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_중간 평가 결과 꼴찌?
1.
“지난 정기 훈련 때 이후 따로 운동한 적 있어요?”
“아뇨?”
“...”
나도 따로 운동을 조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운동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 어떡해?
헬스장이나 격투기 체육관을 다녀볼까 싶기도 했지만... 언제 떨어질지도 모
르는데 그건 조금 과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냥 또 돈만 날리고 제대로 다니지 않을 것 같아서.
“솔직히 해서 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오늘부터
라도 아침저녁으로 달리기라도 하시면서 기초 체력부터 쌓아야 합니다.”
아침 달리기.
이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근데 요즘 아침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더라고.
아니. 의사도 웬만하면 운동은 실내에서 하라고 했다니까? 진짜다.
건강 하려고 하는 운동을 하다가 건강을 더 해치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달리기도 패스했다.
진짜다.
“...”
최두호 선수의 눈빛에 살짝 경멸이 섞인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어쨌든 나라도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면 저희 팀 체육관에 나와서 운동하시죠.”
“멀어요. 여기도 멀어서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것도 힘든데...”
“해서 씨 집이 어디신데요?”
“홍대 쪽이요.”
“저희 체육관 마포굽니다. 홍대 근처. 가까운데요?”
“...”
난 당연히 강남 쪽인 줄 알았지.
“그러면 저희 체육관으로 운동하러 오실래요?”
“제가 지금 생활고가 있어서. 사실 스트리트 파이트 나온 것도 상금 때문에...”
“전액 무료로 입관시켜드릴게요.”
“...”
대체 나한테 왜 이래?
“하아. 생각해볼게요.”
“진짜죠?”
“생각만 해본다구요.”
이런 유명인이 뭐 뜯어먹을 거 있다고 나한테 이럴까 싶었다.
사실 내가 이곳 체육관을 정기 훈련 때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트는 아무래도 티비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아직 탈락하지
않는 도전자들을 위해 체육관이 언제든 개방되어 있었다. 그것도 무료로.
그런데도 훈련을 나오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너무 강압적인 분위기. 그것 때문이었다.
변명 같지만 난 진짜 운동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 사정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기대치를 갖고 운동을 시키고 더
할 수 있다느니 아직 괜찮다느니. 그런 정신론적인 말로 아무리 응원해봐야
힘이 나진 않는다는 거다.
운동을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적당히 운동했다는 느낌을 받는 수준. 그
러면서 내가 멈추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해보고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백중 구십은
“...인생 참 편하게 살려고 하시네요.”
저렇게 말한다.
“하하. 뭐. 전 운동선수는 아니니까요.”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저런 태도를 견지한다는 게 내 문제점이긴
한데. 어차피 사람은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순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
을 살지 않나?
진짜 변태가 아닌 이상 불편하고 힘든 일만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다들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불편하고 힘들어도 참고 사는 거지.
“그래도 한번 나와보세요. 운동 빡세게 안 시킬게요. 해서 씨가 말 한 것처럼
그만하고 싶을 때 멈출 수 있게 해드릴게.”
“생각해볼게요.”
“저희 체육관에 연예인도 옵니다. 여자 연예인.”
“여자 연예인? 누구요?”
“음... 손아름?”
“무슨 요일에?”
“보통... 목요일 저녁?”
“목요일에 뵙죠.”
“...”
왜.
뭐.
손아름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
물론 손아름이 리엘리 활동할 때부터 팬이긴 했지만. 그리고 나랑 동갑내기라
일방적인 친밀감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손아름 때문에 가는 건 아니었다.
흠. 흠.
스트리트 파이트에 출연도 하고 있으니 그래도 뭔가 운동을 조금 더 해야겠다
는 마음도 있었고, 최두호 선수 정도나 되는 사람이 내 편의까지 봐주며 놀러
오라고 하는데 거절하기도 뭐 해서 승낙한 거다.
왜 목요일이냐고?
어... 마침 그때 뭔가 시간이 프리할 것 같으니까...?
“후우. 일단 일어나보세요. 해서 씨.”
“넵!”
“...묘하게 말을 잘 듣고 기운차 보이는 건 제 착각이죠?”
“네? 무슨 말인지...”
“이번 주에 아름 씨 못 온다고 했던가...”
“저 그러고 보니 목요일에 선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 다음 주구나.”
“아. 제 선약도 다음 주였네요. 요즘 정신머리가. 하하.”
“...”
솔직해지자.
집 앞 커피숍에 여자 연예인이 왔다고 해도 당장 뛰쳐나갈 판에 체육관이라는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데(?)
그걸 안가면 그게 남자 새끼냐?
최두호 선수도 그걸 알고 손아름으로 나 꼬신 거잖아!
“꼬신 거 맞긴 한데... 이렇게 적극적일 줄은 몰랐네요.”
“흠. 흠.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늘 할 훈련은요?”
“후우. 해서 씨는 장단점이 너무 뚜렷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네.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씀해주셨죠.
방송용으로 일부러 설명하시는 줄.
“기초 체력 훈련이나 근력 훈련 같은 건 지금 잠깐 한다고 크게 효과가 없어
요. 이건 진짜 쌓아가는 거라 시간을 두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네. 그것도 아는 내용이구요. 다음.
“그러니까 오늘은 해서 씨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훈련으로 가볼까 합니
다.”
“장점을 극대화 한다구요?”
“네. 해서 씨의 장점. 눈과 바디 컨트롤. 그걸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타격.
그걸 배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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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형 대표는 복잡한 눈빛으로 체육관을 훑었다.
“강해서 도전자. 지난주에 한번도 안 왔지 결국?”
“네.”
장석대는 전두형 대표의 질문에 즉답했다.
사실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강해서 도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도전자는 정말 출근 도장 찍듯 매일같
이 이곳 스트롱 짐으로 훈련받으러 나왔다.
본래 자신이 다니던 체육관이나 팀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은 모든 스텝들이 현역 프로 격투기 선수였고, 무엇보다 이곳으로 출퇴근
도장을 찍으며 친해지는 모든 사람들이 스트릿 FC의 주력 인사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도전자들은 이곳 체육관에 모여 얼굴도장을 찍으며 스텝
들과 조금이라도 더 친분을 만들려 노력했다.
그리고 격투기를 가르치는 수준 또한 동네 격투기 체육관과 비할 바가 아니었고.
그런데 유일하게 강해서 도전자만이 지난주 월요일 정기 훈련일 이후로 한번
도 운동하러 나오지 않았다.
사고가 났거나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닌가 싶어 체육관 막내가 전화했더니 하
는 말이 ‘너무 멀어서 못가요’ 였단다.
“두호네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최두호 선배님과는 오늘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
전두형은 혹시나 강해서 도전자가 최두호의 팀 피스트에서 운동하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저놈은 갑자기 왜 나타나서 저러는 거야?’
최두호와 전두형은 딱히 웃으며 얼굴 볼 사이가 아니었다.
최두호는 현역으로 WFC 웰터급 랭킹 4위를 달고 있지만, 그 나이로 보면 시니
어 격투가였다.
40대 초반이라는 운동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
WFC에 진출하기 전 국내 무대에서 활동할 때는 당연히 전두형과도 여러 가지
얽힐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에 종합 격투기라는 스포츠가 조금은 생소했던 시절.
스트릿 FC라는 단체도 없던 그 시절의 인연.
전두형은 격투기 시장을 키우기 위해 단체 설립을 위해 움직였고, 최두호는
자신의 기량으로 한국 격투기를 세계에 알리길 원했다.
그 사이에 쌓인 작은 오해나 감정의 앙금들은 시간이 지나며 단단히 굳어 이
제는 무엇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유를 갖다 대기도 애매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자진해서 찾아오다니.’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하진 않았을 거다.
아마도 저 강해서라는 도전자 때문이겠지.
자신이 알아본 재능을 최두호가 알아보지 못 했을 리 없다.
오히려 자신이 놓친 부분까지 캐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자. 도전자 여러분들. 오늘도 중대한 발표가 하나 있습니다.”
전두형은 최두호와 강해서를 애써 의식하지 않으며 한창 훈련 중인 모든 도전
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냥 훈련만 하고 집에 가면 재미 없겠죠. 그래서 오늘도 간단한 테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중간 테스트랄까요.”
“중간 테스트요?”
“네. 이번 테스트는 탈락자를 가리는 건 아니지만, 다음 전지훈련 티켓을 걸
고 하는 시합입니다. 테스트 결과 상위 3명만 제주도 전지훈련을 참가할 수
있어요.”
“제주도?”
“우와! 전지훈련이요? 언제 가는 거지?”
전지훈련이라는 단어와 제주도라는 단어.
그 두 가지에 집중하느라 상위 3명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묻힌 듯했다.
“그리고. 이번 테스트는 타격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라운드 기술만을 허용하겠
습니다.”
2.
“저 양반. 또 저러네.”
“네?”
“아. 아니에요.”
아니기는.
최두호 선수랑 전두형 멘토랑 사이가 별로 안 좋은가?
서로 썩 편해 보이지 않네.
보통 WFC 4위 정도 되는 격투기 선수랑 한국 최대 격투기 단체 대표라면 안면
정도는 있을 법한데 말야. 둘이 제대로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하는 걸 보질 못
했다.
“어쨌든. 중간 테스트라. 이거. 강해서 씨한테 너무 불리한데요?”
“그라운드 기술만 쓸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타격 위주로 훈련했으니까요.”
그라운드 기술이라.
뭐 유도나 레슬링. 주짓수. 씨름. 이런 종류의 운동을 베이스로 하는 기술들
을 지칭하는 거겠지?
“혹시 유도나 주짓수 같은 거 배워본 적 있습니까?”
“그럴 리가요.”
“예의상 물어봤습니다.”
“네.”
운동만 해도 땀내 나는데. 거기에다 살까지 맞부대껴 가며 하는 운동이라고?
어후. 만약 스트리트 파이트 출연이 아니었다면 평생 쳐다도 안 봤을 거다.
“일단... 우리는 최대한 이길 수 있는 시합에 집중합시다. 그라운드 시합은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엄청 커요. 해서 씨는 9경기 풀로 뛰지도 못할 겁니다.”
“그라운드는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하는데 서서 뛰어다니는 것보다 체력소모
가 커요?”
“하아... 해 봤어요?”
“아뇨.”
“해보고 이야기해요.”
“...네.”
최두호 이 양반. 점점 날 막 대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최두호 선수가 제시한 전략은 단순했다.
이번 중간 테스트는 승점제로 모든 도전자가 한 번씩 일대일로 시합을 치른다.
결국, 좋든 싫든 9번의 시합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고
나는 체력이 저질이니 비빌만한 시합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포기하고 체력을
아끼자는 것.
“해서 씨는 그래도 키가 있고 덩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몸무게가 몇
이에요?”
“백키로 조금 더 나갈 거예요.”
“그러면 그 무게도 상대방에게 충분히 위협적입니다. 최대한 덩치가 작고. 키
가 작은 도전자 위주로. 힘이 약한 도전자 위주로 승점을 챙겨보죠.”
“넵!”
다행히 ‘스트리트 파이트’는 티비 예능이라 도전자들의 체급을 나누지 않았다.
막말로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매치도 성사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더해 그라운드가 주력인 최두호 선수의 속성 과외까지.
이 정도면 꽤나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강해서 도전자!”
그렇게 시작된 중간 평가.
그리고 그 결과는...
-강해서. 1승 8패. 순위 10.
10명 중 10등.
첫 시합의 1승을 빼고는 모조리 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