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용의 춤 (4)
* * *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있는 펜트하우스.
그사이에 있는 메간 씨와 애슐리 씨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선물을 들고 밴 씨와 함께 메간 씨의 곁으로 다가 갔다.
“잘 지내셨어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는 밴 씨.
그리고 마르타 씨와 메롯 씨도 같이 메간 씨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거라. 오늘 둘 다 정말 멋지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메롯 씨를 바라보는 메간 씨.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메롯 씨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냈느냐?”
“네…! 네… 메간 씨…아…아니…어…”
언제나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메간 씨 앞에서는 작아지는 메롯 씨.
그런 그녀가 귀여운지 메간 씨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재밌는 시간을 지내길 바란다.”
“감…감사합니다.”
미소를 지은 메롯 씨.
밴 씨와 마르타 씨도 감사를 표하고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는데요?”
“네가 없는 사이 많이 도착했지.”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녀는 흡족스러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번 총회 때도 이렇게 모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 잘 안 듣는 드래곤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게 된 게 흔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게 선물이로구나?”
“네, 맞아요. 어디에 가져다 두면 될까요?”
“마침 오늘 파티의 주인공들도 도착했으니 직접 만나 보는 게 좋겠구나.”
“직접 이요?”
“선물은 직접 줘야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부정할 수 없는 메간 씨의 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오로트!”
메간 씨가 손을 흔들며 누군가를 부르자 다가오는 한 여성 분.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화염 주머니…
아무래도 붉은 용들은 다들 큰 화염 주머니가 특징인 모양이었다.
황급히 뛰어 오시느라 살짝 틀어진 옷.
그녀는 날 보더니 살짝 볼을 붉히시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셨다.
나는 머쓱해서 먼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정리된 상황.
메간 씨는 오로트 씨라는 여성분을 내게 소개해 주셨다.
“이쪽은 오로트. 붉은 용의 부수장이야.”
메간 씨의 소개를 받고 살짝 고개를 숙이는 그녀.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다른 용족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존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로트 씨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메간 씨를 바라보았다.
메간 씨는 웃으며 오로트 씨에게 설명했다.
“오늘 너와 먼저 인사한 애슐리의 파트너란다. 인간이지.”
“아! 이분이 존이시군요!”
“…?”
“죄송해요. 메간 님을 통해서 많이 들었거든요.”
“흠흠…”
머쓱하게 웃는 메간 씨.
그러자 오로트 씨는 자기 잘못을 인지하신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차차…”
“오로트가 조금 말이 많긴 하지…”
“에이…메간 님…꼭 그렇게 면전 앞에서 그러셔야 되겠어요? 물론 제가 잘못하긴 했는데에…”
메간 씨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오로트 씨.
나는 그녀의 살가운 행동에서 드래곤이라는 부분을 찾기 위해 살펴 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붉은 용의 특징인 큰 화염 주머니를 빼고는 완전히 사람 같은 모습을 보이는 오로트 씨.
붉은 머리카락에 항상 웃음기가 있는 미소.
그리고 살가운 행동과 말투까지.
드래곤 특유의 뿔이나 이런 것도 없어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녀의 모습을 살피고 있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로트 씨.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으흥흥~”
“아…죄송해요.”
“아니예요. 후후.”
미소 지으면서 날 살펴보는 그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도 오로트 씨에게 이런걸 당한 모양이었다.
“혹시 불편한 거 아니죠? 설마 존 씨도 절 그렇게 바라보셨는데 제가 본다고 뭐라 하시는 건 아니죠?”
“…”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상태.
나는 도움의 눈길로 메간 씨를 바라보았다.
“그만하거라. 오로트.”
“네네. 메간 님.”
미소 짓는 그녀.
그녀는 메간 씨의 말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왜 메간 님이 존 씨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로트.”
“저는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드래곤이라구요. 이건 막으실수 없습니다. 메간 님.”
“하아…”
고개를 젓는 메간 씨.
그녀는 골치 아프다는 듯 오로트 씨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존 씨는 절 왜 뚫어져라 보신 거예요?”
“…네?”
갑작스러운 오로트 씨의 질문.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이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까 절 빤히 보시길래요. 혹시…저한테 반하셨나…?”
“…오로트.”
“장난이예요. 메간 님.”
…
나도 모르게 이걸 해명해야 하는 상황.
나는 살짝 입꼬리가 과하게 올라간 애슐리 씨의 표정을 읽고는 이 해명이 꼭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보통 드래곤 분이랑 다르신 거 같아서요.”
“…네?”
“그러니까…제가 많은 드래곤 분들을 만나 본 건 아니지만…오로트 씨가 드래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요.”
물론 화염 주머니는 빼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걸 언급할 이유는 없으니 나는 이걸 빼고 말했다.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오로트 씨.
그녀는 그래도 조금 오해가 풀리셨는지 미소를 지으셨다.
“저는 유희를 많이 해 본 몇 안 되는 드래곤이니까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유희는…원래 세계의 삶을 이야기하시는 거죠?”
“맞아요. 메간 님이 모든 붉은 용 중에서 가장 강력하시지만…유희 경험에서는 저보다 밀리신 답니다.”
“…그걸 굳이 언급해야겠느냐?”
“저는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드래곤이거든요. 헤헤.”
미소 짓는 오로트 씨.
그녀의 자연스러운 부분은 아무래도 그녀의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인 걸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잠시 손님들 오는 걸 맡아주거라.”
“잠시 쉬려고 하시는 건가요?”
“아니, 존과 애슐리에게 워커 부부를 소개해 주려고 한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로트 씨.
그녀는 내 손에 들린 선물을 보고는 단박에 이해하셨다.
“선물도 챙겨 오시고…일부 멍청한 도마뱀 놈들 보다 훨씬 나으신데요?”
“너도 붉은 용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오로트.”
“네네. 알겠습니다. 메간 님.”
메간 씨와 장난을 치는 걸 즐겨 하시는 오로트 씨.
메간 씨는 한숨을 쉬시고는 우리를 데리고 파티장 안쪽으로 향하셨다.
“미안하구나. 오로트가 좀 말이 많아서 말이야.”
“괜찮아요. 그나저나 오로트 씨와 많이 친해 보이는데…”
“오로트랑 말이냐? 뭐…그렇지. 애초에 내 연적이었으니까.”
“…네?”
당혹스러운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연적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깐…
“설마…”
“그래. 나랑 평생을 같이했던 그 남자를 노리던 또 다른 연적이었지.”
아름다운 메간 씨와 그에 못지않은 오로트 씨 사이를 오가셨으니…죄 많은 분이었구나 싶다.
“두 분은 그러면 어떻게 되신 거예요?”
“뭐…내 반려자가 죽고 나서 화해 한 뒤 친구처럼 지냈지. 물론 날 메간 님이라 부르며 쫓아다니긴 했지만… 사실상 친구나 마찬가지였어.”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흠…그건 나중에 이야기해주마.”
어느새 도착한 파티장 안쪽.
그 안에는 파티장에서 가장 화려한 복장을 한 주인공 분들이 있었다.
“아, 메간 씨.”
“이런 파티를 열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멋진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분.
그리고 그 옆에 계신 갈색 옆트임한 드레스를 한 여인 분.
마지막으로 둘 사이를 걸어 다니는 꼬마 신사 분 한 명이 있었다.
“옆에 계신 분들은…?”
“내가 저번에 말한 아이들이란다.”
“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분.
그분은 메간 씨 옆에 서 있는 나와 애슐리 씨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메간 씨에게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존 씨 맞으시죠? 저는 조지라고 합니다.”
내게 악수를 권하려고 하신 남성분.
나는 잠시 선물을 내려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해요. 조지 씨. 저는 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는 존 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애슐리라고 합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예요.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제 아이를 위해 와 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드릴 뿐이죠.”
조지 씨 옆으로 다가온 여성 분.
그 여성 분의 오른편에는 귀여운 꼬마 신사 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클라라라고 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끝낸 우리들.
메간 씨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와 조지, 클라라 부부를 바라보셨다.
“존이 윌리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는구나.”
긴장되는 순간.
나는 내려 둔 선물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윌리엄이라 불린 아이에게 다가 갔다.
조그마한 아이.
보기에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지적 능력은 3 살 정도 된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
“…?”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윌리엄.
나는 조심스럽게 워커 부부를 바라보았는데 두 분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괜찮을까?”
“선…물?”
선물이라는 말에 눈이 커지는 윌리엄.
조지 씨도 잘생긴 외모를 가진 드래곤 분이셨고,
클라라 씨도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다 보니 두 분의 자녀인 윌리엄도 어린 나이인데도 정말 잘 생겼다.
아직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
원래 무성인 드래곤들은 나중에 돼서 자기 성 정체성을 선택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윌리엄에게 선물하는 건 꽤 많은 고민을 갖게 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떠나서 좋아할 만한 선물.
나는 아이들에게 선물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다.
큰 상자를 받아 든 아이.
그 아이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열어봐도 돼.”
그 말에 바로 열어 보는 윌리엄.
이 꼬마 신사분은 거칠게 선물 상자의 포장을 뜯어냈다.
“…와!”
기뻐하는 아이.
그 아이는 다행히 이게 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걸 보고 기뻐하는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애슐리 씨.
그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긴장했던 얼굴이 다소 풀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와 애슐리 씨가 한인마트에서 구매한 선물.
그건 바로 아직도 인기가 많은 샤크 베이비였다.
중독성있는 노래로 유명해진 캐릭터.
어린아이들이 참 좋아한다고 해서 구매했는데 다행히 윌리엄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패키지 안에 들어가 있는 상어 인형과 비디오.
그리고 기타 부수적인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윌리엄이 정말 기뻐하는 걸 본 워커 부부.
두 분은 나와 애슐리 씨에게 감사함을 표하셨다.
“정말 감사해요.”
“윌리엄이 좋아하니 다행이예요.”
“하하. 요즘 윌리엄이 저 노래에 빠져 있어서 항상 부르고 다녔거든요.”
클라라 씨의 말.
나는 그녀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상어 인형을 들고 귀엽게 춤을 추는 아이.
윌리엄을 보면서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