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2 월의 신부 (1)
* * *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하는 애슐리 씨.
그 모습에 메간 씨는 입이 삐죽 나온 상태로 애꿎은 커피를 뒤적이셨다.
왠지 내가 미안 해 지는 마음.
그래서 살짝 메간 씨의 눈치를 살폈는데 자연스럽게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날 바라보는 메간 씨.
그녀의 표정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중에서 메간 씨가 선택한 문장은 다름 아닌…
“부럽구나.”
“…네?”
“애슐리가 저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다는 의미란다.”
“하하…”
보통 기분이 좋으면 귀 끝을 쫑긋 세우는 애슐리 씨.
최근 들어 저 귀가 내려갈 기미가 없는걸 보면 애슐리 씨가 얼마나 행복한지 누구든지 알 수 있었다.
프러포즈 받은 뒤로 항상 저런 상태.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며칠 동안은 기쁜 상태였긴 했다.
애슐리 씨에게 받은 청혼.
그러니까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그러니까 내가 청혼을 받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물론 한국에서도 요즘은 여성 분들이 프러포즈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는데…
그게 내 나이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30 대 중반.
그러니까 20 대 청춘과 40 대 기성 세대 사이에 있는 존재.
물론 우리도 어떻게 보면 기성 세대라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30 대 40 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인 건 분명했다.
그런 상태에서 애슐리 씨에게 청혼을 받은 나.
내가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는데 되려 내가 서프라이즈를 받게 된 상태가 되었다.
그때 받은 관은 집에 안전하게 보관 중인 상태.
애슐리 씨에게는 주책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가보로 삼아 평생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 흐른다 존.”
“아…하하…죄송해요.”
“둘이 알콩달콩 사는 게 부럽지만 한 켠으로 질투도 나는 구나.”
메간 씨의 진솔하신 말씀.
그 말씀에 나는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죄송해요.”
“아니란다. 다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메간 씨.
그녀는 나지막이 말을 이어나가셨다.
“그…바…반지라는 거 말이다. 나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살짝 볼을 붉히며 말씀하시는 메간 씨.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삐져나왔다.
내 웃음에 발끈하는 그녀.
메간 씨는 날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셨다.
“내가 반지를 원하는 게 웃기느냐?”
“그렇게 느끼셨으면 죄송해요.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메간 씨가 귀여우셔서요.”
“내가?”
“네, 예전에 드래곤의 청혼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금은보화를 끼고 사는 드래곤 들.
그렇다 보니 귀금속으로 프러포즈하는 사람들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막상 애슐리 씨가 가지고 계시니 부러워하시는 모습.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그렇구나. 커…커흠.”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 하는 메간 씨.
그녀는 애꿎은 커피만 홀짝이셨다.
“제가 그레이스 씨에게 잘 이야기해볼까요?”
“크…크흠. 그건 됐단다. 귀쟁이가 그런 눈치가 있었다면…”
“제가 애슐리 씨에게 청혼 받았다는 거 이야기 드렸었나요?”
“했었지.”
“그때 받은 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게 그레이스 씨라고 해요.”
“그래?”
눈을 반짝이는 메간 씨.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그레이스 씨가 멋진 선물을 준비했을지도 몰라요.”
“기대가 되는 구나.”
미소를 짓는 메간 씨.
그레이스 씨와 사귀는 메간 씨는 종종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셨다.
“그럼 나도 준비해야겠구나.”
“어떤 준비요?”
“그런 게 있단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메간 씨.
그녀의 말에 나는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하려 했다.
그때 마침 몸을 일으키는 그녀.
아침에 출근하실 시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오마.”
“네, 들어가세요.”
“나중에 또 오세요!”
내 옆으로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의 활기 넘치는 인사에 메간 씨는 손을 들어 애슐리 씨의 인사를 받아주셨다.
카페를 나오자마자 날개를 피신 메간 씨.
늘 그렇듯 그대로 하늘로 날아 올라 회사로 향하셨다.
이제 카페에는 둘만 남은 상태.
오늘은 헤일리 씨가 카페를 도와주시는 날이 아니었기에 단둘이 있는 날이었다.
“설거지 도와 드릴까요?”
“히히. 고마워요.”
아침이라 아직 손님이 없는 상황.
조금 전 메간 씨가 오셨을 때는 한 사람이라도 대응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원래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애슐리 씨가 메간 씨를 대응하기로 한 상태.
하지만 애슐리 씨의 기분 좋음이 너무 과하다 보니 메간 씨가 장난스럽게 교체를 요청하셨고 그렇게 나와 애슐리 씨가 자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메간 씨가 없으니 애슐리 씨를 도와 함께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애슐리 씨 옆에 바짝 붙어 설거지를 이어 나갔다.
설거지하는데 슬쩍슬쩍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봐요?”
“히히…이제 존 씨가 완전히 제 꺼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요.”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애슐리 씨와 사귄 이후부터 이미 나는 애슐리 씨의 것이나 마찬가지.
그녀와의 이런 달콤한 관계가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긴 한데 조금 있으면 이제 법적으로 존 씨와 한 가족이 되니까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애슐리 씨.
그녀의 이런 다정다감한 말에 나는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청혼 받아줘서 고마워요. 애슐리 씨.”
“저도 고마워요. 헤헤…제 프러포즈를 받아 주셔서요.”
아직도 기억나는 그때의 떨림.
애슐리 씨가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살짝 떨렸다.
“헤헤. 존 씨 얼굴 빨개졌네요.”
“하하…하…그게…저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심장이 떨려서요.”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그게…애슐리 씨에게 고백을 받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흔한 일이 아닌가요?”
“음…요즘에는 여성 분들이 고백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듣긴 했는데…제가 고백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가진 질문을 던졌다.
“토끼 수인 사이에서는 흔한 일인가요?”
“저희도 그런 편은 아니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는 건 아니구요.”
사람과 마찬가지.
토끼 수인 사이에서도 대부분 남성분들이 프러포즈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애슐리 씨가 용기를 내주신 거네요.”
“히히…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그치만 존 씨가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모습을 남몰래 보면서 저도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사랑스러운 그녀의 대답.
나는 애슐리 씨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애슐리 씨.”
“저도 고마워요. 그렇게 감동 받아줘서요.”
이런 이야기하며 마무리 지어나가는 설거지.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까…깜짝이야.”
“그…그레이스 씨?”
“손님 온 지도 모르고 둘이 아주 깨를 볶고 있었네.”
“어…언제 오셨어요?”
“벨 소리도 안 들렸는데…”
카페 문에 달린 벨.
보통 손님이 오시면 저 벨이 울리기 때문에 손님이 오신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느라 집중해서 못 들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지만 저 종은 워낙 소리가 크다 보니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애슐리 씨가 당황한 걸 본 그레이스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카페 앞을 지나가는데 둘이 꽁냥 대길래 놀래 킬 겸 몰래 들어왔지.”
“그럼 어떻게 종소리를…”
“나도 나름 이 카페 단골이야. 문을 열 때 어느 각도면 저 종이 안 울리는 지 알 수 있지.”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의 말에 나와 애슐리 씨는 당했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무튼 둘이 알콩달콩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
한쪽 팔에 턱을 괸 채 미소를 짓는 그레이스 씨.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있으니 감사함을 표현했다.
“감사해요. 그레이스 씨.”
“뭐가?”
“애슐리 씨에게 들었어요. 그 관 말이예요.”
“뭐 별일 이라고.”
손을 휘적휘적 젓는 그레이스 씨.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는 거 보면 기뻐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레이스 씨.”
애슐리 씨의 감사 표현.
그 표현에 그레이스 씨는 자세를 고쳐 잡고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애슐리를 좋아하니까 도와준 거야.”
“메간 씨가 들으시면 섭섭한 이야기이겠는데요?”
내 장난스러운 말에 그레이스 씨는 고개를 저으셨다.
“메간이 뭐라 말했어?”
“애슐리 씨가 고백받은 거에 대해 부러워하시던데요?”
“하여간 도마뱀이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애라니까.”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름 준비하신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존이야. 눈치가 빠르네.”
“그레이스 씨가 철두철미하신 거 잘 알고 있으니까요.”
“도마뱀 취향에 맞는 거 준비하느라 고생 중이야.”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준비하시는 거예요?”
“뭐 영화 소품 만드는데 부탁하면 대부분 만들어내.”
“아…”
영화 소품을 만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 나.
그래서 그분들이 얼마나 손재주가 뛰어난 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잠시 말을 멈추고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가셨다.
“그래서 둘은 언제 결혼 할 거야?”
“조금 급하지만 다음 달에 하려구요.”
“부모님 때문이지?”
“맞아요.”
다음 달까지 밴쿠버에 계시기로 하신 부모님.
부모님 앞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에 조금 급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해 주신 애슐리 씨.
애슐리 씨와 결정이 난 뒤 부모님에게 알렸더니 오히려 기뻐해 주셨다.
자신들 때문에 급하게 하는 거 아니냐며 되려 걱정하신 부모님.
두 분을 잘 설득해 2 월에 결혼하는 걸로 잠정적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준비가 가능해?”
“헤헤…다행히 타나야 씨가 도와주시기로 하셨어요.”
최근 결혼을 하신 타나야 씨와 라피 씨.
두 분이 팔을 걷어 붙이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로 하셨다.
정말 감사한 두 분.
타나야 씨와 라피 씨 덕분에 결혼식 준비를 2 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2 월 중순 쯤에 가능할 거 같은 느낌.
현재가 1 월 말이니 아직 3 주 정도 남아 있는 셈이었다.
“부럽네.”
“헤헤…준비 되면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애슐리 씨의 말.
그 말에 그레이스 씨는 미소를 지으셨다.
“그럼 사회는 누가 볼 거야?”
그레이스 씨의 질문.
마치 자신을 선택하라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녀의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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