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기마병 (6)
* * *
메이드 복장을 한 애슐리 씨에게 봉사하게 된 나.
나는 이 상황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내 체취를 좋아하는 애슐리 씨.
일단 먼저 씻고 하자는 말에도 달려드는 통에 그녀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평소보다 달아오른 그녀.
그녀의 몸에서 달콤한 체취를 느꼈을 때 나는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렇게 짧지만 서로 만족할 만한 교감을 나눈 나와 애슐리 씨.
우리가 가장 아끼는 장소인 소파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야겠죠?”
애슐리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난 카페.
그래서 올리비아가 없는 틈을 타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볼을 핥아 주었다.
이제는 적응 됐을 법도 한 데 아직도 내 몸은 그녀의 체온이 듬뿍 담긴 혀를 받아들이지 못했나보다.
매번 몸이 바르르 떨리면서 흥분되는 느낌.
그걸 본 애슐리 씨는 기분 좋게 눈웃음을 지으셨다.
“귀여워요.”
“으…”
알 수 없는 감정.
하지만 애슐리 씨에게 귀엽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이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을 주었다.
“주말에 메간 씨와 다 같이 한 것도 좋지만…”
내 손을 꼭 잡는 그녀.
애슐리 씨는 날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단둘이 하는 게 더 기분이 좋아요.”
그녀의 고백.
나는 애슐리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달이 뜨면 주체할 수 없게 되는 성욕.
그렇기에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고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이미 한 번 경험이 있는 메간 씨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두 명이 있다면 애슐리 씨를 감당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어려웠다.
“이런 저를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아니예요.”
그녀를 이해하는 방법.
나는 사람으로서 여러 사람과 교감하는 부분에 낯설었지만,
애슐리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서서히 다가오는 그녀의 손길.
나는 그 손길에 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더 가능하겠죠?”
“조금 전에 이제 슬슬 가자고 하지 않으셨나요?”
“헤헤.”
살짝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아직 시간이 더 남았다는 무언의 행동.
나는 그녀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 * *
가까스로 도착한 퍼레이드 장소.
나와 애슐리 씨는 땀 범벅 상태로 이곳까지 달려왔다.
차량으로 왔다면 괜찮았지만,
퍼레이드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 차량을 끌고 오는 건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황급하게 씻고 도착한 장소.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다행이네요.”
“그러게요.”
둘 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빨개진 얼굴.
서로 이유 없이 웃기 시작했다.
정말 이유 없는 웃음.
20 살 때도 이런 때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는 웃음들.
그 사람과 있는데 행복해서 표현할 방법이 웃음 밖에 없을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된 상황.
나와 애슐리 씨는 자연스럽게 퍼레이드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요즘은 일레븐세븐이 대부분의 자그마한 가게를 점령했지만,
캐나다 플레이스로 가는 건물 한 귀퉁이에는 아직도 이런 가게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나와 애슐리 씨는 음료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물 두 개와 이온 음료 하나.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구매했다.
요즘은 일반 가게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한국 아이스크림.
특이하게도 이 가게에는 한국에서 먹었던 그 반으로 쪼개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아이스크림인데 하나로 나눠 먹을 수 있어요.”
“하나로 두 개로 나눈다 구요?”
확실히 캐나다 사람, 그러니까 북미 사람들 처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아이스크림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게 흔했고,
애초에 반으로 나눌 수 있게 만들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흔했다.
그럴 때 등장한 이 아이스크림.
초등학교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한국 드라마 열풍 때문인지 아니면 캐나다 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이런 한국적인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아이스크림이 묘한 매력이 있어요. 나눠먹으면 더 맛있거든요.”
“그래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의 애슐리 씨.
나는 웃으며 계산했다.
밖으로 나오자 다시 느껴지는 더위.
한 풀 꺾인 더위지만 더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꺼냈다.
“아이스크림 손잡이가 두 개네요?”
“맞아요. 이쪽 잡으시겠어요?”
내 말 대로 한쪽 손잡이를 잡은 그녀.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나눠 먹는 아이스크림이 항상 공평하게 반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먹는 거죠.”
그 말에 흥미를 느끼신 애슐리 씨.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둘 셋 하면 당기는 거예요?”
“알겠어요.”
도로 한복판은 아니지만,
작은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행동.
나는 이런 행동을 초등학교 이후로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밴쿠버, 그것도 집에서 엄청 먼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행동을 다시 하고 있었다.
휴일의 로마처럼 로맨틱한 젤라토 아이스크림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그 보다 기억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아이스크림.
나는 이 추억을 그녀와 나누고 있었다.
“앗!”
그녀가 더 많이 가져간 상황.
나는 웃으며 그녀의 승리를 축하했다.
“축하해요.”
“제가 이긴 건가요?”
“물론이죠. 더 많이 먹을 수 있으면 좋은걸니까요.”
초등학교 때의 단순한 논리.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에 따라 나는 그녀를 축하해 줬다.
“헤헤.”
내게 다가온 그녀.
그녀는 내 볼에 살짝 키스해주었다.
“고마워요. 소소한 거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저도 이렇게 즐거워 해 줘서 고마워요.”
그러고는 그녀는 더 많이 담겨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고는 내게 다가왔다.
“제가 이겼으니까 이건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죠?”
“네?”
“제가 이겼지만 존 씨랑 나누고 싶어요.”
그러면서 활짝 웃는 표정으로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그녀.
나는 애슐리 씨의 아름다운 미소에 넋을 잠시 잃어 버렸다.
“존 씨?”
“아…아니예요. 잠시…하하.”
“헤헤…”
애슐리 씨도 어느 정도 눈치채신 모양.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이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살짝 입을 대 그녀가 더 많이 가져간 부분을 입으로 물었다.
사실상 게임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
나와 애슐리 씨는 그저 이런 소소한 행동을 통해 추억을 쌓아 가는걸 좋아했다.
크게 한 입 물자 목을 타고 넘어오는 아이스크림.
그 차가움에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으아어으…”
내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
그 소리에 애슐리 씨는 웃음을 참지 않으셨다.
“조금 전 표정 정말 좋았어요.”
“그거 칭찬이죠?”
“칭찬일까요? 아니면 장난 일까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녀.
나는 짐짓 삐진 척했다.
“귀여웠어요.”
“…”
뭐라 말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녀.
나는 머쓱해서 아이스크림만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가야겠어요.”
“좋아요.”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
왼손에는 그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애슐리 씨의 다정한 손이 있었다.
* * *
애슐리 씨와 처음 보는 기마병 퍼레이드.
그저 말이 캐나다 플레이스를 오가는 그런 이벤트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보니 관광객들이 잔뜩 있었다.
복잡한 이 장소.
나는 애슐리 씨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어때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안 보여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다 먹어 치운 아이스크림.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어 다 먹어 치웠는데 다행이었다.
인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나와 애슐리 씨.
가까이서 퍼레이드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 뒤로 빠져서 높은 곳에서 볼까요?”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사람들 많은 곳에서 보는 건 좋지 못한 것 같아 뒤로 물러서 건물 계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한 많은 사람들.
그들도 그곳에서 기마병의 퍼레이드를 보고 있었다.
“와! 말이다!”
“여기예요!”
“엄마! 저도 올려 줘요!”
계단 근처로 가자 보이는 아이들.
아무래도 키가 작다 보니 기마병을 보기 어려워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정말귀여운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녀는 이곳에서 보이는 기마병들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존 씨랑 아이가 생기면 그때는 다 같이 여기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애슐리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양손에 아이들의 손이 있을 거 같아요.”
“헤헤. 저는 아이가 많으면 좋겠어요.”
외동으로 자라온 나.
그렇다 보니 나도 애슐리 씨의 말처럼 아이가 많았으면 하는바람이 있었다.
그때가 되면 보리스처럼 카페를 떠나 더 넓은 집이 있는 곳으로 이동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집.
그 집에 최대 5 명 까지는 같이 살 수 있을 거 같지만,
애슐리 씨의 말을 유추해 보면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와 애슐리 씨가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 정도 끝난 기마병 퍼레이드.
기마병들이 삼삼오오 나누어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건가요?”
애슐리 씨의 질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살짝 부러워하는 그녀의 눈빛.
나는 주머니에서 크리스토퍼 씨에게 받은 티켓을 꺼냈다.
“이게 뭐예요?”
“티켓이예요. 기마병 분들이랑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티켓이죠.”
살짝 감동한 그녀의 눈빛.
나는 이 티켓을 준 크리스토퍼 씨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드릴게요. 먼저 사진부터 찍으러가요.”
“아…알겠어요.”
내 손에 잡힌 그녀.
나는 애슐리 씨의 손을 잡고 기마병 분들에게 다가 갔다.
마침 우리 근처에 계신 기마병 분들.
우리 옆에 있었던 어린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나서 잠시 쉬고 계셨다.
“아, 존 씨.”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크리스토퍼 씨.
그리고 그 옆에는 패트릭 씨와 점심에 봤던 대원 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사진 부탁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존 씨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옆의 분은…?”
“제 파트너 애슐리라고 해요. 그때 제 옆에 있었죠.”
“아 그때 요트에서 뵈었던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크리스토퍼 씨.
마찬가지로 패트릭 씨도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주셨다.
“그럼 여기 가운데로 와 주시겠어요?”
체격이 좋은 크리스토퍼 씨와 패트릭 씨.
그사이로 우리가 들어가자 확실히 그들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었다.
우리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촬영해 주시는 분은 같이 있던 대원 분이었다.
“자, 그럼 찍을게요.”
“네.”
사진을 두 세 번 정도 찍고,
이어서 악수했다.
간단한 악수.
그들의 악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니예요. 이렇게 사진 찍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게 끝난 기마병 퍼레이드.
짧은 퍼레이드지만 애슐리 씨와의 소중한 추억이 쌓인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