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240화 (240/292)

〈 240화 〉 크리스마스 마켓(4)

* * *

목욕하고 나와서 따끈따끈해진 몸.

나와 애슐리 씨는 물기만 닦아 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앉았다.

목욕이 끝난 뒤 애슐리 씨.

그녀를 꼬옥 안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따듯해 지는 느낌이었다.

“헤헤…존 씨의 품이 따듯해서 좋아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목욕으로 달궈진 몸을 식힐 무렵.

애슐리 씨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은 뭘 먹으면 좋을까요?”

“음…그러게요.”

목욕 후 저녁을 고민하는 나와 애슐리 씨.

목욕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건지 나는 시원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혹시 차가운 면 요리는 어때요?”

“메밀 소바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애슐리 씨.

예전에 드셔본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가운 면이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으신 모양이었다.

메밀 소바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한국적인 냉면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한국식 냉면을 해 보려 하는데 괜찮아요?”

“랭명?”

나름 발음이 어려운 냉면.

애슐리 씨도 이 발음이 어려우신 모양이었다.

“냉이 차갑다는 뜻이고 면이 파스타 같은걸 의미해요.”

“아 그렇군요. 신기해요.”

“매콤한 소스를 넣어서도 먹을 수 있는데 매콤한 소스도 만들까요?”

“네 좋아요!”

매운 음식에 흠뻑 빠진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만들기 쉬운 냉면.

냉면용 면인 쫀쫀한 면이 없으니 대신 소면을 사용해 간단한 냉면을 만들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매콤한 소스.

고추장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그리고 식초 반 스푼이면 완성되는 간단한 소스였다.

이제 냉면 육수를 만들 시간.

냉장고에서 오랜 시간 익어 가는 중인 동치미.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장독대에 오랜 시간 익힌 그 맛을 낼 수는 없지만,

나름 새콤달콤한 맛은 가지고 있었다.

이 동치미 국물에 다시다를 살짝 풀어 맛을 낸 상태.

동치미 국물 자체 만으로는 육수로 부족한 감이 있어 보통 국물 요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다시다를 넣어 깊은맛을 냈다.

여기에 홍고추만 살짝 썰어 나중에 고명으로 올리면 끝.

이제 면만 삶으면 간단하게 냉면이 완성되었다.

보글보글 끓는 물.

소금을 넣어 끓인 물에 소면을 한 움큼 넣고 꽤 오래 끓였다.

따듯한 면 요리면 소면을 조금만 삶는데 이건 냉면용으로 쓸 예정이니 오래 끓여야 했다.

완전히 푹 익은 면.

이 면을 건져 내 찬물에 빠르게 씻어냈다.

접시에 소박하게 면을 담고 그 위에 동치미 육수를 붓고 시원하게 얼음을 넣고…

홍고추와 간단하게 썰어둔 오이를 살짝 올려 만들어낸 냉면.

대략 10 분 정도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냉면이 만들어졌다.

“다 만들었어요.”

“와아!”

준비된 냉면을 바라본 애슐리 씨.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냉면을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네요.”

“그쵸?”

낯선 음식임에도 흥미를 보이는 애슐리 씨.

이제 능숙해진 젓가락을 사용해 면을 한 올 들어 맛을 보셨다.

“와…시원하고 새콤달콤해요. 신기한 맛이예요.”

눈을 반짝이며 냉면에 흥미를 보이는 애슐리 씨.

예전에 보리스에게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보리스는 냉면에 맛을 들이지는 못했다.

북미 사람들에게는 낯선 음식인 차가운 면 요리.

여기에 새콤달콤하면서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어 조금 부담스러워 했었던 보리스였다.

반면, 애슐리 씨는 보리스와 다르게 냉면을 좋아하셨다.

내 눈을 바라보며 먹어도 되냐는 눈빛을 보내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 미소로 대신 답했다.

정말 시원하게 면을 드시는 애슐리 씨.

그녀는 면과 함께 빨려 들어오는 국물이 정말 마음에 드셨는지 스푼으로 국물을 떠 드셨다.

“이 국물이 정말 맛있어요. 이게 뭐예요?”

“냉장고 안에 있는 무 기억하세요?”

“아…무 피클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걸 한국어로 동치미라고 하는데 거기에 있는 국물을 사용한 거예요.”

“아아…그래서 제가 맛있게 느낀 거네요.”

“하하…그것도 있고…”

MSG의 효과 덕분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걸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 소스를 넣어서 먹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조금 매울 수 있어요.”

“이제는 매운 거 많이 먹어서 잘 먹어요.”

숟가락으로 소스를 떠서 냉면에 풀어 넣는 애슐리 씨.

그녀의 냉면이 어느새 새 빨간색으로 변했다.

내가 보기에도 많이 매워 보이는 색.

하지만 애슐리 씨는 괘념치 않고 냉면을 드셨다.

정말 잘 드시는 애슐리 씨.

그녀가 너무 잘 먹어서 더 만들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텅텅 비어 버린 나와 애슐리 씨의 냉면 그릇.

애슐리 씨는 배시시 웃으며 빈 그릇을 바라보았다.

“존 씨의 말씀처럼 정말 시원해서 좋았어요. 목욕 후에 먹으면 정말 좋은 음식인 거 같아요.”

“맛있게 드셔 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애슐리 씨 입맛에 맞지 않을까 조금 걱정 했는데…”

그녀의 빈 그릇을 보니 내 걱정이 쓸모없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히히…존 씨가 만드신 음식은 다 맛있어요.”

살짝 웃으며 날 칭찬해 주는 애슐리 씨.

그녀의 상냥함에 나는 미소로 답했다.

* * *

소파에 앉은 나와 애슐리 씨.

애슐리 씨는 그녀가 아끼는 담요를 몸에 두른 채 토끼 수인 인형을 꼭 껴안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시간.

나와 애슐리 씨가 처음 만났을 때도 영화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갔기에 영화 감상은 우리에게 있어서 뜻 깊은 여가 활동이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앉은 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담요를 덮고 계시네요.”

“영화를 볼 때 몸이 따듯하면 집중이 더 잘되는 거 같아서요.”

꼼지락거리는 애슐리 씨의 손가락.

오늘 사 온 토끼 수인 인형이 정말 마음에 드셨는지 토끼 수인을 안고 있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

나는 그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사랑스러워요. 애슐리 씨.”

“히히…”

내 볼에서 입을 맞춰 주는 애슐리 씨.

그리고 그녀는 내게 오늘의 영화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 거예요?”

“아직 크리스마스가 멀었지만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는 영화가 있거든요.”

“그런 게 있어요?”

고개를 갸웃하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이런 명절에 영화를 틀어 주곤 했어요.”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가 휴일인가요?”

“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휴일이예요.”

내가 알기로는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라고 들었다.

공휴일인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 싱가포르, 미얀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뿐.

원래 홍콩과 마카오도 챙겼는데…중국령에 완전히 편입된 이후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집에 모여서 티비에서 틀어 주는 영화를 같이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존 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영화군요?”

“맞아요.”

내가 오늘 준비한 영화.

그건 다름 아닌 홈 얼론이었다.

다자녀 가구의 자녀, 케빈.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난 부모님 대신 집에 홀로 남겨진 케빈이 도둑들로 부터 집을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유명한 영화.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전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케빈에 대해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들을 정도였다.

“예전에 본 거 같은데…확실하지 않네요.”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니까 한 번 더 보는 건 어때요?”

“좋아요!”

내 품에 안긴 애슐리 씨.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언제 봐도 재밌는 홈 얼론.

크리스마스에는 이런 영화를 보는 게 내 취미 중 하나였었다.

어린 시절에 봤었을 때도 엄청난 충격을 준 홈 얼론.

정말 잘 사는 케빈의 집을 보며 나도 나중에 저런 집에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마침 그때가 반지하에 살 무렵.

그래서 그런지 케빈의 집이 더 부럽기까지 했다.

거기다…케빈이 집 안을 난장판치며 도둑들을 괴롭힐 때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감동과 재미가 있는 영화.

그래서 그런지 지금 봐도 정말 재밌는 영화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1 편과 2 편.

이 이후로는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케이블 티비를 볼 수 있게 되어 3 편과 4 편, 그러니까 후속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두 영화를 봤었는데…안타깝게도 내 마음속 홈 얼론은 1 편과 2 편이 전부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애슐리 씨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가장 기분 좋은 시간.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영화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케빈과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순간.

케빈을 괴롭혔던 형이 결국 케빈을 인정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장면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영화가 끝나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씀하셨다.

“존 씨의 말처럼 다시 봐도 정말 재밌는 영화인 거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서 좋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를 보기 위해 불을 꺼둔 상태.

그래서 티비 화면만 빛나고 있었던 우리 집에 전구를 단 트리까지 반짝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매년 영화 제목처럼 나홀로 집에 있었던 나.

그런 내가 애슐리 씨라는 사랑스러운 파트너를 만나 이제 홀로 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내 볼을 살짝 쓰다듬어 주셨다.

“왠지 존 씨가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인데요?”

“들켰어요?”

“네, 완전히 들켰어요.”

장난스러운 애슐리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바로 표정을 고쳤다.

“이 표정은 어때요?”

“음…행복하다는 표정 같아요.”

“맞아요.”

정말 행복하다는 감정.

이 감정이 이런 느낌이구나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애슐리 씨.

그녀는 살짝 담요를 풀어 나를 덮어 주었다.

“이 영화 2 편까지 있죠?”

“맞아요. 물론 후속편이 더 있지만 오늘 준비한 건 2 편까지예요.”

“그럼…2 편을 바로 보기 전에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예요. 히히…”

살짝 미소를 짓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지만…

이미 애슐리 씨가 설치해 둔 함정에 꼼짝없이 당한 상태였다.

그녀와 함께 덮고 있는 담요.

그 안은 정말 사랑스러운 토끼가 한 마리 있었기 때문에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목을 살짝 감싸는 애슐리 씨.

그녀는 그대로 날 잡아당겼다.

입술을 타고 느껴지는 그녀의 따스한 체온.

아무래도 나와 애슐리 씨가 홈 얼론 2 편을 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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