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2 월의 신부 (5)
* * *
애슐리 씨와 법적으로 부부가 된 상태.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청에 신고를 한 뒤에 부부가 되었지만,
그래도 결혼식을 치르다 보니 진짜 부부가 된 느낌이었다.
“헤헤…여보.”
내 팔을 꼬옥 껴안는 애슐리 씨.
결혼 이후 존 씨가 아닌 여보나 남편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애슐리 씨라는 말보다는 이제 자기나 아내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 불러요? 자기?”
“히히…그냥 불러 봤어요.”
눈을 깜빡이며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애슐리 씨.
아직 호칭이 입에 완전히 붙지 않아 노력하는 중이지만,
둘 다 결혼 이후 바뀐 이 호칭에 대해 묘한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
여보나 자기라는 호칭이 주는 묘한 느낌.
살짝 어색하지만 우리가 진짜 결혼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슐리를 납치할걸 그랬나 생각이 드는구나.”
훈훈한 분위기에 끼어든 메간 씨.
그녀는 툴툴대며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성과 결혼식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용이 납치하는 게 전통적이라고 누가 이야기하더구나.”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메간 씨.
그녀의 말에 모든 조건이 부합되었다는 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진짜 하실 건가요?”
“이미 결혼했는데 어떻게 납치하겠느냐?”
짓궂은 메간 씨의 장난.
그 장난에 옆에서 피로연을 즐기던 오로트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장난 치시면 사람들에게 비난받아요. 메간 님.”
“장난이지 않느냐 오로트.”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오로트 씨.
정말 감사하게도 청첩장을 보냈는데 흔쾌히 결혼식에 참여해 주셨다.
“그런 이야기하지 마시고 존 씨랑 애슐리 씨가 준비한 음식이나 드세요.”
“크…크흠.”
오로트 씨의 면박에 움직이는 메간 씨.
그 모습에 나는 오로트 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해요. 오로트 씨.”
“메간 님이 진짜로 하실 거 같아서 말린 거 뿐이에요.”
빙긋 웃으며 미소를 짓는 오로트 씨.
붉은 용의 부수장으로 한 때 메간 씨와 한 남자를 두고 대립하셨던 분이었다 보니 그 누구보다 메간 씨를 잘 알고 잘 다루셨다.
그레이스 씨도 오로트 씨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느낌.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메간 씨에 대해서는 오로트 씨가 가장 잘 알고 계셨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오로트 씨.”
애슐리 씨의 감사 인사.
그 인사에 오로트 씨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셨다.
“존 씨랑 행복하게 살아요.”
“고마워요.”
그렇게 자리를 피하는 오로트 씨.
그녀를 뒤로하고 다음 인사를 위해 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한국처럼 신랑 신부가 다니며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밴쿠버의 결혼식.
물론 우리가 하는 게 한국식 결혼식 느낌이긴 하지만 밴쿠버에서도 이런 느낌의 결혼식이 많았다.
그러니까 결혼한 부부가 하객 분들을 찾아 뵙는 걸 안 하는 결혼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결혼식의 경우 결혼한 부부가 이렇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건네고 덕담을 받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메간 씨와 오로트 씨 그리고 그레이스 씨가 있는 테이블을 지나 다음 테이블로 향하는 길.
다음 테이블은 다름 아닌 마크 씨와 메리 씨 그리고 제임스와 베일리 씨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었다.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자마자 몸을 일으켜 애슐리 씨를 꼬옥 껴안는 베일리 씨.
그 옆으로 다가온 제임스가 내 손을 맞잡으며 악수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고마워. 제임스.”
“그건 그렇고 애슐리 씨가 정말 던지는 연습을 많이 하신 거 같던데?”
제임스 장난스러운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야기 한 거 진심이었어.”
“던지는 연습했다는 거 장난인 줄 알았지.”
제임스와 인사를 하는 사이 우리 옆으로 다가온 마크 씨.
제임스의 형인 마크 씨는 악수하며 진심으로 나와 애슐리 씨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셨다.
“결혼 축하하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마크 씨.”
“오히려 이렇게 좋은 날에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을 초대해 줘서 고맙네.”
다섯 쌍둥이의 아버지인 마크 씨.
마크 씨가 아이들을 언급하자 나는 할 말이 있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나저나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던데요.”
예전와 봤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쩍 자라버린 마크 씨의 아이들.
예전에는 유치원 혹은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키도 부쩍 자라고 앳된 얼굴도 많이 사라진 느낌.
나는 놀라움에 이 부분을 마크 씨에게 언급했다.
“하하…아이들이 크니까 많이 먹어서 걱정이라네.”
마크 씨의 진심이 섞인 한 마디.
확실히 한참 클 나이의 아이들이다 보니 정말 많이 먹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자네도 걱정해야지.”
“저요?”
“토끼 수인도 어릴 때는 꽤 빨리 자라는 편이지 않나?”
고개를 갸웃하는 마크 씨.
그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들었어.”
확실히 사람보다 태어나는 일수가 빠른 토끼 수인들.
그렇다 보니 나와 애슐리 씨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사람의 절반 정도 되는 시간이 지난 뒤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예정.
그렇다 보니 이 부분을 언급한 마크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보다 빠르게 태어나는 만큼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들.
나도 이 부분을 자세히 몰라 인터넷에 찾아보니 사람과 달리 토끼 수인의 경우 사람 나이로 치면 대략 유치원 생 나이인 5 살까지는 빠르게 자란다고 한다.
그 이후는 사람과 똑같이 성장한다고 들었다.
“저도 준비해야겠네요. 하하…”
12 월 쯤에 애슐리 씨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상태.
그러니까 지금이 2 월 중순이니 어림잡아 계산하면 2 개월 반 정도가 지났다.
보통 140 일 정도를 임신하는 토끼 수인.
그렇다 보니 지금 대략 3 개 월 정도 뒤에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애슐리 씨의 말씀에 의하면 마지막 한 달 정도 남을 때 배가 부푼다고 말씀하셨으니…
아마 5 월 말 쯤이나 6 월 쯤에 한 달 정도 카페를 쉴 예정이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상황.
그래서 이 부분은 현재 나와 애슐리 씨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라니 부럽네.”
날 부러워하는 제임스.
그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기로 했나?”
“하와이로 다녀올까 생각 중이에요.”
“미국?”
“지금 멕시코 쪽이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요.”
원래는 멕시코 쪽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갈 생각이었던 나와 애슐리 씨.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멕시코 쪽 치안이 안 좋아지다 보니 칸쿤으로 가는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장소가 하와이.
밴쿠버에서 바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어 다녀오기 좋은 장소였다.
애슐리 씨에게 있어서는 첫 비행.
애슐리 씨는 칸쿤 대신 선택한 하와이에 대해 벌써 기대 중이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마크 씨의 아내 분인 메리 씨와 제임스의 파트너인 베일리 씨와 인사를 끝낸 애슐리 씨.
그녀는 이쪽으로 다가와 제임스와 마크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결혼식에 와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애슐리 씨.”
제임스의 칭찬.
그 칭찬에 애슐리 씨는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으셨다.
“헤헤…감사해요.”
“장소도 그렇고 전부 멋졌습니다.”
“칭찬 감사해요. 마크 씨.”
그렇게 제임스와 마크 씨와 대화를 이어 나가는 애슐리 씨.
나는 애슐리 씨에게 두 명을 맡기고 메리 씨와 베일리 씨에게 다가 갔다.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메리 씨 그리고 베일리 씨.”
내가 다가오자 미소를 짓는 메리 씨와 베일리 씨.
두 분은 나를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시지 않았다.
“오늘 정말 멋졌어요. 존 씨.”
“턱시도가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부케.
베일리 씨의 손에 들려 있는 부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제임스랑 베일리 씨 차례네요.”
“맞아요. 오늘 두 분의 결혼식을 보고 제임스가 뭐라 했는지 아세요?”
“음…제임스라면 당장 결혼하자고 했을 거 같아요.”
“역시 허니랑 제일 친하신 분 답네요. 맞아요. 바로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도련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베일리 씨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시는 메리 씨.
메리 씨 처지에서는 제임스가 마크 씨의 남동생이다 보니 도련님이란 호칭으로 부르셨다.
물론 영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
하지만 오크어로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메리 씨가 하신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신혼여행지가 바뀌어서 아쉽겠어요.”
칸쿤 대신 하와이로 가게 된 걸 언급하시는 베일리 씨.
그녀의 말에 나는 타나야 씨 쪽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괜찮은데 저희를 도와주신 타나야 씨에게 미안한 느낌이에요.”
“타냐가 많이 알려주었나요?”
“아무래도 라피 씨와 타나야 씨가 먼저 칸쿤을 다녀오셨으니까요.”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칸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은 상태.
하지만 갑작스러운 치안 문제로 가지 못하게 되다 보니 두 분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괘념치 말아요. 타냐라면 이해할 거예요.”
싱긋 미소를 짓는 베일리 씨.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 * *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부모님의 테이블.
원래라면 부모님이 있는 테이블을 가장 먼저 왔어야 했지만,
부모님이 제일 마지막에 와달라고 하셔서 간단한 인사만 드리고 다른 테이블 먼저 인사하고 다녔다.
그 뒤 다시 도착한 부모님의 테이블.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애슐리 씨를 꼬옥 껴안으셨다.
“우리 새아가 정말 예쁘다.”
“어…어머니…감사해요.”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애슐리 씨의 한국어 발음.
그렇다 보니 예전과 달리 어눌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어머니와 포옹 이후 서로를 바라보는 애슐리 씨와 어머니.
그러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셨다.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된 상황.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빈 잔에 술을 따라 드렸다.
“이제 너도 어른이구나.”
“예전부터 어른이었는 걸요.”
“우리 때는 결혼해야 어른으로 인정했어.”
아버지의 장난스러운 말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날 바라보셨다.
“누군가와 삶을 같이 산다는 건 꽤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단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시는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했다.
“하지만 기쁜 순간이 더 많으니 네가 이걸 꼭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
싱긋 웃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날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가셨다.
“나도 네 엄마도 이제 할 일을 다 끝마친 느낌이야.”
나지막한 아버지의 말씀.
나는 말없이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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