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길거리 오디션
1.
“또 저런 거 하네.”
간만에 친구 놈들과 모여 술 한잔하는 자리.
왁자지껄하게 호프에서 근황을 나누며 떠들고 있는데 가게 한켠의 티비에서
격투기 오디션 광고가 나왔다.
“뭐? 아 저거? 스트리트 파이트?”
“엉. 또 하나 보네.”
“저거 지난 시즌 방송 짜고 친다고 욕 엄청 먹지 않았음?”
“맞아. 맞아. 프로 준비하는 망생이들 내보내서 아마추어인 척 우승시킨다고
말 많던데.”
사내놈들끼리 모인 술자리다 보니 어느새 격투기, 싸움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
갔다.
티비에선 스트리트 파이트 지난 시즌 영상이 흘러나오며 시즌 2 길거리 오디
션을 광고하고 있었다.
“야. 근데 솔직히 저런 격투기나 복싱 같은 거 보면 좀 허접하지 않냐?”
“...”
“헐. 미친 새끼 뭐래?”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한마디에 친구들이 열을 내며 날 물어뜯는다.
“야. 보기엔 저렇게 보여도 실제로 붙어보면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뒈질걸?”
“하여튼 운동 한 번도 안 해본 놈들이 이렇게 티를 내요 꼭.”
개중에 복싱이나 격투기를 취미로 좀 배워봤다 하는 놈들이 유독 심하게 물어
뜯었다.
“흠. 그래?”
사실 완전히 납득하진 않았다.
다들 그런 적 있지 않나? 복싱이나 격투기 시합 등을 보면서
‘저걸 못 맞춰?’ 혹은 ‘저걸 못 피해?’
아니면
‘힘 다 빠졌나? 왜 저렇게 펀치가 비리비리해?’
등의 생각을 해본 적.
“야. 저렇게 링 올라가서 3분 동안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
“그래 인마. 게다가 글러브도 생각보다 엄청 무거움. 운동 제대로 한 사람 아
니면 글러브 끼고 딱 3분 1라운드만 뛰어도 토하고 난리 난다.”
뭐 경험자들이 그렇다면 그렇겠지.
사실 나는 내 나이 30살 먹도록 제대로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한창 몸짱 열풍일 때 헬스장 6개월 끊어놓고 다 합쳐서 일주일인가 나갔던 게
다였다.
‘돈 주고 죄책감을 산 진귀한 경험이었지.’
집 앞 편의점과 붙어 있는 헬스장이라 편의점 갈 때마다 고개 숙이고 죄인처
럼 다녔던 기억이 났다.
내 돈 주고 내가 미안해서 피해 다녀야 하다니. 망할.
“야.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해서 너도 운동 좀 해봐. 요즘 살 엄
청 쪘다 너?”
“말도 마라. 요즘 하루 종일 앉아만 있다 보니 살 붙는 게 장난 아냐.”
“푸하하. 글은 잘 써져?”
“그냥 맨날 마감에 쫓기는 거지 뭐. 빚쟁이 마냥 마감 원고 분량에 쫓긴다.
담당 피디는 원고 독촉하고. 난 도망가고 싶고.”
어느새 주제는 다시 내 근황.
사실 근황 이래 봐야 하루 종일 집에서 글 쓰다 멍 때리다 글 쓰다 멍 때리
다. 이게 다였다.
가끔 친구 놈들 만날 약속 있으면 집 밖으로 기어 나오고
“야. 오늘도 일주일 만에 기어 나온 거야. 지난주 월요일 날 나오고 처음 나
온 듯.”
“헐. 미친 새끼 사회적 거리 두기 오지게 하네.”
“너 뭐 그거냐? 자가 격리?”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 보는 고등학교 동창 놈들.
말은 좀 험하게 하지만 이놈들 아니면 집 밖으로 나올 일이 없는 날 위해서
항상 집 근처로 데리러 오는 놈들이다.
“야. 해서 너 지금 몇 키로냐? 난 지난주에 못 봤는데 너 엄청 찐 거 같다?”
“지금? 세 자리는 찍었지.”
“너 백키로 넘어? 이거 완전 돼지네.”
“그래도 해서는 키가 있어서 그렇게 까진 안 보인다. 준현이 너도 백키로 넘지?”
“뭐 인마? 난 백키로 안 넘거든? 백키로 넘는 게 사람이냐?”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 나보다 훨씬 뚱뚱해 보이는 준현이가 타깃이 됐다.
나는 딱히 운동은 안 하지만 다행히 타고난 키가 커서 몸무게가 100킬로를 넘
어가도 그렇게 돼지 같다는 느낌은 없었다. 준현이는 키가 170초반 대라 엄청
뚱뚱해 보이는데도 100킬로가 안 나가고.
“그래서 요즘은 무슨 글 쓰냐 해서 넌?”
“글쎄다. 소재 찾고 있지. 지난번 천만 안티 팬 배우 말아먹고 요즘은 뭐 써
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요즘은 아카데미물. 악역물. 이런 게 대세 더만.”
“어쭈? 그래도 내 친구라고 이젠 웹 소설 트렌드도 분석하네?”
“당연하지 인마.”
진짜 소재 찾아서 뭐 취미생활이라도 한번 해봐야 하나 싶었다.
동아리나 운동 같은 거 한번 해볼까.
요즘 소모임이나 밴드 이런 걸로 운동 동호회도 많이 하던데.
“주문하신 모둠꼬치 나왔습니다.”
애들은 아직 준현이 뱃살을 잡고 놀리고 있었고, 주문한 안주가 나왔다.
“아! 쫌 놓으라고!”
준현이가 뱃살을 잡은 친구들 팔을 뿌리치다가 안주 서빙 중인 알바생을 팔로
쳐버렸고.
“어머!”
-부웅
알바생의 손을 떠난 모둠꼬치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와씨. 큰일 났다.’
저게 다 얼마짜리야.
술도 안 마셔서 안주 빨을 세우는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모둠꼬치. 그것들
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쉭 쉭 쉭
다행히 알바생은 나랑 준현이 사이로 안주를 서빙 중이었고, 넓은 쟁반도 함
께 놓쳤기에 내가 쟁반을 잡고 들어 올리자 허공으로 흩어지는 꼬치는 몇 개
안 됐다.
‘은행 꼬치. 베이컨 토마토. 엇! 염통은 안 돼!’
저녁도 먹지 않고 나와서 한창 배고픈 상태.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려 왼쪽 가슴으로 넘어지는 알바생을 지탱하고. 왼
손으로 쟁반을 받친 후 더 들어 올려 떨어질 뻔 한 꼬치들을 살려낸다.
쟁반을 벗어나 떨어지는 꼬치는 총 셋
단 하나의 꼬치도 놓칠 수 없다는 집념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꼬
치를 잡아냈다.
“....”
“...”
“우와!!!”
“야 방금 뭐야? 해서 이 새끼 뭐 한 거야 지금?”
“와... 역시 돼지의 음식에 대한 집착은 무섭구나.”
꼬치들을 잡아내어 접시에 담으려니 품에 안긴 듯한 자세의 알바생이 후다닥
품을 벗어났다.
“뭐래? 아까운 안주 날릴 뻔했구먼. 준현이 너 조심 안 하냐?”
“암 쏴리.”
애들이 다 술에 취해서는 왁자지껄하게 함성을 질러댄다.
“야. 어떻게 한 거냐? 진짜 뭐 음식에 대한 집중력으로 막 슬로비디오로 보이
고 그런 거야?”
“아 뭐래 미친놈.”
그러다 보니 또 내가 타깃이 되어 공격을 받았다.
술쟁이들 주정을 받아 줄 시간에 안주나 하나 더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
가 구해낸 꼬치를 하나하나 흡입하고 있는데
“어? 야 저거 아까 그 스트리트 파이트 아니냐?
”어디 어디?“
”저기 1층에.“
창가에 앉은 놈들이 갑자기 웅성웅성 거리며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밑을 내려
다본다.
”뭔데?“
꼬치를 우물거리며 뭐 싸움이라도 났나 싶어 밑을 내려다보니
”아까 그 스트리트 파이트 2. 홍대 길거리 오디션 하나 본데?“
싸움은 싸움인데 싸움 오디션이 벌어져 있었다.
******
”야 저 새끼 병신 아니냐?“
”왜 그래도 방금 전 애보다는 잘 치는데.“
어느새 해서와 친구들은 관전 모드로 홍대 한복판에서 벌어진 싸움판을 구경
하고 있었다.
”와씨. 존나 아프겠다.“
”제대로 턱주가리에 꽂혔는데?“
”쟨 저거 편집 안 되면 평생 흑역사 적립이다.“
술판도 잊고 구경하기를 한참
”야 근데 해서 이놈 이거 어디 갔냐?“
”어? 그러게? 해서 어디 갔음?“
”야 야! 저거 해서 아니야?“
”헐? 미친놈 쟤 왜 저깄냐?“
”술도 안 마신 새끼가 갑자기 미쳤나 왜 저래?“
친구들은 사라진 강해서를 찾다가 창밖에서 익숙한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에 중간 난입한 해서를.
2.
‘암만 봐도 왜 저걸 못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2층 술집에서 스트리트 파이트 길거리 오디션을 구경하다가 좀 더 가까
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가게를 나와 오디션장 바로 앞까지 와서 직관하고 있
었다.
‘그래 그건 피하고. 아니 거기서 턱에 꽂아야지. 저걸 저렇게 못 맞춰?’
격투기를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티비나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눈앞에서 보면 속도감이나 현장감이 느껴
질까 싶었다.
차기작으로 격투기 장르 소설을 쓸 수도 있으니 자료 조사 겸 제대로 보자는
마음에 맨 앞줄까지 어떻게 비집고 들어와 관전 중인데. 역시나 너무 답답했다.
바로 눈앞에 상대방 머리가 있는데 왜 저걸 못 맞추는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복싱 만화책처럼 휙휙 사
라지는 상대도 아닌, 눈앞에서 까딱까딱 거리는 애들을 못 때린다.
‘아오. 답답하네.’
어느새 몇 명의 도전자가 지나갔다.
절대 고수라고 하는 국내 파이트 클럽의 선수와 1분 대련을 하는데 대부분이
쪽도 못 쓰고 얻어맞고 나갔다.
”저기요.“
갑자기 어디서 그런 만용이 생겼을까.
스트리트 파이트 지난 시즌에서 웬 고등학생이 도전자들 실력이 너무 떨어져
서 자기가 한 수 보여주고 싶다고 중간에 현장 도전을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저기요!“
나는 다시 한 번 스텝을 불렀다. 관람객들이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
게 막고 있는 덩치 있는 가드들을.
”이거 현장 도전 가능해요?“
”네?“
”이거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 현장 도전 가능 하냐구요.“
”지옥의 1분 오디션 참가요?“
”네.“
”아.. 잠시만요.“
스텝은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촬영 스텝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잠시 후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스텝은 철책을 치우고 나를 오디션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날 보며 우오오오 환호성을 질러댔다.
”일단 출연 동의서 쓰셔야 하구요. 주의 사항 읽어 보시구요. 이거 읽고 있으
면 연출님 오셔서 한번 설명해 드릴 거예요.“
촬영한 영상물에 대한 활용 동의서부터 시작해서 스트리트 파이트 오디션의
특성상 부상이나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시하는 주의 사항과 동의서 등.
스텝이 주고 간 종이를 읽고 있자니 웬 아저씨 하나가 다가온다.
”성함이... 강해서...씨?“
”네.“
”혹시 술 마시진 않았죠?“
”네. 안 마셨습니다.“
”저희가 격투기 오디션이다 보니 다치시거나 어디 까질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동의서도 다 작성하셨고.. 그럼,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연출이라는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름 헬스 할 때 배웠던 스트레칭을 하고 있
자니 작가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는 곧 내 차례라고 안내해줬다.
”다음은 여기 스트리트 파이트 홍대 오디션장에서 현장 도전을 신청하신 도전
자분입니다!“
개그맨이자 격투기 매니아로 알려진 안성빈이 MC를 보며 나를 소개했다.
”도전자들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구경하다가 내가 더 잘할 거 같아서 도전한
다! 절대 고수들 기다려라! 강해서 도전자입니다!“
나는 저런 말 한 적 없는데.
별 상관없지 라 생각하며 오디션 매트 중앙으로 나갔다.
”강해서 도전자? 혹시 격투기나 운동 경력이 있습니까?“
”네? 아뇨.“
”아무 운동도 안 해보셨어요? 키도 크시고 몸은 되게 좋으신데요.“
”예전에 헬스.. 한 달 정도 한 적 있습니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혹시 자신 있는 포지션이 있습니까? 타격기나 그라운드나.“
”아뇨 뭐. 밖에서 구경하는데 다들 너무 못 때리시더라구요. 저걸 왜 못 때리
지 싶어서 도전하게 됐습니다.“
”이야. 앞선 도전자들이 절대 고수를 너무 못 때려서 내가 대신 때려주러 나
왔다?“
”네? 아. 뭐 그렇죠.“
안성빈과 짧은 인터뷰를 하고 있자니 주변 관객들이 야유와 웃음을 보내왔다.
뭐 내가 틀린 말은 한 건 아니고, 방송이다 보니 좀 자극적으로 인터뷰를 뽑
는가 보다 했다.
”저기 강해서 도전자.“
”네.“
그런데 저 앞 심사위원석에 있는 전두형이라는 스트릿FC 대표라는 분이 뭔가
되게 짜증난다는 듯 마이크를 잡고 날 불렀다.
”이게 일반인들이 밖에서 보기엔 쉬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 도전하신
분들 다 격투기 경력이 어느 정도는 있으시고, 절대 고수들은 다 몇 년 이상
훈련한 파이터들입니다. 한 번도 이런 운동을 안 해보셔서 쉽게 이야기할 수
는 있는데. 그러다가 절대 고수들한테 많이 맞을 수 있어요.“
”뭐. 제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냥 보기엔 너무 허우적거리는 분들
이 많은 것 같아서.“
”하. 참. 알겠습니다. 박정태 절대 고수 준비해주세요.“
참 같잖다는 눈빛을 보내는 전두형 대표.
사실 그 말이 맞다. 난 아마 오늘 많이 맞고 내려갈 수도 있다.
밖에서 보는 거랑 실제로 하는 거랑 하늘과 땅 차이겠지.
그래도 내가 언제 프로 파이터랑 싸워보겠어. 적어도 글 쓰는 데 도움은 되겠지.
글러브와 다리 보호대를 차고 나오니 검은 티를 입은 절대 고수가 맞은편에
섰다.
룰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입식 타격만. 그라운드는 없이.
”레디. 파이트!“
-툭
절대고수와 글러브를 툭 부딪치고 뒤로 물러서 거리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글러브가 무겁다고 생각하며 절대 고수를 바라보는데
-쉬익
‘뭐야? 똑같잖아?’
밖에서 볼 때나 실제로 눈앞에서 스파링할 때나.
‘똑 같구만. 거 되게 느리네.’
-퍽
절대 고수의 펀치를 피하며 오른손을 들어 비어 있는 턱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다, 다운입니다! 박정태 절대 고수! 강해서 도전자의 라이트 카운터 맞고 바
로 쓰러졌어요.“
절대 고수가 쓰러졌다.
작가의말
딱대 는 본격 스포츠물 소설은 아닙니다.
격투기나 스포츠를 잘 모르시더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글로 준비했
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