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딱대격투천재의 탄생-2화 (2/203)

2화_존나 쉽구만

1.

케이블 방송 XTN의 격투기 오디션 ‘스트리트 파이트’

그리고 그 메인 후원사인 스트릿 FC의 전두형 대표.

“레디. 파이트!”

홍대에서 치러지는 ‘스트리트 파이트’ 길거리 오디션.

길거리 오디션이라고 하지만, 도전자들은 모두 사전에 지원서를 통해 한번 걸

러진 사람들이었다.

가짜 감동 팔이 사연부터, 운동 경력을 속이거나 과거를 미화하는 도전자들도

부지기수.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운동 경력이 있다’라는 것이다.

‘저거. 저거. 아주 기본도 안 돼 있네. 진짜.’

그런데 지금 오디션 무대에서 스트릿 FC 소속 프로 파이터 박정태 선수와 마

주 선 도전자.

이곳 홍대 오디션장에서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도전한 현장 도전자였다.

“흠..”

꼭 저런 사람들이 있다.

운동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 체육관에 등록하러 와서 스파링부터 하고 싶

어 하는.

티비나 영상 매체에서 선수들의 시합 영상을 보고 만만하게 생각한 거다.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선수들이 허우적거리는 영상을 보고 욕하는 사람들.

선수들이 휘두르는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는 주먹에 맞고 쓰러지는 선수들을

보며 욕하는 사람들.

16온스 글러브는 400그램 정도 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3분 내내 휘두르라면 열에 아홉은 2분이 채 지나기 전에 팔도 제대로 들

지 못한다.

단순히 3분을 달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달리겠지만, 전력 질주로 3분을

달리라고 하면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꼭 한 번 맞아봐야 안다.

글러브가 얼마나 무거운지.

눈앞에서 움직이는 상대방을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3분이라는 시간이 긴장한 채 전력으로 움직이기에 얼마나 긴 시간인지.

‘게다가...’

지금 저 앞에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해서라는 도전자는 아무리 봐도

진짜 초짜다.

키는 꽤 크고 덩치는 있지만, 발달 된 근육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취미로라도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몸이 아니다. 그냥 슥 보기에도 다 살덩이.

그래도 예전에 운동을 한 가락이 보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서 있는 스탠스도. 주먹을 올리는 높이나 각도, 포즈 모두.

저 앞의 도전자가 ‘완전 생 초짜’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정태가 알아서 살살 하겠지.’

방송에서 도발 좀 했다고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쟁쟁한 운동 경력을 가진 도전자들도 넘지 못하는 프로의 벽.

박정태 프로가 알아서 적당히 상대하다가 포기 선언을 받아내겠지 했다.

박정태 선수가 빠르게 스탭을 밟으며 도전자를 향해 자기 거리를 확보하고,

강해서라는 도전자가 박정태 선수를 제지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것을 볼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쉬익

-퍽

“다, 다운입니다! 박정태 절대 고수! 강해서 도전자의 라이트 카운터 맞고 바

로 쓰러졌어요.”

“뭐, 뭐야 방금!”

서 있는 포즈도 자세도 엉망인 도전자였는데.

자기 거리라는 것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상대 선수에 당황한 듯 한 생 초짜였

는데.

‘정태의 주먹을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정태가 회피 동작을 하는

지점으로 정확하게 주먹을 때려 넣었어.’

꽂아 넣은 게 아니다.

단순한 스트레이트 하나도 수백 수천 번 이상 반복 숙달해야 올바른 자세가

잡히고, 제대로 된 정확도와 속도, 힘 전달이 이루어진다.

방금 전 도전자가 한 행위는 어떤 기술이라기보다는 그냥 주먹질이었다. 꽂아

넣은 게 아닌, 때려 박는.

‘그런데 그게 너무 소름 돋게 정확했다.’

“절대 고수! 다운! 박정태 선수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강해서 도전

자의 승리인가요? 지옥의 1분 중 단 5초가 지난 상황입니다.”

“제가 이긴 건가요?”

“어. 뭐 그렇죠. 네. 심사위원 분들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습니다.”

저게 럭키펀치든. 실력이든. 전두형 대표는 강해서라는 도전자의 경기를 조금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규야. 한 명 더 붙여보자.”

“...그렇죠? 좀 더 봐야겠죠? 대표님?”

“석대 준비하라 그래.”

전두형은 같은 심사위원이자 자신과 라이벌 구도로 팀을 꾸려 경쟁하게 될 서

동규 선수와 마이크를 끈 채 의견을 주고받았다.

“박정태 절대 고수가 쓰러졌지만, 지옥의 1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장석대

절대 고수 준비해주세요.”

전두형은 마이크를 들고 지옥의 1분을 속행을 지시한 후 마이크를 껐다.

“동규야. 석대한테 봐주지 말고 최대한 몰아 붙여보라고 해봐.”

스트릿FC 라이트 헤비급 3위에 빛나는 장석대 선수의 출격이었다.

2.

“박정태 절대 고수가 쓰러졌지만, 지옥의 1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장석대

절대 고수 준비해주세요.”

심사위원석에 있는 전두형 대표의 말에 다시 시합이 준비되었다.

‘절대 고수 한 명 눕혔으면 오디션 통과 아닌가?’

나는 살짝 불만이 생겼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게 그 러키펀치 같은 거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프로선수가 너무 봐주면서 설렁설렁하다가 한 대 잘못 맞고 쓰러졌거나.

‘게다가 방금 전 선수는 쉬지도 않고 많은 도전자들이랑 싸웠었지.’

벌써 몇 시간째 도전자들 수십 명과 단 몇 명의 프로 파이터들이 돌아가며 싸

웠다.

아무리 양민학살 수준이라 해도 전문적으로 운동을 했던 도전자의 숫자도 꽤

되니 프로선수들도 많이 지쳤겠지.

“장석대 절대 고수가 준비됐다고 합니다. 자 강해서 도전자. 준비됐나요?”

“네. 준비됐습니다.”

“그럼 중앙으로 모여 주시구요. 자. 레디-파이트!”

안성빈의 파이트 신호와 함께 글러브를 툭 마주치고 뒤로 빠졌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글러브가 무겁긴 하네 확실히.

잠깐 주먹 좀 들고 있었다고 글러브의 무게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슥 슥

방금 전 절대 고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절대 고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툭 툭

키는 나랑 비슷 하려나.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

며 나한테 왼 주먹을 툭 툭 던져 온다.

이게 잽이란 거겠지.

딱히 위협적이거나 빨라서 못 피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다만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이걸 피하려다가 큰 거 한 방 얻어맞을까 봐 내게

뻗어 오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툭 툭 쳐냈다.

‘왼팔은 힘들거든.’

맨날 오른손만 썼더니 오른손은 쌩쌩한데. 왼손은 글러브 낀 채 잠깐 손 좀

들고 있었다고 벌써 뻐근한 느낌이었다.

‘팔 아픈데 빨리 안 들어오나? 내가 들어가도 되나?’

내게 던지는 잽을 툭 툭 쳐 내며 상대방 눈치를 보는데 당장 들어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사위원석을 봐도 제재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원래 시합에서 이렇게 지루하게 대치하면 뭐 경고도 하고 하더만.

‘그럼 내가 먼저.’

절대 고수의 왼팔이 뻗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타이밍. 거기서 반 박

자 정도 뒤 다시 왼팔을 뻗으려는 순간 나는 절대 고수의 왼쪽 어깨 쪽으로

돌아가며 오른 주먹을 훤히 비어 있는 절대 고수의 턱을 향해 뻗었다.

-퍽

“또 터졌습니다! 강해서 도전자의 라이트 카운터! 절대 고수의 왼손 잽에 바

깥으로 돌며 라이트 카운터를 성공시킵니다!”

“크윽”

살짝 휘청거린 것처럼 보였지만 절대 고수는 쓰러지지 않았다.

확실히 프로라 그런지 내 주먹 정도에는 쓰러지지 않나 보다.

‘그러면...’

더 때려보면 어떨까?

왼쪽 턱을 가리기 위해 올린 왼팔로 인해 비어 있는 절대 고수의 복부를 왼손

으로 후려쳤다.

-퍼억

“욱!”

또 살짝 흔들리지만 금세 정신 차리고 내게 달라붙는 절대 고수.

가드를 단단히 하고 상체를 웅크린 채 걸음을 내디딘다.

‘봐. 이렇게 느려 터졌는데. 왜 못 때리고 못 피한다는 거야?’

절대 고수가 앞으로 내딛는 왼발.

나도 앞으로 내디뎠던 왼발로 절대 고수의 왼발이 지면에 닿기 직전에 발목을

차는 게 아닌 걸어서 걷어내듯 밀어냈다.

“헛!”

순간 다리가 크게 찢어지듯 균형을 잃은 절대 고수는 앞으로 휘청이며 넘어지

고 있었고,

땅을 짚기 위해 가드가 내려온 순간을 노려서

-퍼억

이번에는 절대 고수의 오른쪽 턱을 향해 오른 주먹을 내리쳤다.

“...다, 다운! 장석대 절대 고수도 다운입니다! 라이트 카운터에 이은 왼손

바디 훅. 이어서 들어오는 장석대 절대 고수의 스텝을 걷어내며 쓰러지는 장

석대 선수를 향해 라이트! 와.. 제가 방금 뭘 본 거죠?”

안성빈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쓰러진 절대 고수와 심사위원석의 전두형 대표. 그리고 고개를 돌려 건

너편 2층의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 놈들까지 둘러봤다.

“봐. 존나 쉽구만. 나한테만 지랄이야.”

********

전두형 대표는 지금 자기가 본 게 뭐였나 싶었다.

“동규야. 가서 감독한테 방금 찍은 거 영상 좀 볼 수 있냐고 물어봐라.”

나이가 드니 눈이 침침해지는지.

거리가 있어서 본인이 본 게 제대로 본 건지 판단이 안 된다.

“대표님 여기 있습니다.”

서동규가 가져온 모니터를 통해 방금 전 도전자와 장석대의 경기를 되돌려봤다.

‘석대의 잽을 패링으로 전부 쳐내고 있다.’

슬리핑이나 더킹의 흔적도 안 보이는 몸짓으로 패링을 구사하는 도전자.

그런데 영상을 슬로우로 돌려보니 패링도 제대로 배워서 테크닉적으로 구사하

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다가오는 파리 쫓듯 오른손으로 잽을 툭 툭 쳐 내는 도전자.

‘동체 시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야. 저게 말이 되나? 패링을 저렇게 비효율

적으로 큰 동작으로 하는데 석대의 잽을 다 쳐내다니.’

그러던 도전자가 심사위원석을 슬쩍 보더니, 처음으로 먼저 움직였다.

‘심사위원석을 한번 쳐다본 건 이제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뭐 그런 의미인가?’

도전자는 절대 고수의 잽 타이밍을 절묘하게 뺏으며 왼쪽으로 돌아갔다.

‘여기! 이 부분!’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잽과 잽 사이의 타이밍을 뺏어 움직이는데 예비 동작이 없다.

모든 움직임에는 그 움직임을 위한 준비 동작이 있다. 격투기는 그 준비 동작

을 보고 상대방의 수를 예상하며 받아치는 고도의 머리싸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체 밸런스나 컨트롤이 얼마나 좋아야 그 준비 동작 없이 저렇게 움

직일 수 있는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발을 헛디디거나 균형을 못 잡는 수준이

아니라 근육이 꼬일 터였다.

‘미친 동체 시력과 바디 컨트롤로 잽 타이밍을 뺏으며 돌아 나가서 오른손을...’

또 때려 박았다.

세련된 기술이나 테크닉이 보인다면 이 정도로 황망하진 않았을 거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몸짓을 보이는 도전자가 하는 행위가 그냥 ‘팔을 휘두른

다.’ 수준의 주먹질이라는 게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리고 마지막

‘석대의 전진 스탭에 맞춰서 발이 지면에 닿기 전에 진행 방향으로 걷어냈다.’

이제는 감탄도 나오지 않는 동체 시력으로 타이밍을 잡고. 준비 동작이 없기

에 순간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몸놀림으로 다리를 걷어내고 균형이 무너진 장

석대의 오른쪽 턱을 향해 정확히

‘또... 때려 박았어...’

16온스 글러브는 크고 무겁다. 그만큼 부상의 위험도 적고 데미지를 주기도

어렵다.

특히 수준 이상으로 단련된 프로 파이터라면 16온스 글러브로 몇 대 맞았다고

쓰러지는 일은 드물다

‘그래야 하는 게 맞는데...’

정확한 타이밍에 호흡을 빼앗긴 상황에서 정확히 축이 되는 턱을 흔들어버리

면 16온스가 아니라 물 풍선으로 때려도 쓰러질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전두형 대표는 억눌린 한숨을 쉬며 마이크를 들었다.

“강해서 도전자.”

“네?”

“저희 열정 팀에선 강해서 도전자를 캐스팅하겠습니다.”

옆에서 서동규가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지더라도 전두형은 주먹이

그려진 팻말을 들었다.

“꼭 우리 팀으로 와주세요.”

작가의말

사실 작가도 예전에 주먹이 운다에 한번 신청서를 넣어볼까 했었습니다.

제가 딱 186에 100키로정도 나가거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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