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100화 (100/292)

〈 100화 〉 용의 춤 (7)

* * *

어느새 끝나 가는 파티의 마지막.

이 마지막은 메간 씨가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중요한 이벤트가 하나 남아 있었다.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

화려한 조명.

그리고 파트너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추는 사람들.

나와 애슐리 씨는 그사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리카 씨와 프랭크 씨가 있는 곳에서도 애슐리 씨와 춤을 춘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곳에서 춤을 춘 적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때와 달리 술도 취하지 않았고,

추는 춤도 많이 달랐다.

스페인 볼레로에 맞춰 춘 춤이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춤은 아니지만,

이렇게 고풍스러운 파티에 어울리는 춤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했다.

그래서 고스란히 드러난 나의 미숙한 춤 솜씨.

나는 어색하게 스탭을 밟으며 애슐리 씨와 합을 맞춰나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날 지그시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건넸다.

“너무 긴장하셨는데요?”

“…춤을 더 배워둘 껄 그랬어요.”

어쩔 수 없는 부족한 춤 솜씨.

막상 배운 건도 아닌 어깨너머 알음알음 배운 게 전부라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도 귀여우신걸요?”

애슐리 씨가 말하는 귀엽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주는 편안 함에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애슐리 씨.”

“네?”

“애슐리 씨가 제게 귀엽다고 말할 때마다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은걸 아세요?”

“음…안다고 말해야 할까요? 후후”

장난스럽게 웃는 애슐리 씨.

나는 그런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토끼 수인들은 그렇게 장난기가 많은 가요?”

“제가 조금 특이하긴 하죠.”

어깨를 으쓱하는 애슐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리를 내 쪽으로 옮기셨다.

다소 도발적인 움직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춤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장난도 칠 줄 알아요.”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 그녀의 다리.

나는 아찔한 기분에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내게 반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러시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무엇보다…존 씨는 귀여우셔서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아요.”

“…밤의 일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메간 씨의 육체 강화 마법이 있더라도 항상 애슐리 씨에게 지는 내 몸.

육체적으로 뛰어난 그녀를 이길 방법은 거의 없었다.

가끔은 내가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이겼다기보다는…

애슐리 씨가 봐줬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내게 안길 듯이 가깝게 다가왔다.

“애…애슐리 씨?”

“좋아요.”

“…네?”

“그렇게 언제나 내 눈동자를 봐주시고…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제 손을 꽉 잡아 주시는 게 좋아요.”

“그건 애슐리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녀도 마찬가지로 내 손을 꽉 잡고 내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달콤한 상황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애슐리 씨.”

“네?”

“오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취한 거 같아요.”

“…저두요.”

미소 짓는 그녀.

그녀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빠져드는 매일.

하지만 오늘은 유달리 그녀의 체취에 더욱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춤 때문에 쿵쾅 거리는 심장.

그리고 귀를 간질이는 로맨틱한 노래.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애슐리 씨까지.

나는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존 씨.”

“애슐리 씨.”

둘 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음악의 끝이 다가오는 시간.

그 시간에 나와 애슐리 시는 춤을 멈추고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 * *

“파티는 어떠했느냐?”

기뻐하는 메간 씨.

애슐리 씨와 춤이 끝나고 나는 메간 씨와 춤을 추었다.

파티 주최자이자 파티에 초대를 해주신 메간 씨.

그래서 그녀의 초대받은 손님인 내가 그녀의 댄스 파트너가 되었다.

정말 춤을 잘 추시는 메간 씨.

그녀는 능숙하게 날 리드하시면서 노래 위를 걸어 다니셨다.

나는 그저 그녀의 발에 따라갈 뿐.

그녀는 날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 상황.

나는 내 이성을 놓지 않고 그녀의 춤을 따라가기에 벅찼다.

밀착되는 메간 씨의 몸.

그리고 자극에 반응하는 내 몸.

나는 이성을 유지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메간 씨와의 춤의 여운에서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사이 내게 파티가 어땠냐면서 물어오시는 메간 씨.

나는 그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좋았어요.”

“특히 춤 말이냐?”

은근한 미소를 짓는 그녀.

나는 부정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직히요. 그리고 메간 씨가 그렇게 춤을 잘 추실지 몰랐어요.”

“모든 용들은 춤을 잘 춘단다. 유희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배우는 게 춤이거든.”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는 땀을 식히려는 듯 나와 애슐리 씨 옆에 앉았다.

“지금 애슐리를 안고 싶은데 거부하겠지?”

장난스러운 그 말에 웃음 짓는 애슐리 씨.

그녀는 양팔 벌려 땀투성이의 메간 씨를 꼬옥 안아주었다.

“요 귀여운 녀석…”

메간 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애슐리 씨와 포옹을 나누었다.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메간 씨.”

“나도 고맙구나. 그리고 춤 때 잠시 존을 빌려 준 것도 정말 고맙고.”

그녀의 말에 애슐리 씨는 미소를 지으며 메간 씨에게 귓속말했다.

“정말이냐?”

“네, 물론이예요.”

애슐리 씨와 메간 씨의 귓속말.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적응하게 되었다.

내게 말할 수 없는 여자들의 대화.

나는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사이.

메간 씨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녹초가 된 몸이 된 아이라만과 올리비아가 보였다.

둘 다 춤에는 재간이 없었는 지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으니 나름대로 좋은 경험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부르려고 했는데 메간 씨가 제지하셨다.

“잠시 지켜보거라.”

“…네?”

메간 씨의 말에 따라 잠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멀리에 있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꽤 귀여운 모습이 눈에 보였다.

지친 올리비아의 땀을 닦아주는 아이라만.

어디서 구한 건지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주는 아이라만.

올리비아는 살짝 붉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아이라만을 바라보았다.

“귀여운 커플이 아니냐?”

“그러게요.”

메간 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애슐리 씨.

그녀는 입에 미소를 드리우고는 풋풋한 커플을 바라보았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아이라만, 올리비아 커플.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아이라만이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그가 답답한 올리비아는 결국 그의 넥타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잡아당기는 그녀.

나는 확실히 올리비아가 리암 씨의 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올리비아가 적극적이구나.”

마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메간 씨.

거기에 같이 몰입하는 애슐리 씨는 양손으로 조용한 박수를 치며 커플을 바라보았다.

키스 이후 사라진 그들.

나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임에 대해 이야기했나.

피임 기구 사용법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나 같은 생각.

물론 부모님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지만,

내가 짧은 시간이지만 올리비아의 보호자였기에 이런 걱정이 앞섰다.

내가 안절부절하는 걸 본 메간 씨.

그녀는 웃으며 날 진정 시켜 주셨다.

“걱정 말거라.”

“…저는 걱정되는걸요.”

아직 내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올리비아.

물론 아이라만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서로를 아끼는 아이들이란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별개의 일이예요. 그러니까…저 아이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이고…”

“사랑할 권리가 있지.”

“…”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춰 서 메간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올리비아가 네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단다. 하지만…”

“하지만…그건 저 아이들의 선택이죠…”

내가 답을 말하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나는 그녀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날 걱정해주는 애슐리 씨.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그러니까…제가 너무 앞서 나간 거 같아요.”

“아니예요. 저도 걱정 했는걸요.”

올리비아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던 애슐리 씨.

그녀도 올리비아의 첫 경험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를 믿어요. 그리고…그 아이들의 선택이니까요.”

“맞아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이런 나를 바라보는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거셨다.

“괜찮다.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오늘 화해하신 메간 씨처럼 말이죠?”

내 장난 섞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메간 씨.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메간 씨.”

“아니란다. 네가 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챙겨 주니 나도 그렇게 할 뿐이란다.”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그녀.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성급한 행동을 말려 준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감사해요. 애슐리 씨.”

“아니예요. 존 씨가 그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는 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올리비아를 마치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순전히 내 잘못.

나는 그녀를 하나의 존재로 봤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둘 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끝나 가는 파티.

나는 메간 씨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청소하는 거 힘드시겠네요.”

“그럼 도와주겠느냐?”

“…네?”

“내일 주말인데 오늘 여기서 자고 가는 건 어떠냐는 걸 돌려서 이야기하는 거란다.”

웃으며 말씀하시는 메간 씨.

나는 이 대답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애슐리 씨 찬스를 썼다.

“네,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마치 짜 맞춘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나는 약간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 전 귓속말을 나누었던 두 분.

나는 두 분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느낌이었다.

“…일부러 그러신 거죠?”

“내가 힘들지 않겠느냐 라는 말은 네가 먼저 꺼냈단다. 존.”

“…윽.”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말.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복장으로는 청소하기 어려우니…”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많으니까.”

“…”

이미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신 메간 씨.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안 잡아먹으니까.”

같이 미소를 짓고 있는 애슐리 씨.

나는 아무래도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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