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기마병 (5)
* * *
그렇게 도착한 배달 장소.
처음 배달을 하는 거라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많은 파트 타임 잡, 그러니까 한국 말로 알바들을 해봤었지만,
배달 알바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공포.
자전거로 몇 번이나 사고를 낸 전적이 있다 보니 자전거는 물론 모터 사이클에 공포심이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차로 배달하는 게 흔해졌으니까…”
대부분은 오토바이 배달이 흔했던 어릴 시절.
그래서 어렸을 때 봤던 피자 모양을 달고 있는 조그마한 차들이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흔해진 상황.
우바 딜리버리라던지 문대시 같은 것들이 흔한 캐나다에서는 자동차들을 이용한 배달이 늘어나고 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남성분.
눈에 확 들어오는 붉은색 제복,
캐나다라고 생각하면 바로 생각나는 그 제복을 입은 어인 분이 다가오셨다.
“아니예요. 행사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아닙니다. 이렇게 와줘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각진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의 표본을 보여 주시는 크리스토퍼 씨였다.
“그런데 혼자 오셨나요? 옮기기에는 힘드실 거 같은데…”
대원 분들의 음료를 모두 주문한 크리스토퍼 씨.
그렇다 보니 혼자 옮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들 바빠서요. 하하…제가 막내이니 제가 몇 번 왕복하면 됩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아뇨 아뇨, 이렇게 무리해서 배달까지 와 주셨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크리스토퍼 씨.
그는 정말 미안한지 괜찮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셨다.
“제 처지에서도 빨리 배달하는 게 좋아서요.”
“하하…그러면 염치불구 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차량으로 근처까지 갈 수는 있지만,
행사 제한으로 인해 막혀 있는 행사 장소.
그렇다 보니 나와 크리스토퍼 씨는 각각 양손에 음료를 들고 행사 장소까지 걸어 나갔다.
“바쁘신 와중에 와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양손에 음료가 있어서 손을 사용하지 못 하는 크리스토퍼 씨.
그래서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함을 드러냈다.
“오늘 행사 덕분에 장사가 잘되서 좋았죠.”
오늘 정말 많았던 점심 손님.
솔직히 시위 때 쉰 것을 복구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제임스의 단체와 오늘 많았던 손님 덕분에 손실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여러 곳에 투자해서 가게 수익에 대해 손익을 세세하게 따지지는 않지만,
지속해서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들면 바로 일상활에 타격에 오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사둔 주식을 몇 개 매각해야 하나 싶었는데 오늘 엄청나게 많이 온 손님 덕분에 이런 고민을 덜 수 있었다.
“혹시 행사 보셨나요?”
“아뇨, 하지만 정말 보고 싶어서 오늘 가게 문을 조금 일찍 닫고 보려구요.”
2 시간 일찍 끝나는 영업.
올리비아는 아이라만과 함께 행사를 보고 나는 애슐리 씨와 따로 보기로 했다.
캐나다 플레이스가 워낙 좁아서 마주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각자 따로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부쩍 가까워진 아이라만과 올리비아.
둘은 벌써 부터 연인들이 하는 알콩달콩한 연애의 표본 같은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커플링 같은 건 안 하지만,
벌써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는 걸 보면 둘의 사이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네?”
“지금 바로 드리고 싶은데…양손이 묶여 있으니 아무래도 배달 끝나고 드려야겠네요.”
“뭘 주시려고 하시는 지 여쭤봐도 될까요?”
“간단한 겁니다. 악수권 같은 거예요.”
“악수권이요?”
내 머릿속에 있는 악수권이라 함은 아이돌과 악수를 하는 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아마…악수권이라 하셨으니 비슷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일종의 자선 행사예요. 기마 경찰과 사진도 찍고 악수를 할 수 있는 티켓이죠. 수익금은 전액 기부될 예정입니다.”
“아아…”
캐나다에서도 유명한 공무원들의 기부 활동들.
크리스마스에는 경찰들이 화보를 찍어 수익금을 소외 계층에 기부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그렇다 보니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가 받아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꼭 받아 주시면 좋겠어요.”
살짝 미소 짓는 크리스토퍼 씨.
확실히 어인이라는 점 때문에 이질감은 들지만,
그의 건치 미소를 보면 정말 CD 코믹스의 아구아 맨 같은 느낌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삼엄한 경비 아래 이벤트를 준비하는 곳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주말에 봤던 남성분.
메간 씨와 이야기를 하셨던 패트릭 씨였다.
양손에 커피를 든 걸 본 패트릭 씨.
그는 동료분들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와 다른 손에 있는 커피를 들어 주셨다.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패트릭 씨.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셨다.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주말에 요트 기억하세요?”
크리스토퍼 씨는 패트릭 씨에게 그때의 기억을 상기 시켜 주었다.
“아! 기억나는 구만. 여기까지 배달 와줘서 고맙군요.”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패트릭 씨.
나는 괜찮다는 듯 자유로워진 왼손을 이용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다들 노고가 많으신데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다면 영광이죠.”
“하하. 그렇게 저희를 띄워 주시면 날아 갈지도 모릅니다.”
“에이, 패트릭 대장은 무거워서 못 날 거 같은데?”
“이놈이?”
투닥 거리는 패트릭 씨와 대원 분.
다른 대원 분들 사이에는 크리스토퍼 씨처럼 이 종족인 분들이 몇 명 보였다.
소 수인, 드라이어드, 심지어 켄타우로스도 있었다.
상체는 사람 하체는 말의 모습을 하는 종족인 켄타우로스.
종종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에 놓아 주시겠어요?”
크리스토퍼 씨의 말에 따라 책상 같은 곳에 음료를 올려 두었다.
이윽고 도착한 패트릭 씨.
그는 음료를 하나씩 세더니 다시 손가락으로 세고는 대원 분들이 있는 쪽을 향해 소리를 치셨다.
“자! 음료 왔다! 다들 와서 마셔!”
그 말에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하는 대원 분들.
나는 이제 슬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요.”
내 팔을 붙잡는 크리스토퍼 씨.
아까 말씀하셨던 악수권을 주시기 위해 날 잡으셨다.
“여기 있습니다.”
두 장의 악수권.
나는 이걸 보고는 감사함을 표했다.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덕분에 제가 혼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는 크리스토퍼 씨.
맨눈으로 나이를 판별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척 보기에도 그의 말처럼 그가 막내인 건 분명해 보였다.
캐나다가 평등한 사회라 생각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기에 군대나 경찰 같은 곳은 상하 관계가 확실했다.
그래서 내 군대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크리스토퍼 씨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할 따름이죠. 그럼 이제 저는 가 볼게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카페 명함 하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카페 명함이요?”
“네, 아직 다 마시지는 못했지만 커피가 정말 제 마음에 쏙 들어서요. 다음에 꼭 가 보려고 하는데 아직 핸드폰 보다는 명함이 편해서 말이예요.”
아날로그를 선호 하시는 크리스토퍼 씨.
내 처지에서는 손님이 한 분 더 늘어나는 것이라 환영할 일이었다.
“물론이죠. 잠시만요.”
마침 지갑에 챙겨 온 명함.
스칼렛 씨의 가게에서 새로 만든 명함이었다.
“뒤에 QR 코드를 이용해서 주문은 가능한데…”
말하고도 아차 싶은 말.
핸드폰에 어려움을 느끼는 그에게 QR 코드를 알려 주는 것보다는 뒤에 있는 주소를 알려 주는 게 맞았다.
“그 QR 코드 옆에 주소도 있으니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시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명함을 확인한 크리스토퍼 씨.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이제 빨리 가게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아직 시각은 넉넉하지만 슬슬 행사 시작 전이라 사람들이 모여드는걸 봤다.
걸어서 왔다면 상관은 없지만,
차에 음료를 싣고 오느라 차를 가져온 상황.
길이 막혀 코 앞의 거리를 20 ~ 30 분을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바로 도착한 차.
나는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카페로 돌아갔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빙긋 웃는 올리비아와 애슐리 씨.
우리 셋은 오늘 일찍 일을 끝내고 카페 문을 나왔다.
“집에 들렸다 갈 거니?”
“아무래도 옷은 갈아입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부쩍 자신을 꾸미는 데 신경을 쓰는 올리비아.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아저씨 딸 아니거든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올리비아.
나는 그 말에 내 얼굴에 있는 표정을 보지 않고 바로 알 수 있었다.
헛기침하면서 표정을 고치고 있는데 옆에서 애슐리 씨가 입을 가리고 웃고 계셨다.
“너무 팔불출 같았나요?”
“헤헤. 그래서 더 보기 좋았어요.”
“더 보기 좋았다 구요?”
“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요.”
“하하…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빨개지는 얼굴.
아직 결혼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단계였기에 아이에 대한 것을 듣자 얼굴이 빨개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그런 건 저 없을 때 해주시면 안 돼요?”
툴툴대는 올리비아.
그 말에 애슐리 씨는 장난스럽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게 투닥 거리며 도착한 집.
집에 도착하자마자 올리비아는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몇 분 만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진짜 빠르네…”
“어쩔 수 없어요. 아이라만이 오는 버스에 맞추려면 빨리 갈아입어야죠.”
“…”
“…”
우리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는 아이라만과 올리비아 커플.
나와 애슐리 씨는 뭐라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저, 오늘 늦게 들어올게요!”
내 입에서는 바로 콘 까지 나올 뻔했지만,
다행히 이성을 되찾고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너무 아저씨 같은 느낌.
아이라만에게 주입식 교육으로 확실하게 이야기해뒀으니 둘이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진 올리비아.
집에는 나와 애슐리 씨만 남았다.
“존 씨.”
“네?”
“올리비아에게 콘돔 챙기라고 이야기하려고 하셨죠?”
“…바로 아셨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토끼 수인은 소리를 잘 들으니까요.”
“그거랑 이거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요…”
“확인해 보시겠어요?”
살짝 미소 짓는 애슐리 씨.
그녀는 이미 우리 집 문에 달린 잠금장치들을 걸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걸린 걸쇠까지.
확실하게 문을 잠근 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살짝 메이드 복 치마를 들어 올리는 애슐리 씨.
나는 속으로 퍼레이드 시간 내에 그녀를 만족 시킬 수 있을까 계산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