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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카페-117화 (117/292)

〈 117화 〉 죄와 벌 (1)

* * *

애슐리 씨의 사랑 가득한 블루베리 샐러드를 먹고 출근한 아침.

내 근처를 맴돌며 싱긋 웃고 있는 애슐리 씨를 보면 살짝 겁이 날 정도였다.

고작 하루 동안만 블루베리를 먹은 것 뿐이지만,

그 양이 엄청났기에 이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내 기억력을 회복(?) 시켜주겠다는 애슐리 씨의 당찬 포부.

물론 좋은 의도이기에 내가 그녀의 자애로운 손길에서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내 눈에 들어온 올리비아.

그녀 또한 엉겁결에 같이 블루베리를 잔뜩 먹게 되었다.

그 덕분에 푸릇푸릇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입술.

나는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귀여워서 올리비아를 볼 때마다 웃음이 삐져나왔다.

“아저씨도 마찬가지거든요?”

내게 다가온 올리비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말을 장난스럽게 넘겼다.

툴툴대는 그녀.

나는 그런 올리비아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둘 생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성인이 되어 리암 씨의 카페로 돌아가는 올리비아.

그녀도 아쉬운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딸랑.

“어서오세요. 메간 씨.”

아침마다 찾아오는 손님.

오늘도 카페에서 갓 내린 커피를 사러 오신 메간 씨.

늘 그렇듯 그녀가 우리의 첫 손님이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존…응?”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메간 씨.

그리고는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웃음을 터트리셨다.

“입술이 왜 파래졌느냐?”

웃음기 가득한 그녀의 말.

나는 애슐리 뒤에 있는 애슐리 씨를 가리켰다.

“애슐리?”

“네, 제가 요즘 기억력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제 하루 종일 블루베리를 줬거든요.”

“하하. 그게 네가 입술이 파래진 이유구나.”

“치아가 파래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 정도에요.”

정말 많은 양의 블루베리.

나는 애슐리 씨가 손이 그렇게 큰 지 처음 알았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커플이로구나. 후후.”

“감사해요. 오늘은 무슨 커피로 하시겠어요?”

“음…오늘은 이탈리안 로스팅한 아라비카로 만든 에스프레소가 먹고 싶구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침 좋은 원두가 있어요.”

마침 콜롬비아 산 원두로 이탈리안 로스팅한 것이 있어 이걸 사용할 생각이 들었다.

보통 풀시티 아니면 프렌치 로스팅을 선호하는 사람들.

대규모 프렌차이즈 점에서는 프렌치 로스팅을 주로 사용하기에 시중에서도 풀시티나 프렌치 로스팅이 된 원두를 구하기 쉬웠다.

이에 반해 조금 구하기 어려운 이탈리안 로스팅.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다 보니 특별히 주문을 넣지 않으면 따로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탈리안 로스팅.

프렌치 로스팅이 8 단계 쯤이라고 하면 이탈리안 로스팅은 9 단계에 속하는 완전히 로스팅된 원두를 뜻했다.

아라키바 품종의 특징인 복합적인 맛과 입에 감기는 신맛 그리고 은은한 단맛.

자극적인 쓴맛이 특징인 이탈리안 로스팅.

이 로스팅으로 잘 만들어낸 아라비카 품종의 원두.

두 개의 특징이 뒤섞인 덕분에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에스프레소로 마신다면 초반의 그 쓴맛 때문에 다양한 맛을 즐기기 어렵지만,

먹다 보면 묘한 신맛과 입안에 감도는 은은한 탄 맛과 뒤섞인 단맛을 즐길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처음에는 쓰지만 뒷맛은 깔끔하고 카카오 99%가 들어간 초콜렛 같은 깔끔한 단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맛있게 만들어낸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잔에 담아 메간 씨에게 내어드렸다.

“향이 좋구나.”

“그렇죠? 저번에 사둔 건데 이번에 새로 개봉해서 향이 가득할 거에요.”

미리 사둔 원두지만,

보관을 잘해둬서 맛과 향이 잘 유지가 된 원두.

원두의 특성상 주변의 냄새를 흡수하기 때문에 오래될 수록 잡다한 향이 나고 맛이 옅어졌다.

메간 씨에게 드린 커피는 이번에 새로 개봉한 원두였기에 그 맛과 향이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새로 개봉한 원두로 만든 커피는 특별하지.”

살짝 미소를 짓는 그녀.

메간 씨는 웃으며 날 바라보셨다.

언제나 봐도 고혹적인 미소.

메간 씨의 아름다움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그렇게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하시는 메간 씨.

그런 메간 씨를 발견하고 애슐리 씨가 다가왔다.

“메간 씨 오셨어요?”

“좋은 아침이구나 애슐리. 그나저나 존의 입술을 파랗게 만든 게 너라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굳이 언급 안 해주셔도 되잖아요 메간 씨…”

내가 거의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메간 씨에게 말하자 그녀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내 나름의 취미 생활이니 방해하지 말거라.”

메간 씨에게 하소연 했지만 소용 없는 일.

나는 조심스럽게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혹시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애슐리 씨는 내 생각과 달리 매우 당당(?)한 표정으로 메간 씨를 바라보았다.

“네, 맞아요. 블루베리가 기억력에 좋다고 해서요.”

“하하. 그렇구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애슐리 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당당하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존은 한동안 블루베리를 먹어야겠구나.”

“그래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저 혼자만 먹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손으로 올리비아를 가리켰다.

나와 마찬가지로 파랗게 물든 입술을 가진 올리비아.

그녀는 메간 씨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하. 올리비아도 귀엽구나.”

“당해보지 않으셔서 그래요…”

올리비아의 귀여운 투정.

메간 씨는 그런 투정도 귀엽다는 듯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오게 된 새로운 파트 타이머에 대한 이야기.

메간 씨에게 우리 카페의 새로운 파트 타이머 후보인 헤일리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파트 타이머?”

“네, 요즘 일이 많아져서요.”

다시 말하지만 확실히 높아진 손님의 수.

애초에 좌석 회전율 만으로 손님이 많아졌다는 걸 판단하는 건 섣부를 수 있지만,

간단하게 손님이 늘어나고 줄어든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나는 주로 좌석 회전율로 판단했다.

정석적으로는 월말에 정산을 하면서 정확하게 얼마나 손님의 수가 증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일단은 간단하게 확인한 결과로는 높아진 좌석 회전율과 빠른 재고 소모율을 보아 손님이 늘어난 건 확실했다.

“그래서 지인 중에 한 명이 오늘 면접을 오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이런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지인을 고용하는 게 좋지.”

미크로소프트에 근무 중이신 메간 씨.

그녀의 직장은 글로벌 대기업이라 불리는 큰 회사였기에 이런 지인 고용을 하지 않았다.

반면, 자그마한 카페인 우리 카페.

그렇기에 이렇게 급하게 일손을 구할 때는 지인의 도움을 빌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의 메간 씨.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다. 그저 아쉬워서 그런 것 뿐이니라.”

“아쉬워서요?”

이해할 수 없는 메간 씨의 말.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에게 재차 질문을 했다.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기서 일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메간 씨가요?”

“드래곤은 안 받는 게냐?”

장난스럽게 되묻는 그녀.

나는 전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그런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기업.

그런 대기업에 다니는 메간 씨가 일을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취미로 일을 하시는 메간 씨였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직장을 다니는 그녀가 우리 카페에 취직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이 일도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니는 거니 언제든지 그만둬도 상관이 없단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메간 씨라면 굳이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인간 사회, 정확하게는 밴쿠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다니는 것 뿐이었다.

“하하…하.”

“다음에는 내게도 말해 주거라.”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메간 씨.

나는 그런 장난스러움 때문인지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새 파트 타이머는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줄 수 있느냐?”

“아직 확실하게 취직한 게 아니라서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리지만…”

헤일리 씨가 정말로 취직했다면 헤일리 씨와 메간 씨를 만나게 한 뒤 서로에게 소개하는 방법을 통해 메간 씨에게 헤일리 씨를 소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만 보는 거지 확실하게 일하는 지에 대한 건 결정 나지 않은 상황.

더군다나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헤일리 씨에 대해 설명하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략하게 헤일리 씨에 대해 설명했다.

“메간 씨처럼 카페의 단골 분이신데 최근에는 바빠서 자주 오지는 못했어요.”

“오, 그렇구나. 단골인데 한 번도 못 봤다는 게 신기하군.”

“보통 메간 씨는 아침에 오시고 면접 보시는 분은 오후랑 저녁에 오시니까요.”

“시간대가 다르군.”

“그래서 서로 보지는 못했을 거에요.”

확실히 안면이 없는 헤일리 씨와 메간 씨.

참고로 우리 카페의 단골인 메간 씨는 아직 다른 단골들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단골인 제임스와 그레이스 씨는 서로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 외 다른 단골들은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그 면접 보는 사람이 일하는 걸 결정한다면 곧 만날 수 있겠구나.”

“보통 바쁠 때 부를 예정이지만 만약 일하는 게 결정이 나면 교육해야 할 것이 있어서 낮에도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 사이 울리는 핸드폰.

나는 메간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운터에서 나와 카페 내 구석으로 향했다.

발신자는 헤일리 씨.

아침 시간인데 벌써 오신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헤일리 씨.”

­네, 안녕하세요. 존 씨. 오늘 어떠세요?

“물어봐 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이 근처신가요?”

­맞아요. 30 분 내로 도착할 거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그럼 카페에서 뵐게요.

“네, 전화 줘서 고마워요. 이따 봬요.”

간단한 전화.

그래도 언제 도착한다는 걸 미리 알려 주신 헤일리 씨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캐나다는 물론 한국에서도 파트 타임 경력이 있는 나.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배려 어린 전화를 하는 헤일리 씨가 얼마나 예의 바르신 분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카운터로 돌아오자 내게 다가온 애슐리 씨.

메간 씨는 올리비아가 담당하고 있었다.

“헤일리 씨인가요?”

“맞아요. 30 분 쯤 뒤에 도착할 거 같다고 해요.”

“금방 오시겠네요.”

“제가 면접을 봐야 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면접 시간 동안 카운터를 봐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활짝 웃는 애슐리 씨.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그녀가 있어서 든든한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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