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264화 (264/292)

〈 264화 〉 새해 (3)

* * *

새해맞이 준비에 한참인 나와 애슐리 씨.

우리 집에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보니 이곳저곳 꾸밀 곳이 많았다.

“후우…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괜찮아 보여요.”

애슐리 씨의 긍정적인 답변.

그녀의 답변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집에 찾아오실 예정인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일 전에 크리스마스 파티 이후 우리 집에 오셨던 적도 있지만,

그때와 달리 오늘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날이 아닌 새해 맞이를 위한 날이니 따로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새해맞이 준비로 바쁜 상황.

간단하게 새해를 의미하는 간단한 장식품들을 세우고 애슐리 씨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지금 벌써 새해를 맞이 했겠네요.”

“네, 맞아요. 밴쿠버보다 17 시간 정도 차이가 있으니까요.”

서머 타임이 끝난 겨울.

그렇다 보니 원래 시간보다 더 늦어진 상태여서 한국은 현재 17 시간 빠른 상황이었다.

땅 크기가 러시아 다음으로 크다 보니 나라 내 시간 대가 다른 지역이 6 곳이나 되는 캐나다.

6 개의 타임 존을 가진 캐나다이다 보니 동쪽 끝 뉴펀들랜드 주가 캐나다에서 가장 빠르게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튼 한국보다 하루 늦은 캐나다.

이미 한국에서는 벌써 1 년이 지났지만,

아직 캐나다에서는 1 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으셔도 되나요?”

“아직 새벽이라 조금 있다가 연락 드리려구요.”

아직 새벽 5 시 정도 되는 한국 시간.

다들 종 소리를 듣고 이제 잠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대략 2 시간이나 3 시간 뒤 쯤에 연락을 드리려는 생각.

우리 가족을 생각해 주는 애슐리 씨의 사려 깊음에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애슐리 씨.”

“헤헤…”

아이를 가진 애슐리 씨.

나와 애슐리 씨의 최근까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아이가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매일 같이 관계를 갖는 나와 애슐리 씨.

그렇다 보니 언젠간 애슐리 씨와 나 사이에 아이가 생길 줄은 알았다.

물론 부모님과 대면하기 이전에 이런 일이 생긴 건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나와 애슐리 씨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 행복한 일이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느낌.

이런 선물이 나와 애슐리 씨에게 다가올 줄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 곁으로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말을 건넸다.

“정말 고마워요. 애슐리 씨.”

“저도 기뻐해 줘서 고마워요. 존 씨.”

그렇게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는 애슐리 씨.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에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세요?”

“네, 아직은 별다른 느낌이 없어요.”

조심스럽게 자기 배를 쓰다듬는 애슐리 씨.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토끼 수인은 보통 18 주 쯤 되어야 배가 커지기 시작하니까요.”

“그레이스 씨가 말씀하신 대로 말이죠?”

“네.”

사람과 달리 임신 기간이 짧은 토끼 수인.

그런 토끼 수인이신 애슐리 씨 역시 임신 기간이 사람의 절반 정도 되는 20 주 정도였다.

여기서 사람처럼 배가 커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18 주.

그 이후 2 주간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복통을 호소한다고 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

내 표정을 본 애슐리 씨는 허리에 손을 올리신 뒤 단호한 표정을 지으셨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제가 일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20 주 동안이나 집에서만 있는 건 갑갑하니까요.”

“하하…하.”

단호한 애슐리 씨의 표정.

그 표정에 나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슐리 씨와 대화할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내가 현관문으로 다가가자 모습을 드러내는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두 분은 양손 가득 무언가를 잔뜩 챙겨 오신 상태였다.

“이…이게 뭐…뭐죠?”

“일단 들어가게 해 줄래? 가벼운 녀석인데 부피가 꽤 나가서 일단 놓고 싶거든.”

“아…네.”

그렇게 우리 집으로 밀고 들어오신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두 분은 양손에 든 걸 마룻 바닥에 놓아둔 뒤 주변을 살피셨다.

“이쪽이 낫겠지?”

“아무래도 산모실은 조용한 곳이 좋으니…그곳이 낫겠구나.”

“도마뱀 말이니 맞겠지 뭐.”

그렇게 예전에 올리비아가 지냈던 방으로 커다란 것을 들고 가는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눈앞에서 믿기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지니 어버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애슐리를 위한 산모실을 만드는 중이야.”

“그날 이후로 열심히 만들었단다.”

“…네?”

“일단 보고만 있어.”

그렇게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하는 그레이스 씨와 메간 씨.

거기에 메간 씨의 손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하자 금세 올리비아가 묵었던 방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숲속 같은 느낌.

물론 메간 씨의 마법 덕분이겠지만 우리 집 안에 작은 숲이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뒤에서 놀란 토끼 눈으로 모든 걸 지켜보던 애슐리 씨.

그녀는 이 숲 같은 느낌의 장소를 보고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건…”

“내 기억을 더듬어서 만들어 봤는데 어떤지 모르겠네.”

그레이스 씨의 어색한 웃음.

하지만 애슐리 씨는 숲처럼 변해 버린 올리비아의 방을 보고는 천천히 그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를 따라 나도 들어가 보니…

확실히 내가 알던 그 장소가 아니었다.

원래는 내 창고로 사용했었던 작은 방.

그런데 이게 마법의 힘인지 이 공간이 묘하게 넓어진 상태였다.

예전에 메간 씨가 말씀하신 내용.

마법을 통해 장소를 늘려(?) 주신다는 뜻이 이런 의미라는 걸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는…”

“조금 조잡하긴 하지만…나름 기억을 되살려 만든 장소야.”

푹신해 보이는 풀들.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세심한 소품들까지.

아무래도 저쪽 세계에서 넘어온 것들이다 보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내가 처음 보는 것들.

하지만 애슐리 씨는 옛 생각이 났는지 앉아서 그레이스 씨와 메간 씨가 꾸민 장소를 살펴보셨다.

“어린 시절에 봤었던 그 장소 같아요.”

“기억하고 있네?”

“네, 헤헤…”

그렇게 주변을 계속 살펴 보던 애슐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 짚으로 만든 둥지 같은 곳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이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다행이네. 너무 엘프식이라 걱정이 들었는데.”

“정말 감사해요. 그레이스 씨.”

살짝 눈물이 맺힌 애슐리 씨.

그런 애슐리 씨를 바라보며 그레이스 씨는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는 도마뱀이 더 힘을 썼으니까 도마뱀에게 감사하다고 해.”

“히히…고마워요. 메간 씨.”

“사랑스러운 애슐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줄 수 있단다.”

환한 미소를 짓는 메간 씨.

애슐리 씨가 그녀가 만든 공간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 뿌듯해 하시는 표정을 지었다.

“어때? 이 정도면 대모 역할 잘하고 있지?”

장난스럽게 말씀을 하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의 말에 애슐리 씨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다못해 넘치고 있어요. 헤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기뻐해 주니 좋네.”

그렇게 흡족한 미소를 짓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이 신비로운 공간에 정신을 뺏긴 내게 다가오셨다.

“산모실로 바꿔봤는데 괜찮지? 집주인?”

장난스러운 그레이스 씨의 말.

그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되려 감사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감사해요. 그레이스 씨. 이렇게 준비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애슐리의 대모라고 말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말씀 만으로도 감사한걸요.”

“그래도 우리도 대모로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그래. 그때 애슐리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랑 메간도 엄청 기뻤거든.”

“하하…저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무튼 축하해. 우리도 도울 수 있는 거 있으면 도와줄게.”

“정말 감사해요.”

“감사하긴. 아, 그리고 설명할 게 있어.”

“설명할 거라는 게…?”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대체할 단어가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눈으로 보여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 네.”

그렇게 그레이스 씨를 따라 나선 상태.

다시 말하지만 올리비아가 묵었던 방은 원래 창고 용도로 넓게 봐야 원룸 크기 정도 되는 방이었다.

하지만 메간 씨의 마법 덕분에 침실의 두 배 정도로 커진 느낌.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마법의 효과 덕분에 이 공간이 우리 집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 걸어 도착하니 나무 밑동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제일 중요한 곳이야.”

“이 나무가요?”

“메간의 마법으로 만든 일시적인 거지만…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잠시 고민에 빠진 그레이스 씨.

그녀는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나셨는지 내가 알만한 것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시계 같다고 보면 좋을 거 같아. 그러니까 애슐리의 몸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으니까 여기에 새로운 싹이 피면…이제 곧 아이가 나올 때가 됐다는 걸 알려 주는 거지.”

“신기하네요…”

“원래는 세계수가 새 생명이 태어나면 알려주는 방식인데 아무래도 마법으로 분위기만 낸 거다 보니 이렇게 나무에 다가 새싹이 틔어나는 걸로 해 두었어.”

“그럼 이게 세계수를 대체하는 거군요.”

“메간의 말로는 마법으로 세계수 비슷한 걸 세워 둘 수 있다고 하는데…그걸 세워두면 집에 영향이 간다고 하더라고.”

“아아…”

“그러니까 나무로 대체한 거지.”

신기한 마법의 세계.

내가 정말 현대에 사는 건지 메간 씨나 그레이스 씨가 살았던 세계에 살았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내게 다가온 애슐리 씨와 메간 씨.

나는 메간 씨를 바라보며 고마움과 미안 함을 숨기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법을 마음대로 쓰는 건 법적으로 금지된 상태.

그치만 메간 씨는 우리를 위해서 이런 마법을 흔쾌히 사용해 주셨다.

미안한 마음.

그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메간 씨는 미소를 지었다.

“마법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본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어차피 이 공간은 그 노인네 수준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도 힘들 테니 말이다.”

붉은 용의 수장이신 메간 씨.

그렇다 보니 마법 실력도 보통이 아니신 모양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두 분다…”

“후후. 고마우면 나중에 갚으면 된단다.”

“…네?”

살짝 입술을 적시는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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