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18화 (118/292)

〈 118화 〉 죄와 벌 (2)

* * *

마주 보고 있는 상대.

오늘 면접을 보러 온 헤일리 씨였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세미 정장과 단정한 머리.

머리에 달린 뿔과 악마 꼬리만 없다면 영락 없는 사람과 같은 외모의 헤일리 씨였다.

포괄적으로 보면 악마족에 속하는 서큐버스.

캐나다 밴쿠버에 포탈이 열렸을 때 넘어온 종족 중에 악마족들이 있었고,

이 악마족이라는 큰 분류에 속한 종족이 서큐버스, 그러니까 몽마족이었다.

여성은 서큐버스.

남성은 인큐버스.

양쪽 다 선남선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있어서 몽마라는 존재들은 좋은 존재가 아니었기에 이들을 오해하거나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기를 빼앗는 일.

물론 헤일리 씨의 말에 따르면 그런 짓(?)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체재를 이용해서 해결한다고 하셨다.

사람이나 다른 종족처럼 식사하는 몽마족.

그렇기에 사람들의 망상 속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처럼 육욕을 탐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오늘 카페에 면접 와 주셔서 감사해요. 갑작스럽게 어제 연락 드린 건데 이렇게 준비해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헤헤. 레쥬메를 많이 쓰다 보니 금방 만들 수 있었어요.”

머쓱하게 웃는 헤일리 씨.

아무래도 파트 타임 잡에 있어서 경험이 많다 보니 쌓인 노하우가 많으신 모양이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레쥬메.

한국에서 이력서로 불리는 이 양식은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력서 사진이 없는 이력서였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런 이력서 형태가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캐나다의 경우 이름과 성별, 이메일 주소, 연락처 등 간단한 정보만 기입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요즘 추세에 맞춰 성별을 기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인 헤일리.

그리고 이메일 주소와 연락처.

이걸 확인하고 이어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장점 부분을 바라보았다.

“파트 타임 경력이 엄청나신데요?”

“아무래도 제가 이 종족이다 보니 학비를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했었어요.”

“그렇군요…”

정말 많은 경험들.

짧게는 한 달 동안의 레스토랑 서버 파트 타임도 있었고,

길게는 2 년 동안 리서치 회사에서 설문조사 요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었다.

그중 눈에 밟히는 특이한 경력.

클럽에서 일한 경력이 눈에 보였다.

“클럽에서도 일하셨네요?”

“사실 그걸 적을까 고민했는데…아무래도 넣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클럽에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 역할을 했어요.”

“그렇군요.”

“카페 경력도 있지만 클럽에서 바텐더로 일한 경력보다는 적어서요. 헤헤…”

그녀의 말처럼 카페에서 일한 경력보다는 클럽에서 바텐더로 일한 경력이 더 길었다.

물론, 클럽과 카페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고객 대응 능력이나 임기응변 같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면접이니까…이대로 끝내기는 조금 그러니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면접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헤일리 씨.

그렇다 보니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셨다.

“혹시 저희 카페에 일하는 걸 결정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조금 낯부끄러운 이야기.

어제 내가 직접 연락해 일해 달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면접이다 보니 이 질문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헤일리 씨.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카페 일을 배우고 싶어서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라도… 카페를 차리고 싶어요.”

“구체적인 대답이시네요.”

정석적인 대답을 하신 헤일리 씨.

물론 정말 정석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

“면접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혹시 언제부터 일하실수 있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제가 이전에 일하는 곳의 인수인계가 다 끝나지 않아서요. 혹시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다음 주부터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교육이라고 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 낮 시간에 카페에 대해 전반적으로 교육을 할 생각이예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다음 주 수요일 날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다음 주 수요일 아침 9 시에 출근해 주시면 됩니다.”

“헤헤. 감사해요.”

내게 손을 내미는 그녀.

나는 헤일리 씨의 손을 맞잡았다.

이로써 모든 절차는 끝난 상황.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난감할 정도였다.

“너무 일찍 끝난 거 같죠?”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헤일리 씨.

나는 그녀의 말에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는 15 분 정도 생각했는데 5 분도 안 걸렸네요.”

보통의 면접 시각은 15 분에서 20 분.

이 보다 더 짧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이 정도의 면접 시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보통은 자기소개 이후 자기 특기 같은 것을 말하고,

이어서 회사에 대해 물어보는 등의 면접 절차.

하지만 내 경우에는 내가 헤일리 씨에게 직접 요청을 드린 부분도 있어서 이 정도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럼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아, 그렇군요. 하하... 제가 면접관으로는 경험이 없다 보니…”

보통은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이 으레 하는 말.

혹시나 궁금한 점이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걸 까먹었다.

“괜찮아요. 제가 여기서 일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하게 되는 건가요?”

“사람이 붐빌 때 오셔서 카페 정리 역할하실 거예요. 아무래도 저희 카페는 픽업도 많지만 카페 내에서 드시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요.”

정확하게는 지금 올리비아가 하는 일.

카페 전반의 위생과 청결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 바쁘면 카운터 일도 해야 하구요.”

한 번에 10 잔 정도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점심시간.

그럴 때 나와 애슐리 씨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헤일리 씨가 계산대를 맡는 건 아직는 무리이니 애슐리 씨를 도와 음료를 만드는 일을 도울 예정이다.

“그렇군요. 카페 일 경험이 있긴 한데 그쪽은 프렌차이즈여서요.”

그녀의 이력서에서 본 경력.

그곳에는 별다방 캠비 스트리트 점이라는 정보와 함께 근무했던 매니저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정보.

경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전 회사의 상관의 이름과 연락처를 기입하게 하는 회사들이 꽤 있었다.

물론 내 경우에는 직접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파트 타임 경력이 많은 헤일리 씨였기에 이렇게 알아서 적어 오신 모양이었다.

“프렌차이즈 카페 하고는 조금 다를 거예요.”

별다방의 경우에도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음료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 카페 만큼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손님의 다양한 취향에 맞춘 다양한 음료 들.

이 모든 것을 구비하는 우리 카페에서는 메뉴에 없는 메뉴가 엄청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제임스의 프로틴 음료.

원래는 그저 프로틴만 들어가는 음료지만 여기에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재료가 추가 되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군요?”

살짝 걱정하는 듯한 헤일리 씨.

나는 그녀를 겁먹게 한 것 같아 그녀를 진정시켰다.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애슐리 씨도 한 주 만에 적응하셨으니까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헤일리 씨.

그녀에게 애슐리 씨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질문이 더 있을까요?”

“음…지금은 없어요.”

“나중에라도 생기면 말씀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헤일리 씨.

나는 이렇게 면접을 끝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헤일리 씨.

그녀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저에게 궁금하신 점은 없으신가 해서요.”

“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

막상 내가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문득 든 생각.

그녀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궁금했다.

“괜찮으시다면 밴쿠버에 오시기 전의 삶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니까 포탈을 너머 오기 전의 삶을 이야기하시는 거죠?”

“네, 만약 부담 되신다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즉흥적으로 생각난 질문.

그녀의 질문 요청에 생각난 질문이 이것뿐이라 이런 질문했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부담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말하고 뒤늦게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어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헤일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서큐버스예요. 그건 잘 아실거로 생각해요.”

그녀의 외모로도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그녀의 종족.

맨 처음 헤일리 씨를 봤다면 다른 악마족과 헷갈릴 수 있지만,

그녀를 단골로서 오랜 시간 보아왔기에 서큐버스와 다른 악마족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하트 모양의 꼬리.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체취.

이런 것들이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걸 바로 알려 주는 특징 들이었다.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엄청 좋지 않은 일이지만…서큐버스로서 할 수 있는 일하고 지냈어요.”

“아…”

바로 눈치챌 수 있는 일.

나는 헤일리 씨의 말로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저 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끔 현실에 영향을 주곤 해요.”

몽마의 일.

헤일리 씨는 과거를 회상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게 좋은 일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아닐 때가 많죠.”

“제가 실례 했어요.”

그녀에게 미안한 기색을 표하자 그녀는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니예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예요. 사실 이걸 오랜 시간 동안 말할 사람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존 씨 덕분에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제 이야기는 아무래도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살짝 웃는 그녀.

내 미안한 기색을 본 그녀는 말을 아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자리를 일어서는 헤일리 씨.

평소와 같은 표정이지만 나는 그녀에 대한 미안 함에 좀처럼 표정을 바꿀 수 없었다.

“다음 주 수요일 날 뵐게요. 아 참, 그전에 시간이 비면 연락 드릴게요.”

“오늘 와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혹시 가시기 전에 음료 한 잔 하시겠어요?”

“괜찮아요. 그건 다음에 마실게요.”

살짝 웃은 그녀.

그녀는 그 말을 뒤로하고 면접한 방에서 나가셨다.

* * *

“존의 표정이 좋지 못하구나.”

날 걱정해 주시는 메간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혹시 아까 그 면접 때문에 그런 것이냐?”

“네, 맞아요.”

그녀의 질문 요청 때문에 한 말이지만,

내 경솔함에 그녀의 좋지 못한 기억을 되새김질 하게 한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한 게냐?”

“면접 내용이라 말해드리기 어렵네요…”

“흐음…그저 내가 네 얼굴을 보고 유추한 것뿐이다만…서큐버스들은 각자 그런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단다.”

“…”

“몽마인 그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죄를 짓는 존재 들이지.”

“다시 말씀드리는 거지만 관심법이라도 배우셨나요?”

“나도 다시 말하지만 네 얼굴에 다 드러나서 알 수 있는 거란다.”

나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정말 메간 씨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행동.

이 행동을 본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간 씨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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