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교수 (1)
* * *
복잡한 일이 있었던 월요일.
나는 훈장 일로 부터 완전히 신경을 끄기로 했다.
이미 결정된 일.
생각을 더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현재에 더 집중하는 게 맞다는 생각.
나는 그런 생각으로 밤에 애슐리 씨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날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사랑스러운 그녀.
그녀의 애정 어린 말과 손길 그리고 포옹 만으로 내 안의 혼란스러움을 모두 씻어 낼 수 있었다.
만약 애슐리 씨가 없었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
만약 내가 혼자 였다면 이런 이야기에 한동안 신경 쓰며 내 몸을 괴롭혔을 게 분명했다.
혼자 자취했을 때의 버릇 중 하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머리에 남아 있을 경우 나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다 했다.
수영, 등산, 낚시 등등.
그런 것들을 하며 나쁜 생각을 떼어놓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 애슐리 씨가 있었고,
그녀는 정말 다정다감한 말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치유해 주셨다.
내 삶의 이유.
나는 그런 애슐리 씨를 바라보며 잠든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애슐리 씨.
그런 애슐리 씨의 피부는 따듯하다못해 따끈따끈할 정도였다.
그래서 내 입술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온기.
나는 그 온기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우응…”
결국, 내 뒤척임에 깬 애슐리 씨.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살짝 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날 발견한 그녀.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이예요. 존 씨.”
“좋은 아침이예요. 애슐리 씨.”
오늘은 내가 먼저 할짝을 하고 싶은 마음.
나는 그래서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오늘 아침의 첫 인사를 건넸다.
“헤헤…”
그러자 손을 뻗어 내 목을 감싼 애슐리 씨.
그녀는 내 볼에 입을 맞춘 뒤 내게도 할짝을 해주셨다.
“기분 좋은 날이죠?”
“네, 맞아요. 날씨도 좋고 햇빛도 화사한 게 좋은 하루가 될 거 같아요.”
“히히…”
이불을 살짝 올리는 애슐리 씨.
그녀는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이불로 그녀 만의 토끼굴을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마치 내게 들어오라는 듯이 손만 내민 상태.
나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그녀의 함정에 빠지기로 했다.
애슐리 씨가 만든 따듯한 토끼굴.
그 안에는 정말 사랑스러운 토끼인 애슐리 씨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제의 관계 이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애슐리 씨.
그런 그녀는 내 손을 당겨 자기 품으로 이끌었다.
내 살에 닿은 애슐리 씨의 피부.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행동에 어제의 여운을 더 느끼기로 했다.
* * *
“안녕하세요!”
크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헤일리 씨.
그녀는 카페 문을 열고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자 살짝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미 헤일리 씨는 눈치를 채고 코를 킁킁 대셨다.
“흐음…아침부터 불타오르셨군요?”
장난스러운 헤일리 씨의 말씀.
나는 그 말에 역시 서큐버스인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하하…하.”
“헤헤…헤.”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나와 애슐리 씨.
둘 다 얼굴이 빨개져 어색한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연인 없는 저는 끼어들기 어렵겠네요.”
이어지는 헤일리 씨의 장난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헤일리 씨라면 인기가 많으실 거 같은데요?”
“대부분 좋지 못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런 사람들은 사절이예요.”
단호하게 대답하는 헤일리 씨.
아무래도 서큐버스이시다 보니 접근하는 남자들의 의도가 많이 불순하다는 걸 바로 눈치채시고 있었다.
“저는 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저와 대화해주는 사람을 원하지 그저 섹스하기 위해 아양 떠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아요.”
“그렇군요.”
“물론 존 씨 같은 분이 그러신다면…생각이 바뀔 것 같지만요.”
“장난은 그만해 주세요. 헤일리 씨…”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유니폼을 갈아입기 위해 직원실로 향하는 헤일리 씨.
나는 사라지는 그녀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손님으로 오셨을 때는 이런 장난을 잘 치지 않으셨는데…
파트 타임 직원으로 같은 공간에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보니 이런 장난을 종종 치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울리는 카페 문의 종.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메간 씨와 바네사 씨가 찾아오셨다.
오늘은 직장 동료이신 바네사 씨와 함께 오신 메간 씨.
나는 오랜만에 아침에 찾아와 주신 바네사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바네사 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존 씨 그리고 애슐리 씨.”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바네사 씨.”
환한 미소로 우리 인사를 받아 주시는 바네사 씨.
그 옆으로 메간 씨가 자신에게도 인사를 해 달라는 듯 손을 흔드셨다.
“어서 오세요. 메간 씨.”
“좋은 아침이구나 존 그리고 애슐리.”
“오늘은 유달리 날씨도 좋고 기분 좋은 날인 거 같아요.”
애슐리 씨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녀도 아침 출근길에 하늘을 보셨는지 애슐리 씨의 말에 크게 공감하셨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단풍도 아름답게 진 게 정말 아름답더구나.”
초가을에서 가을이 된 밴쿠버.
이 이후로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는 레인쿠버가 예정돼어 있으니 지금의 아름다움을 잔뜩 즐겨야 했다.
단풍의 나라 캐나다.
국기에도 단풍이 그러져 있을 정도로 캐나다의 메이플 트리는 정말 유명했다.
메이플 시럽이 이 나라의 특산품일 정도로 곳곳에 심겨 있는 메이플 트리들.
그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풍경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였다.
“나중에 단풍 구경 갈까요?”
“오, 좋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적당한 장소가 어디에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는 장소.
그런데 갑자기 바네사 씨가 말을 건넸다.
“저번에 갔었던 캠핑장 정말 좋았는데 그곳에 다시 가면 어떨까요?”
“가을 캠핑이라…정말 아름답겠구나.”
“좋은 생각이예요!”
귀를 쫑긋 세우며 기뻐하는 애슐리 씨.
나는 세 명의 여인들과 함께 갔었던 보리스의 캠핑장을 기억해 냈다.
당시 여름에 갔었던 보리스의 캠핑장.
인디언 암 근처에 있는 캠핑장이다 보니 자연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름에도 아름다웠던 그 장소.
가을에 가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가 한 번 보리스에게 전화해 볼게요.”
“고맙구나.”
“만약 되면 알려드릴게요. 혹시 일정 언제가 괜찮으세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메간 씨.
그녀와 함께 바네사 씨도 핸드폰을 보면서 일정을 확인하셨다.
“이번 주는 새 제품 프레젠테이션 준비가 있어서 어려울 거 같아요.”
“나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라 다음 주 주말에 가능할 거 같구나.”
“그럼 다음 주에 자리가 되는지 한 번 물어볼게요.”
“고맙구나.”
이번 주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
다음 주에는 절정에 다다르는 시간이었기에 캠핑장에 자리가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빨리 보리스에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온 헤일리 씨.
나는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애슐리 씨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잠시 보리스에게 전화 좀 하고 올게요. 헤일리 씨랑 같이 잠시 카운터 좀 맡아 주실래요?”
“네, 알겠어요.”
애슐리 씨와 헤일리 씨에게 잠시 카페를 맡기고 밖으로 나온 상태.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보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일찍 캠핑장을 여는 보리스.
그래서 우리 카페를 여는 시간에 전화해도 보리스가 너무 바쁘지 않는 이상 전화를 받았다.
몇 번 울리는 전화벨.
이후 바로 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보리스. 잘 지내?”
물론이지. 잘 지내고 있어. 무슨 일이야.?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를 가진 보리스.
하지만 지금 무슨 일하고 있는지 바쁜 듯한목소리로 느껴졌다.
“혹시 지금 바빠?”
아, 지금 낙엽 치우느라. 낙엽이 많이 떨어져서 길이 가려졌거든.
캠핑장을 운영하느라 고충이 많은 보리스.
나는 미안한목소리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나중에 한가할 때 전화할까?”
아냐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했어?
“아, 다음 주에 캠핑장에 가려고 하는데 자리가 있을까 해서.”
다음 주라…음…나중에 예약표 보고 연락 줘도 될까? 지금은 내가 밖이라서.
“물론이지. 바쁜데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
뭘 우리 사이에. 아 참 그리고 어제 웨이한테서 연락 왔더라. 너 아빠 수업 듣는다며?
절친한 사이인 우리 셋.
그렇다 보니 웨이가 벌써 보리스에게 말을 한 모양이었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진 거야?”
웨이가 벌써 너랑 애슐리 씨 결혼 선물 준비해야겠다고 말하더라.
장난스럽게 말하는 보리스.
나는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 멀었어.”
아무튼 이제 너도 결혼하면 우리 세 명 다 유부남이 되는 거니까 나름 뜻 깊은 일이잖아?
“설마 아직도 그거 기억하는 거야?”
그걸 어떻게 잊겠어?
킬킬대며 웃음소리를 내는 보리스.
나는 그 말에 뭐라 말하려 했는데 보리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손님 왔다. 나중에 메시지 보내 놓을게.
“알겠어. 몸조심히 일해.”
그렇게 끊은 전화.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카페로 향하려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손님.
우리 카페 앞을 유심히 보는 큰 키의 트롤 남성분이 서 있었다.
툭 튀어나온 치아.
그리고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
셔츠 위에 받쳐 입은 스웨터.
마지막으로 살짝 바랜 듯한 면바지 까지.
얼굴에 교직에 일한다고 적혀 있는 듯한 남성분이 우리 카페 앞에 서성였다.
“저…”
“아, 실례합니다.”
카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옆으로 비켜 주시는 남성분.
나는 그 모습에 괜찮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찾으…아…!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내 앞치마를 보더니 바로 이해하신 트롤 남성분.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찾으시는 음료가 있으시면 안에서 보시는 걸 추천 드리고 싶어서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트롤 남성분.
그러고는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셨다.
아마 여유 시간을 체크 하시려는 듯한 느낌.
나는 그렇게 손님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건장하신 체격과 대비되는 귀여운 캐릭터 손목 시계.
핑크색 색상의 공주님 캐릭터가 박혀 있는 시계에 나는 눈이 갔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남성분.
남성분은 내 시선이 자기 시계에 머물러 있다는 걸 보고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으셨다.
“하하…제 딸이 선물한 거라 항상 차고 다니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다시 카페 안을 보는 남성분.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정을 하셨는지 미소를 지으셨다.
“괜찮은 아몬드 밀크 베이스의 음료 추천을 해주실수 있나요?”
“안에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나와 트롤 남성분.
나는 이 남성분이 누구인지 짐작도 못한 채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