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258화 (258/292)

〈 258화 〉 크리스마스 파티 (2)

* * *

모두가 즐기고 있는 파티.

조금 전 복잡했었던 감정을 모두 털고 일단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까처럼 너무 심각해지면 위로해 줄 테니까 찾아와.”

그레이스 씨의 장난스러운 말.

나는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그레이스 씨.”

대답 대신 미소를 지은 그레이스 씨.

그녀는 다시 그녀의 파트너인 메간 씨 옆으로 다가가셨다.

이제부터 파티를 즐겨야 하는 시간.

나는 먼저 잘 놀고 계신 애슐리 씨 곁으로 이동했다.

날 보자 날 찾고 있었다는 듯이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날 껴안으며 나지막이 말을 건네셨다.

“어디가셨어요?”

“잠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갑자기 안 보여서 놀랬어요.”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히히.”

사랑스럽게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의 볼이 살짝 붉은 것으로 보아 술을 조금 마신 듯 보였다.

“맥주 조금 했어요. 존 씨도 한 잔 하실래요?”

“좋아요.”

그렇게 맥주를 가지고 돌아온 상태.

나와 애슐리 씨는 간단하게 건배를 하고 한 모금 씩 나눠 마셨다.

최근 들어 술을 자주 마시는 느낌.

집이 바로 밑이라 괜찮긴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마시는 느낌이 들어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올해까지.

내년부터는 좀 줄여야겠다.

맥주를 마시자 살짝 기분이 풀어지는 느낌.

확실히 맥주가 주는 행복감은 빠르고 정확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애슐리 씨와 맥주를 나눠 마시는데 다가오는 한 남자.

내 절친한 친구이자 한 덩치 하는 제임스가 나와 애슐리 씨에게 다가왔다.

“벌써 마시고 있었네.”

“아직 안마셨어?”

“마시긴 했지만 같이 마시려고 했지.”

미소를 짓는 제임스.

그의 손에는 맥주가 들려 있었다.

“베일리 씨는?”

“지금 잠시 화장실 가 있어. 조금 전에 좀 많이 마셨거든.”

나와 애슐리 씨처럼 가족과 떨어져 사는 제임스와 베일리 씨.

그렇다 보니 우리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였다.

“제가 한 번 가 볼께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

베일리 씨를 걱정해 화장실로 향한 애슐리 씨.

나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연인 사이인데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조금 그래서. 우리 지인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긴 그렇지.”

올리비아의 카페 단골들도 참여한 파티.

그렇다 보니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은 제임스였다.

물론 연인이 걱정돼 화장실로 들어가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파티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베일리 씨는 얼마나 마셨길래 그러시는 거야?”

“섞어 마셔서 그렇지 뭐.”

맥주 옆에 놓여 보드카, 테낄라 같은 술들.

그걸 가리킨 제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통이 꽤 심하시겠네.”

“그러게 말이야.”

“만약 상태 안 좋으시면 우리 집에서 잠시 쉬는 건 어때?”

올리비아의 집 바로 밑에 있는 우리 집.

그래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바로 내려가서 쉴 수 있었다.

“그래도 될까?”

“물론이지. 오늘 하루 자고 가도 돼.”

“갑자기 미안 해 지네…하하.”

나처럼 머쓱한 웃음을 짓는 제임스.

나는 괜찮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베일리 씨 나오시면 이야기해줘.”

“고마워. 존.”

“별말씀을.”

그렇게 제임스와 대화하는 사이.

나와 제임스가 있는 쪽에 다가온 한 남성분.

고릴라 수인으로 보이는 한 덩치 하는 남성분이 다가와 나와 제임스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크라 합니다.”

자신을 마이크라 소개하는 고릴라 수인 분.

나는 그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임스구요. 혹시 올리비아의 지인이신가요?”

“네, 맞아요. 올리비아 씨의 카페 단골 중 하나라 자부할 수 있죠.”

호탕하게 웃는 마이크 씨.

나는 그를 바라보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마이크 씨.”

“감사합니다. 올리비아 씨에게 자주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서요.”

“올리비아가요?”

“네, 존 아저씨와 제임스 삼촌이라고 많은 도움을 받은 분들이 있다고 종종 들었어요.”

나는 아저씨.

제임스는 삼촌.

그 말에 제임스는 이겼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올리비아가 참 착하다니까.”

“그게 착하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 보다는 내가 더 친하다는 뜻이지.”

“어휴…”

으스대는 제임스.

나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하. 두 분의 우애가 좋아 보이시네요.”

“네, 저희가 한 우애하죠.”

“그건 또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음을 짓는 제임스.

그 모습을 본 마이크 씨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맥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같이 맥주를 마실 사람을 구하는데 두 분다 괜찮으신가요?”

“네, 전 괜찮아요.”

“좋아요.”

그렇게 마이크 씨가 건넨 맥주를 손에 든 나와 제임스.

자연스럽게 캔을 따고 약속이라도 한 듯 건배했다.

“치어스!”

“건배!”

“샬룻!”

이렇게 맥주를 마신 세 사람.

갑자기 이렇게 마시다 보니 옛날에 보리스랑 웨이랑 같이 마셨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 참 혈기 왕성할 시절…은 아니지만,

옛날에 술을 잔뜩 마시고 거미 인간 영화에 나오는 춤을 췄었던 흑역사가 생각날 정도였다.

물론 맥주 한 잔에 그런 춤을 출 정도로 취한 건 아닌 상태.

그치만 낯선 이와 금방 친해지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알콜올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마이크 씨는 올리비아의 카페에서 자주 뵀던 거 같은데 이 근처에 사시나요?”

제임스의 질문.

아무래도 우리 카페와 올리비아의 카페를 오가다 보니 발이 넓은 제임스였다.

“아, 네. 근처에 사는 건 아니고 직장이 근처에 있어요.”

“직장이요?”

“작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인데 그곳에서 코딩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종 머리를 식히려 올리비아 씨의 카페를 찾곤 했죠.”

“코딩이라면…”

자연스럽게 날 바라보는 제임스.

나는 모른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이제 다 까먹은지 오래야. 명령어 읽어도 이제 모른다고.”

사실 노가다에 가까운 코딩 작업.

내가 직접 코드를 만든다는 느낌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명령어를 기워 맞춰 결과물을 짜 맞추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보니 명령어 찾는 시간과 그걸 조합하는 시간.

여기에 이걸 독립 실행이 되는지 체크하고,

다른 코드와 맞는지 호환성 체크도 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아마추어나 자그마한 회사에서는 한 사람이 이 코드를 조합해 전체를 총괄하기에 독립 실행이나 호환성 체크를 세세하게 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다녔던 판교의 회사의 경우 직원들이 많다 보니 이런 세심한 작업이 필요했다.

술을 마시니 더 생각나는 그때의 기억.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때의 기억을 밀어 내려 애썼다.

“카페를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

“이 녀석 원래 컴퓨터 좀 만지던 녀석이이예요.”

“컴퓨터를 잘 다루는 거랑 코딩은 다른 이야기야.”

“그거나 그거나.”

장난스럽게 날 도발하는 제임스.

나름 애니메이터로 얼추 알고 있을 제임스가 이렇게 장난을 치니 더 얄밉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예전에 하셨던 일인가요?”

“네, 뭐…한국에 있었을 때 그 일하긴 했었어요. 오래전 일이지만요.”

“한국에 일하러 가셨었나요?”

“아뇨, 제가 한국 출신이라서요. 캐나다로 이민을 온 상태예요.”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마이크 씨.

그가 이렇게 질문하는 게 당연한 게 현재 밴쿠버에 교포 2 세, 3세가 많다 보니 이곳에서 태어난 한국인 분들이 정말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계 캐나다인 사람들.

아무래도 캐나다에서 교육 받고 캐나다인으로 살아온 이들이라 나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아무튼 이렇게 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해도 이해해 주실 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하하.”

호쾌하게 웃는 마이크 씨.

그의 호탕한 웃음이 묘하게 매력적인 분이었다.

“이제는 다 까먹은지 오래예요. 사실 저보다 이 녀석이 훨씬 더 잘 알죠.”

“난 일개 애니메이터일 뿐이야.”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제임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수작업을 하는 애니메이터였다면 더 그럴싸한 변명이었을 거야.”

“하하 그런가?”

요즘은 대부분 3D 모델링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애니메이션과 궤가 달랐다.

물론 3D 모델링 기반 애니메이션이 덜 힘들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작업에 비해 작업 효율이 좋다 보니 현재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업계는 이런 상태라고 어렴풋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다뤄야 하는 제임스.

물론 코딩이랑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손을 뗀 나보다 제임스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시니어 애니메이터이자 팀장 급인 제임스.

모든 걸 총괄해야 하는 직책이었기에 그도 어렴풋이 기술 쪽도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제임스 씨의 직업은 애니메이터셨군요.”

“자랑은 아니지만 팀장 급이다 보니 직접 그리는 건 많이 줄었어요.”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나와 제임스를 칭찬해 주시는 마이크 씨.

나는 너무 우리 이야기만 한 거 같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너무 저희 이야기만 한 거 같은데…혹시 어떤 앱을 개발하고 계신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직접적인 개발은 아니고 대부분 하청을 받아서 만드는 방식이예요. 뭐, 슈퍼마켓 전용 앱을 만든다거나 멤버십 앱 같은 것들 말이죠.”

“아 그렇군요.”

모든 사람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

그렇다 보니 모든 기업체들은 멤버십 포인트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플라스틱 카드로 만들지 않고 대부분 어플로 전환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앱을 만드는 업체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황.

자연스럽게 마이크 씨가 다니는 회사와 같은 하청을 받아 앱을 만드는 회사들이 많이 생겼다.

“신기하네요.”

“최근에는 자체 개발을 하는데 아무래도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조금 어려울 거 같아요.”

“그 고충 이해해요.”

나도 모르게 나온 말.

아무래도 예전에 판교의 등대지기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마이크 씨의 고충이 남일 같지 않았다.

내 비유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정육면체 큐브 퍼즐을 계속 맞춰나가는 느낌.

오랜만에 마이크 씨와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