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10화 (10/203)

10화_하차?

1.

준현이는 집이 잘살았다.

준현이는 키가 작고 뚱뚱하다.

준현이는 운동이나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보다는, 만화책이나 컴퓨터 게임 하

기를 즐겼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그리고 나도 준현이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준현이네만큼 잘 살지는 않았지만 풍족했고, 키가 작진 않았지만 뚱뚱한

편이었다.

준현이와 친해진 계기는 만화방에서 빌려온 만화를 돌려보면서였다. 그러다

같이 게임도 하고.

사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우리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이 건드리기 좋은

대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나 준현이에게 간 보듯 시비를 거는 애들도 있었다.

“야! 씨발 우리 반에서 설치지 말랬지?”

“안 나가냐? 뒤질래?”

기태나 재현이가 아니었다면 준현이나 내 고교 시절의 추억이 조금은 어두웠

을 수도 있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내 격투기 재능이 더 빨리 빛을 볼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어쨌든.

재현이랑 기태는 소위 말하는 ‘인싸’ 스타일의 친구였다.

학창 시절부터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그리고 다른 질 나쁜 애들에게서 나와 준현이를 지켜줬던 친구.

그런 친구들이 나이 서른 먹어서 나 때문에 한참 어린애들한테 맞았다니.

술도 마셨겠다. 이 정도면 눈 돌아갈 만하지 않나?

“지랄하네. 야. 됐어. 그만해 인마.”

“그래. 맨날 뒤에서 우리 말리기만 하던 놈이 뭐하냐? 요즘 격투기 좀 배웠다

고 너무 자신감 넘치는 거 아냐?”

거. 무드를 모르는 새끼들하고는.

기껏 분위기 잡아놨더니 초를 치네.

“됐다. 저런 애기들이랑 싸워서 뭐 하냐. 괜히 귀찮아지기만 하지.”

재현이는 진짜 괜찮다는 듯 내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래도 사과는 받아야지. 너네. 몇 살이냐?”

그래도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

저런 애들은 그냥 넘어가면 지네가 이긴 줄 알고 또 어디 가서 무용담처럼 떠

벌릴 거란 말이지. 2차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었고.

“우리... 요?”

“그래. 이야기 들어보니까 저번 길거리 오디션 볼 때도 여기서 본 거 같은데.

그럼 사는 동네도 이 동네 같고.”

“...네.”

“몇 살이냐고.”

“스무 살인데요...”

요즘 애들은 얼굴이 왜 이래? 나이가 가늠이 안 되네.

저게 어딜 봐서 스무 살이야?

“너네가 그렇게 싸움 잘하면. 지금 나가서 체육관 가서 스파링할래?”

“...아뇨.”

“그러면 경찰 불러서 씨씨티비 돌려볼까?”

“...아뇨...”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냐?”

“... 죄송합니다...”

그제야 쭈뼛쭈뼛 일어서며 재현이와 기태에게 사과하는 양아치들.

내가 프로그램 하차를 별 신경도 쓰지 않고 경찰까지 부른다고 하니까 마지못

해 사과하는 느낌이었다.

뭐.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란 건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긴 했다.

“내가 여기 사장형이랑 친하거든? 씨씨티비 녹화본 따로 받아둘 거니까 알아

서 잘 처신해. 넌 폰 줘보고.”

“네...”

나는 아까 동영상 찍는 시늉을 한 양아치의 폰을 뺏어 들고는 혹시 녹화한 영

상이 있나 확인했다.

뭐 없네.

“술 먹고 니네끼리 신나는 건 상관 안 하는데. 남들한테 피해 주고 그러면 안

되지. 이번 일로 또 문제 생기면 씨씨티비 영상 가지고 바로 경찰서 간다? 알

겠냐?”

“...네.”

누가 보면 때린 줄 알겠다. 왜 이렇게 주눅 들어있어?

이럴 거면 애초에 시비를 걸지 말던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시비 걸거나 들러붙는 애들 진짜 너무 싫다.

그러다 감당 못 할 것 같으면 바로 꼬리말 거면서.

“야. 됐다. 가자.”

“쪽팔리게. 열 살이나 어린 애들이랑 시비 붙었다고 소문날라.”

기태와 재현이는 사과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내려갔고, 준현이와 나는 그

뒤를 쫓았다.

“야. 너네 혹시 해서가 나서줘서 감동 받았냐?”

이게 뭔 소리야?

“딱 보니 그런데? 맨날 뒤에만 있던 해서가 너희를 위해 딱 나서주니 뭔가 사

나이의 감ㄷ...”

“야. 저 돼지 새끼 입 막아.”

“오늘 야식은 늙은 돼지 수육이다.”

준현이가 안경을 고쳐 올리며 날카로운 척 뭐라 지껄이자 괴성을 지르며 준현

이를 공격하는 재현이와 기태.

“아! 아! 아파 이 새끼들아! 아까 걔들한테나 이러지!!! 아! 뼈! 뼈 맞았다고

뼈!”

뭐. 나름대로 마무리는 훈훈하고 평화로운 것 같으니 다행이랄까.

그렇게 폭풍 같은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도 준현이 놈이 집에 놀러 와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 본방을 챙겨봤다.

“푸하하하! 해서 너 진짜 토함? 미친. 앞으로 당분간 밖에서 보지 말자.”

“...저걸 편집 안 해주네.”

오늘 방송 분량에서는 첫 정기 훈련 장면과 탈락자 선정 시합이 나왔다.

체력 테스트를 받다가 구토하는 장면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방송됐고.

-재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서 저 새끼 토하는거봨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태 : 얔ㅋㅋㅋㅋㅋㅋ 저거 저러다 죽는 거 아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현 : 좀 닥쳐봐. 난 지금 실시간으로 얘 안색 변하는 거 보는중이얔ㅋㅋㅋ

ㅋㅋㅋ

-기태 : 이거 효인이도 보는 거 아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서 : ㅅㅂ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옴? ㅡㅡ?

-재현 : ㄲㄲ 흑역사 적립 ㅋㅋㅋ 캡쳐 떠야지ㅋㅋㅋㅋㅋ

-해서 : 아. 내가 혹시 말했던가? 나 이번 주 목욜에 손아름 보러 감

-기태 : ???

-재현 : ??? 손아름? 내가 아는 손아름?

-준현 : 리엘리 손아름????

“야. 넌 바로 옆에 있으면서 톡이냐?”

“애들은 궁금할 수 있잖아.”

뭐. 그건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놈한테 톡으로 대답하려니 영 그렇네.

-해서 : 어. 최두호 선수네 체육관에 손아름 운동하러 온대. 목욜에 소개해주

기로 했음

-기태 : 헐? 왜? 왜? 니놈새끼가 뭐라고? 왜? 왜 때문이죠?

-해서 : 어. 그렇게 해봐. 기태 니놈은 국물도 없음. 손아름이랑 친해지면.

-재현 : 하여튼 기태 저 새끼는 친구의 아픔을 놀려대서 문제야. 해서야 훈련

힘들었지? 나는 진짜 너 걱정했다.

-해서 : ㅈㄹ

-재현 : 진짜임. 얼마나 힘들면 오바이트까지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목요일

에 그 힘든 훈련 좀 거들어주러 가도 됨?

-해서 : ㄲㅈ

하여튼 누가 사내새끼들 아니랄까 봐.

“진짜 손아름 만남?”

“어제 이야기한다는 게 막판에 일 터져서 말을 못 했네. 최두호 선수 체육관

에 훈련받으러 가는 조건으로 손아름 님이랑 식사 자리라도 만들어주기로 했음.”

“너가 진짜 재능이 있긴 한가 보네.”

“엉?”

“그러니까 최두호 정도 되는 선수가 직접 찾아오고 거기다 체육관으로 운동하

러 오라고 그렇게 꼬시겠지. 손아름까지 언급해가면서.”

역시. 우리 현자님.

저 냄새 나는 머스마 두 마리랑은 상황을 해석하는 틀 자체가 다르시구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진짜 열심히 해봐.”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 준현이 놈.

“시꺼 인마.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어색한 마음에 장난으로 넘기긴 했지만, 나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보람이라는 것과 성취감이라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2.

“강해서 씨.”

“네.”

그렇게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평화롭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또다시 일상에 폭풍이 몰아쳤다.

“저희도 지금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아침 일찍 방송국에서 온 전화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방송국을 찾았다.

제작진이 알려준 곳에서 날 기다린 건 심각한 분위기의 제작 PD와 전두형 멘토.

“어제 본방이 나간 이후 일어난 소요라 더 난감합니다.”

“근데. 진짜 아무 일 없었습니다.”

“지금은 진실 공방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여론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에도 관련 기사들은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제작 PD가 말하는 관련 기사라는 건 엊그제 있었던 술자리에 관한 기사들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출연자. 술집 난투극?

-폭력 시비에 휩싸인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 출연자. 그날 밤 홍대에선 무

슨 일이?

└하여튼 간에 운동한다는 새끼들 술 먹고 내가 난데 하는 건 과학이야.

└엌ㅋㅋㅋ 쟤 어제 훈련받다가 막 토하던 새끼 아님?ㅋㅋㅋㅋ 거기선 토하더

니 일반인한텐 ㅈㄴ쎈척하네ㅋㅋㅋ

└진짜. 아무리 자극적인 소재로 격투기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제발 인성 파악

좀 하고 거를 건 거르자. 쌩 양아치 새끼들도 개나 소나 다 티비 나오고 ㅉ

지금도 무수히 달리는 악플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사건의 진실이나 과정은 중요치 않고 그저 분위기에 휩쓸

려 나와 프로그램을 욕하기 바빴다.

-올리라고. 그딴 프로그램 출연 안 해도 상관없으니까.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지난 월요일 술자리에서의 시비 영상을 어렵지 않

게 볼 수 있었다.

우리와 시비가 붙었던 양아치들이 아닌 다른 테이블에서 찍은 듯한 각도.

다른 테이블까지 촬영확인을 할 수 없어 그냥 나왔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아. 저건... 프로그램을 비하하려던 아니고. 그. 시비가 붙었을 때 그...”

하... 그냥 좀 세게 나가려고 한 말이었는데. 너무 또렷하게 녹음됐다.

당장 ‘스트리트 파이트’ 제작진 앞에서 ‘그딴 프로그램’ 이라고 말한 영상이

흘러나오니 귀까지 빨개지는 느낌이었다.

“뭐. 그건 됐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격투기 프로그

램이다 보니 폭력성으로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구설수까지. 솔

직히 어제 본방 전에 불거졌다면 강해서 씨 장면 다 편집했을 겁니다.”

“...”

“지금도 재방송 분량에서 해서 씨 분량을 빼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저희도

고민 중입니다.”

진짜 안 때렸는데.

인터넷에서는 흡사 내가 사람들을 때린 것처럼 묘사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우

리가 피해자였다.

뭐 사람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겠지만.

“피디님. 잠시 해서 도전자랑 둘이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네? 아. 뭐. 그러시죠.”

“강해서 씨. 잠시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할까?”

잠시 대화가 소강 된 타이밍에 전두형 멘토가 날 따로 불러냈다.

전두형 멘토와 단둘만 따로 가진 자리.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나 싶었는데

“강해서 도전자.”

“네.”

“이번 일. 작은 일 아니야. 아마 방송국에서는 너 하차하라고 할 거야.”

“...네.”

“하차. 해도 되겠어?”

“...”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좀 웃기긴 한데. 존대와 반말을 정말 자

유자재로 잘 넘나드시는 것 같았다.

“강해서 도전자.”

“네.”

“우리랑 계약하자.”

“...네?”

“스트릿 FC랑 계약하자고.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이번 사건 무마시켜줄게.”

“... 근데. 저 진짜 안 때렸어요.”

“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니가 때렸든 안 때렸든. 우리는 그거 카바

칠 수 있어. 근데 그러려면 니가 우리 식구여야 한다는 거지.”

“...”

“막말로 내가 내 식구도 아닌 놈을 왜 챙기겠어. 안 그래?”

그렇구나.

이 사람에게도 일의 순리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거였다.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사람들과 똑같이, 이 상황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

“하하. 일단. 생각 좀 해볼게요.”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어? 이대로 저기 들어가면 너 바로 하차라니까?”

“전 진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런데 하차를 해야 한다면... 해야죠.”

“...뭐?”

“이런 분란을 만든 것 자체는 제가 잘못한 게 맞는데. 전 진짜 사람을 때린

적도 없고 폭력 사태에 연관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도 하차하라고 하면. 뭐.

하차해야죠. 어쩌겠어요.”

“허...”

전두형 멘토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어쩌겠어.

솔직히 조금 재미를 붙여 가고 있던 상황이라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지른 것 이상의 책임을 질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계약이라니.

상대방의 다급한 순간을 이용해 계약을 제시하는 사람을 뭘 믿고 덜컥 계약한

단 말이야?

변호사 끼고 계약서 검토하면서 조율해도 모자랄 판에 모가지 끌려가면서 계

약할 필요는 없었다.

“제작진분들 기다리니 먼저 들어가 볼게요.”

순간 말문이 막힌 건지 대답하지 않는 전두형 멘토를 뒤로하고 다시 제작진이

기다리는 삭막한 회의실로 돌아간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2’를 공식적으로 하차했다.

************************************

-띵동. 띵동.

‘아. 아침부터 누구야 대체.’

어제는 스트리트 파이트 하차 동의 서류를 작성하고 집에 와서 혼자 캔맥 몇

개 조지고 잠이 들었다.

아침 8시

전날 술을 안 마셨다 하더라도 평소 기상 시간보다는 이른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나는 단잠을 방해받아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인터폰을 확인하며 물었다.

-강해서 씨! 저 최두홉니다!

...저 아저씨가 아침 댓바람부터 여길 왜 왔지?

-달칵

“최두호 선수님이 여긴 어쩐 일로...?”

"강해서 씨.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네? 갑자기? 왜?

"진짜 술 먹고 일반인 때렸습니까?"

이 아저씨. 중간 없이 훅 들어오시네.

"하... 아니요.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아뇨. 그렇게 보였으면 여기까지 확인하러 오지도 않았겠죠."

"네?"

"그럴 사람으로 안 보여서 여기까지 왔다구요. 자. 운동이나하러 가시죠."

아니.

이 아저씨는 인터넷도 안 보시나...

“저... 제가 사정이 조금 생겨서. 스트리트 파이트 하차 했어요. 그래서 운동

도 안 해도 되고...”

“저는 해서 씨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우승하라고 운동 권한 거 아닙니다.”

“네?”

“그거랑 상관없이 운동하러 가자구요.”

엄... 이렇게 나오니 또 할 말이 없어지네.

“대신. 아름 씨 소개 받으려면 어제 빼먹은 운동까지 오늘 다 하셔야 합니다.

참고로 우리 체육관 훈련은 스트릿 FC보다 빡셀겁니다.”

“...갑자기 가기 싫어지는데요.”

“대신. 스트리트 파이트랑은 비교도 안 되는 좋은 무대. 제가 책임지고 만들

어드릴게요.”

작가의말

사실... 이제서야 밝히는데.

이제 프롤로그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쥔공 강해서가 본격적으로 구르는 그림을 열심히 보여드리

겠습니다.

일단 플랭크부터 조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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