍대 술집의 진실!
=바로 이틀 전. 지난 수요일 오전부터 온라인상에는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의 출연자가 A 씨가 사적인 술자리에서 주먹을 휘둘렀다는 게시글이 퍼지며
각 포털사이트의 실검을 장악했다.
최초 유포자의 게시글에는 그날의 영상 또한 첨부되었는데, 해당 영상에는 꽤
나 위압적인 A 씨의 목소리와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담겨있었다.
A 씨는 격투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만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런 사건이 불
거진 것에 많은 네티즌이 분노했고, 그 결과는 A 씨의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하차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 A 씨의 하차로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해당 사건은 반전을 맞
게 된다.
인기 너튜브 채널 유나 TV에서 A 씨의 술자리 사건의 풀 영상을 공개한 것.
익명의 제보자에게 받았다는 영상에는 오히려 일반인 취객이 A 씨가 없는 틈
을 타 A 씨의 일행들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까지 휘두른 정황이 담겨있었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A 씨가 취객들에게 접근한 사실은 있었지만, 끝까지
폭력 사태는 없이 A 씨 일행이 가게를 나가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이로 인해 A 씨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당했다는 여론부터 그
가 하차할 이유가 없다는 여론 등이...(하략)
강해서 도전자의 하차를 공식적으로 보도한 지 이틀 만에 밝혀진 그 날의 진실.
‘스트리트 파이트’ 제작진은 평소에도 격투기 갤러리나 게시판 등 프로그램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체크했다.
전반적인 여론은 제대로 이번 사건을 알아보지도 않고 도전자를 하차시킨 프
로그램 제작진의 ‘갑질’을 조리돌림 하는 분위기.
└그럼 강해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하차당한 거네???
└ㅇㅇ 그러게 개 억울했겠네. ᅲᅲᅲ
└토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하던데 ㅈㄴ 불쌍함. 진상규명도 하기 전에 방송국
측에서 자른 듯
└솔직히 강해서 우승권 아니었음?
└ㄴㄴ 우승권은 선넘짘ㅋㅋㅋㅋ 박기영이 있는뎈ㅋㅋㅋ
└그 박기영도 절대고수한테는 꼼짝도 못 했는데? 강해서는 두 명이나 다운시
켰는데?
└격알못들 진짜. 강해서 다른 도전자들이랑 격이 달랐음ㅋㅋ 생태계 교란종.
그래서 제작진에서 밸런스 맞춘다고 자른 듯 ㅋㅋㅋㅋ
신 피디는 작가들이 캡쳐해서 보낸 댓글들을 보다가 폰을 내려놨다.
“.... 다행인 건 분위기가 빠르게 반전됐다는 겁니다. 강해서 씨가 하차한 지
아직 이틀밖에 안 됐으니까요. 아직 정기 훈련날짜도 안됐고, 어차피 강해서
씨는 전지훈련 참가자도 아니었으니 다시 복귀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하차를 번복시키자?”
“그게 최선입니다.”
어차피 강해서 도전자는 정기 훈련 때 외에는 스트롱 짐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하차 복귀만 시키고 강해서 도전자의 인터뷰 하나만 따면 어떻게
든 스무스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전두형 대표의 동의가 있어야 했고.
‘강해서의 복귀라...’
사실 전두형 또한 강해서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원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스트릿 FC와 계약으로 묶어버리려 했다.
물론 신인에게는 드문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그의 제안은 보기 좋게 까였고, 이후 그는 강해서의 하차에 입김을 불
어 넣으며 자신 또한 미련 없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물론 그건 보여주기식 제스처일 뿐 이후에 따로 강해서와 접촉할 계획을 세우
고 있었고.
‘나쁘지 않다. 내가 중간에서 힘을 쓴 것처럼 하면 이미지도 좋아지고. 계약
에도 유리하겠어.’
자신의 강력한 주장으로 복귀가 결정되었다고 하면 강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느끼겠지. 그리고 전두형은 그 마음의 빚을 굴려 계약까지 끌고 갈 자신이 있
었다.
“좋아. 그래도 우리 팀 열정 멤버였으니. 강해서 도전자에게 전화하는 건 내
가 하지.”
2.
“아놔. 누가 내 얘길 하나?”
오늘따라 귀가 계속 간지럽네.
“씻을 때 귀도 좀 씻어라. 더럽게.”
“아니. 그런 간지러움이 아니라니까요?”
지난 스파링 이후 한 달간은 꼼짝도 못 하고 팀 피스트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게 됐다.
“아니기는. 어쭈? 쉬지? 내가 다 지켜보고 있다?”
“아. 줄넘기 대체 언제까지 해요?”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
한 달간 계속 얼굴 봐야 할 사이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두
호 형은 나를 더 막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에는 운동도 봐주고 하더니, 스파링 이후에는 줄넘기 하나 던져주고
는 다른 거 시키기 전까진 줄넘기만 하란다.
-띵!
“공 울렸다. 뛰어!”
“...네에...”
체육관의 저 공 울리는 소리가 꿈에도 나올 것 같았다.
2분 50초/10초/30초 간격으로 울리는 공 소리.
30초의 꿀 같은 휴식이 끝났다.
또 개같이 뛰어야겠지.
-Rrrrrrrrrr
“어? 전화다! 두호 형! 저 전화 왔어요!”
“그래서?”
“급한 전화일 수도 있어요! 받아야 될 거 같은데!”
“... 받고 와.”
“넵!”
누군진 몰라도 고맙다!
보이스피싱이나 광고 전화라도 내가 성심성의껏 받아줄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강해서 씨?
누구지?
꽤 귀에 익은 목소리이긴 한데...
“누구세요?”
-나 전두형입니다.
“네?”
-스트릿 FC 대표. 전두형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 아저씨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지난번 계약 제의를 거절했을 때 기분나쁘다는 티는 팍팍 내셔놓고.
-잘 지냈어?
“네. 뭐 저야 잘 지냈죠.”
-스트리트 파이트 하차하고. 주변에서 뭐라고들 안 하고?
하차하고 본 사람들이라곤 두호 형이랑 팀 피스트 사람들밖에 없었다.
아! 손아름 씨도 있었지. 스파링하다 기절한 사이에 가셔서 저녁은 고사하고
인사도 못 했지만.
-사실. 강해서 도전자가 하차하고 나서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았어.
“내부적으로요?”
-그래. 나는 이런 식으로 하차시키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했거든. 그리고 마
침 그 술집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 기사들이 올라오더라고.
내가 안 때렸다고 그렇게 말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인터넷에 풀 영상이 뜨니까 이제서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복귀해.
“네?”
-하차 번복하고. 복귀하라고. 제작진에는 내가 다 이야기...
뚝.
"하... 뭔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보이스 피싱이라도 끝까지 들어주려 했는
데. 쩝.”
줄넘기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