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55화 (155/292)

〈 155화 〉 형제 (2)

* * *

카페에 있는 두 명의 제임스.

아니 마크 씨와 제임스는 마치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임스.”

“…마크 형?”

떨리는 목소리.

나는 늘 여유만만 하던 제임스의 목소리가 저렇게 떨리는 걸 처음 들었다.

제임스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그레이스 씨.

그녀는 지금 분위기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는 제임스의 곁에서 멀어져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조금 심각한 분위기인 거 같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정말 아무 말도 없는 제임스와 마크 씨.

마크 씨는 정말 제임스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문밖으로 나갔다.

“마크 형.”

“…네가 건강하게 있는 거 봤으면 됐어.”

“…”

그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나가신 마크 씨.

제임스는 말없이 창문밖에 자기 형을 바라보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요…”

남의 이야기를 제 3 자가 말하기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상황.

그래서 간단한 제임스의 지금 상황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형제가 있거든요.”

“조금 전 그 판박이 같았던 오크 말이지?”

“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고 들었어요. 그런데…음…”

“뭔데?”

“제임스와 마크 씨는 둘 다 우리 카페에 자주 오거든요.”

“그런데 지금 만났다?”

“맞아요.”

정말 처음 있는 일.

이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물건 주문하는 날이면 제임스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그리고 마크 씨를 부르더라도 보통은 낮에 끝나는 상황.

카페에는 주로 오후 시간 다 돼서 오는 제임스 였기에 마크 씨와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바뀐 루틴.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게 그레이스 씨와의 미팅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인해 그레이스 씨의 회사를 오가는 제임스.

그렇기에 이 시간에 자주 우리 카페를 방문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생긴 오늘같은 해프닝.

제임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카운터로 다가와 그레이스 씨 옆에 앉았다.

“위로가 필요해?”

그레이스 씨의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어색하게 웃는 제임스.

평소의 그가 짓는 그런 표정이 아닌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은 표정이었다.

“제임스. 괜찮아?”

“이야기하다 보면 풀릴 거 같아.”

그러면서 속마음을 토로하는 제임스.

그 옆으로 애슐리 씨가 그를 위한 음료를 내어왔다.

“평소 드시지는 않는 초코 음료인데…지금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애슐리 씨의 세심한 배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임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애슐리 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세심한 배려 고마워요. 애슐리 씨. 위로가 됐어요.”

“아니예요.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고 싶어요.”

“이건 저와 형,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일이라서요…”

말을 흐리는 제임스.

그 모습에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네가 늘 하던 말이 있잖아.”

“무슨 말?”

“말하다 보면 풀린다고.”

“그건 내가 한 말 아니야?”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 말에 그녀도 이런 말을 한 것 같아 머쓱해졌다.

“푸흡.”

이걸 바로 옆에서 본 제임스.

그는 살짝 웃음을 짓더니 다소 풀린 표정으로 나와 그레이스 씨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게 이 카페 내에서 형을 만나서 다행이예요.”

“무슨 말이야?”

“만약 길거리나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저는 완전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르니까요.”

“믿어지지 않는데. 그 제임스가?”

“그만큼 제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덤덤히 말하는 제임스.

그 모습에 그레이스 씨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다 들어 줄게 말해 봐.”

“그레이스 씨가 누나예요?”

내 말에 웃음을 짓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날 바라보았다.

“너무 토 달지 마 존. 이럴 때는 연장자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아니 제 말은…”

“다들 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임스의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나와 그레이스 씨 그리고 애슐리 씨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이야기하기 조금 걱정이 앞섰는데 말해야 할 것 같네요.”

“좋은 생각이야.”

제임스의 결정에 맞장구를 쳐주는 그레이스 씨.

나도 그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제임스의 결정을 존중했다.

“잘 생각했어요. 제임스 씨. 이런 건 말로 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애슐리 씨.”

마지막으로 애슐리 씨의 걱정 어린 말까지.

힘을 얻은 제임스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 *

5 년 전 밴쿠버에 열린 대규모 포탈.

그 포탈을 타고 넘어온 존재들 중에는 자기 의사로 넘어온 존재들도 있지만 아닌 존재들도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오크.

출생률이 높고 아이도 금방 자라 그들이 살던 세계에서는 그들을 지탱할 식량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식량을 찾기 위해 유목 생활하는 이들.

그런 이들은 식량을 찾기 위해 포탈을 넘어왔고 그들이 만난 건 밴쿠버, 캐나다라는 거대한 도시였다.

식량이 넘치고,

전쟁이나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장소.

이런 곳에 정착한 오크들은 빠르게 이 세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저희 가족도 그중 하나였어요.”

“오크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여기서 시작하지.”

그레이스 씨의 맞장구.

그녀의 맞장구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원래 가족이라는 개념이 강한 오크들은 이때부터 부족에서 갈라져 ‘가족’만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러 오크들이 모인 부족.

그 부족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크다 보니 캐나다 정부에서는 이들은 가족 단위로 묶어 버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부족으로 움직일 경우 너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실행된 분류 작업.

원래 오크들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개념이 강하긴 했지만,

부족이라는 상위 개념이 있었기에 모두 가족이란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가 이어진 존재만이 가족이라는 걸 여기 와서 알게 된 거죠.”

사람들에게 있어서 흔한 가족이라는 개념.

그러니까 피가 이어져야만 가족이라는 개념을 밴쿠버에 도착해서 깨달은 오크들은 부족이란 거대한 개념을 버리고 가족에 집착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가족을 중요시 여긴 고블린과는 상반된 느낌.

어떻게 보면 공동체 의식으로 대표되는 토끼 수인의 달이나 엘프의 세계수 같은 느낌이었다.

“큰 테두리에서 벗어난 오크 가족들은 이 세상에 믿을 건 가족 밖에 없다는 생각하게 되었어요.”

흔한 이민자 가족들의 모습.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국계 이민자나 인도계 이민자들과 같이 가족 우선 주의로 변모했다.

다른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중국계와 인도계 이민자들이 유독 이런 경향이 강했다.

나 자신보다는 가족에 중점을 두는 경향.

그러니까 예전에 타나야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성공해 가족을 부양하자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느낌이었다.

“저는 그게 싫어서 가족을 … 배신 했죠.”

“아니야. 넌 베일리 씨와…”

내막을 알고 있는 나.

오크가 아닌 인간과 결혼하고 싶다는 제임스를 그의 가족이 받아 주지 않았다는 건 그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가족을 배신한 것도 사실이니까.”

“…제임스.”

가족 회사에서 근무 중인 마크 씨.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랑을 찾아서 가족을 떠났다는 그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 가족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일하고 싶다는 제임스의 감정.

그리고 가족과 자기 성공을 전부 나눠나 한다는 점 등등.

복합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가장 큰 기폭제는 역시나 베일리 씨 문제였다.

히스패닉과 퍼스트 네이션 혼혈인 베일리 씨.

그녀는 경찰관으로써 사회 안전에 기여하는 정말 멋진 분이셨다.

그런데 단지 그녀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허락 받지 못한 제임스.

물론 동거라는 형태의 사실혼 형태지만 사실상 결혼과 마찬가지인 캐나다였기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임스의 가족은 이를 거부했다.

오크는 오크 끼리.

가족의 규율에서 벗어났다는 이유.

결국 제임스는 가족을 떠나 베일리 씨를 선택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네.”

“그렇게 공감해 줘서 고마워요. 그레이스 씨.”

머쓱하게 웃는 제임스.

그 모습에 그레이스 씨는 격한 감정 때문인지 선뜻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사랑을 위해 가족을 떠난 제임스.

그가 가족을 싫어하거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닌 사랑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포기했을 때 그는 홀로 떨어진 기분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자신이 살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

밴쿠버, 캐나다라는 인간들이 세운 문명 사회에 편입된 오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났을 때의 그 공허함을 너무나도 두려워했다.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많이 슬퍼하긴 했어요.”

“그거야…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 모두가 잘 아니까.”

가족.

점점 1 인 가족이나 2 명만 사는 형태의 가족 형태로 변화하는 인간 사회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관계는 중요했고 가족이라는 관계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관계였다.

자신이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관계.

물론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가족이 주는 심적 안정감은 많은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행이 그 당시에 제 곁에는 베일리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제임스.

나는 그의 시선을 받자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존도 있었으니까요.”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조금 부담스럽네.”

내 말에 웃음을 짓는 제임스.

그는 이야기하면서 많이 누그러졌는지 예전 같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에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름 단골인데?”

“네네, 물론입죠.”

“쳇.”

장난스럽게 투덜대는 제임스.

그 모습을 보니 제임스가 마음이 안정된 거 같아 마음 한 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제임스 씨.”

“네? 애슐리 씨?”

애슐리 씨의 조심스러운 말에 애슐리 씨를 바라보는 제임스.

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마크 씨가 형이신거죠?”

“맞아요. 제 친형이죠. 물론 그 위로 형들도 많지만…마크 형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사실 친구 같이 지냈어요.”

“어쩐지…”

“둘이 완전 닮았다고 생각하신 거죠?”

“헤헤…네.”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던 생각.

마크 씨와 제임스가 너무 닮아 혹시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쌍둥이는 아니예요. 그래도 둘이 같은 방을 쓰고 어린 시절 같이 지냈으니…뭐 거의 쌍둥이처럼 지내긴 했네요. 하하.”

그 시절을 추억하듯 천천히 말하는 제임스.

그의 눈에는 그리움이 맺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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