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21화 (121/292)

〈 121화 〉 죄와 벌 (5)

* * *

한 여자와 한 남자.

둘의 모습은 사람에 가까웠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종족이었던 둘.

둘은 그 차이를 모를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였다.

서큐버스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그런 서큐버스를 사랑한 한 남자.

둘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 갔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둘의 사랑.

하지만 이 사랑의 끝은 누구나 알 수 있듯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발단은 단 하나.

그를 괴롭히는 존재들에 의한 것이었다.

젊은 대학생이었던 남자는 왕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어느 허름한 집에 세를 들어 살았었다.

그 집의 주인은 성격 나쁜 여주인과 그녀의 딸.

둘은 사사건건 남자를 괴롭혔으며 남자는 부족한 돈 때문에 그 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핍박.

그런 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사랑과의 미래를 위해 참고 버텼다.

왕국의 대학에서 졸업만 한다면,

지방에 관리로 취직해 그녀와 같이 살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 만으로 그는 버텨 왔다.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는 구박과 핍박.

그 남자가 결국 이성의 끊을 놓고 두 여자를 죽이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여자를 창녀라 모욕하는 여자들.

그리고 그런 여자를 방에 들이지 말라고 하는 여주인.

남자는 집주인에게 사정도 해 보고 자기 여인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둘은 오히려 그런 남자의 말꼬리를 잡으며 더 괴롭혔다.

그때 남자가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은 사람으로서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데 무자비하면서 괴롭히는 걸 즐기는 사람들.

남자는 도끼를 들어 두 여자의 목을 베었고 정신을 차렸을 무렵 자기 손에 물든 피를 볼 수 있었다.

살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죄.

남자는 살인을 하고 말았다.

늘 그렇듯 힘겨워하는 남자를 보러 온 여자.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잘려 진 두 여자의 머리와 그사이에서 무릎 꿇은 채 절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손에 묻은 피를 그저 바라보고 있는 남자.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 하는 남자.

그 남자의 눈은 공허했으며 연인의 부름에도 망가진 인형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살인한 남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남자를 데리고 집에서 나온 여자.

그 여자는 망가져가는 남자를 어떻게 든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무너져 내리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몽마의 힘.

그가 바라던 꿈을 꾸게 해주는 것.

여자는 이렇게라도 남자를 붙잡아 두면 그가 되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가 바라는 꿈을 꾸게 해준다면…

현실에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꾼 꿈은 그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바라던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오두막.

그 오두막에서 웃고 있는 남자와 여자.

남자는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 왔고,

여자는 남자가 일하는 동안 그와 닮은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화목한 가정.

남자는 나무를 한 무더기를 가져와 오두막 앞에 쌓아 두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고생했다며 환영해 주었다.

거친 손이지만 아버지의 손이기에 달려드는 아이들.

남자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녁 식사.

배부른 식사 이후 볼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잠든 아이들.

어른들의 시간이 왔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정말 꿈 같은 이야기.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이 연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할 뿐이었다.

누구나 바라는 평범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이 남자가 꿈꾸던 미래였다.

그렇게 정성으로 남자를 보살피던 여자.

침대에 누워 자신이 만들어 준 꿈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남자.

영원할 것 같은 이 이야기도 결국 끝에 도달했다.

원래 정기를 흡수해 꿈을 만들어내던 여인.

하지만 살인자가 되어버린 남자를 숨기기 위해 숨어 지내다보니 정기를 얻을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기를 얻고 싶지 않았던 여인.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남자에게 보여 주었던 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현실로 돌아온 남자.

그 남자는 자기 연인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남자.

이내 남자의 얼굴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았던 것이 거짓이라는 걸 깨닫게 된 남자.

그리고 자신이 그저 살인자라는 걸 깨달은 남자.

그 남자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남자를 설득하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설득하는 여자.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감옥에서 복역하더라도 언제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여자를 바라본 남자.

남자는 공허한 눈이었지만 여자의 끈질긴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잘 됐다고 믿은 여자.

여자는 마음을 바꾼 남자가 감옥에서 잘 생활할 수 있게 따듯한 옷을 사기 위해 잠시 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와 남자의 보금자리.

그 자리에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남자의 시체만이 공허하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

“수백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막상 이렇게 이야기하니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나는 말없이 헤일리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품어왔던 과거.

그 과거 속 헤일리 씨는 자기 연인이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것을 볼 수밖에 없는 비운의 여인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존 씨에게 지난 일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저도 사실 오랜 시간 방황을 했어요.”

침착한 헤일리 씨.

그녀는 마치 자기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처럼 나지막이 말했다.

“연인을 잊은 건 아니지만…그때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일.

나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그저 관객에 불과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존 씨는 제 연인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제가요?”

“그도 제 체취에 현혹되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거든요.”

살짝 웃는 그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

헤일리 씨 역시 메간 씨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이었다.

내게 흥미를 느끼는 그녀.

헤일리 씨가 내게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이제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몽마의 힘을 쓰지 않는 이유도…”

“맞아요. 저는 이 힘을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자신이 자기 연인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헤일리 씨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에라도 자신이 그때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그의 곁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

그녀가 몽마의 힘을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이곳으로 자의로 넘어오신 건가요?”

실리카 씨와 메간 씨 같은 사람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 포탈을 넘어온 사람들.

헤일리 씨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건 아니예요. 사실… 스스로 삶을 끝내려고 했어요.”

“…네?”

덤덤하게 말하는 헤일리 씨.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내가 들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예요. 이 세상이 마음에 들거든요. 무엇보다…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도 있구요.”

살짝 웃는 헤일리 씨.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이야기 인가요?”

“빨리 죽고 싶으면 레드 드래곤의 앞에 서서 도마뱀이라고 말해라.”

“…”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하지만 메간 씨나 지금까지 봐 왔던 레드 드래곤 분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야기였다.

“제가 레드 드래곤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몽마였기에 저는 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존재였거든요.”

“그렇군요…”

자기 목숨 마저 스스로 끊어 낼 수 없는 존재.

나는 그 당시 헤일리 씨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드래곤에게 꽤 모욕적인 말로 취급받는 듯한 도마뱀이라는 말.

사람으로 치면 욕설에 가까운 말이다 보니 반신에 가까운 드래곤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설마 정말로 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저는 레드 드래곤 중에 가장 사악하다는 용이 산다는 곳으로 향했어요.”

어딘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

나는 이 알 수 없는 느낌이 제발 틀리길 바랐다.

“원래 왕국의 수호룡이었지만 악룡이 되어서 왕국을 없애버린 악룡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죠.”

“…”

점점 파래는 내 얼굴.

하지만 헤일리 씨는 이야기에 심취 하셨는지 내 표정을 보지 못하셨다.

“저는 결국 그 악룡 앞에 섰고 도마뱀이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어떻게 되셨나요?”

“악룡은…반응조차 하지 않았어요.”

내가 유추할 수 있는 이유.

악룡이 왜 그녀를 처리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이 세상에서 마음이 떠난 레드 드래곤.

그녀는 이미 자기 둥지를 정리하고 다른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알려진 포탈에 마음이 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악룡은 절 무시하고 그대로 사라졌고 저는 오기가 생겨서 그 악룡을 뒤쫓았어요.”

“그래서…밴쿠버로 오시게 된 건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조금 난감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내 예상이 맞다면…

헤일리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 찾아간 존재는 내가 잘 아는 드래곤인 게 분명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상황.

나는 잠시 내 양심을 올려 두고 저울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끝난 저울질.

내 결론은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것으로 기울었다.

오전에 오는 메간 씨.

그리고 바쁜 시간에만 오실 예정인 헤일리 씨.

둘이 만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했다.

추가적으로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한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 전에 면접을 보기 위해 우리 카페에 온 헤일리 씨.

그때 마침 스치듯이 메간 씨와 헤일리 씨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서로를 보고도 몰랐던 이들.

물론 오늘 헤일리 씨가 말한 이야기를 메간 씨가 듣는다면 바로 눈치를 채겠지만,

일단은 내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서로 모르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었다.

일종의 하얀 거짓말.

물론 메간 씨가 이곳에서 헤일리 씨를 어떻게 하지는 않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하는 사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헤일리 씨.

그녀는 날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고마워요. 존 씨.”

“네?”

“제 이야기를 들어 줘서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사소한 일이지만 이것이 가진 힘을 몇 번 본적이 있는 나는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수백 년이 지나 그녀의 기억 속에서도 바래진 이야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기억을 기억하고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화함으로서 평안을 얻은 그녀.

나는 이렇게라도 헤일리 씨에게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결한 존재에 의한 구원을 받은 느낌이네요.”

“네?”

전혀 알 수 없는 헤일리 씨의 이야기.

내가 영어가 부족한 건지 아니면 그녀가 너무 어려운 철학적인 이야기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예요. 이제 슬슬 들어가요.”

살짝 웃는 헤일리 씨.

나와 그녀는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돌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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