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76화 (76/292)

〈 76화 〉 푸른 꿈 (2)

* * *

네 명이서 도착한 리큐르 스토어.

원래라면 올리비아는 들어올 수 없는 장소지만,

보호자가 있으니 들어올 수는 있었다.

"저도 2 개월 뒤면 성인이라구요."

"그래그래."

그레이스 씨의 한 마디에 입을 삐죽 내미는 올리비아.

그녀의 반응이 귀여웠다.

"여기 리큐르 스토어 생각보다 술의 종류가 많네."

기뻐하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다른 곳은 더 적나요?"

"뭐, 이것보다 작은데가 허다하니까."

"많이 다녀보셨나요?"

"대마가 물릴 때면 술을 진탕마시고 잠들곤 했으니까. 수면제보다 술이 더 저렴하거든."

그레이스 씨의 덤덤한 말.

나는 그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에 홀로 떨어진 그녀.

밴쿠버에 적응하기 위해 그레이스 씨는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물로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은 피폐해져만 갔다.

대마, 술 그리고 섹스.

이런 것들이 주는 쾌락에 의존해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도수가 높은 럼을 고르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늘은 맥주만 사기로 했죠?"

"...알겠어."

생각보다 순순히 내 말을 따라주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럼을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도착한 맥주 코너.

생각보다 많은 로컬 맥주와 스몰비어가 있었다.

매년 커가는 캐나다 내 크래프트 비어 시장.

그렇다 보니 일 전에 애슐리 씨와 지나가면서 말했던 그랜빌 아일랜드 내 스몰비어 같은 곳이 많았다.

그런 맥주 공장에서 납품한 맥주들.

특히한 맥주들이 많아 즐기기 좋았다.

내가 그레이스 씨에게 한눈을 파는 사이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는 눈을 반짝이며 맥주를 보고 있었다.

"술은 싫어하지만 병은 예뻐서 좋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비싼 샴페인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보인 올리비아.

하지만 기본적으로 술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알콜 중독자인 올리비아의 어머니.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술을 사달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샴페인은 비싸다고 하니까 궁금했을 뿐이예요."

단호하게 말하는 올리비아.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애슐리 씨는 마음에 드는 맥주 있으세요?"

"저번에 존 씨랑 먹은 게 전부라서...잘 모르겠어요."

"아..."

나랑 영화를 보면서 마셨던 맥주가 첫 맥주였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위해 맥주를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쪽으로 와보실래요?"

"네?"

내 손에 끌려 내 옆에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체취가 내 코를 간질였다.

요즘 들어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체취.

나는 인내심을 끌어 올려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하려는 건 애슐리 씨를 위한 맥주 설명.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크...크흠...이건 저번에 마셨던 맥주예요."

"존 아저씨 얼굴 빨개졌어요."

"...제발. 지금 최대한 참고 있는 거란 말이야."

내 말에 키득거리는 올리비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슐리 씨는 빙긋 웃으며 내 장단에 맞춰주셨다.

"이게 그 투명한 맥주 맞죠?"

"맞아요. 라거라고 해요."

캐나다에서 인기 있는 맥주의 종류.

라거, 에일.

여기에 추가적으로 필스너, IPA, 밀맥주, 페일, 스카치 등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거와 에일이 가장 큰 대 분류였다.

대부분의 맥주를 에일과 라거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 보리스.

맥주광인 그의 지식에 따르면 처음 맥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느낌의 라거가 좋았다.

"그렇군요..."

흥미롭게 내 설명을 듣는 애슐리 씨.

그치만 시선은 맥주가 아닌 날 보고 계셨다.

"크흠...흠...그리고...이건..."

그렇게 이어져 나가는 맥주 설명.

이걸 멀리서 본 올리비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그레이스 씨에게 다가 갔다.

이미 맥주 한 바구니를 담아온 그레이스 씨.

그녀는 올리비아가 우리를 가리키는 걸 보고는 내게 다가오셨다.

"뭐야? 여기서 맥주 강의하고 있었어?"

"아...그게...애슐리 씨가 무슨 맥주를 좋아하는지 몰라서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 씨.

그러고는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단맛 좋아하지?"

"네, 아무래도...과일 맛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면 맥주 말고 사이다가 낫지 않아?"

"사이다요?"

보통 한국에서 말하는 사이다는 음료인 사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알콜이 들어간 음료를 사이다라 불렀다.

애플 사이다, 피치 사이다 등 맛이 좋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청량 음료 같은 주류였다.

"그게 낫겠네요."

"그치?"

빙긋 웃은 그레이스 씨.

그녀는 애플 사이다와 피치 사이다를 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이렇게 맥주를 많이 사셔도 돼요?"

"왜? 두 팩 밖에 안 샀는데?"

"..."

리큐르 스토어에서 파는 주류 중 가장 큰 사이즈의 패키지.

흔히 말하는 패밀리 팩이라 불리는 20 개 이상의 큰 맥주캔이 들어간 팩을 담아오셨다.

그것도 두 개나 말이다.

"남는 건 두고 가려고."

나름 변명이라고 말하는 그레이스 씨.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반응조차 없었다.

"그럼 럼 사 올까?"

"...이걸로 하죠..."

그나마 맥주는 가스가 많으니 마시다 보면 배가 불러 못 마실수 있었다.

반면, 럼은...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계산은 내가 할게."

"나눠서 결제하죠."

"오늘 술은 내 담당이야. 그리고 애슐리꺼인 사이다 밖에 없잖아.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

빙긋 웃는 그레이스 씨.

나와 애슐리 씨는 감사함을 표현하고 계산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녀를 기다렸다.

그레이스 씨는 능숙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애슐리 씨.

술 계산은 처음인지 흥미롭게 보셨다.

"신분증이랑 신용카드로 본인 증명을 하네요?"

"네, 맞아요. 아이디가 두 개 필요해요."

예전에 한 번 그녀에게 설명한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튼, 캐나다에서는 술을 사기 위해서는 특정 장소인 리큐르 스토어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다.

추가로 본인 증명을 하기 위해서는 신분증과 신용카드 두 개다 필요했다.

생각보다 빡빡한 규정의 주류 제한.

식당에서도 술을 파는데 새벽 2 시가 되면 주류판매가 금지되어 마시던 술도 빼앗아 갔다.

한국이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지만 말이다.

"자, 다 샀어. 집으로 가자."

그레이스 씨의 큰 맥주.

그녀는 능숙하게 그 맥주를 내게 넘기고는 사이다를 애슐리 씨와 나눠 들었다.

혼자서 50 캔이 넘는 맥주를 든 상황.

많이 무겁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와 드릴까요?"

"괘...괜찮아요. 애슐리 씨."

나도 모르게 생기는 오기.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이다 보니 이런 치기 어린 모습이 삐져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우리 집.

겨우 이 무거운 맥주로부터 해방되어 기분이 좋았다.

"휴우..."

"고생했어."

내 등을 두드려주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미지근한 맥주 하나를 열어서 드셨다.

"너무 빨리 드시는 거 아니예요?"

"더워서 어쩔 수 없어."

그레이스 씨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확실히 많이 더운 오늘 저녁.

낮보다 더 더운 느낌이었다.

"저도 땀에 흠뻑 젖었어요."

"오늘은 정말 덥네요."

마찬가지로 더워하는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

일단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높은 곳에 있는 우리 집.

창문을 열자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휴우...시원하네."

"맞아요."

"하아..."

어느새 소파에 앉아 있는 애슐리 씨, 그레이스 씨 그리고 올리비아.

다들 멍하니 노을 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에어컨 킬까요?"

"아니, 괜찮아. 에어컨 보다는 이런 바람이 좋아서 말이야."

그레이스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었다.

"센스 좋은데?"

나는 그레이스 씨의 칭찬에 미소로 답했다.

그녀들이 쉬는 사이 나는 맥주를 냉장고에 넣을 준비했다.

조금 비좁은 냉장고 안.

다행히 그레이스 씨를 대접하기 위한 음식을 꺼내자 맥주를 넣을 자리가 생겼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아니예요. 오늘 단체 손님 맞이하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소파에서 쉬고 계세요."

내 옆에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는 내가 맥주를 넣는 걸 도와주셨다.

좁은 냉장고 앞에서 맥주를 넣는 나와 애슐리 씨.

자연스럽게 그녀의 체취가 다시 내 코를 멤돌았다.

"아까 리큐르 스토어에서 귀여우셨던 거 아세요?"

애슐리 씨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녀에게 듣는 귀엽다는 말.

조금 기분이 묘했다.

"하하...하."

"언제나 완벽해 보이고 솔선수범하시는 존 씨의 모습 사이사이에 보이는 그런 모습들이 전 좋아요."

빙긋 웃는 애슐리 씨.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없기에 무슨 말씀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좋다면 상관없었다.

내 볼을 핥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혀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에 몸이 나도 모르게 살짝 떨었다.

"이런 느낌도 말이예요."

"이게 귀엽다는 거죠?"

"헤헤...그런 거죠."

그렇게 정리된 냉장고.

슬슬 저녁을 먹어야 하니 올리비아와 그레이스 씨에게 다가 갔다.

선풍기 바람에 살짝 졸고 있는 그레이스 씨.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어깨에 기대서 같이 졸고 있는 올리비아.

둘의 모습이 귀여워 깨우기 어려웠다.

그레이스 씨는 항상 차가운 모습과 냉정한 모습만 보여 왔지만,

자는 그녀의 해맑은 표정은 동화 속에 나오는 엘프 그 자체였다.

"흐음...살짝 졸았나?"

내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뜬 그레이스 씨.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멍하게 있더니 얼굴을 붉히셨다.

"크...큼...음..."

그레이스 씨는 머쓱하신지 헛기침을 하셨다.

그녀가 움직이자 같이 일어난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길게 하품하더니 눈을 비볐다.

"그레이스 씨랑 같이 먼저 씻고 올래?"

"네...하암...그럴게요."

"그레이스 씨 혹시 오늘 저녁에 입으실 옷 가져오셨어요?"

"아니, 그냥 있을 생각이었는데?"

덤덤히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오늘 자고 가신다고 말씀하시길래 준비하신줄 알았다.

"제 옷 입으실래요? 저랑 체격이 비슷하시니까 편하실거예요."

그레이스 씨는 올리비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몸을 일으킨 올리비아.

그녀를 따라 그레이스 씨가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올리비아와 그레이스 씨가 씻는 사이 만들어둔 음식을 준비할 생각이다.

"그레이스 씨가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애슐리 씨가 만든 거니까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애슐리 씨.

오늘 그레이스 씨에게 대접하는 음식의 대부분을 애슐리 씨가 만드셨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레시피를 제공하고 나와 올리비아 그리고 애슐리 씨가 다 같이 만들었다.

오늘 만든 음식들.

평소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달리 그녀의 세계에서 가져온 레시피대로 만든 음식이었다.

잘 구운 가지에 토마토소스를 뿌려 만든 음식.

감자를 살짝 구워 그 위에 각종 향신료를 뿌린 음식.

고구마를 살짝 쪄서 으깨 물과 향신료 그리고 전분으로 뭉쳐 만든 경단 같은 음식.

이외의 다양한 음식들이 준비되었다.

애슐리 씨의 말에 따르면 토끼 수인들의 레시피라고 하는데 마을에 종종 찾아오는 엘프들도 좋아했다고 하셨다.

"마을에 엘프들이 찾아왔어요?"

"네, 엘프와 저희는 비슷한 지역에서 살았으니까요."

숲속에 사는 엘프들.

토끼 수인들은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애슐리 씨와 그레이스 씨가 이전 세계에서 서로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준비된 음식들.

마침 그레이스 씨가 먼저 씻고 나오셨다.

"확실히 샤워하니까 시원해서 좋네."

살짝 젖은 그녀의 머리.

짙은 화장과 단정한 머리가 풀어진 그레이스 씨의 모습은 순수한 엘프의 모습이었다.

"무슨 음식인지 볼까?"

음식을 보기 위해 다가온 그레이스 씨.

그녀는 애슐리 씨가 준비한 음식을 보고는 잠시 가만히 서 계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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