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첫 정기훈련
1.
“와이 씨.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스트리트 파이트’ 길거리 오디션을 끝마치고 다시 돌아온 술자리.
친구들은 어느새 술이 다 깼는지 조금 전 길거리 오디션 상황을 설명하라며
난리였다.
“뭐가 어떻게 돼. 아까 티비 보면서 말했잖아. 격투기나 복싱 같은 거 보면
좀 허접하지 않냐고. 그래서 한번 나가봤지.”
“... 그래서. 나가서 절대고수를 쓰러뜨렸다고?”
주점에서 길거리 오디션 무대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을 텐데 볼 건 다 본 모양
이었다.
“기태 너가 그랬잖아. 보기엔 저래도 실제로 붙어보면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
고 뒈질 거라고. 그래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서 나갔지.”
“...너 격투기 같은 거 배운 적 있냐?”
“헐. 뭐래?”
내가 운동이라고는 학부생 시절에 헬스장 깔짝 며칠 나간 것 외에는 접해본
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친구들이다.
“야. 야. 해서 쟤 운동하는 걸 내가 14년째 본 적이 없어. 격투기는 무슨.”
준현이가 야채들만 남아있는 안주를 뒤적거리며 내가 할 이야기를 대신해줬다.
“아니. 그러면 말이 안 되잖아. 절대고수라고 나오는 애들 프로 선수들 아냐?”
나름 운동 좀 했다는 기태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친구들을 둘러
보며 말했다.
“야. 절대고수라고 해봐야 국내 격투 리그인 스트릿 FC 애들이야. 그것도 거
의 대부분이 지난 시즌 ‘스트리트 파이트’ 출전자들. 막 그렇게 대단하고 실
력 있는 애들 아니야.”
그리고 이어진 친구 재현이의 발언. 격투기를 취미로 꽤나 오래 배웠던 만큼
재현이의 말은 꽤나 신빙성이 있게 들렸다. 기태마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쟤네들 딱 내수용이야. 브로나 WFC에서는 받아주지도
않는 쩌리들. 스트릿 FC 챔피언도 WFC가면 1승 챙기기 어려운 마당에 저런 애
들은 일반인들 러키 펀치에 맞고도 얼마든지 쓰러질 수 있지.”
재현이의 말을 듣다 보니 나까지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긴.
프로 격투기 선수들이라고 하기엔 절대고수라는 사람들 너무 허접하긴 했다.
그렇게 빠르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으니까.
“야. 진짜 실력 있는 애들이 이런데 나와서 길거리 오디션으로 일반인들이랑
싸우고 그러겠냐? 시합 일정 잡고 훈련하기 바쁘지.”
“하긴. 그렇긴 하겠다.”
“쟤네들은 그냥 동네 체육관이 있는 격투기 좀 배웠다는 애들 수준이라는 거지?”
“그러면 해서가 러키펀치로 쓰러뜨린 것도 충분히 이해되지.”
이윽고 친구들은 원하던 답을 찾았는지 격한 공감을 하며 ‘맞아 맞아’를 연발
하고 있었다.
뭐.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친구들이 내 승리나 성취를 시기 질투해서 폄하 하거나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얘들이 그럴 애들은 아니지.’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거겠지.
평생 운동하는 거라곤 본 적도 없는 친구가. 글 쓴다고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운동 부족의 화신 같은 놈이. 갑자기 프로 격투기 선수를 쓰러뜨려 버렸으니
이 상황을 납득 하기 위해 어떻게든 끼워 맞추고 있는 거였다.
‘하긴. 나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쉬웠다.
너무 쉬웠으니까. 말 그대로 상대들이 너무 약했으니까.
문제는. 왜 절대고수들이 저렇게 약하냐는 거였는데, 재현이의 이야기를 들으
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야. 그렇다고 해서가 한 일이 대단하지 않은 건 아니야. 격투기 종목은 겉핥
기로 살짝만 배워도 보통 사람은 상대하기 어려워. 그런데 나름 프로라고 격
투기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을 이긴 거면... 해서 생각보다 재능이 있을지도?”
재현이는 혹시나 내가 기분 나쁠까 봐 뒤엣말을 덧붙였다.
이런 부분까지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재능있으면 뭐. 나이 서른이면 있던 재능도 다 썩었을걸?”
어느새 안주를 다 해치웠는지 포크를 쭉쭉 빨던 준현이가 한마디 보탰다.
“하긴. 너무 늦긴 했지. 보통 이런 운동 종류는 막 10대 때부터 포텐 터뜨리
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맞아. 맞아. 나이에 3자 달고부터는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게임 한다고 하
룻밤 새면 이틀은 죽는다니까.”
대화 주제는 어느새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에서 나이와 체력의 상관관계로
넘어갔다.
오디션 내용에 대해 조금 더 떠들 법도 한데 내가 별말 없이 가만있자 대화
주제를 돌려준 거다.
얼마 전 글 쓰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이것저것 겹겹이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한 번 폭발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듯했다.
“저... 이거...”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모기 날갯짓만큼 작은 목소리.
하지만 남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언제 왁자지껄했냐는
듯 조용해지는 테이블.
“어... 이거. 서비스... 에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서빙 실수를 할 뻔했던 알바생이었다.
“서비스요? 갑자기?”
“아까 접시랑 안주 쏟을 뻔한 거 구해주시기도 하셨고... 그... 스트리트 파
이트 오디션 잘 봤어요!”
“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주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술집을 꽉 채운 테이블.
그중 우리 테이블을 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정확히는 우리 테이블이 아닌 나를 보면서.
“어이쿠! 감사합니다!”
안주가 떨어져 포크만 빨던 준현이가 두 손으로 공손히 서비스 안주를 받아들
었다.
알바생은 서비스 안주를 건네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고 우리 테이블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갑자기 서비스 안주?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치? 우리 중에 맘에 드는 사람이 있다거나?”
“킹리적 갓심 인정. 그럼 난가? 아까 들어올 때부터 알바랑 눈이 계속 마주치
더라니.”
이 미친놈들은 갑자기 진지해져서는 서비스 안주 하나에 오만가지 의미를 다
부여하고 있었다.
“미친놈들. 안주 서비스를 알바가 줬겠냐? 사장님이 줬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냅다 도망가지.”
응. 니말 내 맘.
어느새 서비스 안주를 자기 개인 접시처럼 두고 흡입하던 준현이가 한마디 했다.
준현이는 우리 사이에서 현자로 통했다.
통역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외국계 무역업체를 다니는 엘리트 스
타일의 친구.
어떤 상황에서도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에 현자 혹은 현타라 불
리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점은
“준현이 저거 또 저러네.”
“냅둬. 모쏠의 패배 의식이야.”
“이런 경험이 없으니 저렇게 냉소적일 수밖에.”
모쏠이라는 이유로 이런 상황에서는 끝발이 안 먹힌다는 점이었다.
“야. 난 준현이 니 의견에 한 표 던진다.”
“역시. 넌 나랑 같은 과야.”
어... 그건 좀 사양하고 싶은데.
그냥 니 의견에만 한 표 던진다고 인마.
“그나저나. 너 예선. 붙은 거지?”
“어? 어.”
다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누가 가서 알바한테 번호를 물어볼지 정한다고 소
란스러운 사이. 준현이는 아까 전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에 대해 물었다.
“뭐 팀도 뽑더만. 어디 뽑았어?”
“나? 열정 팀인가? 그 제일 무게 잡는 아저씨 팀.”
“전두형 대표 팀이네?”
전두형?
그런 이름이었던 것도 같다.
“먼저 캐스팅하겠다고 팻말들길래. 왜? 그 사람 별로야?”
“나도 모르지. 어쨌든 SFC 대표니까 나쁘지 않을걸?”
“SFC?”
SFC가 뭐야?
내가 아는 SFC는 슈퍼패미콤 아니면 스튜던트 포 크라이슽...
“야이씨. 넌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까지 나가놓고 SFC가 뭔지도 모르냐? 스
트리트 파이트 클럽. 스트릿 FC. 줄여서 SFC!”
“나야 그냥 바로 앞에서 하길래 나갔던 거지. 아. 그래서 프로그램 이름도 스
트리트 파이트구나?”
“와.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준현이.
“그래서. 그거 할 거야?”
“할 거냐니?”
“스트리트 파이트.”
“어... 오디션 보고 붙었는데. 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 주 월요일에 강남에
있는 무슨 체육관으로 오라던데?”
“그거 가면 엄청 빡셀걸? 괜찮겠냐? 그거 솔직히 프로 격투기 선수 준비할 거
아니면 별 의미 없잖아.”
“그렇긴 한데. 하긴. 내가 뭐 격투기 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월요일 나가보
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되겠지.”
“쩝. 아니다. 차라리 가서 빡세게 구르는 게 잡생각 없애기 좋을 수도 있겠다.”
잡생각은 무슨.
요즘 차기작 생각밖에 없구만.
이참에 자료 조사 겸 격투기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훈련하는지도 구경하고 실
제 선수들이 쓰는 용어나 몸짓 같은 것도 좀 배워야겠다.
“아... 저 남자친구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재현이는 결국 알바에게 전화번호를 따러 갔다가 대차게 까였고
“풉! 푸하하하하하!!”
테이블엔 나머지 친구들의 즐거운 웃음이 가득했다.
2.
“여긴가?”
더 스트롱 짐.
스트리트 파이트 작가가 알려준 주소가 가리키는 곳이었다.
입구 주변부터 방송 카메라들이 설치되어있는 게 제대로 찾아온 듯했다.
“바로 들어가면 되죠?”
입구 바로 옆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는 스텝에게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헬스장은 몰라도 이런 종류의 GYM은 태어나 처음 와본다.
뭔가 좀 뻘쭘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런 곳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오! 해서 씨. 어서 오세요.”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이 익을랑 말랑한 사람이 반겨줬다.
스트리트 파이트 작가였던가?
“딱 맞춰서 오셨네요? 다른 참가자분들은 다들 도착해 계시니까 바로 옷 갈아
입고 나오실게요.”
“...네.”
문자로 알려준 시간보다 5분이나 일찍 도착했구만 마치 늦었다는 뉘앙스를 풍
겼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빨리 와서 옷도 갈아입고 몸도 풀고 있다 이거지?
저도 일찍 왔는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을 두드렸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첫 촬영부터 소란피울 필요는 없으니까.
탈의실이 어디인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다른 스텝 하나가 갈아입을 ‘팀
열정’의 로고가 박힌 옷과 탈의실을 안내해줬다.
낯설다.
낯설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더 낯설었다.
아무도 뭘 하라고 안내해주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코칭 스테프들이 올 때까지 자유롭게 몸 풀고 계시면 됩니다.”
이 한마디가 끝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스트레칭을 하거나.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혹은 이미 친분이
있는지 서로 몸을 잡고 몸을 푸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같은 참가자한테 물어보기도 뭐해서 대충 어디서 본 듯한 스트레칭들을 했다.
다른 참가자가 하는 스트레칭을 흘깃거리며 따라 해보기도 했고.
‘나한테 늦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으면서. 코칭 스테프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아는 사람도 없는 공간에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가만히 있으려니 정말 질
식할 것 같았다.
탈출하고 싶어!!!
“자! 팀 열정의 코치진과 스텝 분들 들어옵니다!”
한창 탈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우르르 들어오는 덩치들.
팀 ‘열정’의 코치진과 스텝들이었다.
“반갑습니다. 팀 열정 참가자 여러분. 일단 오늘은 각자 개인 기량 파악과 체
력 파악들을 조금 하겠습니다. 그래야 훈련 커리큘럼을 짜거든요.”
“네!”
간단한 자기소개도 없이 바로 훈련 커리큘럼을 위한 수준 파악 훈련에 들어간
다며 참가자들을 소집시키는 코치진.
“자. 일단 체력부터 체크하겠습니다. 저기부터 여기까지 왕복달리기.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거나 걷지 말고 뛰어야 합니다.”
체육관 끝과 끝에 놓인 고깔 모양의 반환점을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하는 체력
테스트였다.
푹신한 체육관 바닥을 발로 툭툭 밟으며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훈련
에 임했는데.
“...강해서 참가자? 벌써 포기하는 겁니까?”
“우웨에에엑”
와나... 이거 힘들어 뒈지겠네.
팀 열정 참가자 중 가장 먼저 리타이어해버렸다.
작가의말
처음 버피테스트를 했을때가 생각나네요.
‘에이 뭐 저거 가지고 죽을상을 써?’
라고 생각했다가 정말 죽을 뻔 했지 뭐에요...
운동은 겸손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