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5화 (5/203)

5화_형이 여기서 왜 나와?

1.

고딩을 일으켜주고 케이지를 나올 때까지도 체육관은 조용했다.

함성을 지르거나 축하를 건네기엔 강해서와 친분이 있는 도전자가 없었다. 그

렇다고 마음속으로 강해서를 응원하던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대부분은

‘아까 토하던 사람 아냐?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깨지려나?’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어색한 침묵만큼이나 놀란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보니 더 신기하네.’

바로 전두형 멘토였다.

강해서의 시합을 가까이서 보니 그 신체 컨트롤이 더욱 임팩트있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박지호 도전자가 실수를 한 부분은 없어. 아니. 실수가 있다면 실력 차가 너

무 큰 두 사람을 매칭시킨 우리에게 있겠지.’

박지호는 지극히 정석적인 원-원투 펀치를 뻗으며 탐색전을 펼쳤다.

아니.

펼치려 했다.

가볍게 인사하듯 던진 펀치에 라이트 카운터가 터질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격투기든 복싱이든 가장 중요한 건 ‘리듬’이었다.

복싱 선수는 눈이 좋아 펀치를 다 피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눈도 좋아야 하지만 가장 포인트가 되는 것은 상대의 리듬을 읽고 공격

을 ‘예측’하는 거다.

전체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공격이 들어올 타이밍을 가늠하는 수 싸움.

이 모든 게 찰나의 순간 수없이 반복된 훈련으로 직관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격투기는 타 스포츠보다 경험치가 중요했고 30대를 훌쩍 넘겨서 경

기력이 폭발하는 선수들도 등장하곤 했다.

‘그런데 저건... 진짜 그냥 눈이 좋은 거야.’

전두형은 인정하고야 말았다.

눈앞의 저 펑퍼짐한 도전자는 정말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첫 라운드 첫 펀치 교환에서 상대방의 리듬 따위 파악할 필요도 없이 그저

‘보고 때리는 행위’가 가능할 정도로 좋은 눈을.

‘그리고 저 말도 안 되는 발란스.’

상대방이 공격하는 리듬이 있다면, 당연히 이쪽도 공격하는 리듬이라는 게 있다.

틈이 있다고 언제든 준비된 주먹을 뻗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었다.

호흡의 들숨 날숨. 상체의 움직임. 아주 미세한 어깨의 위치. 허리의 각도.

그 외에도 수많은 공격의 ‘전조’.

격투기는 상대방의 ‘전조’ 혹은 습관이라고 하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먼저 호

흡과 리듬을 훔치는 사람이 승기를 가져가는 운동이었다.

‘그런 세계에서. 저런 눈과 저런 발란스는... 반칙이다.’

전조나 습관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말 그대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이쪽은 전조나 습관 없이 공격할 수 있다면?

만화에서나 볼 법한 불합리함이었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 나타났으니 문제지.’

말 그대로 재능의 영역.

시간과 노력이 쌓아 올리는 게 아닌. 그저 타고난 불합리함.

그렇기에 강해서를 바라보는 전두형의 감정은 놀람과 기대 반. 그리고 불편함

과 씁쓸함이 반이었다.

-짝! 짝! 짝!

순간 오디오가 비었던 체육관은 전두형의 박수 소리와 함께 조금씩 부산스러

움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

“훌륭한 타격이었습니다. 가벼운 견제도 그냥 넘기지 않고 오히려 반격의 기

회로 잡은 강해서 도전자. 격투기는 저런 집념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박지

호 도전자는 초반 탐색전을 펼칠 거라 생각하고 방심하는 마음이 있었던 듯합

니다. 격투기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대비해야 합

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조금 더 정진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전두형 멘토는 박수 세 번을 치더니 앞선 시합에 대한 평가를 간략히 코멘트

했다.

집념이라.

그런 거 없었는데.

적당히 포장해주는데 굳이 아니라고 유난 떨기도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이쯤 되니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겠다.

‘나. 소질이 있구나.’

단순 자의식 과잉이라기에는 근거가 너무 많았다.

홍대 오디션에서 프로 파이터를 다운시킨 것이나. 조금 전 건방진 고딩을 쓰

러뜨린 것.

오히려 이 정도 성과를 보이고도 ‘아니야. 나 따위가 무슨 재능이야. 우연이

겠지. 요행이겠지.’라고 포장하고 넘기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철 지난 착각계 클리셰도 아니고.

이제 중요한 건 이 소질이 어떤 수준인지. 소질을 살려서 뭔가에 도전할 것인

가. 정도겠지.

“강해서 도전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도전자들의 시합도 빠르게 지나갔다.

총 열 번의 시합.

빨리 끝난 시합은 1라운드 3분 안에 끝나기도 했고, 길어져도 10분 안으로 끝

났다.

승리한 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신감 어린 얼굴을 하고 있

었고 패배한 사람들은 마지막 인터뷰를 하며 아쉬운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해서 도전자!”

“아. 네.”

누가 부르나 싶어서 돌아보니 전두형 멘토였다.

“끝나고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어... 네.”

첫 훈련은 도전자들의 기본역량 파악과 절반이라는 탈락자를 만들며 끝났다.

남아서 개인 운동을 더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1도 없었다.

‘그나저나. 왜 나만 따로 부른 거지?’

기초훈련 다 끝날 때쯤에나 뒤늦게 나타나서는 나 혼자만 따로 남으라니 뭔가

찝찝했다.

“어. 들어와. 커피 한 잔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물이나 한 잔 주세요.”

방송국 사람들도 모두 철수하고 촬영이 정말 끝난 뒤.

체육관 안쪽 사무실로 전두형 멘토를 찾아갔다.

“강해서 도전자한테 할 말도 있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불렀어. 잠시

앉지.”

“넵.”

전두형 멘토는 내 앞으로 물잔을 내려놓으며 맞은편 의자에 앉아 날 지그시

바라봤다.

“강해서 도전자. 아니. 강해서 씨.”

“네?”

“너. 격투기. 계속할 거야?”

“...”

갑자기?

오늘 훈련에서 너무 농땡이 피웠나?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너 소질 있어. 소위 말하는 운동신경이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격투

기 하기에 딱 적합한.”

“아. 네.”

칭찬으로 훅 들어오니까 할 말이 없어지네.

“그런데. 체력이랑 근력이 너무 떨어져.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관리를 소

홀히 하면 녹이 스는 법이야.”

“...네.”

“그래도 아직 기름칠하고 녹 벗겨내면 쓸만해 보여서 그래. 어때? 격투기 계

속할 마음 있으면 우리 스트릿 FC에서 제대로 한번 준비해보는 게?”

“어... 하하.”

오늘 훈련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부른 줄 알았다.

격투기를 계속할 거냐고 물었을 때도 못 할 것 같으면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고.

그런데 전두형 멘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기에,

대답 대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 가지고 있는 게 많아. 그거 썩히기 아까운 거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한다고 하면 이 형이 팍팍 밀어줄 테니까.”

“하하. 네. 조금 생각 좀 해볼게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라. 갑작스럽

기도 하고.”

“그래. 훈련은 계속 나올 거지?”

“네? 네. 저도 하는 일이 있어서 매일은 못 나올 것 같고. 지정 훈련 일에는

나와야죠.”

“그래. 나가봐. 한번 잘 생각해보고.”

“넵.”

할 말이 끝났는지 손짓을 하며 나가보라는 전두형 멘토.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흐음...”

참 걸리는 부분들이 자잘하게 많은데. 말 그대로 너무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

이라 발끈하기도 뭐해서 더 찝찝하네.

“저, 저기요.”

터덜터덜 체육관 계단을 내려가는데 누가 날 불러세웠다.

“어? 그... 어. 안 가고 왜 여기 있어?”

아까 나랑 시합 뛰었던 고딩이었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고 고딩이라고 부르기도 뭐해서 대충 말을 뭉개며 대답했

는데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엉?”

“시합 때. 아. 그. 훈련할 때도요. 형님한테 버릇없이 군 것 같아서...”

하.

이거 또 이렇게 나오면 내가 나이 먹고 쪼잔하게 애 쥐어팬 것 같아지는데.

“괜찮아. 남자끼리 뭐 그런 거 가지고. 생각보다 소심한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아까 형님이 저 일으켜주실 때 보니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서. 그땐 당황해서 사과 못 드렸고 그 뒤로도 말할 타이밍이 안

나서...”

“그래서 밑에서 기다린 거야? 다른 사람들은 한참 전에 다 갔는데?”

“뭐. 저야 이미 탈락인데요. 시간도 널널해요.”

마냥 싸가지 없는 고삐리로 봤는데.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그래봤자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내 삶의 엑스트라지만.

“어쨌든. 저 몰랐는데 형이 홍대 길거리 오디션 때 절대 고수 KO시킨 분이라

면서요?”

“어? 어. 그랬었지.”

“그런 줄 알았으면 안 깝쳤을 텐데. 아. 그렇다고 형이 잘 쳐서 예의 차린다

는 건 아니구요. 그 뭐냐. 시합 전의 기 싸움 같은 거였어요. 원래 그렇게 싸

가지없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래. 그래.

알겠으니 그냥 대충하고 가 주면 안 되겠니.

난 운동선수도 아니고 시합 같은 것도 태어나 처음 해보는 거라 경기 전의 기

싸움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지금 얘가 하는 말이 이해되거나 공감이 가지도 않았고.

“응원할게요. 형! 꼭 우승하세요!”

“그래. 고맙다. 얼른 가. 사라져. 훠이.”

“아. 뭐야. 알겠어요! 저 갈게요! 파이팅!”

하.

지치는 하루구만. 몸도. 정신도.

2.

“그래서? 그냥 왔냐?”

“그러면. 그냥 오지 거기서 뭐라 그래.”

“쯧. 병신.”

준현이 놈과 집 앞 스몰비어에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오늘 있었던 일을 안

주 삼아 씹었다.

“나잇살 처먹고 반말 찍찍 내뱉는 놈들은 똑같이 반말로 응수해줘야지.”

“뭐. 반말은 괜찮았대도.”

지금 씹히는 주제는 전두형 멘토였다.

사소하지만 계속 거슬렸던 부분들.

따지자니 쪼잔해 보일까 봐 그냥 넘겼던 것들도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하긴. 너도 고삐리한테 바로 말 놨다며?”

“걔가 먼저 싸가지없이 굴었으니까.”

“근데 끝까지 남아서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그래서 나만 꼰대가 된 느낌이었지.”

“꼰대 새끼.”

“닥쳐.”

지치는 하루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 낯선 장소. 힘든 운동. 거기에 방송과 시합까지.

어느 것 하나 편한 게 없었다.

지금 이 한 모금의 맥주마저 없었다면 오늘 하루는 정말 최악으로 기억됐을지도.

“어쨌든. 전두형이 한 제의는? 받아들일 거야?”

“미쳤냐? 이 나이 먹고 무슨 격투기야. 대놓고 바로 거절하기 뭐해서 생각해

본다 했던 거지.”

“왜? 그래도 남자의 로망이잖아. 격투기 선수. 크으. 마초적인 남자의 상징이

지. 그렇게 생각하니 너랑 안 어울린다. 때려쳐라.”

오늘 배운 기술이 있는데. 이놈한테 한번 써먹어 볼까?

“듣자 하니 그 전두형이라는 사람. 썩 좋은 사람 같진 않네.”

“엉? 왜?”

“그냥.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전형적인 운동만 한 사람. 그리고 사업가적

인 마인드랄까?”

“어떤 점이?”

“마이페이스 적이고. 상대방을 짓누르고 윽박지르고. 그러면서도 살살 달래면

서 띄워주고. 딱 그런 느낌인데. 사람이 나쁘고 악한 사람이라기보단. 성향이

너랑 안 맞을 듯.”

흠. 그런가.

내가 오늘 계속 걸렸던 부분들이 준현이가 말한 부분들이었다.

은근히 말을 놓는다거나. 사람을 쥐고 흔든다거나. 적당한 무례로 사람을 간

보며 압박한다거나. 그러면서도 자기 페이스대로 사람을 띄우고 컨트롤하려는

모습들까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거. 스트리트 파이트. 그건 좀 열심히 해봐.”

“야. 오늘 토할 정도로 빡세게 구르고 왔거든?”

“조금 더 진심이 돼 보란 말이야.”

진심이라...

“솔직히. 너 뭐든 대충대충 인생이잖아. 뭘 해도 한 달 이상 가는 법이 없고.

넌 진짜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해.”

“...내가 뭐.”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설렁설렁. 그래도 어떻게 인 서울은 했지. 그 이후

로도 뭐든 남들보다 앞서갈 만큼만 발 담그고 금방 싫증 내잖아.”

“갑자기 뼈를 때리네?”

“넌 뭘 하든 초반에 남들보다 빨랐어. 그런 만큼 남들보다 빨리 식고. 그러니

효인이도...”

“야이 씹...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너도 힘든 거 알아 새꺄. 그러니까 그냥 빡세게 좀 굴러봐라. 남들보다 태울

것도 많은 놈이 만날 타다 마냐.”

쩝.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

노력하는 거. 그것도 재능이다. 너.

난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는거라고.

나도 한 번 쯤은 열혈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처럼 불타고 싶을 때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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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정기 훈련일.

“저는 강해서 도전자를 전담으로 코칭하고 싶습니다.”

“...”

이 사람들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강해서 도전자를요?”

“네. 출연 조건으로 이야기된 부분입니다.”

저기요. 제 의견은요?

“잘 부탁합니다. 강해서 씨.”

“...”

아무리 격투기 쪽을 잘 모르는 나라도 아는 유명인.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최초로 WFC 챔피언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선수.

“최두호라고 합니다.”

WFC 웰터급 4위에 빛나는 최두호 선수가. 뭐가 아쉬워서 여기 나타 나냐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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