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대화 (5)
* * *
금요일.
늘 그렇듯 오늘은 여유로운 날이었다.
아침에 찾아온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방문했는데…
헤일리 씨를 보고는 잠시 그녀의 안색을 살피더니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좋은 아침이구나 존, 그리고 애슐리.”
“안녕하세요. 메간 씨.”
“헤일리는 왜 저런 게냐?”
“그게…하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
지금 헤일리 씨는 살짝 흥분한 상태로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평소에는 차분한 느낌의 헤일리 씨.
하지만 지금은 마치 술을 한 잔 한 것처럼 얼굴에 홍조를 피운 채 영업 준비하고 계셨다.
뒤늦게 메간 씨를 발견한 그녀.
헤일리 씨는 메간 씨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메간 씨! 좋은 아침이예요.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어…음…좋…좋구나.”
떨떠름한 메간 씨의 반응.
그게 헤일리 씨가 싫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활기찬 헤일리 씨를 보며 메간 씨가 본능적으로 부담감을 느끼시는 모양이었다.
“저도 정말 좋아요. 온 세상이 밝게 느껴지거든요.”
여기에 헤실헤실 웃기까지 하는 그녀.
나는 솔직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헤일리 씨 괜찮으세요?”
애슐리 씨의 조심스러운 질문.
그 질문에 헤일리 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정말 좋아요.”
“하하…”
어제 그레이스 씨에게 끌려가신 헤일리 씨.
그 이후는…아무래도 잘 알 것만 같았다.
서큐버스인 그녀.
이 세계 온 뒤로 금욕의 삶을 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어제의 일로 풀리게 되다 보니 그녀는 흥분한 느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헤일리 씨를 보며 코를 살짝 킁킁 하는 메간 씨.
레드 드래곤인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과연 그렇군.”
“네?”
“그레이스의 체취가 느껴져서 말이다.”
“아…”
바로 눈치를 채신 메간 씨.
그녀도 그레이스 씨의 못된 손(?)의 희생양 중 한 명이었기에 바로 눈치채셨다.
남녀 가리지 않는 그레이스 씨.
드래곤에 이어 서큐버스까지 함락시키는 엘프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레이스는 정말 가리지 않는구나.”
메간 씨는 몸을 살짝 떨며 그레이스 씨의 무서움을 몸으로 표현하셨다.
그 모습에 덤덤히 미소를 짓는 애슐리 씨.
그녀도 그레이스 씨의 손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덤덤한 것을 보면…
사실 애슐리 씨가 가장 대단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그레이스 씨는 가리지 않으시더라구요. 헤헤…그나저나 오늘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자 애슐리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메간 씨.
그녀는 카페를 방문한 목적을 상기하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잠을 깰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면 좋겠구나.”
“룽고로 내려 드릴까요?”
다른 에스프레소 보다 길게 내린다는 의미의 룽고.
보통의 에스프레소 보다 강렬한 맛이 덜어져 마시기 편안한 음료였다.
“좋구나. 콜롬비아 산 원두로 해 줄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고산지대 원두 중 하나인 콜롬비아 산 수프리모가 있어 바로 원두를 갈아 애슐리 씨에게 넘겼다.
바로 추출할 준비하는 애슐리 씨.
카페에 완전히 적응해 능숙하게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에서 전문가의 모습이 살짝살짝 엿보였다.
아침을 깨우는 상쾌한 커피 냄새.
이 냄새가 끝날 때쯤 메간 씨 앞에 룽고와 작은 물잔 하나가 같이 나왔다.
“에스프레소 룽고 나왔습니다.”
“고맙구나. 애슐리.”
그리고 바로 한 모금 하시는 메간 씨.
그녀는 커피 향이 마음에 드시는 지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아침에는 애슐리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지.”
“과찬이세요. 헤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애슐리 씨와 메간 씨.
나는 이 틈에 아침 영업 준비를 끝 마치려 했다.
내가 하는 주된 일은 재고 정리.
오늘 아침에 쓸 물건들이 충분한지 확인하고는 체크 리스트를 확인했다.
살짝 부족한 자메이카 산 원두.
우리 카페에 자주 오는 제임스나 타나야 씨가 선호하는 원두 품종이었기에 이걸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일 마크 씨의 집에 방문할 예정이었기에 마크 씨에게는 죄송하지만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두는 이걸로 됐고…”
부차적인 유제품이나 다른 건 모두 괜찮은 상태.
최근에 제임스가 자주 찾아와서 원두가 조금 부족할 뿐이지 나머지는 모두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어제 사용했던 커피 찌꺼기를 잘 모아 버리는 일.
원래는 마감 칠 때 버리지만 어제는 손님이 적어 널널 했기에 그만큼 사용한 커피 찌꺼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재료 준비하면서 모아둔 쓰레기와 함께 버리게 되었다.
“자, 준비는 다 끝났네.”
오늘 하루 영업할 준비는 모두 끝난 셈.
나는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영업을 할 준비를 끝마쳤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헤일리 씨.”
아침 때와 다르게 많이 침착(?)해진 헤일리 씨.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붉은 홍조가 많이 사라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꽤 괜찮았죠?”
애슐리 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헤일리 씨.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헤헤…아침에는 죄송했어요.”
“괜찮아요. 이해해요.”
오랜 금욕 생활.
그게 한 번에 풀렸으니…이해할 수 있었다.
“두 분께 말씀드리기 조금 부끄럽지만…어제…헤헤…많이 좋았거든요.”
“그레이스 씨가 잘해주셨나요?”
애슐리 씨의 은근한 질문.
그 질문에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못 들은 척했다.
여자끼리의 대화.
그 대화에서 굳이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었다.
“네, 정말 능숙하시더라구요. 저보다 더 서큐버스 같으셨어요.”
노골적인 묘사는 없지만,
그레이스 씨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기에 헤일리 씨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향하는 집 앞 로컬마켓.
오늘 헤일리 씨를 대접할 예정이었기에 이참에 같이 장을 볼 생각이었다.
“헤일리 씨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내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헤일리 씨.
그녀는 덤덤히 내 질문에 대답하셨다.
“아무래도 보통은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워서요…사실 그때 초대를 받았을 때 먹었던 음식이 가장 음식 다운 음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하하…”
대학원생의 고달픈 삶.
그녀의 경우 홀로 밴쿠버에 떨어졌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 스스로 모든 걸 준비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붙어 버린 검소한 식생활.
그래서 가성비가 좋은 컵라면이나 이런 것으로 해결하고 계셨다.
“그러면 오늘은 닭고기 요리 어떠세요?”
“좋아요.”
마침 전단지 세일 품목에 들어가 있는 닭고기.
커다란 칠면조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크기가 있어 보이는 닭을 팔고 있어 이걸로 요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추가로 메쉬드 포테이토와 허니 갈릭 캐롯을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장을 볼까요?”
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가자 따라 들어오는 애슐리 씨와 헤일리 씨.
두 분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오늘 저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오늘은 내가 음식을 만들 예정.
목요일 날 있었던 아빠 수업 때문에 그날에 애슐리 씨가 저녁을 담당하셨으니 금요일인 오늘은 내가 담당할 차례였다.
“아, 비트도 세일하네요.”
빨간색 색상이 매혹적인 비트.
보통 샐러드로 사용하지만 이걸 이용해 퓌레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플레이팅에 사용되는 퓌레.
감자 퓌레나 당근 퓌레도 사용되지만 색상 면에서는 비트로 만든 퓌레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존 씨는 정말 요리를 잘하시는 거 같아요.”
“자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저런 취미가 늘어서요…하하…”
더군다나 요새 인터넷이나 티비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요리 테크닉들.
그걸 따라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기에 애슐리 씨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 저녁 헤일리 씨와 저녁 먹을 것으로 준비한 재료들.
한국 기준으로는 대략 12 호 혹은 13 호 쯤 되는 큰 닭 하나와 당근, 감자 그리고 비트를 준비했다.
여기에 스타터 혹은 에피타이저로 먹기 좋은 이탈리아산 아사아고 치즈가 세일 해 이것도 준비했다.
촉촉한 맛이 좋아 그냥 먹기에도 좋은 치즈.
내가 요리하는 동안 기다릴 애슐리 씨와 헤일리 씨를 위한 배려였다.
장바구니를 들고 도착한 집.
헤일리 씨는 이번에도 신발장을 한 번 보시더니 미소를 지으셨다.
“여전하시네요.”
“헤헤…안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헤일리 씨와 거실로 향한 애슐리 씨.
나는 그대로 주방으로 향해 음식 준비했다.
오늘 할 요리는 로스팅 치킨과 허니 갈릭 캐롯, 비트 퓌레 그리고 매쉬드 포테이토였다.
모두 만들기 쉬운 요리.
가장 먼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로스팅 치킨부터 만들 준비하기 전에 삶아야 하는 채소부터 준비했다.
겉면을 깎은 뒤 삶기만 하면 되는 채소들.
비트의 색이 너무 강하다 보니 감자와 비트는 따로 냄비에 담아 소금을 살짝 뿌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두었다.
이제부터 닭요리할 시간.
일반적인 로스팅이었기에 닭을 한 번 씻어내 남은 핏기를 모두 빼냈다.
찬물에 씻어야 잘 나오는 핏물.
핏물이 있으면 잡내가 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후 물기를 잘 빼낸 뒤 간단한 시즈닝을 시작했다.
소금, 후추, 흑설탕, 파프리카 가루, 파슬리 그리고 오레가노를 뿌렸다.
이 위에 올리브 유를 살짝 발라 타지 않게 한 뒤 오븐용 트레이 위에 기름 종이를 깔고 닭을 올려 두는 것으로 완성.
이대로 오븐 180 도에 30 분간 익히면 완성이었다.
원래라면 요리용 실까지 사용해 다리를 묶어야 더 맛있게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요리용 실이 없어 여기까지 하지는 못했다.
이제부터 다른 요리해야 할 시간.
가장 먼저 베이비 캐롯으로 허니 갈릭 캐롯을 만들 생각이었다.
잘 달궈 진 냄비 위에 버터 두 조각.
이후 꿀 한 스푼과 다진 마늘 한 스푼, 마지막으로 베이비 캐롯을 넣으면 완성이었다.
이대로 당근이 익을 때까지 잘 볶으면 되는 간단한 음식.
소금 후추로 간을 해 둔 뒤 약불에 놔두었다.
다음은 비트 퓌레.
퓌레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비트의 색이 강해 옷에 묻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다 익은 비트를 꺼내 물을 빼고 믹서기에 넣어 두었다.
이후 농도를 위해 생크림을 넣고 이후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었다.
내 개인적으로 밋밋한 퓌레를 살리기 위해 비프 스톡을 넣는데…
여기에 비프 스톡 대신 다시다를 넣어 맛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잘 갈아져 고운 색을 내는 비트 퓌레.
이후 매쉬드 포테이토와 로스트 치킨, 허니 갈릭 캐롯까지 완성 돼서 이제 플레이팅만 하면 끝났다.
널찍한 접시에 비트 퓌레를 조금 짜 낸 뒤 쉐프처럼 숟가락을 사용해 거침없이 선을 만들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있는 플레이팅 같은 느낌.
나는 그 위에 매쉬드 포테이토, 허니 캐롯, 그리고 로스트 치킨의 닭고기 두 점을 올려 마무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
내가 식탁 위에 옮겨 만반의 준비를 다 했음을 알렸다.
식탁에 앉아 치즈와 프로슈토를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애슐리 씨와 헤일리 씨.
내가 준비한 음식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