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형제 (3)
* * *
제임스와 그레이스 씨가 가고 다시 나와 애슐리 씨만 남은 상태.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와 애슐리 씨는 잠시 햇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휴식을 가졌다.
“오늘 제임스 씨가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애슐리 씨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
예전부터 제임스가 우리 카페 단골이고 자주 오다 보니 단골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게는 친구인 존재지만,
애슐리 씨는 제 3 자의 입장이었기에 조금 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은 나와 애슐리 씨 모두 같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모두가 걱정하는 상황.
평소 여러 부침에도 표정이 그렇게 좋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가족에 대한 일이니까요.”
“가족이라…”
잠시 고민에 빠지는 애슐리 씨.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애슐리 씨의 가족에 대해 물어보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시는 애슐리 씨.
그녀는 자기 어린 시절을 기억하려는 듯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토끼 수인도 엘프 만큼은 아니지만 공동육아 개념이 강해요.”
“공동 육아라 함은…”
“일종의 유치원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부모님이 있긴 한데 그렇게 유대감이 강하지는 않아요.”
“아…그렇군요.”
엘프와 비슷한 느낌.
확실히 사는 곳이 비슷하다 보니 생활 양식도 비슷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가끔 그립긴 해요.”
“부모님이나 가족들이요?”
“음…물론 보고 싶은 분들이지만…”
잠시 말을 흐리는 애슐리 씨.
그녀는 웃으며 날 바라보셨다.
“제게 동생이 하나 있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헤헤…사실 동생이지만 피는 섞여 있지 않아서요.”
“아아…”
공동육아.
그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애슐리 씨에게는 부모님 보다는 바로 옆에 있었던 동생 같은 존재를 더 의지하신 모양이었다.
“물론 제가 밴쿠버에 오면서 떨어지긴 했는데…”
궁금증이 많았던 애슐리 씨.
그녀는 포탈을 통해 밴쿠버로 넘어오게 되었고 다시는 가족과 동생을 만날 수 없었다.
“가끔 그립긴 해요.”
잔잔한 슬픔이 있는 애슐리 씨의 말.
나는 그녀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제임스와 마크 씨의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던 애슐리 씨.
그녀는 둘의 관계에서 자신과 자기 동생에 대해 생각한 모양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상황.
애슐리 씨는 그렇기에 누구보다 제임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존 씨는 어때요?”
“저는…음…”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했으니 지금 애슐리 씨의 질문의 의도는 간단했다.
가족이 그립냐는 말.
그 말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립죠. 정말로요.”
“이해해요.”
천천히 내 어깨를 감싸 주는 애슐리 씨.
그녀의 따듯하고 배려심 넘치는 위로에 나는 무언가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강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서로 위로가 필요한 거 같아요. 맞죠?”
싱긋 웃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순식간에 지나간 평일들.
이번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헤일리 씨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고맙게 나와 주신 헤일리 씨.
그녀의 도움으로 화요일과 수요일의 고된 하루가 끝날 수 있었다.
이후 다가온 목요일.
정말 다행히도 큰일이 없었고 그날 도우러 온 헤일리 씨에게 추가적인 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나와 애슐리 씨만 있는 금요일.
늘 그렇듯 아침 카페 문을 열자 찾아오는 제일 첫 손님은 메간 씨였다.
“좋은 아침이구나.”
“좋은 아침이예요. 메간 씨. 잘 지내셨나요?”
“나야 잘 지내지. 물어봐 줘서 고맙구나.”
간단한 인사.
그렇게 늘 앉는 자리에 앉은 메간 씨는 바로 애슐리 씨에게 주문했다.
“오늘도 단 거로 주면 좋겠구나.”
“애플 시나몬 차는 어떠세요? 최근에 실론 시나몬이 들어왔어요.”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애플 시나몬이면 아침을 깨우는 데 충분하지.”
시나몬 커피와 더불어 자주 나가는 가을철 카페 주력 음료.
커피는 물론 홍차와도 잘 어울리는 시나몬 가루는 많은 사람이 잘 알듯 사과와도 잘 어울렸다.
늦 여름 초 가을 쯤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는 사과들.
이 사과들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이대로 사과와 함께 시나몬, 꿀을 같이 넣어 일종의 잼처럼 만들어도 좋았다.
다만 애플 시나몬 잼을 만들 생각은 없으니 우리 카페에서는 애플 시나몬 청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플 시나몬 차.
노스 밴쿠버에 있는 보리스가 햇 사과를 보내주어 만들 수 있었다.
“보리스가 보내 준 햇 사과로 만든 애플 시나몬 차라서 맛있을 거예요.”
“보리스라면 그때 인디언 암 근처에서 캠핑장을 하는 친구 말하는 거로구나.”
“맞아요. 고맙게도 최근 올리비아의 파티에 가족들과 같이 와 주었구요.”
늘 도움을 주는 보리스.
주말에 가장 바쁠 때에도 올리비아의 성인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와주기도하고 종종 이렇게 질 좋은 사과나 포도 같은 제철 과일을 보내 주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세르비아 인들은 집에 무조건 사과 나무를 기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했다.
세르비아 계 캐나다인 인 보리스.
그의 아버지가 내전으로 인해 캐나다로 이민을 왔지만,
그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아들인 보리스에게 계속 알려 주신 덕분에 보리스도 사과 나무를 기르는 취미가 생겼다고 한다.
“올해 첫 수확 된 사과로 만든 애플 시나몬 티라…꽤 기대되는 구나.”
“여기 애플 시나몬 티 나왔습니다.”
메간 씨 앞에 나온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티.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하시고는 미소를 지으셨다.
“살짝 알싸한 느낌이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구나.”
마치 드라마 속 임금님의 음식 감상평처럼 말씀하시는 메간 씨.
나는 그녀의 칭찬에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칭찬 감사해요.”
메간 씨는 미소를 지으며 내 감사 인사를 받아주셨다.
“저 메간 씨…”
“무슨 일이냐 애슐리.”
“혹시 살짝 높은 의자 필요하신가요?”
“음…혹시 내 화염 주머니를 걱정하는 게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메간 씨는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셨다.
“오히려 이렇게 받칠 수 있으니 더 편안하게 느껴진단다.”
자기 화염 주머니를 가리키는 메간 씨.
나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녀의 화염 주머니를 볼 수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큰 규모(?)를 자랑했던 메간 씨의 화염 주머니.
하지만 아직도 성장기인 그녀의 화염 주머니는 최근에 있었던 탈피를 통해 더욱 커졌다.
그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바가 그녀의 가슴을 받쳐주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모습.
메간 씨의 가슴이 크다는 건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확실하게 알려 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가끔 점심시간에 졸릴 때 베개 대신 사용해도 꽤 괜찮더구나.”
“아, 그렇군요.”
애슐리 씨와 메간 씨의 말도 안 되는 대화.
나는 그 둘의 대화 속에 끼어 뭐라 말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화염 주머니에 대한 대화.
이렇게 대화를 하던 도중 메간 씨가 친구이신 그레이스 씨에게 제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듣자 하니 꽤 안타까운 이야기더구나.”
“맞아요.”
제임스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메간 씨.
저번 파티 이후 참여 하신 분들의 사이가 더 긴밀해져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들이 꽤 오갔다.
누군가에 대한 걱정.
이런 것들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타나야와 라피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밴쿠버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이런 일을 자주 겪는 모양이군.”
“비단 이 종족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민자 가족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사랑을 찾아 가족을 떠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볼 수 있군.”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녀는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제임스를 도울 좋은 생각이 있을까?”
“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그녀의 질문.
그것도 그럴 것이 당사자가 아닌 제 3 자인 우리가 그들의 일에 개입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다양한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누군가를 돕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당사자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허락받지 않고 행동한다면 그게 과연 도움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선뜻 움직이기 어려울 거 같아요. 더군다나 제임스의 개인적인 일이니까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녀는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납득하셨다.
“대신 제임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려고 해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드는 구나.”
미소를 짓는 메간 씨.
그녀는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
그 방법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따듯한 음료를 건네준다.
그게 전부였다.
언제나 이 방법으로 성공했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었다.
“그럼 나중에 이야기하자꾸나.”
“다음에 또 오세요.”
자리를 일어서는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애슐리 씨에게 손 인사를 건네고 카페를 떠나셨다.
다시 비어 버린 카페.
나는 메간 씨가 앉았던 자리를 뒷 정리 하기 위해 카운터로 나갔다.
그때 열리는 문.
나는 고개를 돌려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마크 씨?”
“이런 차림으로 여기에 온 건 처음이라 어색하군…”
머쓱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마크 씨.
그는 평소 입고 다니셨던 작업복이 아닌 그의 평상복으로 우리 카페를 찾아와 주셨다.
파란색 카디건과 안에 받쳐 입은 골프 셔츠.
그리고 등산복 바지까지.
어떻게 보면 한국의 어르신들의 패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상복.
작업복을 입은 마크 씨는 자주 보았지만,
이런 평상복을 입은 마크 씨를 처음 보았다.
“어서 오세요. 마크 씨.”
마크 씨에게 인사를 건네는 애슐리 씨.
그는 모자를 벗은 뒤 살짝 고개를 숙여 애슐리 씨의 인사를 받았다.
“방금 괜찮았나?”
“네, 물론이죠.”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장난기가 있는 마크 씨.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오셨다.
“오늘 좀 카페에 오래 있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물론이죠. 마크 씨라면 환영이예요. 혹시 음료 필요하시나요?”
“음…”
고민에 빠지는 마크 씨.
그는 카페 메뉴판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셨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런 카페를 자주 다니지 않아서 말이야. 잘 모르겠어.”
“괜찮아요. 마침 이번에 맛있는 애플 시나몬 차를 만들었는데 한 잔 하시겠어요?”
“그거 좋지.”
미소를 짓는 마크 씨.
그는 구석에 자리를 잡으셨다.
늘 물건을 옮기느라 상처 많고 갈라진 그의 손.
그 손 옆에 있는 다소 해진 모자.
말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가만히 앉아 계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