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70화 (170/292)

〈 170화 〉 올리버 (1)

* * *

올리비아의 품평회가 끝난 이튿날.

오늘은 애슐리 씨와 헤일리 씨가 같이 일하는 수요일이었다.

헤일리 씨가 나오는 날.

그러니까 우리 카페 기준으로 바쁜 날이라는 뜻이었다.

바쁜 날이라는 말 그대로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간 오늘 하루.

원래 트래쉬 캔, 그러니까 대용량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그 녀석을 부를 예정이었는데 또 나중으로 밀려났다.

“고생했어요. 헤일리 씨.”

“확실히 수요일 오전은 정말 바쁘네요.”

웃으면서 내게 말을 하는 헤일리 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월요일은 조금 들쭉날쭉한데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은 최근 계속 바빠지고 있어요.”

이상하리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우리 카페.

최근 주변에 변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야 일할 수 있으니 좋죠. 헤헤.”

환하게 웃는 헤일리 씨.

파트 타이머로 바쁜 시간에 우리 카페를 도와주기 때문에 이런 너스레를 떠셨다.

“자주 부르지 못해서 미안 해요.”

“아니예요. 저도 이렇게 제시간을 맞춰 주시는 파트 타임을 구하기 어려우니까요.”

“이제 곧 석사 과정 들어가시는 거죠?”

“네, 배츌러 졸업 논문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운이 좋았죠.”

아직도 기억나는 그녀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

수리철학이나 분석철학, 북미의 철학 기조 등등…철학에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 어려운 말들을 하셨던 것들이 생각났다.

이론­예측­시험­실패­수용­새로운 이론의 구축.

당시 그녀와의 대화 중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었다.

“저…죄송한데 졸업 논문이 그…조인족에 대한 것이었죠?”

“맞아요. 분석철학의 시각으로 조인족 조직심리와 행동심리에 대한 고찰이예요.”

벌써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는 헤일리 씨.

나는 아무래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다른 일하는 척을 하고 계신 애슐리 씨.

당시 헤일리 씨와 대화할 때도 올리비아와 함께 도망치셨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행동하셨다.

그래도 애슐리 씨를 탓할 수 없는 게…이게 내가 스스로 연 판도라의 상자이다 보니 그녀의 말을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조인족들은 독립적인 개체로 행동하면서 유기적으로 조직을 이루고 이런 현상이 최근 밴쿠버 내 퍼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헤일리 씨의 설명.

나는 머릿속으로 침투해 오는 과도한 양의 정보에 짓눌려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그녀가 이해했냐는 말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로 젓는 게 전부.

하지만 고개를 가로로 저을 경우 멈추는 게 아니라 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서 하시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분이 인정받아 석사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이야기 한 오우거 교수 님 기억하시나요?”

“아…네. 컨닝 하면 큰일…아니…좋은 분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내 기억이 맞다면…마이크 교수 님이라고 스치듯이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가 두 개이신 트윈 헤드 오우거 이신 마이크 교수님.

그 교수 님은 학교 내 몇 안 되는 이 종족 교수 님으로 두 개의 머리로 컨닝을 하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신다고 들었다.

“마이크 교수 님이 추천해 주셔서 다행히 석사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대학 진학, 취업, 패밀리 닥터, 사업처 등등.

무언가하기 위해서는 추천서라는 게 꼭 필요한 캐나다 사회.

그렇다 보니 대학원 진학을 앞둔 헤일리 씨는 추천서가 필요했고,

그녀를 눈여겨 본 오우거 교수 님인 마이크 씨가 그녀를 추천한 모양이었다.

“헤헤. 그래서 벌써 다음 논문으로 무얼 준비할지 고민 중이예요.”

“석사 과정은 계속 철학 쪽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이제는 철학과가 아닌 영미 분석철학 석사 과정인데…어떤 교수님 밑에 들어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아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

아무래도 내 가방끈은 대학교와 밴쿠버 내 전문대가 전부다 보니 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박사 밑에 들어간다는 말이나 학부가 아닌 세분화된 과정이라던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계속 들어 보기로 했다.

“아까 그 마이크 교수 님은…”

“그분은 영미정치철학 전공이셔서요.”

“아…”

한 마디로 그녀가 원하는 것과 다른 걸 가르치신다는 의미.

그렇기에 그녀는 추천해 주신 교수 님 말고 다른 교수님을 찾아야 했다.

“그때 이야기하신 트롤 교수 님은요?”

“아, 윌리엄 교수님은 대륙철학과 계열인 독일 관념론에 대한 고찰과 역사를 가르치세요.”

“…”

이것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

분석철학 자체를 모르는데 대륙철학이 뭔지 거기다 독일 관념론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대충 다르다는 정도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마이크 교수 님이 지인이신 인간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는데 다행히 여성 분이라 고민 중이예요.”

“남성분은…아.”

“제가 서큐버스다 보니 …헤헤…”

철학 이야기에 묻혀 잠시 까먹은 그녀의 특징.

서큐버스인 그녀는 땀을 배출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을 유혹하곤 했다.

보통은 향수 같은 것으로 가리는 그녀.

대학교는 넓은 강의실이라 상관이 없었지만,

석사 과정이나 박사 과정의 경우 논문에 대해 교수와 면담해야 할 일이 많아 1 대 1로 만나는 일이 많아 조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마이크 교수 님이나 윌리엄 교수 님은…”

“두 분은 이런 유혹 계열에 면역성이 있는 트롤과 오우거이셔서요.”

“아아…”

그녀의 체취가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닌 모양.

나의 경우 메간 씨의 마법 덕분에 인간이지만 그녀의 유혹을 버틸 수 있었고,

그분들은 종족의 특성상 헤일리 씨의 유혹을 피하실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요즘 소개받은 교수 님과 이야기하느라 조금 바빴는데…다행히 존 씨가 스케쥴을 맞춰주셔서 감사했었어요.”

“아니예요. 저희야 항상 도와주는 헤일리 씨가 고마울 따름이죠.”

다행히 원래 대화 목적으로 돌아온 상황.

만약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더 했다면 나는 아마…이런 생각하니 십 년감수한 느낌이었다.

딸랑.

마침 이때 들어온 손님.

나는 적절하게 도망칠(?) 구실을 찾아서 고개를 돌려 고객을 맞이했다.

“어서 오…올리버 씨?”

“기억해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모자를 벗어 가슴 쪽에 댄 뒤 점잖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시는 올리버 씨.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노신사 분을 마주할 때마다 존중 받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 오세요. 올리버 씨. 저…”

“이해합니다. 음료를 한 잔 하며 설명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그럼…”

카페 내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는 올리버 씨.

그가 흡혈귀라는 존재였기에 햇빛이 적게 드는 장소를 선호하셨다.

내게 살짝 다가오는 헤일리 씨.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분 드라큘라 이신거죠?”

“맞아요.”

단번에 알아보시는 헤일리 씨.

그녀는 예전에 한 번 흡혈귀를 보신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에 인간들에 뒤섞여 있었을 때 자주 만나긴 했어요.”

“흡혈귀 분들을 보셨다구요?”

“네, 아무래도 서큐버스가 하는 일과 조금 겹쳐서 말이예요.”

“어떤 부문이…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는 헤일리 씨의 말.

서큐버스의 경우 정기를 뺏어가지만 흡혈귀의 경우 피를 뺏어 가니 이 부분이 겹친다는 표현을 하셨다.

“물론 저희도 그렇고 저분들도 그렇고 기술의 혜택을 많이 보고 있어서 그럴 일은 없지만요.”

더 이상 인간의 정기를 뺏지 않아도 되는 서큐버스인 헤일리 씨.

그와 마찬가지로 올리버 씨도 더 이상 인간의 피를 빨지 않으셔도 됐다.

도시에 적응하기 어려운 그레이스 씨나 애슐리 씨와 다르게 기술의 혜택을 받은 분들.

그렇다 보니 헤일리 씨는 올리버 씨에게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헤일리 씨. 미안한데 테이블 닦는 거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올리버 씨와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물론이죠. 괜찮아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헤일리 씨.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올리버 씨에게 다가 갔다.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음…이제 여름도 끝나가니… 시원한 레모네이드가 한 잔 생각이 나는군요.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설탕이나 이런 부분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얼음은 적게 넣어 주세요.”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주문받고 카운터로 돌아오니 애슐리 씨가 날 반겨 주었다.

“저분은…”

“아, 올리버 씨라고 안면이 있는 분이예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레모네이드 주문이 들어왔는데 롱 드링크 잔에 얼음 1/3 스쿱만 넣어 줄래요?”

“알겠어요.”

시원한 맛이 중요한 레모네이드.

그렇다 보니 잔이 시원해야 그 맛이 배가 되었다.

그래서 미리 얼음을 넣어두워 잔을 차갑게 만든 뒤 얼음을 버리고 다시 얼음을 채워 넣는 게 맛이 더 좋았다.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맛을 선명하게 만든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렇게 할 경우 레모네이드의 맛이 더 선명하게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렇게 애슐리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 냉장고로 다가 갔다.

냉장고에 미리 만들어 둔 레모네이드 원액.

물과 레몬 그리고 설탕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지만,

할아버지에게 배운 우리 카페 만의 특별한 레시피에서는 이렇게 미리 만들어 두어 냉장 숙성 시키는 걸 추천했다.

레몬 특성상 냉장고에 오래 있을 경우 냉장고 냄새를 흡수하는데 이걸 막기 위해 랩을 엄청 많이 감고 그 위에 진공 처리까지 해 냉장고 냄새가 배지 않도록 잘 보관해 두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레모네이드 원액.

여기에 기호에 따라 탄산수를 붓거나 추가적인 처리를 했는데 올리버 씨는 기본 레모네이드를 요청하셨으니 물로 살짝 희석만 시키면 됐다.

“여기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

애슐리 씨의 도움으로 살짝 차갑게 된 롱 드링크 잔.

그 안에 있던 얼음을 버리고 물기를 제거한 뒤 얼음을 다시 넣었다.

얼음을 조금만 넣어달라는 요청.

그래서 얼음을 1/3 스쿱만 넣고 그 위를 레모네이드로 채웠다.

그렇게 만든 레모네이드.

이걸 들고 올리버 씨에게 다가 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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