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더 씨부려봐
1.
장석대는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1의 출연자 출신 파이터다.
시즌 1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기에 스트릿 FC의 전두형 대표의 눈에 들 수
있었고 프로 파이터로 데뷔까지 할 수 있었다.
비록 데뷔 이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프로가 되며 밥 먹고
훈련만 하며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1에 출연했을 때보다는 월등히 높은 기량
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에 절대고수로 참여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망설임 없이 수락할 수 있었고.
-장석대 절대고수도 다운입니다! 라이트 카운터에 이은 왼손 바디 훅! 이어서
들어오는 장석대 절대고수의 스텝을 걷어내며 쓰러지는 장석대 선수를 향해
라이트!
스트리트 파이트 시즌 2의 길거리 오디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일 년 가까이 훈련하며 끌어올린 피지컬은 운동 조금 했다고 덤비
는 일반인 참가자들을 상대하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홍대 길거리 오디션에서 즉흥 도전을 했던 도전자.
강해서라는 살짝 멍해 보이는 도전자에게 다운을 빼앗겼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게.
나중에 녹화영상을 보고서야 어떻게 다운됐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그 또한 이
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지.
“오늘 보면 알겠지.”
장석대는 팀 ‘열정’의 코칭 스테프였고. 강해서 참가자는 팀 열정의 멤버였으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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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에에엑...”
와씨... 괜히 점심 든든히 먹고 왔나?
그래도 난생처음 하는 격투기 훈련에 대비해서 점심부터 고기로 열량보충도
하고 왔는데 강제로 내 점심 메뉴가 공개됐다.
이런 부분은 편집해주겠지?
“... 저쪽으로 가서 잠시 휴식합니다.”
“어후... 네.”
침인지 위액인지 모를 액체를 소매로 스윽 닦으며 구석의 벽으로 가서 숨을
좀 진정시켰다.
체육관 바닥에 흩뿌린 점심의 흔적은 방송국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만
상을 찌푸리며 치웠다. 쟤네도 정말 극한직업이구나.
“강해서 도전자?”
한참 숨을 고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는지 내게 다가오는 방송국
스텝.
“계속하실 수 있겠어요?”
“후우. 할 수는 있겠는데. 아까처럼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좀 쉬어도 돼요?”
“일단 그렇게 코치진에 전달은 해둘게요.”
“넵.”
그래도 첫날부터 못 하겠다고 포기하긴 좀 그랬다.
그리고 아까는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무리하게 움직여서 그랬던
거고. 이제는 슬슬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다들 운동을 꽤 한 사람들이니 저 사람들 따라갈 생각 말고 내 페이스
대로 하면 괜찮겠지.
“자! 자! 5분 휴식하고 다음 훈련 들어갑니다! 앉아서 쉬지 말고 계속 걸으세
요!”
앉아서 쉬는 동안 체력 테스트가 끝났나 보다.
다들 체력이 대단하네. 나는 숨은 조금 편해졌지만,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
는데 다른 도전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앉아서 쉬지 않고 체육관을 돌기
시작했다.
“강해서 도전자?”
“네?”
“다 쉬었으면 일어나서 같이 돌아요.”
“아. 네.”
5분 휴식이라더니 앉아서 쉬는데 왜 일으켜 세우고 난리야.
이게 휴식이냐?
“와. 저 사람은 어떻게 붙었지?”
“저 사람이랑 같이 오디션 본 사람?”
“홍대 오디션 때 붙었다던데? 우리 팀에 홍대 오디션 출신 없어?”
다른 도전자들 사이에 끼어 체육관 강강술래를 하자니, 앞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참. 속닥거리려면 당사자한테는 안 들리게 속닥거리던가. 아니면 아예 크게
이야기를 하던가.
“야. 다 들리는 거 아냐?”
“들리면 뭐? 아까 못 봤어? 팀 대결 가기도 전에 훈련에서 탈락하겠구만 뭔
상관이야?”
“하긴.”
아니. 그렇다고 진짜 대놓고 크게 이야기하시면 쫄아서 뭐라 하지도 못하잖아요.
진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차오르네.
“휴식 끝! 지금부터는 근력 테스트입니다. 코치진이 지목해주는 사람들끼리
페어를 이뤄 맞잡기 훈련을 실시합니다.”
“네!”
다음 테스트는 근력 테스트였다.
이래 봬도 힘은 꽤 자신 있는 편이었다.
키 186. 몸무게 105키로 정도?
지금 내 스펙이었다.
‘어디 가서 힘으로 꿇리진 않지.’
맞잡기라면 도전자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형태인 것 같으니 체력 테스트보단
조금 수월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악! 탭! 탭탭!!”
나보다 훨씬 작은 사람과의 잡기 훈련에서 쪽도 못 쓰고 연신 탭을 쳐야 했다.
2.
“어때? 그 친구는?”
“그 친구라면...”
“홍대 오디션 때 즉석 오디션 본 도전자 말이야.”
“아...”
장석대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기보다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잠시 말을 줄였다.
“왜? 별로야?”
“음... 직접 보시는 게 나으실 것 같습니다.”
팀 열정의 멘토이자 스트릿FC의 대표인 전두형.
기초 테스트가 모두 끝난 뒤에야 체육관에 도착했기에 강해서가 지난 테스트
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꽤 기대하는 친군데 말야. 다음이 바로 테스트인가?”
“네.”
전두형이 늦게서야 체육관에 나타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체육관에서 훈련에 몰두해 있는 팀 ‘열정’의 멤버는 20명.
너무 많았다.
“도전자들 수준 파악 대충 됐지?”
“네. 기초 테스트 결과를 기준으로 수준별로 나눠놨습니다.”
“두 명씩 짝지어서 명단 가져와 봐.”
“네!”
스트리트 파이트는 큰 예산을 들이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격투기 부흥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스트릿FC’의 홍보와 새로운 신인 선
수의 수급이 메인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른 가수 오디션 같은 것처럼 오래 끌 필요가 없다는 거지.’
끽해봐야 12부작짜리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가장 시청률 높은 오디션 분량만 3회를 잡아먹는다.
그러니 시청률이 주춤할 4회부터 바로 탈락자가 나와야 했다.
한마디로 훈련 첫날 절반은 탈락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그래.”
그리고 절반의 탈락자를 만들어낼 대진표가 전두형의 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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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지금부터 불러주는 대진표대로 일대일 시합을 거쳐 탈락자를
선별한다. 질문 있는 사람?”
훈련 첫날부터 절반의 탈락자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싸늘한 정적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이럴 거면 애초에 절반만 뽑지. 왜 뽑아놓고 첫날부터 떨어뜨리는 거야?
그래도 며칠은 훈련도 하고 해야 뭔가 발전이 있지.
“그러면 대진표를 불러줄 테니 각자 상대편 확인하고.”
결국, 아무도 질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에 전두형 멘토는 대진 순서대
로 인원을 호명했고 잠깐의 인터뷰 시간을 가진 후 시합이 진행된다고 안내받
았다.
“강해서 도전자는 홍대 길거리 오디션에서 즉흥 참가를 하셨는데요. 오늘 훈
련을 받아보니 어떠셨어요?”
따로 마련된 간이 인터뷰실에서 도전자들은 돌아가며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 강해서 도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피하고 싶은 선수는 누구인가요?
그리고 가장 먼저 탈락할 것 같은 선수는요?”
체육관 안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라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이 모두가 다 들을
수 있는 인터뷰여서 참 난감했다.
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고,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런 질문은 좀 그렇
지. 그것도 다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글쎄요. 저는 사실 격투기는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기 때문에 모든 도전자분
들이 피하고 싶은 선수입니다. 가장 먼저 탈락할 것 같은 선수는... 저일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모범답안이겠지 싶었다.
적당한 겸손과 적을 만들지 않는 대답. 이게 바로 사회생활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이었나보다.
“제일 먼저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이요? 아까 본인이라고 대답한 사람 있잖아
요? 그 강해서인가? 그래도 주제 파악은 잘 하시더라구요.”
속삭여도 잘 들릴 거리에서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내는 건지. 듣기 싫어도 들릴
정도로 대답하는 도전자가 있었다.
한참 앳된 얼굴을 한 도전자.
고교생 파이터라고 했던가?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체력도 좋았던 것 같다.
나랑 거의 띠동갑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팍 늙은 기분이네. 나도 고딩
때가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야. 너 저 아저씨랑 붙더라? 개 부럽네.”
“완전 꽁승이지. 아까 다리 후들거리는 거 못 봤냐?”
“힘도 별로 없어. 아까 맞잡기 할 때 내가 잡았잖아. 저거 다 물살이야. 덩치
에 쫄 필요 없어.”
인터뷰를 끝내고 나온 고교생 파이터와 대화를 나누는 도전자는 아까 나와 맞
잡기 훈련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고딩이 내 시합 상대였나?
이름을 기억 못 하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
-툭
“파이팅해요.”
저 버르장머리 없는 고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중일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 예.”
“아까 심하게 토하던데. 괜찮아요?”
“네. 이젠 뭐. 하하.”
“너무 무리하지 말구요.”
“네.”
마찬가지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팀 최고령 도전자인 아저씨였다.
30대 후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보단 체력이 좋았다.
진짜 운동 좀 하긴 해야 하나. 글 쓴다고 맨날 방구석에만 틀어 박혀있었더니
몸이 엉망이 된 것 같았다.
“오. 저기 노땅들끼리 뭉쳤다.”
“탈락 후보들끼리 서로 위로하나 보지 뭐.”
이 아저씨는 몰라도 난 노땅 아니다 아가들아.
서른 살이면 아직 한창이라고. 나보다 나이 많은 도전자도 많은데 왜 내가 노
땅으로 엮여야 되냐고.
“자. 인터뷰 끝났습니다. 다들 충분히 몸 풀고 쉬셨을 테니 바로 탈락자 선정
시합 들어가겠습니다.”
팀원이 스무 명이나 되다 보니 짧게 진행한 인터뷰였음에도 거의 한 시간 가
까이 걸렸다.
“첫 시합은 박지호 도전자. 강해서 도전자. 준비해주세요.”
“네!”
“네.”
쟤 이름이 박지호였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시합은 첫 번째 순서였다.
온몸이 물 먹은 듯 무겁고 나른하긴 했지만, 더 오래 쉬면 몸만 더 쳐질 것
같았는데 차라리 다행이다.
빨리 끝내고 맘 편히 쉬는 게 낫지.
“자. 간단히 웜업하고. 케이지로 입장하세요.”
시합은 철조망이 쳐진 케이지라는 곳에서 진행됐다.
“깨물기. 급소 공격. 눈 찌르기 하면 안 되고...”
시합 전 주의 사항을 한 번 더 주의시킨 후
“레디- 파이트!”
시합이 시작됐다.
-툭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손을 내밀어봤는데 다행히 고딩도 호응을 해줬다.
-퉁. 퉁.
퉁퉁 뛰며 케이지를 돌아다니는 고딩.
체력도 좋다.
“아저씨. 고딩한테 맞았다고 쪽팔려 하지 마세요.”
왜 안 들어오나 했는데 깝죽거리려고 그런 건가.
뭔가 한마디 하려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고딩.
‘뭐야? 얘 왜 이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대나 했는데 홍대 오디션 때 경험했던 절대고
수들 보다도 느렸다.
-쉬익
내게 뻗어오는 왼손을 딱 맞지 않을 정도만 상체를 뒤로 젖혀 피했다.
홍대 오디션 때처럼 바깥이든 안쪽이든 파고들고 싶었지만, 다리가 무거워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쉭. 쉬익.
뻗은 손에 걸리는 게 없자 다시 왼손 오른손을 뻗는 고딩.
‘그렇게 느려서 맞겠냐.’
너무 직선으로 뻔하게 날리는 주먹인 데다 속도도 느렸다.
두 번째 날리는 왼손도 상체를 뒤로 젖혀 피한 다음, 상체가 다시 돌아갈 자
리로 날아드는 오른손을 내 기준 왼쪽으로 상체를 숙여 피하며 텅 비어 있는
고딩의 턱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뻐억!
-쿵!
“다, 다운! 박지호 도전자! 라이트 카운터에 다운을 뺏겼습니다! 카운트! 아.
아닙니다. 코치진 더는 시합이 어렵다고 판단! 강해서 도전자 승리를 판정합
니다!”
뭐야.
이렇게 쉽게 끝난다고?
시합이 시작되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승리 판정이 떨어졌다.
너무 싱겁잖아. 진짜.
-척
나는 아직도 링에 주저앉아 정신 못 차리는 고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손을 잡고 일어서는 고딩. 그러고 보니 얘 이름이 뭐더라.
어쨌든 고딩을 일으켜 세우며 카메라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한마디 했다.
“더 씨부려봐. 고딩한테 맞고 뭐가 어째?”
작가의말
않이...
당연히 절대고수보다 약하지 주인공아.
자라나는 고딩을 그렇게 무참히...ㅠㅠ
혹시 독자님들 중에는 격투기나 운동 취미를 가지고 계신분이 있으실까요?
작가는 예전에 복싱을 조금 오래 했었습니다.
요즘은 볼링이 취미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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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비님 소중한 후원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글로 보답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