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주말 영화 (6)
* * *
“걸릴 거 같은데요…”
불안해하는 내 얼굴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래도 좋아요.”
다크서클이 짙게 깔린 나와 반대로 피부가 탱탱해진 애슐리 씨.
그녀가 화장실에서 하는 것도 좋아할 줄은 전혀 몰랐다.
정말 열정적으로 하신 애슐리 씨.
최근에 자주 하지 못해서 그런지 애슐리 씨는 대담하게도 메간 씨의 집 화장실에서 하길 원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콘돔을 챙겨 두었다는 점.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항상 들고 다녔는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내가 콘돔을 꺼내자 아쉬워하는 애슐리 씨.
하지만 애슐리 씨도 피임 기구 없이 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으셨다.
다행히 그렇게 두 번 정도 끝낸 상황.
나는 혹여 냄새라도 날까 걱정이 들었는데 애슐리 씨는 오히려 자기 냄새가 풍긴다고 좋아해 하셨다.
“존 씨는 제꺼니까 괜찮아요.”
당당한 애슐리 씨의 말씀.
나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관에 들어가자 다행히 영화를 시청하고 계신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두 분은 주인공이 죄수로 오해 받은 자기 삼촌이 탈출을 도와주는, 그러니까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장면을 보고 계셨다.
괴수를 타고 하늘을 날아 올라 탈출을 하는 주인공의 대부.
그가 사라지고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다.
영화가 끝나자 불을 키는 메간 씨.
그러고는 태연하게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했구나.”
“…네?”
“드래곤의 후각을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 말거라.”
“도마뱀의 후각은 무슨 그냥 여기서도 애슐리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뭘.”
바로 메간 씨를 구박하는 그레이스 씨.
그레이스 씨는 나와 애슐리 씨를 보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오래 걸린다 생각은 했는데 앙큼한 짓을 하고 왔네.”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걸 보며 두 분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진정하세요. 오늘은…”
“오늘은 보름달이 아니니까 힘들어요.”
단호한 애슐리 씨의 말씀.
그 말에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야, 도마뱀.”
“뭐냐 귀쟁이.”
“맨날 전지전능하다고 자랑하는 마법으로 보름달은 못 뜨게 하냐?”
툴툴대며 괜한 메간 씨에게 시비를 거는 그레이스 씨.
메간 씨는 한숨을 쉬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쩝…아쉽네.”
의자에 앉아서 김빠진 풍선 소리를 입으로 내고 계신 그레이스 씨.
내가 죄를 진 건 아니지만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 뿌듯해하는 애슐리 씨의 표정.
아무리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가 원하더라도 애슐리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기에…
애슐리 씨는 나를 독점했다는 뿌듯함을 그대로 얼굴로 드러내셨다.
부럽다는 표정의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
그레이스 씨는 갑자기 묘수가 생각나셨는지 메간 씨를 바라보셨다.
“오늘 존은 사용 못 하니까 대신 나랑 할래?”
“…뭐?”
크게 당황해하는 메간 씨.
메간 씨는 당황보다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셨다.
“아…아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무슨 말을 하긴. 이걸 하자는 거지.”
그레이스 씨의 왼손과 오른손에 생긴 가위.
그걸로 사이를 비비는 듯한, 적나란 표현을 하니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메간 씨의 표정도 당황한 표정으로 물들어갔다.
“너…너는 여자가 아니냐?”
“맞아. 여자끼리 즐기는 게 뭐. 나름 재미도 있고 별미(?)야.”
그러면서 혀로 입술을 핥는 그레이스 씨.
그걸 본 메간 씨는 몸을 살짝 떠셨다.
“우…우리는 친구이고…”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s) 몰라?”
메간 씨가 당황하는 걸 더 재밌다는 듯 놀리고 계신 그레이스 씨.
그런 그녀는 점점 메간 씨에게 다가 갔다.
“내가 잘해줄게. 그리고 드래곤은 원래 무성이라며?”
“나…나는 여자다. 여자라고…!”
“그래그래.”
그러면서 메간 씨를 어디로 끌고 가는 그레이스 씨.
메간 씨는 처음에 저항을 하셨지만 그레이스 씨의 기술(?)에 의해 제압 당한 채 영화관 밖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영화관에 단둘이 남은 나와 애슐리 씨.
애슐리 씨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셨다.
“저…프렌즈 위드 베네핏이 무슨 뜻이예요?”
“어…”
이걸 어떻게 애슐리 씨에게 설명해야 고민에 빠졌다.
그러니까…친구임에도 육체적인 관계까지 허락하는 사이라는 뜻.
이게 영화 제목으로도 있을 정도이니 외국인의 눈에는 북미의 친구의 개념이 꽤 방탕하다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북미, 특히 캐나다의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서 많이 보수적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레이스 씨가 많이 개방적이라는 뜻.
물론 남미나 미국 서부 그리고 유럽 쪽은 많이 개방적이지만 캐나다에서도 프렌즈 위드 베네핏을 언급하는 건 많이 많이 개방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잘 쓰이지 않는 슬랭에 속하는 단어.
이걸 애슐리 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그때 들리는 메간 씨의 알 수 없는 소리.
하지만 이 소리의 정체를 토끼 수인인 애슐리 씨가 놓칠 리가 없었다.
바로 얼굴이 붉어지는 애슐리 씨.
나는 속마음으로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신 그레이스 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하…하.”
“바로 이해하셨네요.”
“네…”
어색하게 웃는 애슐리 씨.
나와 애슐리 씨는 두 분이 프렌즈 위드 베네핏을 즐기게 놔두고 영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영화 천국.
이탈리아의 영화 전성기를 열어 주었던 그런 영화이자 내 기억에 살아 숨 쉬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내 표정 변화를 바로 읽은 애슐리 씨.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이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물론이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이유가 궁금하신지 고개를 갸웃하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설명해 나갔다.
“제가 어릴 적에 영화에 빠지게 해준 좋은 영화거든요.”
“정말요?”
“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CA 시간에 영화 감상부에서 봤었는데 막연하게 좋아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속 주인공.
그 주인공은 결국 고향을 떠나 로마로 향해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
그 고향에서 첫사랑과 다시 재회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상황에 주인공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애슐리 씨와 같이 보게 되어서 기쁘네요.”
“헤헤…”
그렇게 내 품에 파고드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와 함께 내 추억이 깃든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 * *
이튿날 아침.
아침에 눈을 뜨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어제 영화를 다 보고 잠이 든 나와 애슐리 씨.
밖에 간간이 들리는 메간 씨와 그레이스 씨의 소리와 별개로 메간 씨의 펜트 하우스에서 편안 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할짝.
내가 눈을 뜨자 맞은 편에서 깨어 있었던 애슐리 씨가 내 볼에 할짝을 해주셨다.
“좋은 아침이에요. 존 씨.”
“고마워요. 애슐리 씨.”
나도 그녀의 볼에 할짝.
그녀도 방금 일어났는지 그녀의 볼이 살짝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헤헤…”
“그나저나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메간 씨랑 그레이스 씨일까요?”
“네 맞아요. 아까 살짝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봤는데 두 분이 요리하고 계셨어요. 물론 저도 도와 주었구요.”
“절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아니예요. 존 씨가 얼마나 곤히 주무시던지 살짝 코를 고시던데요?”
“아…하하…”
어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그때문인지 나는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코까지 곤 모양이었다.
“코를 고는 존 씨도 귀여워서 좋았어요.”
“그런 못난 모습도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부끄러워지는 상황.
애슐리 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슬슬 일어날까요?”
“좋아요.”
그렇게 일어난 나와 애슐리 씨.
나는 그녀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도착하자 강렬하게 느껴지는 맛있는 아침밥상의 냄새.
고소한 버터에 구운 토스트와 바짝 익은 베이컨.
그리고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으로 잘 버무려진 샐러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존.”
앞치마를 두르고 날 환영해 주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녀를 보고는 바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저…그레이스 씨.”
“아, 안에는 입었으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라…”
“에이 서로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뭘.”
“…”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에 대비되는 검은색 속옷만 입은 채 앞치마를 두른…그런 모습이었다.
“옷 좀 입지…”
옆에서 투덜거리는 메간 씨.
그걸 본 그레이스 씨는 싱긋 웃음을 지으셨다.
“아직 덜 혼났나 봐?”
“…”
바로 입을 다무는 메간 씨.
그녀는 어색하게 게 걸음을 하며 그레이스 씨와 거리를 벌린 뒤 내게 다가오셨다.
어제 입었던 파자마를 입고 계신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날 환영해 주셨다.
“잘 잤느냐?”
“네, 잘 잤어요. 메간 씨는…어…”
어제 간간이 들렸던 소리.
그 소리에 나는 메간 씨에게 잘 주무셨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읽으신 듯 머쓱하게 웃는 메간 씨.
그녀는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신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계란은 어떤 걸로 하겠느냐?”
“아…저는 써니 사이드 업으로 해주세요.”
반숙을 좋아하는 나.
자취 시절부터 계란 반숙 프라이에 밥과 간장을 많이 비벼 먹어서 그런지 반숙이 가장 내 입맛에 맛았다.
“애슐리는?”
“저는…스크램블로 해주세요.”
그렇게 주문받은 메간 씨.
그녀는 능숙하게 프라이 팬을 잡고 계란 요리를 시작하셨다.
금방 만들어진 반숙 계란 프라이와 스크램블 에그.
여기에 질 좋은 버터로 구운 토스트와 베이컨 그리고 샐러드가 곁들여지자 아침밥상이 더 풍성해졌다.
“왜 나한테는 계란 안 물어봐?”
툴툴대며 메간 씨에게 항변하듯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그 모습에 메간 씨는 못 말린다는 듯 그레이스 씨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차피 턴 오버(완숙)이잖아.”
“어떻게 알았어?”
놀란 표정을 짓는 그레이스 씨.
그런 그레이스 씨를 보며 메간 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어제 이야기했으니까.”
“헤에…”
그러자 메간 씨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메간 씨를 바라보았다.
“자상한데~”
말없이 미소만 짓는 메간 씨.
두 분의 귀여운 모습에 나와 애슐리 씨는 약속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지나가는 주말.
매일 매일이 이렇게 평화롭길 바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