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기마병 (3)
* * *
평생 한 짝과 산다는 토끼 수인.
그들의 삶에 있어서 결혼은 큰 분기점에 해당되었다.
물론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결혼이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겠지만,
애슐리 씨, 그러니까 애슐리 씨가 속한 토끼 수인들은 결혼을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었다.
“토끼 수인들은 그래서 결혼식 날 달빛 아래서 춤을 춰요.”
빠지지 않는 토끼 수인과 달.
보름달을 숭배하는 그들은 달빛을 받아 모두에게 축복받는 다는 의미를 부였다.
신랑과 신부과 될 사람들.
둘은 그렇게 달빛,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의 생각이 모인 보름달 아래서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춤을 추고 모두에게 축하를 받으면 결혼식이 끝나는 건가요?”
“네, 맞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어요.”
베일리 씨 질문에 진지한 표정을 짓는 애슐리 씨.
나 역시 미래에 내가 해야 할 일이니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건 바로 신랑과 신부가 만월이 사라지기 전까지 동굴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동굴이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의 타나야 씨.
나는 그 말에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보통은 땅굴을 파서 생활하는 토끼 들.
다시 말하지만 토끼 수인들이 토끼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내 얕은 생각으로 추측해 보았다.
“원래 저희 조상들은 동굴에서 지내셨거든요. 이후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았지만요.”
다행히 내 추측과 비슷한 토끼 수인들의 습성.
조상이 해왔던 것을 따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문화권의 결혼식에서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근데 왜 보름달이 떠 있는 날인 거예요?”
특정 결혼식 날짜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베일리 씨.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만월 아래 결혼식을 하려는 토끼 수인의 모습이 신기했다.
보름달의 개념을 아직 모르는 베일리 씨와 타나야 씨.
애슐리 씨는 두 분을 위해 토끼 수인이 바라보는 보름달의 의미를 설명했다.
“엘프의 에레스트림과 비슷하네요.”
바로 이해하는 타나야 씨.
나는 에레스트림을 알고 있는 그녀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에레스트림에 대해서 알고 계시네요.”
“네, 잘 알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넘어오시기 전에는 고블린 행상인이셨거든요.”
“아…”
행상인들.
그렇다 보니 엘프의 마을과도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희 아버지는 엘프와 거래를 하셨기 때문에 토끼 수인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오늘 애슐리 씨에게 들어 보니 비슷한 점이 많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아무래도 토끼 수인과 엘프가 근처에서 생활하다 보니 먹는 것이나 생각 같은 것이 많이 비슷해진 모양이었다.
마침 생각나는 그레이스 씨.
우리 가게에 종종 엘프 분들이 찾아오시지만,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분은 역시 단골이신 그레이스 씨였다.
저번 주에는 일주일 동안 뵙지 못했는데 오늘은 오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딸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가 머릿속으로 그레이스 씨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레이스 씨가 바로 우리 카페에 오셨다.
“안녕 존. 그리고 베일리 씨와 타나야 씨도 오랜만이예요.”
이미 그레이스 씨와 안면이 있는 베일리 씨와 타나야 씨.
예전 시위 사건이 터지기 전에 만났던 분들이라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악수를 권하는 베일리 씨.
그레이스 씨는 웃으며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여기에 타나야 씨가 있다는 건…아무래도 복귀 하셨다는 뜻이겠죠?”
그레이스 씨의 정감 가는 말.
매번 날 서 있던 그녀는 사라지고 이제는 친근한 말을 하는 그레이스 씨만 남았다.
“맞아요. 복귀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잠깐 현장에서 일하게 됐어요.”
“잠깐이요?”
그 말에 웃으며 품에서 청첩장을 꺼내는 타나야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레이스 씨에게 건넸다.
“저희 결혼식에 참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레이스 씨.”
“결혼 축하해요.”
청첩장을 받아 든 그레이스 씨.
그녀와 라피 씨와 안면이 있는 건 아니지만,
타나야 씨와는 안면이 있었기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었다.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그리고 이 근처에서 하시네요?”
“맞아요. 주 경찰이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BC주에서 주는 혜택.
이 혜택 덕택에 타나야 씨가 구 시청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영화 촬영 때문에 잠시 빌렸는데 정말 아름다웠던 게 기억나요.”
영화 감독인 그레이스 씨.
그렇다 보니 밴쿠버 시내의 아름다운 곳을 잘 알고 계셨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제 파트너도 만족해하고 있어요.”
“파트너 분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조인족이예요. 이름은 라피이구요.”
“조인족이요? 오…”
그레이스 씨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살짝 흘리자 미안한 표정을 짓고 타나야 씨에게 사과를 표했다.
“미안 해요. 조인족들은…”
“맞아요. 대부분 독신주의자 들이죠.”
엘프 다음으로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존재들.
물론 엘프들만큼 오래 살지는 않지만,
라피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조인족들은 히피적인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라피는 조금 독특해요. 저를 아껴주고…저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보여줬어요.”
이어지는 타나야 씨의 설명.
그녀는 내게 했던 이야기들, 그러니까 라피 씨가 고블린 언어를 배워 그녀의 부모님들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추가적으로 라피 씨와 타나야 씨가 의견 대립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쏙 뺀 이야기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나중에 저도 오크어나 배워서 해볼까요?”
장난스럽게 말에 끼어드는 베일리 씨.
그녀는 오크인 제임스와 연애 중이었기에 이런 말했다.
“저도 오크어를 조금 배워 본 적은 있는데 정말 어렵더라구요.”
“존 씨가 오크어를 배우셨다구요?”
“네, 손님 중에는 오크 분들이 많고 무엇보다 납품업자 분도 오크시고 제 제일 친한 친구도 오크니까요.”
납품업자인 마크 씨.
그리고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제임스.
둘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실례가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존 씨는 정말 대단하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베일리 씨.
나는 머쓱한 상황에 웃음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애슐리 씨.
나는 그녀를 보며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타나야 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일.
나는 미래의 나와 애슐리 씨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날에 사용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토끼 수인의 결혼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후후.”
살짝 미소 짓는 그녀.
모두가 타나야 씨의 결혼식 이야기로 복잡할 때 그녀는 내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만월이면…아시죠?”
“…”
머리에 새겨진 강한 경험.
이 경험에 의하면 만월의 토끼 수인들은 평소의 토끼 수인들이 아니었다.
성욕이 배로는 강화되는 사람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몸으로 그녀의 이런 욕구를 받아 내는 것에 있어서 메간 씨의 힘을 빌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주 패배(?)하는 상황.
그런데 만약 애슐리 씨의 말처럼 토끼 수인의 전통 방식으로 동굴에 들어가게 된다면…
“보통 그날은…피임 기구 없이 들어간답니다.”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
나는 그녀의 말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
만월 아래 동굴.
그 안에 있는 신혼부부.
허니문 베이비에 대한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에 그녀와 그녀 사이에서 나올 아이에 대한 생각에 빠진 사이.
나를 부른 그레이스 씨 덕분에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존, 간단한 자몽 스쿼시 한 잔 부탁해.”
“네. 잠시만요.”
“이건 제가 만들게요. 존 씨는 손님들을 맡아줘요.”
애슐리 씨의 손에 넘어간 그레이스 씨의 주문.
그레이스 씨는 고개를 살짝 숙여 애슐리 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연스럽게 그레이스 씨를 맡게 된 나.
타나야 씨와 베일리 씨는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빴기에 카페 바를 표방하는 카페의 주인으로서 그레이스의 말동무를 해주어야 했다.
“저번 주에 바쁘셨나요?”
“응, 저번 주에 네 친구랑 조금 이야기하느라 바빴지.”
“제임스 말씀이시죠?
“응, 그 친구 정말 의욕적이더라.”
오래 산 그레이스 씨.
그렇다 보니 메간 씨 정도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말투로 하더라도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녀의 아름다운, 20 대 외모로 보이는 얼굴과는 괴리감이 있지만,
그레이스 씨에 대해 잘 아는 나는 그녀의 이런 어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친구가 직접 전화를 했어. 미팅을 잡자고 하더라고.”
최근에 있었던 일.
제임스와 그의 스튜디오 동료들과 만난 그레이스 씨.
그녀는 의욕적인 제임스의 감독 제안 요청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항상 냉소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의 영화를 제작해 온 그레이스 씨.
하지만 제임스가 제안 하는 영화는 실사 영화도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의 팀장 급인 제임스.
그래서 그들이 만들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화였고,
세상의 아름다움, 그러니까 모두가 화합하는 그런 멋진 배경의 영화였다.
한 마디로 평소 그레이스 씨가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
그렇기에 현재 일이 없는 그레이스 씨였기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한 발짝 물러서 고민하는 단계에 있었다고 하셨다.
그때 마침 파고든 제임스.
그는 적극적으로 능력 있는 감독인 그레이스 씨를 포섭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5 년 만에 세계적인 영화 디렉터가 된 그레이스 씨.
그녀의 능력은 미디어는 물론 그녀가 가진 상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했다.
“그래서 그레이스 씨가 저번 주에 바쁘셨다는 건…”
“맞아. 일단 우리 회사측이랑도 이야기하기로 했어. 내가 아무리 회사와 계약이 안 된 감독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도덕이란 건 있으니까.”
영화사와 전속 계약이 되어 있지 않은 그레이스 씨.
그래서 영화사의 허락 없이도 다른 일할 수 있지만,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영화사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시위 이후 사실상 무산된 그녀의 차기작.
원래는 인간 경찰과 이 종족 경찰의 우정을 그려낼 예정이었던 그녀의 차기작은 시위대에 참여한 일부 주연급 배우들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그녀.
그녀의 마음을 곁에서 살짝 엿볼 수 있었던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뭐, 그건 그렇고…이 결혼식 말이야. 너랑 애슐리 사이에 껴서 같이 가도 될까?”
청첩장을 살짝 들어 올린 그레이스 씨.
“물론이죠. 제 차가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자리는 넉넉해요.”
그 말에 살짝 웃는 그레이스 씨.
확실히 예전보다 밝아진 그녀의 웃음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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