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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카페-157화 (157/292)

〈 157화 〉 형제 (4)

* * *

말없이 애플 시나몬 티를 홀짝이는 마크 씨.

나는 카운터에 서서 멀찍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에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제임스 씨를 기다리는 거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쌍둥이 형제처럼 닮은 마크 씨와 제임스.

제임스의 말에 따르면 둘은 정말 친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가족을 떠난 제임스를 그리워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지금 마크 씨가 보이는 행동.

그러니까 자기 가족, 그리고…그중에서 가장 친했고 쌍둥이처럼 지내 왔던 제임스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부디 제임스가 오길 바랄 뿐이예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물론 내가 전화를 걸어서 제임스가 올 수 있지만…그럴 때 마크 씨가 자리를 떠나실수도 있었다.

물론 내 생각.

나는 이 생각을 확인하려 했다.

“애슐리 씨 미안한데 잠시 카운터 좀 맡아 주실수 있나요?”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조심스럽게 마크 씨의 곁으로 다가 갔다.

아침에 오셔서 바쁜 점심시간 그리고 이제 조금 있으면 폐점하는 시간까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마크 씨.

내가 천천히 다가오는 걸 느끼셨는지 날 바라보셨다.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시간인가 보네.”

“아니예요. 그저…마크 씨랑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싶을 뿐이예요. 괜찮으세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 마크 씨.

그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야 고맙지.”

“감사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탁자 앞 의자를 당겨 마크 씨의 앞에 앉았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상황.

나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 시나몬 티는 어떠셨나요?”

“맛있었어. 달고…시나몬의 맛도 좋았지.”

“시나몬 좋아 하시나요?”

그러자 살짝 웃는 마크 씨.

그는 나를 바라보며 친근하게 말을 건네셨다.

“물론이지. 밴쿠버에 정착하기 이전에 살았던 곳에서 즐겼던 유일한 단맛 나는 주전부리였으니까.”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 널리 퍼진 계피는 살짝 매콤한 맛이 특징이지만,

인도와 중앙 아시아 그리고 넓게는 유럽까지 퍼져 있는 시나몬의 경우 단맛이 있었다.

아무래도 마크 씨가 살던 곳은 이런 시나몬을 구할 수 있었던 모양.

그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듯 내게 나지막이 말하셨다.

“오크는 유목민이라서 말이야. 매일 같이 이동해 먹을 것을 찾아야 했거든.”

“그렇군요.”

“그때 운이 좋게 시나몬이라도 발견하면 그걸 나랑 제임스 녀석이 나눠먹곤 했어.”

“시나몬을 생으로 먹을 수 있나요?”

보통은 말려서 가루를 내거나 하는 시나몬.

그러니까 이게 나무에 가깝다 보니 생으로 먹기 쉽지 않았다.

“존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크의 위장은 꽤 튼튼하니까. 단맛만 느껴지면 입을 대곤 해. 이동하는 삶에서는 단맛이 가장 귀중한 맛이거든.”

생존에 대한 고찰이 남아 있는 마크 씨의 한 마디.

당시 마크 씨는 어린 나이였지만 성인 체격으로 자라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빠른 오크이기에 어렸을 때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밴쿠버에 사는 오크들이 다 이렇게 배가 나온 이유야.”

장난스럽게 자기 배를 가리키는 마크 씨.

나는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 세계에서는 먹기 위해 바빴는데…지금은 살기 위해 바빠졌어.”

“이해해요.”

“먹는 건 풍족하지만 대신 많은 게 바뀐 거 같아.”

이후 창밖을 바라보는 마크 씨.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나는 가족에 순응했지만 제임스 녀석은…사랑을 선택했어.”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배가 나온 자신을 바라보는 마크 씨.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셨다.

“처음에는 제임스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지금은 이해할 수 있어.”

“…변화가 생기신 건가요?”

“맞아. 그리고 사실…”

말을 흐리는 마크 씨.

그의 표정에는 어느새 제임스를 똑 닮은 장난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당시 어른들에게 저항하고 자기 길을 선택한 제임스가 멋있어 보였거든.”

“…네?”

“물론 난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에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어. 하지만…뭐랄까…당시의 제임스 주변으로 빛이 나는 거 같았거든.”

“…”

“미안 하네. 늙으니 주책이 늘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미소 짓는 마크 씨.

그는 날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가셨다.

“자네는 정말 친절한 친구야.”

“그렇게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진심이야. 그리고…제임스가 왜 이 카페에 단골이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거 같아.”

“…네?”

“오크는 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어. 그게…꼭 전통적인 삶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야.”

처음 듣는 이야기.

나는 마크 씨로 하여금 오크에 삶에 대해 듣고 있었다.

“오크는 누구보다 외로움이 많은 종족이라 생각해.”

“…”

“그래서 혼자 사는 법을 잘 몰라. 나도 그랬고.”

묵묵히 말을 이어 나가는 마크 씨.

그는 오크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내게 토로하셨다.

“그래서…혼자 사는 걸 선택한 제임스가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르지.”

“하지만…마크 씨는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맞아. 나는 내 사랑스러운 아내와 다섯 명의 쌍둥이를 보는 낙으로 살지.”

“그런데…”

내 말에 미소 짓는 마크 씨.

그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제임스와 내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겠지?”

“…네. 부정할 수 없네요.”

정말 닮은 마크 씨와 제임스.

맨 처음 둘을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둘이 이런 연관 관계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그래서 제임스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내 또 다른 삶을 보여주는 착각마저 들어.”

“그게 마크 씨가 제임스를 이해하는 방법이군요.”

“…맞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마크 씨.

그가 느끼는 감정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제임스를 이해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제임스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마크 씨.

그런 마크 씨였기에 그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베일리 씨라는, 사람과 결혼하길 원하는 제임스를 쫓아낸 가족들과 달리.

마크 씨는 제임스를 이해했다.

“마크 씨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렇게 날 추켜세워도 더 좋은 물건은 가져다주기 힘들어. 이미 가장 좋은 물건을 가져다주고 있거든.”

너스레를 떨며 겸양을 보이는 마크 씨.

나는 그의 말에 미소로 답했다.

“항상 좋은 물건을 가져다주시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 노고를 알아주어서 좋네.”

그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못 배운 오크라 두서 없이 말해서 미안 하네. 아무튼 제임스가 이 카페에 단골이 된 이유는…”

날 바라보는 마크 씨.

내 눈을 마주 보며 말을 건네셨다.

“이 카페 사람들이 제임스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네?”

“이 카페는 묘한 힘이 있어.”

“묘한 힘이라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지. 내가 표현을 잘하지 못하니 이해해주게.”

“아니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마크 씨.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래서…이 카페는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나처럼 이렇게 속에 담아둔 말들하게 만드는 편안 함도 있고 말이야.”

“아무래도 카페가 아니라 상담실을 운영했어야 했나 보네요.”

“나쁜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너스레를 떠는 마크 씨.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이걸 받아 주시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마크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출입문에 매달린 종이 딸랑이는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자연스럽게 나와 마크 씨는 문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우리 카페의 단골이자 마크 씨의 형제인 제임스가 서 있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제임스.”

말없이 테이블로 다가온 제임스.

나는 마크 씨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카운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네요.”

“…내 이야기 들어 줘서 고마워.”

“아니예요. 마크 씨라면 언제나 환영이예요.”

내 말에 미소 짓는 마크 씨.

자리에서 일어서자 제임스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 해. 존. 그리고 고마워.”

“아니야. 음료는…”

그러자 갑자기 생각나는 마크 씨와 제임스의 과거.

나는 그 이야기를 기억해내고는 제임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음료는 아무래도 애플 시나몬이 좋겠지?”

“…마크 형이 다 이야기했나 보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제임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를 마주할 준비는 됐어?”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대사를 태연하게 하지 않아 줬으면 해.”

그의 책망 어린 말.

그 말과 반대로 그의 얼굴은 장난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꽤 괜찮았던 걸로 생각하는데.”

“요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진부한 대사야.”

내 장난에 맞장구를 쳐주는 제임스.

나는 그를 뒤로하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카운터 맡아줘서 고마워요. 애슐리 씨.”

“아니예요. 다행히 제임스 씨가 오셨네요.”

“다행이예요.”

원래 마크 씨에게 다가가 대화를 한 이유.

그 이유가 제임스를 호출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한 대화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카페에 찾아온 제임스.

그가 오자마자 한 말을 되새김질 해 보면 그도 이곳에 마크 씨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형제.

그것도 쌍둥이같이 닮은 형제였기에 서로 통하는 부분도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제 슬슬 애플 시나몬 티를 준비할 생각으로 냉장고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자 내 팔꿈치를 잡아당기는 애슐리 씨.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플 시나몬 티 준비해 두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미소를 지으며 자기 귀를 가리키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내게 보란 듯이 자기 귀를 움직이셨다.

“다 듣고 계셨군요.”

“헤헤…”

“애플 시나몬 티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 애슐리 씨. 서빙은 제가 할게요.”

“알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애슐리 씨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살짝 붉어지는 애슐리 씨의 얼굴.

그 모습이 너무 귀엽지만,

지금은 내 일해야 할 시간이었다.

“애플 시나몬 티 나왔습니다.”

“고마워. 존.”

미소를 짓는 제임스.

그는 애플 시나몬 티를 마시며 자기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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