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85화 (185/292)

〈 185화 〉 폭풍 (3)

* * *

바로 만나자고 하신 아드리안 씨, 아니 멜리사 씨.

그래서 정부 청사 근처, 캐나다의 대표 프렌차이즈인 호튼 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마시는 아이스드 캡.

달달하면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멜리사 씨가 오시길 기다렸다.

“아, 존 씨.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아니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일행이 있으신 멜리사 씨.

그녀의 옆에는 검은색 머리카락의 엘프 여성분이 서 있었다.

묘하게 멜리사 씨…아니 아드리안 씨를 닮은 느낌.

그레이스 씨와 다른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제 딸인 엘리자베스예요.”

“아…그때 말씀하신…”

예전에 아드리안 씨의 보좌관 분과 사귀신다는 여성 분.

보통은 엘프의 모습으로 다닌다는 이야기가 얼핏 기억이 났다.

아드리안 씨, 그러니까 멜리사 씨의 번호가 아닌 다른 번호로 내게 전화가 온 이유.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엘리자베스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살짝 웃으며 인사를 하는 엘리자베스 씨.

그녀가 건넨 손을 맞잡고 손을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존이라고 해요.”

“아버지…아니 어머니한테 자주 들었어요.”

어색하게 웃는 엘리자베스 씨.

지금 아드리안 씨는 멜리사 씨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머니라고 불러야 했다.

“호호…”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웃는 멜리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조금 그러니 자리를 이동할까요?”

“좋아요. 혹시 좋은 곳을 알고 계시나요? 밴쿠버는 아직도 잘 몰라서요.”

“아…보통은 오타와에 계시니까 그럴 만도 하네요.”

캐나다 내 두 명의 총독 중 한 분이신 멜리사 씨.

그렇다 보니 총독 관저가 있는 온타리오 주 오타와에 주로 상주해 계셨다.

이렇게 가끔 일이 있으실 때만 오시는 그녀.

태평양 연안에 있는 도시인 밴쿠버와 수도 오타와의 거리는 비행기로 5 시간,

차로는 1 번 국도를 이용해 44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멜리사 씨와 엘리자베스 씨는 드래곤이기에 이렇게 원할 때 밴쿠버를 오가실수 있었다.

“음…딱 생각나는 곳이 있는데…”

“좋아요. 그곳으로 가요.”

그렇게 나는 모녀를 모시고 정부 청사 근처에 이야기하기 편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대화하기 좋은 곳.

나와 멜리사 씨 그리고 엘리자베스 씨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를 기다리는 사이.

날 지그시 바라보는 멜리사 씨.

나는 궁금증에 바로 그녀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절 보자고 하신 이유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훈장을 받기로 하셨다고 들었어요.”

단도직입적인 멜리사 씨의 말씀.

그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지만…코브스키 씨가 절 설득 하시더라구요.”

“코브스키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존 씨가 코브스키를 만난다면 허락할 거로 생각했어요.”

“혹시 멜리사 씨가 개입하신 일인가요?”

“아뇨, 저는 총독이라 정치에는 개입할 수 없어요.”

예전에는 캐나다 의회 정치에 개입하기도 했었던 총독.

그래서 유명한 사건 중 하나로 총리의 요청에 의해 캐나다 의회를 해산 시킨 적이 있었다.

물론 총리가 총선 기간을 당기기 위해 일부러 한 정치적 행동.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총독의 의회 해산권이 필요했고 그 요청을 받은 총독은 처음으로 캐나다 정치에 개입했다.

보통은 정치와 분리된 게 보통인 상황.

그래서 현재 총독인 멜리사 씨가 개입했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자 자연스럽게 붉어지는 내 얼굴.

나는 미안 함에 멜리사 씨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니예요. 이해해요. 충분히 당황하실 일이라 생각해요.”

다행히 날 이해해 주시는 멜리사 씨.

그녀에게 있어서 무례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아하셨다.

“하지만 제게 도움을 요청하긴 했어요.”

“네?”

“존 씨의 지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존 씨를 설득할 수 있을지 제게 조언을 구하더군요.”

“아…”

“저는 그래서 코브스키에게 존 씨에 대해 대략만 알려 줬을 뿐이예요.”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잠시 머뭇하는 멜리사 씨.

그녀는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나가셨다.

“올바른 사람이니까 올바른 방법으로 대하라고 말했어요.”

“절 너무 띄워 주시는데요…저는 그저 카페 사장일 뿐인데요.”

“하지만 그날에 올바른 행동을 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존 씨였어요.”

“당시 타나야 씨 곁에는 저 뿐이었는 걸요.”

시위대가 몰아닥치는 급박한 상황.

그렇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행동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타나야 씨.

내 지인 중 한 명인 그녀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지인 중 한 명으로서 당신을 올바른 사람이라 생각해요.”

블랙 드래곤의 수장이자 캐나다 총독이신 아드리안 씨.

그런 대단한 분이 날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과 같이 존 씨에게 직접 할 말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만나자고 했어요.”

“무례라뇨 가당치 않은 말씀이세요. 그런데…직접 말씀하실 내용이…”

“곧 언론 쪽에서 발표가 날 거예요.”

“그렇게 빨리 발표가 나오나요?”

당혹스러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

나는 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눈을 깜빡이며 멜리사 씨를 바라보았다.

“오늘 코브스키를 만나 보셔서 아시겠지만…신민당 측은 이걸 이용할 생각이예요. 물론 존 씨에게는 대의를 이야기했지만…공교롭게도 BC 주 주지사 선거가 다가오고 있거든요.”

“아…”

곧 다가오는 BC 주 주지사 선거.

애슐리 씨를 만나기 전에 케인 씨와 잠깐 정치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주 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들.

그 의원에게 투표를 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당이 여당이 되는 시스템.

여당, 그러니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당의 대표가 주지사가 되는 시스템.

그렇기에 신민당이 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었다.

“코브스키가 당 대표는 아니지만 핵심 참모로 활동하는 신민당 주요 인사 중 하나예요.”

“그런 것 같았어요.”

주의원 뱃지를 달고 있었던 코브스키 씨.

그런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당의 중요한 인물일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번 훈장을 통해 BC 주 내 이 종족과 친 이 종족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어려운 정치판.

특히 외국인 신분으로 폭풍의 눈에 휩쓸려 들어갈 줄은 몰랐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번처럼 가급적 언론을 피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자 생각나는 올리버 씨.

나는 조심스럽게 멜리사 씨에게 올리버 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기자 분들을 조심하라고 하셔서 조심했는데…올리버 씨라는 분을 만났거든요.”

그러자 놀란 눈빛을 하시는 멜리사 씨.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셨다.

“설마 뱀파이어인 정치부 기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아시는 분인가요?”

“잘 알고 있죠. 저희 총독부에도 자주 오곤 했으니까요.”

멜리사 씨와 인연이 있는 올리버 씨.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말을 꺼내기 쉬웠다.

“다른 기자 분들은 만나 보지 못했는데…올리버 씨는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올리버는 좋은 기자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행이네요…”

다행히 좋은 사람이라 말씀해 주시는 멜리사 씨.

그러자 살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올리버 씨 외에 다른 기자 분들을 본 적이 없는데…어떤 기자 분들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 주실수 있나요?”

“한 명도 보지 못했나요?”

“네, 올리버 씨만 봤어요.”

그러자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 멜리사 씨.

그러고는 엘리자베스 씨를 바라보았다.

“핸드폰 좀 빌려줄 수 있겠니?”

“올리버 씨에게 하시려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는 멜리사 씨.

그녀는 무언가를 빠르게 타이핑 하시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걸 반복하셨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나는 그래서 묵묵히 멜리사 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을 끝내신 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는 멜리사 씨.

그녀는 핸드폰을 엘리자베스 씨에게 건네고 다시 말을 하시기 시작했다.

“대화 도중에 미안 해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혹시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미안 해요. 확실하지 않아서…이건 나중에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밀려오는 갈증.

다행히 주문한 음료가 테이블에 도착했다.

음료를 마시며 목마름을 해결하자 마음이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음료를 마시기 시작하는 멜리사 씨와 엘리자베스 씨.

이후 여러 이야기를 더 나누는 도중 멜리사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그렇게 테이블에 남은 나와 엘리자베스 씨.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엘리자베스 씨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신가요?”

엘리자베스 씨의 조심스러운 질문.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당혹스러운데 단 음료를 마시니 조금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네요. 저도 당황스러운 일이 닥치면 보통 단 음식을 많이 먹어요. 헤헤…”

맨눈으로 보기에는 내 나이 대로 보이는 엘리자베스 씨.

하지만 그녀도 드래곤이었기에 나이로는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나이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존 씨는 카페를 운영하신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이 카페랑 다르게 조금…이탈리안 바 느낌으로 개방형 카페예요.”

“저희 어머니가 얼마나 자랑을 하시던지…존 씨의 카페는 정말 방문할 때마다 기분 좋은 곳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세요.”

“하하…과찬이세요.”

“그곳에 메간 씨도 단골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그 성깔 나쁜 레드 드래곤도 반하는 카페라…아…! 죄송해요. 이건 메간 씨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는 엘리자베스 씨.

그녀의 친근한 분위기에 나는 조금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이죠.”

“헤헤…고마워요. 나중에 카페에 찾아가도 되나요? 제 남자 친구랑 함께 가보고 싶어요.”

“언제든지 환영이예요.”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나와 엘리자베스 씨.

다시 돌아온 멜리사 씨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 할 거 같네요. 미안 해요. 존 씨. 오늘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니예요. 절 걱정해 주셔서 이 먼 길을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다음에는 제가 존 씨와 애슐리 씨의 카페로 찾아갈게요. 그때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해요.”

“언제든지 환영이예요.”

그렇게 먼저 카페를 나서는 엘리자베스 씨와 멜리사 씨.

나는 모녀가 떠나는 걸 보고는 바로 애슐리 씨가 혼자 있는 카페로 돌아갈 준비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