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할로윈 (5)
* * *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나.
토끼 코스츔을 입은 올리비아와 좀비 코스츔을 입은 아이라만을 지나…
나는 가장 먼저 오랜만에 카페를 찾아준 라피 씨와 타나야 씨를 향해 다가 갔다.
긴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신 두 분.
나는 두 분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싶어 다가 갔다.
귀여운 유령 신부 코스츔을 입은 타나야 씨.
그 옆에는 유령 신랑의 코스츔을 입은 라피 씨가 있었다.
내가 다가오자 미소를 짓는 라피 씨.
그는 바로 내 손을 잡으며 악수를 하셨다.
“올리비아 파티 이후로 정말 재밌는 파티네요.”
“결혼 이후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니예요.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나저나 신혼여행은 어떠셨나요?”
“완전 끝내 줬죠.”
그때를 기억하듯 미소를 짓는 라피 씨.
얼마나 좋으셨으면 아직도 그리워하는 눈치셨다.
“저도 그렇고 제 아내도 엄청 좋아했어요.”
“이제 아브라이카 부인이라 불러야 할까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타나야 씨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으셨다.
“제가 라피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의 성까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예요.”
“너무 한 거 아니야?”
장난스럽게 반응하는 라피 씨.
그의 모습에 타나야 씨는 미소를 지으셨다.
“장난이야. 그치만 아브라이카는 흔한 성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
보통 성이 없는 이 종족 분들.
그러니까 성이 딱히 필요 없던 분들이었기에 이분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이름을 성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밴쿠버에서 살면서 얻은 영어 이름에 자기 원래 살던 지역의 지역명을 성으로 붙이는 이름 방식.
그렇다 보니 라피 씨는 아브라이카라는 지역에서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브라이카는 어떤 곳인가요?”
“사실 별뜻은 없어요. 조인족의 언어로 우리들의 땅이라는 뜻이거든요. 제 눈에는 그냥 평범한 슾지였어요.”
“아아…”
그냥 우리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이카.
나는 특정 지역명이 따로 있는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다.
“조인족 답게 밴쿠버 오기 전에는 주거지를 자주 옮겼거든요. 그래서 가는 곳마다 모두 아브라이카 였어요.”
어떻게 보면 제임스와 같은 느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타나야 씨의 성이었던 트랑트리도…”
“그냥 이끼가 낀 나무라는 뜻이예요. 보통 그린 고블린들은 늪지나 그 근처에 살았거든요.”
“아아…”
알면 알 수록 신기한 세계.
내가 그 세계를 가 본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간 멕시코 칸쿤은 제 고향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라피 씨의 말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머쓱하게 웃는 라피 씨.
그는 말을 정정하고 다시 말을 건네셨다.
“정확하게 7 번째 아브라이카 같은 느낌이었죠. 야자수와 따듯한 바다. 정말 이상적인 곳이었어요.”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나요?”
“음…북미 만큼은 이 종족 분들이 많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는 게 조금 불편했어요.”
“그렇군요.”
아메리카 대륙에 퍼진 이 종족 분들.
하지만 포탈의 근원지인 북미 만큼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낯선 이 종족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맨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응해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타냐가 그렇게 수영을 잘하는지 몰랐어요.”
“릭!”
서로의 애칭을 부르는 귀여운 부부.
나는 이 이야기가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타냐가 수영을 얼마나 잘하던지 저는 날아서 그녀를 쫓아야만 했죠.”
“과장인 거 아시죠?”
“난 진실 만을 말해.”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라피 씨.
나는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은 정말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감사해요. 그리고 애슐리 씨와 나중에 결혼하면 꼭 칸쿤에 가보세요. 정말 좋은 곳이더라구요.”
“가야 할 곳이 많으니 어딜 가야 하나 고민이 많네요. 하하.”
그렇게 타나야 씨 그리고 라피 씨와 대화를 끝낸 상태.
나는 그대로 옆자리에 있는 밴 씨와 마르타 씨에게 다가 갔다.
“파티는 어떠세요?”
“정말 좋아요.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붉은 용이신 밴 씨.
인간의 모습으로는 빅토리아 고등학교의 수학 선생님이셨다.
그의 아내인 마르타 씨와 함께 오신 밴 씨.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메롯 씨는 어디에 있나요?”
“주변을 돌고 있을 거예요.”
“아까 호박 주스를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아 저기에 있네요.”
손가락으로 호박 주스 디스펜서 근처에 있는 메롯 씨를 가리키는 밴 씨.
나는 그의 도움으로 귀여운 코스츔을 입은 메롯 씨를 찾아볼 수 있었다.
망토와 고깔모자.
전통적인 마녀 복장을 한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사랑스럽죠?”
“완전 동의해요.”
내 답변에 미소를 짓는 마르타 씨.
그녀 역시 마녀 코스츔을 입고 계셨다.
반면, 박사 코스츔을 입은 밴 씨.
그런 그가 마녀 코스츔인 마르타 씨의 어깨에 손을 올리니 조금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메롯 씨는 요즘 괜찮은가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하지만 메간 님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 거 같아요.”
“아직도 많이 동경하나 보네요.”
“네, 붉은 용 수장만 입을 수 있는 옷을 따라 입고 싶어 하더라구요.”
지금 메간 씨가 입고 있는 독특한 옷.
그 옷을 입고 싶어 하는 메롯 씨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을 따라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죠.”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붉은 용 내에서는 혹시 제 딸을 안 좋게 볼까 봐 걱정이예요.”
그들만의 규율.
나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후 이어진 간단한 대화들.
그들과 오랜만에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런…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밴 씨의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말.
나는 그 말에 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끝나가는 분위기의 파티.
일단 술과 음료가 바닥나고 날이 너무 어둡다 보니 하나둘 씩 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셨다.
“조금만 더 즐기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어요.”
자녀인 메롯 씨와 함께 오신 밴 씨와 마르타 씨.
그렇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노는 것을 자제하셨다.
“다음에는 저랑 마르타가 애슐리 씨와 존 씨를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그때 지금 못한 이야기들을 더 나누기로 해요.”
그렇게 후일을 기약하고 이야기를 끝낸 나와 밴 씨 그리고 마르타 씨.
이제 슬슬 애슐리 씨가 걱정이 돼서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고주망태가 된 세 명의 여성 분.
애슐리 씨, 메간 씨 그리고 그레이스 씨.
세 분이 술에 취해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나는 이들을 깨울 수가 없었다.
파티가 다 끝나고 모두가 돌아갈 때까지 술에서 깨지 못한 세 명의 여인들.
나는 그녀들을 위해 담요를 덮어 주고 파티 뒷정리를 시작했다.
나를 도와 준 제임스, 베일리 씨, 헤일리 씨 그리고 오로트 씨.
오로토 씨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청소 시간이 두 배로 더 늘어났을 수도 있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헤일리 씨, 베일리 씨, 오로트 씨 그리고 제임스.”
“아니예요. 이렇게 파티 초대를 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베일리 씨의 감사한 말씀.
나는 그녀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메간 님이 너무 취하셔서 걱정이네요.”
오로토 씨의 말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께요.”
그렇게 카페를 떠나려는 헤일리 씨와 베일리 씨 그리고 제임스.
헤일리 씨의 집 방향과 베일리 씨의 집 방향이 같아 같이 돌아간다고 하셨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손을 흔들며 떠나간 세 사람들.
나는 이제 오로트 씨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럼 메간 씨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
메간 씨와 비슷하지만 노출도가 매우 낮은 코스츔을 입고 계씬 오로트 씨.
그녀는 메간 씨를 돕는, 붉은 용의 부수장이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메간 씨를 부탁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로트 씨.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오늘 고생 좀 하셔야겠어요. 후후.”
“무슨 말씀이신지…”
“메간 씨가 입은 코스츔이 뭔지 알고 계시죠?”
“네, 붉은 용의 수장이 입는 옷이라 들었는데…”
“그런데 보통 입는 옷차림은 이런 느낌이에요.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게 정규 복식이죠.”
“그럼 메간 씨가 입으신 건…”
“보통 드래곤들은 결혼하지 않지만…자신이 구애를 할 사람이 생기면 저런 옷을 입곤 해요. 아 물론 남녀 복식이 달라요.”
“아…”
그때 문득 든 메간 씨의 말씀.
기대하라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했다.
오로트 씨가 입은 옷보다 노출도가 높은 이유.
나는 그 이유를 깨닫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그럼…”
“오늘은 저 혼자 돌아가야겠어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계신 오로트 씨.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짓궂은 장난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카페를 떠나신 오로트 씨.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세 분의 여성 분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일단 집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
나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한 분 씩 업어서 우리 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옮길 때마다 문을 잠그고 하는 게 번거로웠지만…
세 분다 술이 너무 취했으니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게 진땀 흘리며 겨우 세 분을 우리 집에 옮긴 상태.
일단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는 예전 올리비아의 방에 옮겨 두었고…
애슐리 씨는 우리 방 침대에 눕혔다.
술에 취해 헤실헤실 미소를 짓고 있는 애슐리 씨.
무방비한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거실에서 자야 될 거 같은 느낌.
이부자리를 미리 거실로 옮겨 두고 잘 준비했다.
오늘은 금요일.
오늘부터 주말까지 내내 보름달이 뜨는 특이한 날이었다.
한동안 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구름 한 점이 없는 하늘.
그 하늘 사이로 환한 보름달의 빛이 비추니 신기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달빛에 취해 한동안 멍하니 창문을 바라본 상태.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확인한 뒤 잘 준비했다.
12 시 언저리.
내일 아침에 숙취로 고생할 세 분을 위해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자려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눈빛.
나는 나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았는데…
그쪽에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애슐리 씨가 있었다.
토끼 수인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그녀.
그녀의 옷이 보름달의 달빛을 받자…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