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254화 (254/292)

〈 254화 〉 크리스마스 (4)

* * *

“흐음…음…하암…”

고양이처럼 길게 늘어지는 내 몸.

나는 기지개를 피고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폈다.

바로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애슐리 씨.

평소라면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이었기에 이렇게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었다.

따듯한 애슐리 씨의 몸.

나는 곤히 자는 애슐리 씨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애슐리 씨의 머리맡에 있는 선물.

나는 그녀가 눈을 뜨면 선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어제 새벽에 미리 선물을 올려 두었다.

내가 몰래 고른 선물이라 조금 걱정이 있긴 하지만

애슐리 씨가 부디 기뻐하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

매일 같이 이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아침에 속옷을 입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그렇게 애슐리 씨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온 상태.

나는 암막 커튼을 걷어 내고는 밖을 바라보았다.

“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사.

밴쿠버가 완전 눈의 왕국이 된 것처럼 새하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작년에는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던 눈.

다행히 올해에는 보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포근한 하루네.”

포근하게 쌓인 눈을 보며 괜스레 들뜨는 마음.

눈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눈이 오면 일단 밖으로 나가 눈싸움을 하는 게 어릴 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눈싸움을 한 뒤 가장 가까운 친구 집에서 밥을 먹는 게 당연한 일.

당시에는 부모님들이 마음이 넓으셨는지 전혀 모르는 아이더라도 집에 방문하면 일단 뭐라도 챙겨 주셨다.

그렇게 정신없이 무언가를 먹고 나면 다시 노는 시간.

다들 지칠 때쯤 돼서 자신이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자랑하곤 했다.

내가 살았던 동네가 서울이지만 못사는 동네여서 그런지 다들 나와 같이 책을 선물 받는 애들이 대다수였고…일부는 장난감을 선물 받아 친구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한눈에 받곤 했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

나는 눈을 볼 때마다 이 추억과 함께 안 좋은 추억이같이 생각났다.

제설의 추억.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온 모든 한국 남자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생각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군생활이 힘들었지만,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의 장소에서 근무를 했었기에 그때의 추억을 안줏거리로 말할 수 있었다.

11 사단이 있는 홍천.

아무래도 강원도다 보니 눈이 정말 많이 내렸고,

그걸 치우는 게 하루 업무다 보니 매일 같이 나가서 쓸고 치우고 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말년에는 행보관 님을 도와 싸리로 빗자루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그전까지는 넉가래로 눈을 치우곤 했다.

그때의 추억.

안타깝게도 그때처럼 지금도 제설을 해야만 했다.

엄연히 카페 앞은 내 사업 구역.

그렇기에 밴쿠버 시에서도 사업장 앞 제설을 권고하곤 했다.

만약에 제설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그대로 얼어 버리는 눈.

지나가던 행인이나 손님이 이 눈에 미끄러져 쓰러진다면 책임은 카페를 운영하는 내게 있었다.

그렇기에 눈이 살짝 그쳤을 때 제설을 나가야만 했다.

애슐리 씨가 일어나시기 전에 혼자 할 생각인 제설.

매년 나 혼자 했었기에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제설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필요한 빗자루와 눈 삽.

이건 베란다에 미리 꺼내놔서 들고 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방수 바지와 목폴라 티, 그리고 두꺼운 스키 장갑까지 낀 상태.

모든 제설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와아…진짜 새하얗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문 상태.

밤에 누군가 지나갔는지 큼직한 발자국 몇 개만 눈 위에 찍혀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보니까 나름 괜찮네.”

하얀 눈을 보니 감수성이 생기는 느낌.

나는 혼잣말하며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이걸 치워야 하는 시간.

나는 가장 먼저 모두가 이용하는 통로부터 길을 뚫을 생각이었다.

1 층에는 카페.

2 층부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보니 인도로 나가기 쉽도록 제설을 하는 게 중요했다.

“완전히 다 밀지는 말고 조금은 남겨둬야지.”

오늘 애슐리 씨와 눈사람을 만들 예정인 상태.

그래서 나는 우리 카페 앞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눈사람을 만들 눈을 조금 모아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제설 계획.

한국 군대에서 쌓아온 경력으로 가장 먼저 눈 삽을 이용해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도 쪽에 눈을 모아두면 밴쿠버 시에서 운용하는 제설차가 와서 쓸어가는 방식.

가끔은 인도로도 올라오곤 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동안 눈이 얼어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끔찍한 일.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 누군가 다친다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허리 통증이 많은 사람으로서 누군가 얼어붙은 눈에 쓰러져 나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게 내키지 않는 상황.

내가 먼저 움직여 눈을 치우는 게 내 성격에 맞았다.

그렇게 눈삽을 이용해 쌓인 눈을 치워나가는 도중.

어디선가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

나는 누군가 해서 문 쪽을 바라보았더니 귀엽게 제설할 준비하고 나온 애슐리 씨가 서 있었다.

“너무해요. 존 씨.”

“일어나셨어요?”

“왜 안 깨우셨어요?”

짐짓 삐진 척을 하고 계신 애슐리 씨.

하지만 그녀가 하는 두툼한 목도리와 동그란 귀마개를 보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왜 웃어요?”

“미안 해요. 애슐리 씨. 지금 모습이 너무 귀여우셔서요.”

“그런 거로 삐진 거 안 풀려요.”

팔짱을 끼며 삐진 표정을 고수하는 애슐리 씨.

나는 눈삽을 잠시 눈에 꽂아 두고 그녀에게 다가 갔다.

애슐리 씨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 상태.

그다음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할짝을 하니 기분이 살짝 풀린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미안 해요. 애슐리 씨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 어려웠어요.”

“다음부터는 같이해요. 알겠죠?”

“알겠어요.”

내 확답을 들은 애슐리 씨.

그녀는 그제야 화난 표정을 풀어 주셨다.

내 옆으로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는 내 품에 꼬옥 안기며 날 살짝 올려다보셨다.

“크리스마스 선물 정말 고마워요. 존 씨.”

내게 감사를 표하는 애슐리 씨.

나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선물이요? 전 잘 모르는데요. 아무래도 애슐리 씨가 착한 일을 많이 하셔서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가신 게 아닐까요?”

“히히.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존 씨.”

“어떤 걸 말이예요?”

“존 씨가 사실 산타라는 걸 말이예요.”

그러고는 내 볼에 살짝 할짝을 해주신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행동에 미소를 지었다.

“아 참 그리고 보니까 존 씨도 착한 일을 많이 하셨나 봐요.”

“네?”

“존 씨의 산타 할아버지도 다녀가셨더라구요. 히히.”

“아무래도 제 산타는 정말귀여운 산타인가 보네요.”

내 장난에 미소로 답하는 애슐리 씨.

나와 애슐리 씨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설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제설을 할 준비하는 도중.

애슐리 씨는 카페 앞에 따로 놓여져 있는 눈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셨다.

“이 눈은 왜 여기에 있어요?”

“아, 오늘 눈사람 만들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 이동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눈사람 만들기 용 눈을 조금 쌓아 두었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그녀는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으셨다.

“히히. 고마워요. 존 씨.”

“아니예요. 그럼 눈사람부터 만들고 제설을 할까요?”

아직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

거기다 크리스마스 당일이다 보니 대부분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한 마디로 눈사람 만들기 좋은 시간.

애슐리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아요.”

우리 카페 앞에 둘 예정인 눈사람.

그렇다 보니 나와 애슐리 씨는 어떤 모양의 눈사람이 좋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눈사람이 좋을까요?”

“음…”

그때 문득 든 생각.

예전에 사진으로 봤었던 눈사람 사진이 기억이 났다.

토끼로 만든 눈사람 사진.

동그란 머리에 머리 부분에 귀를 달면 귀여운 토끼 눈사람이 된다는 걸 생각해낼 수 있었다.

“토끼 눈사람은 어때요?”

“토끼 눈 사람이요?”

“네, 귀여울 거 같지 않아요?”

“완전 귀여울 거 같아요.”

귀마개를 차고 계신 애슐리 씨.

그녀는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은 토끼 귀 부분을 쫑긋 세우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우리 카페 앞,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 만들기로 한 토끼 눈사람.

나는 커다란 몸통 부분을 담당하기로 했고,

애슐리 씨는 머리 부분을 담당하기로 하셨다.

마침 눈삽으로 쌓아 두어 잘 뭉쳐진 눈들.

그 눈을 돌돌 굴려 서서히 크기를 늘려 나갔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얼추 모양이 잡힌 몸통.

조금 무겁지만 힘을 내서 카페 앞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장소에 몸통을 고정했다.

“애슐리 씨. 몸통은 다 완성 됐어요.”

“저도 거의 다 끝나가요.”

원래는 동그랬던 눈 뭉치.

하지만 애슐리 씨가 열심히 다듬어 꾸미기 시작하자 귀여운 모양이 나타났다.

동그란 얼굴에 조그마한 귀.

거기에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단추와 나무 막대기로 눈과 수염 부분을 꾸며내셨다.

동글동글하니 귀여운 느낌.

나는 그녀의 걸작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 만드셨네요. 완전 귀여워요.”

“히히. 고마워요.”

추위로 인해 얼굴이 살짝 붉어진 애슐리 씨.

그런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귀여운 토끼 얼굴을 들고 계시니 더욱 귀엽게 보였다.

이제 내가 만든 몸통과 토끼 머리를 붙여야 할 시간.

내가 의욕이 너무 많아 몸통을 너무 크게 만들어서 그런지 머리가 조금 작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몸통을 깎아 내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그래서 일단 머리를 올려 두었는데…

“정말귀여워요!”

“그러게요. 오히려 언밸런스 하니까 더 귀엽게 느껴지네요.”

몸통에 비해 작은 머리.

하지만 애슐리 씨가 머리를 정말 잘 만드셔서 그런지 이것마저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와 애슐리 씨가 만든 귀여운 토끼 눈사람.

나와 애슐리 씨는 나란히 서서 둘이 만든 걸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지 눈이 안 녹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래요.”

둘이 만든 합작품.

밴쿠버의 겨울이 오래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가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눈 사람도 만들었겠다 이제부터 제설에 집중해야 할 시간.

그렇게 아침에 하던 제설을 이어 하려 했는데 집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존 아저씨 그리고 애슐리 언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온 아이라만과 올리비아.

둘은 우리를 보자마자 성탄절 인사를 건넸다.

“메리 크리스마스 올리비아 그리고 아이라만.”

“메리 크리스마스!”

“두 분도 제설하러 나오신 거예요?”

우리에게 다가온 올리비아.

나와 애슐리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카페를 운영하는 올리비아와 아이라만.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제설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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