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소풍 (1)
* * *
이번 주에 있었던 여러 일들.
당장에 제임스와 마크 씨가 화해한 것부터 시작해 바쁜 평일의 일까지.
그런 이들이 지나고 평온하게 애슐리 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나른하게 누워 있는지금이 너무 행복했다.
내 품에서 새근 거리고 있는 애슐리 씨.
나는 늘 그렇듯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헤헤…”
“일어났어요?”
“네, 머리 쓰다듬으실 때부터 일어나 있었어요.”
“전혀 몰랐는걸요?”
“치이…”
볼을 살짝 부풀리는 애슐리 씨.
나는 진작에 들킬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이런 말했다.
사실 그녀의 귀가 움직일 때부터 그녀가 깨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
하지만 그녀의 귀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계속 기분 좋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잠든 척하는 것에 어울려 주기로 했을 뿐이었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싫어요.”
투정을 부리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요?”
“아직 흔적을 남기지 못했으니까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애슐리 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자 볼을 핥아 주는 애슐리 씨.
그녀의 애정 어린 행동이 나는 미소가 귀에 걸렸다.
“자, 이제 존 씨도 해주세요.”
당당하게 자신도 해 달라는 애슐리 씨.
내게 자기 볼을 대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웃지 말아요. 하루를 시작하는가장 중요한 일이라구요.”
“하하. 미안 해요. 애슐리 씨.”
그렇게 그녀에게 말하고 그녀의 볼에 살짝 내 흔적을 남겼다.
“헤헤…역시 사랑받는 건 기분이 좋은걸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올렸다.
내 목에 양팔을 걸친 애슐리 씨.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치로 날 살폈다.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어제 푹 자서 거뜬해요.”
그렇게 애슐리 씨는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도착한 장소는 소파.
나는 이불에 감싸져 있는 애슐리 씨를 조심스럽게 소파에 내려 두었다.
“공주님 안기라는 거 정말 기분 좋은데요?”
“안타깝게도 자주는 못해드려요.”
“헤헤.”
살짝 미소 짓는 애슐리 씨.
그녀는 이불을 몸으로 말아 마치 소리빵처럼 자기 몸을 감쌌다.
“오늘 소풍 가기로 한 거 잊으신 거 아니죠?”
“아…맞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식 준비는 제가 할 테니 먼저 씻고 있으실래요?”
“어제 말씀하신 김밥이라는 걸 만들려고 하시는 거죠?”
이번 여름 마지막이 될 소풍.
어제 제임스와 베일리 씨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나온 이야기였다.
여름도 끝나 가는데 소풍 어떠냐는 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그래서 간단한 피크닉 느낌으로 리치몬드에 있는 자연 공원을 갈 계획을 세웠다.
캐나다 거위나 오리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습지 형태의 자연 공원.
풍경도 좋고 단풍도 아름답게 지는 곳이라 피크닉 하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그렇게 소풍 갈 장소가 정해지자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피크닉 음식.
소풍을 간다는 생각에 나는 바로 김밥을 언급했고 김밥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애슐리 씨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다.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 캐나다에서는 생소한 음식인 김밥.
더군다나 일본 음식들이 먼저 들어와 있어서 그런지 김밥을 대부분 초밥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캘리포니아 롤로 오해 받는 김밥.
일단 초밥과 달리 김밥은 회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렇게 어렴풋이 김밥에 대해 알게 된 애슐리 씨.
그래도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피크닉 도시락을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오늘 준비할 김밥은 세 가지.
속 재료만 바꾸면 다양한 김밥을 만들 수 있는 김밥의 특성 덕분에 세 가지 맛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나는 기본 김밥.
한인 마트에서 사 온 옛날 소시지를 넣은 기본 김밥을 만들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야채 김밥.
그저 소시지를 뺀 김밥이지만 혹시나 애슐리 씨가 기본 김밥을 좋아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야채 김밥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명란 김밥.
왜 갑자기 명란 김밥을 준비했냐면…냉동고에 넣어 둔 명란젓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에서는 멘타이코라는 일본어 발음으로 불리는 명란 젓.
하지만 애초에 명란젓 자체가 한국산이고 멘타이코라는 일본어 자체가 일본인이 잘 안 쓰는 단어였다.
듣기로는 부산에 살던 일본인 분께서 후쿠오카로 넘어가 전파 했다는 이야기를 TV 쇼로 본 적이 있었다.
아무튼 세계화에 먼저 나선 일본 음식의 영향으로 일본어 발음으로 불리는 명란젓.
그 명란젓을 일본인 친구에게 선물 받았는데 애초에 명란젓을 잘 먹지 않아 냉동고에 넣어 두었던 것을 최근에 발견하고 말았다.
애슐리 씨를 만나기 전에 받았으니…
아슬아슬하게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았다.
“그럼 만들어 볼까?”
애슐리 씨와 살면서 혼잣말하는 버릇이 많이 고쳐지긴 했지만…
오랜 자취 생활 때문에 아직도 요리할 때 종종 하는 혼잣말.
특히 애슐리 씨가 씻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런 혼잣말했다.
“먼저…계란 지단부터 만들고…”
가장 번거로운 것 중 하나인 계란 지단.
군인 시절 휴가를 어떻게 든 받고 싶어 한식 조리 자격증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계란 지단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비빔밥이 시험 문제였는데 밥이 설익어 결국 떨어지고 말았던 조리 자격증 도전기.
하지만 그때 경험 덕분인지 지단은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
“다음은 우엉 조림하고…”
사람마다 김밥 레시피가 다르지만,
내 김밥 레시피에서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세 가지.
하나는 계란 지단,
다른 하나는 우엉 조림,
마지막은 시금치였다.
어릴 때 뽀빠이를 동경해 시금치를 먹다 보니 그 맛에 길들여 버려진 나.
그래서 캐나다에서도 종종 시금치 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시금치 무침.
그렇다 보니 계란 지단만 만들어내면 간단한 김밥은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었다.
“살짝 데쳐둔 명란젓을 꺼내고…”
찜기에 넣어 둔 명란젓.
사실 해동 시킨 뒤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만 질감은 살짝 데친 게 더 맛있고,
위생상으로도 좋았다.
만약에 그대로 넣으면 명란젓에서 계속 물이 나와 밥이 흥건해지기 일수였고 무엇보다 너무 짠맛이 강했다.
반면, 살짝 쪄주면 명란젓 특유의 톡톡 터지는 느낌과 함께 물이 빠져나가 김밥이 흥건해지지 않았다.
어머니께 배운 노하우.
이렇게 써먹으니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 질 정도였다.
“이제 옛날 소시지만 데치면 되겠다.”
그냥 김밥용 소시지로 부르면 됐지만,
우리 집에서는 항상 옛날 소시지 혹은 주부 11 단으로 불렸기에 이 이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다 준비된 재료들.
미리 만들어 둔 밥을 꺼내 간단한 기본 양념했다.
소금을 살짝 뿌려 밑 간을 한 뒤 뒤적여 고르게 섞이게 한다.
이후 향 좋은 참기름을 잔뜩 뿌려 밥알이 반들거리게 만들면 밥 준비도 끝났다.
이제 김밥만 말면 되는 상황.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바라보았다.
기본 김밥 재료인 옛날 소시지, 우엉 조림, 시금치, 단무지 그리고 계란 지단.
여기에 야채 김밥을 위해 추가로 당근 볶은 것과 오이 채썬 것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잘 쪄낸 명란젓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을 보고 나는 김발을 펼쳤다.
그 위에 올려진 김 한 장.
거친 부분이 안쪽이기에 안쪽으로 향하게 하고 밥을 고루 펼쳤다.
그 위로 올라가는 여러 속 재료들.
그렇게 가장 먼저 기본 김밥이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졌다.
이 위에 참기름을 발라 마무리.
말끔히 잘라 김밥 꼬다리를 맛보았다.
“음…맛있게 됐네.”
재료도 한쪽에 몰리지 않고 고르게 잘 퍼진 상황.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었는데 잘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고소한 냄새가 나네요.”
“아, 애슐리 씨. 다 씻으셨어요?”
“네. 씻고 나오니까 고소한 냄새가 풍겨서요. 무슨 냄새예요?”
“아, 참기름이예요.”
“참기름이면… 세서미(Sesame) 오일 맞죠?”
살짝 놀란 표정을 한 애슐리 씨.
그것도 그럴 것이 캐나다에서는 스킨 케어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 참기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맞아요. 한국에서는 음식에 넣어 먹어요. 그러니까…이건 음식용 기름이예요.”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그녀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냄새가 엄청 고소해요.”
“애슐리 씨에게는 잘 맞아서 다행이네요. 일부 사람들은 싫어하곤 하거든요.”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꽤 강렬한 냄새인 참기름 냄새.
그래서 보통 캐나다 내 한국식 김밥집도 참기름을 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참기름.
어제 애슐리 씨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는데 다행히 그녀에게는 불호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하나 먹어 볼래요?”
“지금 먹어도 되나요?”
눈을 반짝이는 애슐리 씨.
나는 웃으며 남은 김밥 꼬다리를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의 입에 조금 큰 크기의 꼬다리.
하지만 그녀는 한입에 다 넣은 뒤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애슐리 씨의 눈.
그녀는 뭐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밥으로 인해 말하지 못 하는 상황.
그래서 몸이라도 표현하고 싶은지 몸으로 맛있음을 표현하셨다.
오물거리는 입이 멈추고,
김밥을 다 먹은 애슐리 씨.
그녀는 날 바라보며 미리 생각했던 말들을 멈추지 않고 말씀하셨다.
“정말 맛있어요. 이게 어떻게 말해야 하지…아…뭐랄까 이국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맛이었어요.”
“그렇게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애슐리 씨.”
Esl 스쿨, 그러니까 영어 학원을 다닐 때 한 번 만들어 가져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런 호평을 받았다.
정말 맛있다고 말했던 친구들.
당시의 인연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이 오늘 만들 명란 김밥의 재료인 명란젓을 내게 선물한 일본인 친구였다.
그때 친구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애슐리 씨.
확실히 캐나다 사람들 기준으로는 매운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김치보다는 김밥이 선호도가 더 높은 것 같았다.
“평생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이예요. 진짜…이건…”
귀를 바짝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격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다른 김밥도 만드는 족족 애슐리 씨의 입으로 향하는 김밥 꼬다리들.
애슐리 씨는 잔뜩 먹은 김밥 꼬다리 때문에 피크닉을 가기도 전에 벌써 배가 부른 상태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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