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소풍 (2)
* * *
모든 준비가 끝난 상황.
내가 김밥을 만들고 씻으러 간 사이 애슐리 씨는 맛있는 밀크티를 준비하셨다.
최근에 카페에 들어온 홍차인데 향이 정말 좋고 맛도 좋아 그냥 마시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좋은 홍차를 밀크티로 만드는 게 조금 그치만…그래도 시원하게 마시려면 밀크티 만한 것이 없었기에 찬 우유에 오래 침출시켜 대만 스타일로 밀크티를 만들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은 대만식 버블티.
원래는 밀크티에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점점 흑당 밀크티 같은 방식으로 진화한 느낌이었다.
물론 카페 사장으로서 내 주관적인 생각.
요즘은 딸기라떼 같은 과일 베이스에 우유를 섞은 우유 계열 음료가 잘나가는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애슐리 씨.”
“헤헤 아니예요.”
보냉통에 가득 담긴 밀크티.
여기에 추가로 생수 병도 두 개 챙겼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점검.
나는 먼저 도시락부터 확인했다.
초가을 날씨지만 아직 살짝 더우니 김밥이 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온도를 차단해 주는 도시락 가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손을 대어 확인해 보았다.
손에 느껴지는 약간 서늘한 느낌.
이 정도면 도착할 때까지는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밥 뿐만 아니라 정성스레 깎은 과일들도 들어 있는 찬합.
1 층은 유부 초밥, 2 층~ 3 층은 3 종 김밥, 마지막 층은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와 포도를 넣어 두었다.
아직도 집에 많이 남아 있는 사과들.
보리스가 많이 보내 준 덕분에 애플 시나몬 청을 만들고도 아직 많이 남았다.
한국의 부사와 달리 종류가 많은 캐나다의 사과들.
보리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암브로시아 품종의 사과를 보내 주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삭아삭을 넘어 바삭바삭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암브로시아 사과.
껍질이 두꺼운 레드 딜리셔스 보다 껍질도 얇아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종종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냥 가판대에 있는 걸 사서 바로 옷소매에 쓱쓱 닦아 먹는 캐나다 사람들.
한국인의 처지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나중에 돼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사과 표면을 위해 발라 둔 식용 왁스.
그래서 그저 겉면의 먼지만 닦아 내고 먹어도 상관없었기에 그렇게 먹는다고 들었다.
물론 요즘은 친환경이라 이런 식용 왁스를 바른 사과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사과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집안도 전부 확인했어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
내가 도시락과 주방 쪽 확인을 하는 사이.
방안과 창문들을 확인한 애슐리 씨.
오래된 캐나다 집 특성상 방충망이 없는 집이 많았는데…
그 집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외출시 창문을 모두 닫고 나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가끔은 비둘기가 들어와 우리를 반겨 주는 경우도 있었다.
“자, 그러면 가 볼까요?”
“좋아요.”
내 손을 잡은 애슐리 씨.
그녀는 선선한 여름 날씨에 걸맞은 시원한 복장을 입으셨다.
편안 함이 느껴지는 갈색 계열의 원피스와 밀짚 모자.
애슐리 씨를 위해 내가 특별히 구멍(?)을 낸 밀짚 모자였다.
토끼 귀가 있는 애슐리 씨.
그래도 보통은 모자를 잘 쓰지 못하시는데 영화 속 여자 주인공들의 멋들어진 밀짚모자를 보시고는 이걸 꼭 쓰고 싶다는 의지를 내게 표출하셨다.
그래서 만들어진 애슐리 씨 전용 모자.
나는 내가 만든 걸작품 중 하나인 모자를 보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그려는 데 어디서 느껴지는 인기척.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아이라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존 씨? 그리고 애슐리 씨.”
“안녕. 아이라만. 잘 지내니?”
“물론이죠.”
웃음을 짓는 아이라만.
하지만 최근 리암 씨의 카페 일로 많이 바쁜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양손에는 페인트 통이 들려 있었다.
“많이 바빠 보이네. 혹시 도움 필요하니?”
“아니예요. 괜찮아요. 저랑 올리비아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의젓하게 말하는 아이리만.
그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 참,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쯤에 카페 정리가 끝날 거 같은데 혹시 한 번 찾아와 주실수 있나요? 물론 애슐리 씨도 함께요.”
“우리 둘 다?”
나와 애슐리 씨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아이라만은 머쓱하게 웃었다.
“올리비아가 존 아저씨의 카페에서 일했었잖아요.”
“그렇지.”
어떻게 보면 리암 씨에게 배운 내가 다시 리암 씨의 딸인 올리비아를 가르친 셈.
이 묘한 관계를 굳이 언급하는 아이라만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아…혹시…”
“헤헤…네. 괜찮으시다면 평가 한 번 부탁 드려도 될까 해서요.”
“물론이지. 언제 도움이 필요하나 궁금했는데 드디어 도와줄 수 있게 되었네.”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하는 아이라만.
나는 올리비아와 아이라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했다.
리암 씨에게 받은 은혜를 어느 정도 갚은 느낌.
나는 이 두 아이들의 홀로 서기를 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필요한 것 있으면 괘념치 말고 말해 줘.”
나와 마찬가지 생각이신 애슐리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라만에게 말했다.
“두 분의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정말 맛있는 음료를 준비해 둘게요.”
“기대할게.”
활짝 웃는 아이라만.
그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1 층으로 내려갔다.
“정말 대견한 아이들이예요.”
애슐리 씨의 말씀.
나는 그 말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저 나이때 저렇게 하지 못했는데 아이라만과 올리비아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잠시 고개를 갸웃 하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 나이일 때 존 씨는 무얼 하고 계셨어요?”
“저요?”
지금 올리비아가 20 살이니…
당시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마시는 술에 미쳐 매일 같이 술자리를 갔었던 것이 생각났다.
덕분에 20 살이란 어린 나이에 위 식도 역류로 고생을 엄청 했었던 나.
그런 철부지 같은 행동을 일삼던 나와 의젓한 아이라만과 올리비아를 보니 내 자신이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하하…그…그냥 대학교 다녔었어요.”
“그렇군요.”
다행히 깊게 물어보지 않는 애슐리 씨.
내 표정을 읽은 그녀는 다행히 내 과거를 지켜(?) 주셨다.
1 층에 도착한 나와 애슐리 씨.
옛날 건물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다녀야 했다.
“잠시만 여기 계실래요? 차 꺼내올게요.”
우리가 사는 다운타운에서 리치몬드까지 지하철역으로 12 개가 넘었고,
버스 역으로는 20 개가 넘었다.
상당이 먼 곳에 있는 리치몬드.
밴쿠버 국제 공항이 위치한 곳이라 밴쿠버에 도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장소였다.
그렇다 보니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
보통은 걸어서 다니는 걸 선호하는 나와 애슐리 씨지만,
이렇게 먼 거리는 어쩔 수 없이 차량을 이용해야만 했다.
우리 집 뒤쪽에 위치한 차고.
오랜만에 차고 셔터 문을 열고 차량 커버를 벗겨 냈다.
드러난 빨간색 플라트우드 2 세대.
할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소중한 차량이면서 오래된 차량이다 보니 차량 커버를 항상 씌워두었다.
그렇게 차를 몰아 집 앞에 도착하니 애슐리 씨가 먼저 나와 계셨다.
바로 보조석에 탑승하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에 계셔도 되는데.”
“헤헤…”
나는 그녀에게 찬합과 음료 통을 건네받아 뒷좌석에 잘 보관해 두었다.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
애슐리 씨의 안전 벨트를 매어 주고 출발 준비를 끝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리치몬드 자연 공원.
핸드폰으로 네비게이션을 실행시켰다.
길은 잘 알고 있지만,
주말이다 보니 차량이 막히는 상황.
그래서 네비게이션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 그럼 출발해볼까요?”
“좋아요.”
벌써 들떠보이는 애슐리 씨.
모자를 벗고 창문을 내려 바람을 맞이할 준비했다.
다시 말하지만 오래된 차량이다 보니 에어컨 품질이 좋지 못해 바람을 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량.
그렇게 복잡한 다운타운을 벗어나 예전에 UBC 자연사 박물관 가는 길 즈음에 도착하자 길이 조금 풀렸다.
바람을 즐기고 계신 애슐리 씨.
여름철의 달콤한 바람이 밴쿠버의 바다 내음과 뒤섞여 기분 좋은 향을 만들어 냈다.
“오늘 피크닉 하기 정말 좋은 날씨죠?”
“맞아요.”
활짝 웃고 있는 애슐리 씨.
그녀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활기찬 분위기의 길거리.
유모차를 끄는 부부 사이로 아이들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평화로운 분위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공원으로 향하는 길.
애슐리 씨와 이야기하는 도중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존 씨는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랑 무얼 하고 싶으세요?”
“음…잠시만요.”
애슐리 씨의 질문.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자아이던 남자아이던 상관없이같이 모래성 쌓기를 하고 싶어요.”
“모래성 쌓기요?”
내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모래성 쌓기에 약간 로망 같은 게 있었거든요. 아이들과 한다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내 대답에 미소로 대답하는 애슐리 씨.
나는 애슐리 씨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애슐리 씨는 무얼 하고 싶으세요?”
“저는…음…”
잠시 고민에 빠진 애슐리 씨.
그녀는 이내 날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아이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같이 등산을 가고 싶어요.”
최근에 했었던 휘슬러 산 등산을 정말 즐거우셨는지 등산을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유를 물었다.
“이유라…등산할 당시 앞에 있었던 아이들과 같이 등산을 하는 부부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요.”
살짝 웃으며 대답하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저를 닮은 게 아니라 애슐리 씨를 닮는다면 분명히 등산을 좋아할 거예요.”
“헤헤…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존 씨를 닮았으면 하는걸요?”
그녀의 사랑스러운 대답.
하지만 나는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저를 닮으면 저는 솔직히 엄청 힘들 거 같아요.”
“왜요?”
“아이들이 절 닮아 한 고집할 거 같거든요…그건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하…하.”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 믿고 싶지만…
과거에는 지금 보다 고집이 더 강했다.
좋게 말해 자기주장이 강했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이었던 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러웠다.
“존 씨가 고집이 강하다구요?”
“하하…그렇게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봐 주셔서 고마워요.”
그렇게 애슐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사이 도착한 자연 공원.
주말이라 주차 공간이 많지 않았는데 다행히 우리 자리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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