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소풍 (5)
* * *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식탁.
아이라만은 올리비아가 페인트 칠하면서 한 실수들을 장난스럽게 꺼냈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다.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의 올리비아.
너무 올리비아의 이야기만 하는 아이라만을 제어하기 위해 올리비아는 아이라만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그러자 눈치를 챈 아이라만.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멈췄다.
“음식이 정말 맛있는 거 같아요.”
웃으며 음식을 칭찬하는 올리비아.
나와 애슐리 씨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주제를 음식으로 바꾸었다.
“맛있게 먹어서 보기 좋네.”
“헤헤…특히 이 코코뱅이 정말 맛있어요. 음…시골에 살아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시골의 정겨운 느낌이 느껴져요.”
“그렇게 칭찬해 줘서 고마워.”
환하게 웃는 애슐리 씨.
그녀는 자신이 만든 요리가 인기가 많자 미소를 지으셨다.
“애슐리 씨의 음식은 날이 갈수록 더 맛있어 지는 것 같아요.”
올리비아에 이어 아이라만의 칭찬.
애슐리 씨는 와인 때문인지 아니면 칭찬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변하셨다.
“헤헤…”
기분이 좋으신지 환하게 웃는 애슐리 씨.
나는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며 이 풍족한 식탁을 즐겼다.
“올리비아. 미안한데 그쪽에 있는 와인 좀 건네줄래?”
“아, 제가 따라 드릴게요.”
“고마워.”
능숙하게 와인을 따르는 올리비아.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따르는데?”
“꽤 연습했죠.”
어깨를 으쓱 하는 올리비아.
아무래도 아이라만이 분위기를 잡을 때 와인을 꽤 많이 사용한 모양이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기에 좋은 와인.
밴쿠버 자체에서도 생산하는 와인이 있어 저렴하게 즐기기 좋았다.
“저 식사 중에 죄송한데…카페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말해도 될까요?”
살짝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내는 올리비아.
아이라만과 애슐리 씨 모두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나도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밴쿠버에 카페가 많은 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아시고 계실 거예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확실히 우리 카페 주변으로 보더라도 리암 씨의 카페가 있었고 그 밑으로 스팀 클락 근처에 프렌차이즈 카페도 여러 개 있었다.
거의 한 블록 마다 두 세 개 쯤은 있는 카페.
나는 올리비아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존 아저씨 카페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어떤 걸 느꼈니?”
“약간 바 스타일의, 그러니까 이탈리아 바 느낌이 매력적이더라구요.”
나는 그녀의 통찰력 있는 안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프렌치 스타일의 카페나 미국식 대형 프렌차이즈와 달리 이탈리아 카페 바 스타일을 따라하는 우리 카페.
내가 정한 것이 아닌 할아버지가 선택하신 부분이라 물려 받은 나는 이걸 따를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손님과의 유대,
그러니까 대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 카페 바.
물론 이탈리아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영상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카페에서 식사도 하고 음료도 마시고 심지어 술도 마시며 거의 온종일 카페에서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바쁜 밴쿠버.
그만큼 사람들은 대화를 원했고 카페 만큼은 여유로운 장소이길 바랐다.
“저도 그래서 이탈리아 형식의 바를 따라 하려 해요.”
“좋은 생각이라 생각한단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별다방도 이탈리아 바를 벤치마킹 한 방식.
이런 형식의 바가 특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떤 걸 우려하시는 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자문이 필요해요.”
“어떤 자문이 필요하니?”
“저희는 비건 고객들을 타겟으로 삼으려고 해요.”
“음…”
특정 고객을 타켓으로 삼는 것.
학교 내 마케팅 시간에서 타겟 마케팅이라 배웠는데…이럴 때 고객이 소수이거나 그 시장 자체의 규모가 작을 경우 문제가 있었다.
물론 전체적인 비건/베지터리안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반적인 손님을 받으면서 비건/베지터리안 고객을 받는 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 카페처럼 말이다.
“내 생각은 조금 보수적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일반 손님을 받으면서 비건/베지터리안 고객을 위한 메뉴를 넣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라만.
아무래도 아이라만이 나와 비슷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올리비아가 그냥 말 했을 리는 없고…무언가 이유가 있나 본데?”
“헤헤…역시 존 아저씨는 절 잘 아세요.”
그러자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무언가를 꺼내는 올리비아.
그녀는 준비해온 자료들을 내게 꺼내보였다.
“현재 밴쿠버 내 비건/베지터리안 시장 규모에 대한 정보와 잠재 고객이에요.”
“흐음…”
현장에 있는 나도 최근 들어 많이 느낀 부분.
확실히 비건, 베지터리안 음료를 원하시는 고객이 늘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일반 고객들도 속이 편한 비건/베지터리안 음료를 주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확실히 블루오션인 상태.
여기에 추가로 그레이스 씨 같은 엘프 분들이나 애슐리 씨 같은 토끼 수인 분들도 있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올리비아의 당찬 포부.
하지만 작은 카페가 기업도 아닌데 이런 특정 고객을 위해 메뉴를 구성한다는 게 너무 리스크가 컸다.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다음 자료를 건네는 올리비아.
나는 그 자료를 보며 생각보다 리스크가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거 마크 씨가 주신 자료니?”
“네, 맞아요. 마크 씨에게 들었는데 최근 대기업들이 비건/베지터리안 시장을 개척하려고 많은 제품들을 내놓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꽤 괜찮대요.”
확실히 이미 일부 기업이 독과점하는 일반 제품들과 달리 아직 경쟁 상태인 비건/베지터리안 시장.
그렇다 보니 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질 좋고 가격 좋은 제품들이 꽤 있었다.
마크 씨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뉴 구성을 위한 재료들의 원자재까지 신경 쓴 올리비아.
나는 그녀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반 손님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와 음식들로 구성하려고 해요.”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점.
당연히 카페도 음식점이었기에 맛이 중요했다.
아무리 잠재적 고객이 많다고 해도.
아무리 원자재가 비교적 저렴하다 해도.
결국 맛이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법.
나는 조심스럽게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너도 알다시피 원래의 맛을 내기 많이 힘들 거야.”
카페 음료의 디폴트 값은 대부분 유제품 기반이었다.
그러니까 비건/베지터리안 제품이 아닌 일반 고객을 위한 우유.
물론 요즘은 제품이 잘 나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비건/베지터리안 고객 만을 위한 음료라면 크게 상관이 없지만,
올리비아의 목표는 비건/베지터리안 특화 카페로 일반 고객도 흡수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래서 아이라만과 많이 연구를 했어요.”
“흐음…”
오늘 피크닉을 가기 전 아이라만이 했었던 말이 생각났다.
카페 임시 오픈에 와서 음료를 맛봐달라고 했었던 아이라만의 부탁.
아무래도 카페를 재 정돈 하며 레시피 연구를 꾸준히 한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기 어려울 테니…
아무래도 기존의 레시피를 변형해 만든 게 분명할 텐데…조금 걱정이 앞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얼굴에 드러났나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시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올리비아가 남이 아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가족과 같은 관계이다 보니 너무 감정을 이입하고 말았다.
성공하면 좋지만,
만약에라도 실패할 경우 낙담할 올리비아와 아이라만.
아직 성공을 맛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처음부터 좌절을 맛보는 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패해도 다시 연구해서 성공하면 되니까요.”
환하게 웃는 올리비아.
그리고 그런 올리비아를 응원하듯 손을 맞잡는 아이라만.
이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3 자인 내가 더 걱정하고 있었던 상황.
그런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미안 해. 내가 아무래도 너무 앞서 나간 거 같아.”
“아니예요. 그리고 그만큼 존 아저씨가 저희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어느새 부쩍 자란 아이들.
내가 이 아이들의 부모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
눈치를 보고 있던 아이라만이 갑자기 잔을 들어 올렸다.
“거…건배 어떠세요?”
어색한 아이라만의 제안.
하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래.”
허공에서 부딪힌 유리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집안에 울려 퍼졌다.
* * *
“음식 더 챙겨 가.”
“아니예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걸요.”
환하게 웃는 아이라만.
그는 살짝 취해 비틀거리는 올리비아를 부축한 상태로 말했다.
여전히 술이 약한 올리비아.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계단 조심하고.”
“네, 감사합니다.”
오늘 먹고 남은 음식들.
최근 레시피 연구와 리암 씨의 카페 보수 때문에 최근 컵라면으로만 연명했다고 한다.
밴쿠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 컵라면.
특히 용기면으로 되어 있는 육개장맛의 컵라면이 인기가 많았다.
아무튼, 그런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던 아이들.
미리 알았더라면 저녁을 만들어서 종종 가져다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저…존 아저씨.”
“응?”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저랑 올리비아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자식.”
나도 모르게 나온 한국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라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안 해. 한국 말이야. 일종의 추임새 같은 말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라만.
나는 그런 아이라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늘 이야기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그리고 저녁 식사를 컵라면으로 해결할 생각하지 말고 종종 우리 집에 찾아와.”
“헤헤…감사해요. 하지만 이제 곧 카페도 여니까 저녁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라만은 이 말을 끝으로 미소를 지은 뒤 올리비아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위로 올라갔다.
바로 윗집인 아이라만과 올리비아.
나는 두 명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걸 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자…그러면 이제 나는 애슐리 씨를 먼저 침대로 옮기고…”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잔뜩 취한 애슐리 씨.
원래는 술에 강한 분이지만 오늘 피크닉 때문인지 피곤해서 금방 취하셨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침대로 옮긴 뒤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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