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92화 (192/292)

〈 192화 〉 대화 (1)

* * *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끝난 아빠 수업.

나는 이 수업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고,

많은 생각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바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종류의 수업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내가 바라는, 내가 어떤 식으로 아이를 훈육하길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

그저 아이가 가지고 싶어서 라는 간단한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 알게 된 느낌이었다.

“오늘 수업 어땠어?”

내게 다가온 웨이.

나는 웃으며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좋았어. 솔직히 이런 대화를 통해서 내 생각이 정리될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거든.”

“하긴 그렇지.”

내 경우에는 답이 정해진 교육받아온 경험이 많았다.

예를 들어 수학이나 이런 것들.

공식을 대입하고 답을 얻는 그런 문제들을 풀면서, 혹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응용해 답을 구하는 것처럼 종점에는 언제나 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공식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정해진 답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이 길에 서 있는 사람들.

사무엘 씨, 줄 리아 씨, 프란츠 씨 그리고 웨이 등.

이런 사람들이 모여 어느 길이 좋은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은지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 길을 뚜렷하게 만드는 게 좋았다.

생산적인 일했다는 생각.

오랜만에 이렇게 무언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너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웨이.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이와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

“모든 아빠들이 원하는 그런 관계지.”

“내 경우에는 무늬만 친구 같은 게 아니라 여자 친구 고민이나 아니면 개인적인 고민등을 들어 주는 진짜 친구 혹은 형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

“가능할까?”

“물론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때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해서 조금 많이 방황했거든.”

“하긴…”

갑작스럽게 바뀐 그의 세상.

원래 영화배우를 꿈꾸던 웨이는 하루아침에 자기 운명이 바뀌었다.

맏이로써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

그는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족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그치만 웨이 자신은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음…”

아직 애슐리 씨와 정식 결혼한 사이는 아닌 상황.

일단 결혼부터 해야겠지만…만약 애슐리 씨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면…

아무래도 아이들의 든든한 지지대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나는 믿음직한 아빠가 되고 싶네.”

“네 성격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빠져나온 싱클레어 센터.

나는 입구에서 웨이와 헤어진 상태로 애슐리 씨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마치 퇴근하는 느낌이네.”

내 입에서 나오는 혼잣말.

마치 한국에 있었을 때 퇴근 후 집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도 자취를 하고 있었던 나.

집에 가면 정적이 흐르는 방이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집에 누군가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빨리 가야겠다.”

고작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상태.

하지만 애슐리 씨가 보고 싶어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가는 도중 문득 본 터키식 디저트 카페.

보통 이 시간에 닫는 카페인데 열려 있는 게 신기해 나도 모르게 다가 갔다.

그러자 막 정리하는 직원분과 눈이 마주친 상황.

골든 혼이라는 카페 이름 답게 터키 분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혹시 문 닫으셨나요?”

날 바라보는 직원분.

흰 머리카락에 주름이 인상적인 노인 분은 날 바라보셨다.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가게 앞에 놔둔 입간판을 가게 안에 넣고는 내게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는 노인 분.

나는 그의 제안에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코에 맴도는 기분 좋은 단 향기.

애슐리 씨가 좋아하는 단 음식들이 많아 보였다.

“지금 남은 건 바클라바와 로쿰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로쿰이면…”

“아 이런…터키쉬 딜라이트 입니다.”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터키쉬 딜라이트.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기억이 있는 옛날 젤리와 같은 식감이 인상적인 터키의 대표적인 디저트였다.

다른 하나는 바클라바.

얇은 페이스트리를 겹겹히 쌓아 올린 디저트.

얇은 페이스트리 위에 녹인 버터를 부으며 겹겹이 쌓는데 여기에 일부 디저트 가게는 녹인 버터와 꿀을 섞는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안에 피스타치오나 각종 견과류가 들어 있어 정말 맛있었다.

“혹시 이건…”

“아, 이건 두블레로 조금 덜 단 바클라바 입니다.”

다른 바클라바 보다 더 많은 호두와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디저트.

나는 그걸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거 한 상자랑, 로쿰…? 터키쉬 딜라이트도 한 상자 주세요.”

둘 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디저트.

그렇다 보니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는 많이 사두고 먹어도 문제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체크 카드로 할게요.”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상태.

보통 이 시간에는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특이하게 열려 있는 터키식 디저트 가게.

그래서 핸드폰 결제 앱으로 결제를 하려 했다.

계산이 끝난 상태.

조금 비싼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걸 받고 기뻐할 애슐리 씨를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그렇게 포장을 준비하는 노인 분.

나는 그를 바라보며 정리가 끝난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아 기다렸다.

그때 문득 든 생각.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통 이 시간에 닫지 않으세요?”

“단골이신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지나가다가 종종 봐서요.”

“아, 그렇군요.”

덤덤히 대꾸하는 노인 분.

그의 표정은 평화로우나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슈가 파우더를 뿌리며 바클라바를 준비하는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오늘은…중요한 날이여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날이라면…”

“손님께 말씀드리기 조금 그치만…오늘이 제 아들놈의 기일이거든요.”

“아…”

덤덤히 말씀하시는 노인 분.

노인 분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드님은…”

“예전에 여기에 오기 전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안타깝게도 사고를 당했었죠.”

그때 눈에 들어온 선반.

나는 유리 선반 위에 올려진 그의 가족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붓한 가족.

모습은 달라도 전 세계의 가족의 모습은 비슷했다.

따님 두 분 그리고 아내 분 마지막으로 아들 분.

그 가운데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 분은 지금 보다 더 젊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아드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들도 기뻐해 줄 겁니다. 오늘 정말 많은 손님들이 제 아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거든요.”

“그렇군요.”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이 흐르는 사이 내가 주문한 디저트가 모두 준비가 됐는지 그는 투박한 손에 들린 화려한 디저트 상자를 내게 건넸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인 분.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제 아들도 좋아하던 바클라바 입니다. 맛있게 드셔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폐점 준비하는 노인 분.

그는 물끄러미 자기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더니 천천히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감정.

나는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잠시 많은 생각했다.

절제된 슬픔.

그 속에서 이 노인 분은 천천히 바닥을 쓸고, 쓸어내리며 무언가를 견디고 계셨다.

* * *

똑똑.

내 손에 들린 열쇠.

하지만 나는 굳이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집 문에 살짝 노크했다.

그러자 들리는 발걸음 소리.

나는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에 미소가 걸렸다.

문이 열리자 바로 내게 안겨 오는 사랑스러운 그녀.

애슐리 씨가 내 품에 달려들었다.

“어서 와요. 존 씨.”

“혹시 제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나요?”

내 장난에 미소를 짓는 애슐리 씨.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날 바라보았다.

“이렇게 떨어진 적은 많지 않으니까요.”

“하긴 그렇죠.”

퇴근 후 보통 항상 붙어 있었던 나와 애슐리 씨.

애슐리 씨를 만난 뒤로 퇴근 후의 시각은 언제나 애슐리 씨와 함께였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퇴근 후 잠시 떨어져 있게 된 상황.

그래서 그런지 애슐리 씨는 마치 내게 멀리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것처럼 격하게 반겨 주셨다.

“빨리 들어와요. 저녁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으니까요.”

내 손을 잡아끄는 애슐리 씨.

나는 못 말린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먼저 드시고 계시라고 말했었던 거 같은데요?”

“그래도 같이 먹는 게 좋잖아요.”

환하게 미소 짓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의 손에 끌려 들어간 집.

어느새 저녁을 준비하셨는지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풍겼다.

“오늘 저녁 당번은 저였는데…”

“헤헤…내일 하시면 되죠.”

“언제나 고마워요.”

그러자 왼쪽 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애슐리 씨.

나는 미소를 짓고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감사함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명심할게요.”

“그런데…”

갑자기 코를 킁킁대는 애슐리 씨.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셨다.

“어디서 단 냄새가 나는데…”

“헤헤…”

내가 무언가 숨기는 듯 과장된 행동을 보이자 바로 눈치챈 그녀.

애슐리 씨는 내 주변을 빙빙 돌며 내가 숨긴 것에 대한 정체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

나도 이에 질 수 없으니 그녀에 맞추어 같이 빙빙 돌았다.

저녁의 갑작스러운 술래잡기.

하지만 인간인 내가 애슐리 씨를 이길 수 없었기에 나는 항복하는 자세로 애슐리 씨에게 내가 숨긴 것의 정체를 보였다.

“와아! 이게 뭐예요?”

화려한 장식으로 포장된 바클라바와 로쿰.

상자 밖으로도 단 냄새가 진동해서 그런지 애슐리 씨는 벌써 기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오늘 운이 좋게 디저트 가게가 열려 있더라구요. 애슐리 씨가 생각나서 사 왔어요.”

“정말요?”

귀를 쫑긋 세우며 기뻐하는 그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말 잘 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덜 단 바클라바를 사오긴 했는데 보통 터키 디저트가 정말 달거든요…”

혀가 녹을 정도로 단맛의 디저트들.

그래서 그런지 터키식 커피는 정말 쓴맛을 자랑했다.

쓴맛과 단맛의 조화를 오랜 시간 즐긴 터키 사람들.

그렇기에 지금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디저트를 먹으면 저녁을 맛있게 먹기 어려웠다.

“알겠어요. 식사 후 먹자는 말이죠?”

“맞아요.”

“히히.”

그렇게 애슐리 씨와 오붓한 저녁 식사.

나는 그녀와 식사하며 오늘 아빠 수업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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