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242화 (242/292)

〈 242화 〉 검은 용 (2)

* * *

인간과 다른 시간 관념에 살고 있는 드래곤.

이건 메간 씨를 통해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다.

메간 씨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를 위해 여자의 삶을 선택했던 이야기들.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 파트너가 절 밀어내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요?”

리사 씨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리사 씨를 사랑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건 말이 되지 않아요. 저를 사랑하면…제 옆에 있어 주면 되잖아요.”

리사 씨의 합리적인 말.

그 말에 나는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내 감정을 말해주었다.

“예전에 메간 씨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

“그녀와 그녀가 사랑했었던 사람의 이야기였죠.”

“용사와의 사랑…”

“맞아요. 그녀는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많은 생각했다고 해요.”

그 말에 묵묵히 날 바라보는 리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넸다.

“제가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삶이…그에게 부담스러울까요?”

“아뇨. 정반대에요.”

“네?”

“리사 씨의 파트너 분은 겁이 났던 거에요.”

“무슨 말씀이신 거죠?”

“자신이 사라지고…홀로 남겨진 리사 씨가 외로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에요.”

“그건 너무…미래의 이야기 잖아요.”

“맞아요.”

사람에게 있는 상상을 현실이라고 믿는 능력.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형체가 없는걸 존재한다고 믿곤 했다.

사랑, 겸손, 우애, 친절 등.

냉정하게 보면 그저 행동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 행동에 있어서 일종의 상상에 의지하는 감정에 의지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오래된, 입증되지 않은 것들을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걸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아왔는데…

드래곤들은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랑이나 겸손 그리고 우애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관점에서의 시각은 사람과 많이 달랐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드래곤들.

반면,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꿈꿨다.

그 미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양한 증거를 통해 그 미래를 상상해낼 수 있었고 그게 현실로 다가올 것을 미리 대비하곤 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게…사람과 드래곤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미래는 어떤 느낌인가요?”

“미래라…”

잠시 고민하는 리사 씨.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말을 이해하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존 씨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렇게 설명해서 미안 해요.”

“아니에요. 존 씨의 말씀이 맞아요. 제 파트너는 불안 해 하고 있었는데…”

침울해지는 리사 씨의 모습.

나는 그녀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상황.

일부 사람들은 용기가 없다 혹은 너무 멀리 생각하는 게 아니냐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라 그런지…리사 씨의 파트너 분의 걱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연애가 아닌 동거.

다시 말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동거도 일종의 혼인의 다른 모습 중 하나였기에…

리사 씨의 파트너 분은 리사 씨의 삶의 일부분을 차지함에 있어 책임감을 느끼신 모양이었다.

내게 대입하자면,

나와 애슐리 씨의 미래 속에서…내가 먼저 죽고 홀로 남겨진 애슐리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찢어질 것만 같았다.

리사 씨의 파트너 처지에서 리사 씨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고,

다른 이들과 만나 그녀의 삶을 이어나가길 바라겠지만…

당장에 그녀의 아버지, 아드리안 씨의 이야기만 듣더라도…

드래곤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사 씨의 조심스러운 질문.

나는 그 질문에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파트너 분과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떠세요?”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미흡하지만…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화에서 중요한 점은 공감대 형성이라 생각해요.”

“공감대요?”

“네. 물론 파트너 분의 걱정을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파트너 분도 조금씩 마음을 열지 않을까 생각해요.”

“공감이라…”

“공감대가 형성되면 파트너 분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거짓 없이 말씀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러면 더 겁을 먹지 않을까요?”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애슐리 씨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미래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리사 씨와 파트너 분이 지내는 미래를 말한다면 파트너 분도 생각이 바뀔 거에요.”

“…”

잠시 고민에 빠진 리사 씨.

나는 내 미흡한 조언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미안 해요. 존 씨. 솔직히 지금 바로 와닿지는 않아요. 하지만…노력은 해볼게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말에 미소로 화답하는 리사 씨.

그녀는 커피를 마시던 것을 멈추고 양손을 모은 손에 살짝 턱을 괴셨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리사 씨에게 불편함을 드린 게 아닐까 걱정이 들어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최근 파트너와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거든요.”

업무 때문에 많이 바쁜 리사 씨와 리사 씨의 파트너 분.

연말이라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아드리안 씨를 보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는 자연스럽게 같이 산다면 대화가 늘어 날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존 씨의 말씀을 들어 보니 순서가 뒤 바뀐 거 같네요.”

“리사 씨의 생각은 충분히 공감해요. 일 때문에 애초에 대화가 어려운 상태였으니까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존 씨의 말씀처럼 일단 대화부터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리사 씨가 얼마나 파트너 분을 아끼는 지 바로 느껴졌다.

“두 분이같이 쉬시는 건 어려운 일이겠죠?”

“음…아무래도 내년 신년 행사까지는 엄청 바쁠 거 같아요.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들이 많으시니까요.”

잠시 생각난 부분.

나는 그래서 리사 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멜리사 씨에게 도움을 구해 보는 건 어떤가요?”

“어머니께요?”

“네, 멜리사 씨도…이런 고충이 있으셨을 테니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일로 바쁘신 분에게…제 이야기를 드리는 게 좀…”

“제 오지랖이지만…멜리사 씨에게 도움을 구해 보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요.”

“…알겠어요.”

아무래도 멜리사 씨에게 지금의 고충을 말하지 않은 모양.

그래도 멜리사 씨라면 자기 딸의 연애에 많은 공감을 해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려는 딸을 이해해주실 거로 생각.

내가 만나 본 멜리사 씨는 그런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존 씨.”

“아니에요. 이렇게 찾아와 주셨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친절하시네요.”

“고민이 있으시다면 더 말씀하셔도 좋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나저나…”

애슐리 씨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리사 씨.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질문을 건네셨다.

“저분이 파트너 분이신 거죠?”

“네, 맞아요. 애슐리 씨에요. 제게 정말 많은 부분을 도와 준 사랑스러운 파트너죠.”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리사 씨.

그녀는 부럽다는 듯 날 바라보셨다.

“애슐리 씨를 소개할 때의 존 씨의 표정이 정말 밝아 보여서 부럽네요.”

“그건 리사 씨도 마찬가지였어요.”

“네?”

“리사 씨도 파트너 분을 이야기하실 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셨거든요. 물론…”

“알아요. 고민을 이야기할 때는 조금 그랬죠?”

“하하…죄송해요.”

“그만큼 이 문제는 제게 큰 문제니까요. 저는 제 파트너와 함께 미래를 꿈꾸고 싶어요.”

“충분히 이루어질 일이라 생각해요.”

“격려 고마워요.”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리사 씨.

그녀는 이후 가지고 계신 궁금한 점을 내게 말씀하셨다.

“실례지만 말씀하신 미래에 대해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 미래라는 게 혹시…”

“네,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 초반에 저희 부모님과 같이 만날 예정이구요.”

“아아…”

고개를 끄덕이는 리사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축하를 건네셨다.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해요. 저희 부모님이 애슐리 씨를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걱정 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건네시는 리사 씨.

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 종족에 낯선 한국에서 지내신 분들이니까요. 조금 걱정이 드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군요. 북미로 오시는 건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네, 아버지께서 계속 일을 하셨는데…이제 은퇴를 하셔서 밴쿠버에 여행을 오시기로 하셨어요.”

“은퇴 기념이시군요.”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리사 씨.

그녀는 이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날 바라보며 응원을 해주셨다.

“존 씨가 사랑하는 분이니 존 씨의 부모님도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후후…부럽네요.”

“멜리사 씨도 리사 씨와 파트너 분의 문제에 대해서 리사 씨를 응원하실 게 분명해요.”

“고마워요. 존 씨.”

커피 잔을 비우신 리사 씨.

마침 카운터로 다가온 애슐리 씨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애슐리 씨 맞죠?”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존 씨. 손님이 오신지도 모르고…”

공부에 집중하고 계셨던 애슐리 씨.

나는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그나저나…이쪽은 엘리자베스 씨에요. 멜리사 씨의 따님분이시자 보좌관으로 일하고 계시죠.”

“아…! 그래서 검은 머리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엘리자베스 씨.”

“만나서 반가워요. 애슐리 씨. 존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보좌관으로 있어요. 애슐리 씨도 저를 리사 라고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어요. 리사 씨.”

애슐리 씨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 엘리자베스 씨.

그녀는 나와 애슐리 씨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만약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파트너랑 같이 쉬게 된다면 이곳에 꼭 다시 찾아올게요.”

“그러면 저희야 감사한데…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제 파트너도 이런 다정다감한 분위기의 카페라면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거 같아요.”

“헤헤…칭찬 고마워요. 리사 씨.”

“오히려 제가 고마워요. 애슐리 씨.”

빙긋 웃는 리사 씨.

그녀는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하셨다.

“다음에는 파트너랑 같이 올게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다음에 봐요.”

그렇게 카페를 떠난 리사 씨.

나와 애슐리 씨는 떠나는 리사 씨를 배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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