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회의 (2)
* * *
캐나다의 큰 도시인 밴쿠버,
태평양 연안의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 생각하지만...
인구 67 만의 도시라 한국으로 따지자면 경기도 남양주와 비슷한 느낌의 도시였다.
남양주의 경우 도농역 근처에 상권이 몰려 있듯 밴쿠버도 다운타운 위주로 발달하다 보니 이런 느낌이 강했다.
한 마디로 생각보다 좁은 도시.
지인을 거친다면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샐리 씨처럼 말이다.
딥코브에서 보았던 리저드 부부.
그중 아내로 보였던, 리저드의 특징이 적은 여성분이 샐리 씨였다.
사람의 모습에 리저드의 특징이 있으셨는데 검은 머리카락에 메간 씨와 비슷한 눈.
그리고 손등이나 다리 부분에 보이는 비늘이나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여기 카페의 주인이신줄은 몰랐어요."
"밴쿠버가 참 좁네요."
"그렇죠?"
빙긋 웃는 샐리 씨.
그녀는 손을 뻗어 악수를 하셨다.
친근감이 느껴지는 악수.
그녀는 악수하면서 나를 바라보셨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아니예요. 그나저나 아이의 이름이..."
"지미예요."
"나중에 지미랑 한 번 카페에 찾아와주실래요? 맛있는 음료를 드리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나중에 제 아이랑 남편이랑 같이 찾아올게요. 오늘은..."
윗층을 바라보는 샐리 씨.
그녀는 오늘 회사의 회계 임무하기 위해 오셨다.
"일이 많으시겠네요."
"맞아요. 저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회사의 돈을 다루는 일하고 있다 보니 이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없거든요."
모든 일에 필요한 돈.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대부분의 회사는 그 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다른 직원들과 회사 경영진이 만들어낸 일종의 투자금.
그걸 담당하는 샐리 씨는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일을 하셨다.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마. 샐리."
옆에 나타난 제임스.
그는 샐리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 일인 걸요. 제임스."
"우리도 모두 재경부와 행정부를 포함한 백오피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있어. 다만...조금..."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제임스.
그걸 본 샐리 씨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 래브 씨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어 보긴 해야 하겠지만...대략 얼마나 정도 나올 거 같아요?"
"음...존, 미안한데 냅킨 좀 쓸 수 있을까?"
카운터 바에 위치해 있는 냅킨.
그걸 좀 써도 되는지 물어보는 제임스에게 흔쾌히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받은 제임스는 냅킨 위에 무언가를 적어 뒤집은 뒤 샐리 씨에게 건넸다.
그걸 슬쩍 들춰서 보는 샐리 씨.
그녀는 놀래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많이요?"
"어쩔 수 없어. 외주이긴 하지만 우리는 전문가고 이에 걸맞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건 꼭 필요한 것만 추린 거야."
"하지만...이익을 생각하려면..."
"한 번 들어봐 샐리."
샐리 씨를 설득하려는 제임스.
그는 샐리 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번 작품으로 생기는 이익을 언급했다.
"먼저, 우리가 상대하는 회사가 큰 회사인가 잘 알잖아. 이번에도 잘 만들면 다음 계약도 따낼 수 있어."
"흐음..."
나름 설득력 있는 제임스의 말.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설득당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존.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팬덤이 많은지 알지? 기본 영화가 너무 잘나와서 이 정도는 해야 해."
대박을 친 주타피아.
이걸 성공 시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덤을 낳은 영화다 보니 기대감도 높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우리의 이야기야.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만든다는 걸 알려 줘야지."
"그게 전부인가요?"
"회계쪽에서 좋아할 시장 점유율(Market Share)부분에서의 이점과 손익분기점(Breakevenpoint)도 준비되어 있지."
"휴우...알겠어요."
재정부를 대표해서 오신 샐리 씨.
그렇다 보니 제임스가 먼저 말한 부분도 중요했지만, 그녀의 처지에서는 재정과 관련된, 그러니까 돈에 관련된 정보도 필요했다.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는 매출(Revenue), 영업이익(Operating income) 그리고 순이익(Net profit).
하지만 예측은 할 수 있으니 이 부분을 세밀하게 살펴보실 거 같았다.
제임스가 방음벽 비슷한 걸 설치한 이유.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회사가 얼마나 기대하는 지 알고 계시죠?"
"물론이지 샐리. 내가 괜히 미팅 장소를 이렇게 좋은 장소로 고른 게 아니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임스.
샐리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카페 안을 살펴보았다.
"그건 동감해요."
"밴쿠버에 이렇게 좋은 카페는 없을 거야."
"너무 절 띄워주시는 거 아니예요? 그리고 제임스 너도 마찬가지야."
"이 친구가 조금 부끄러움이 많은 녀석이예요."
제임스의 장난에 샐리 씨는 피식하고 웃으셨다.
"제임스..."
"난 이만 올라갈게. 아 참 그리고 주문은 애슐리 씨랑 올리비아에게 말해 뒀어."
바로 내 앞에서 사라지는 제임스.
그걸 본 샐리 씨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신 뒤 제임스를 따라 위층으로 이동하셨다.
오랜만에 맞은 단체 손님.
제임스의 팀은 확실히 이전에 맡았던 단체 손님과 전혀 달랐다.
"존 아저씨."
내 옆에 다가온 올리비아.
그리고 그 뒤에는 애슐리 씨가 있었다.
"주문받아온 거야?"
"네, 조금 양이 많아서..."
내게 건네는 종이.
그 종이에 빼곡하게 적힌 음료들을 보며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올리비아가 맡은 세 명의 주문만 해도 두 페이지.
추가로 애슐리 씨가 건넨 네 명의 주문도 두 페이지였다.
"금방 만들어줄께."
"저희가 도울게요."
내게 다가온 애슐리 씨.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이 바라보셨다.
"오늘은 서빙 담당이시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혼자서도 만들 수 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고마워요. 애슐리 씨 그리고 올리비아도."
고개를 끄덕인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단체와 홀을 담당했던 기억을 되살려 일을 시작했다.
다양한 취향이 들어가 있는 음료들.
아몬드 밀크와 바나나 그리고 프로틴 두 스푼을 넣은 프로틴 음료.
룽고로 내린 에스프레소에 무지방 우유(Skim milk)를 넣어 만든 라떼.
각종 야채에 당근을 더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는 야채주스.
진한 초콜릿에 고지방 우유 그리고 생크림으로 토핑한 아이스 초코라떼.
타피오카 펄과 잘 우려 낸 홍차, 우유로 가득 채운 버블밀크티.
제철 수박을 잘 갈아 낸 뒤 꿀과 설탕 그리고 탄산수로 만든 수박에이드.
피나콜라다 믹스에 파인애플 슬라이스 그리고 우유 거품으로 마무리한 무알콜 피나콜라다.
마지막으로 라임청으로 만든 무알콜 모히또를 대용량으로 만드는걸로 모든 오더를 끝 마칠 수 있었다.
"다 만들었어요."
"수고하셨어요."
"대단해요 존 아저씨."
"혼자서 단체 볼 때 실력이 아직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너스레를 떨자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는 미소로 대답했다.
만든 음료를 조심스럽게 서빙하는 올리비아와 애슐리 씨.
방음벽이 있어서 그들의 감탄사를 들을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대신 알려줄거로 생각이 들었다.
"휴우...이제 정리를 좀 해야겠지."
두 서버가 서빙을 하는 사이.
나는 난장판이 된 카운터를 정리해야 했다.
지금은 오전이라 사람이 적지만,
이따가 점심이 되면 사람들이 많아지니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했다.
아까 급하게 음료를 만드느라 장난판이 되었던 카운터는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부터 해야 하는 건 점심 준비.
혼자서 점심을 담당해야 하니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어디 보자..."
미리 만들어둔 그래프.
사람들의 취향은 달라서 사람들이 이 날에 무슨 음료를 마셨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항상 맞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금요일에 점심에 가장 주문이 많았던 것은 라떼와 참치 샌드위치.
만들기도 쉽고 재료 비용도 낮고 나오는 시간이 짧아 매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속 재료를 미리 만들어 랩을 씌워둔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너무 많이 만든 건 아니지만 급할때 바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점심 준비도 끝내갈 무렵 서빙을 끝낸 올리비아가 내게 다가왔다.
"반응은 어땠어?"
"다들 좋아하시더라구요. 팁도 받았어요."
"정말?"
캐나다에서의 팁은 서버의 몫.
당연히 팁을 받은 올리비아는 기쁜 표정으로 내게 자랑했다.
"네, 그리고 음료들도 다 맛있다고 하셨어요."
"다행이네."
내가 만든 다양한 종류의 음료들.
가급적 한 번에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다 보니 걱정이 많았는데 실수 없이 잘 만들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점심 준비하시는 거예요?"
"응. 혹시 한 시간 뒤쯤에 제임스에게 점심 식사 관련해서 물어봐 줄래?"
"미리 주문받기 위해서죠?"
"눈치 빠른 데."
"제가 한 눈치 하죠."
장난스럽게 말하는 올리비아.
나는 그녀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의 혼잡한 시간에 저들의 주문까지 겹치면 혼선이 빚어지니 이걸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한 시간 뒤에 말이죠?"
"응, 제임스 말로는 프레젠테이션이 있다고 하더라고."
샐리 씨와 제임스가 하던 이야기.
프레젠테이션이 한 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지만 한 시간 뒤면 넉넉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애슐리 씨에게도 전해 줘."
지금 위에서 대기 중인 애슐리 씨.
위층을 전담하는 건 애슐리 씨이니 그녀에게도 알려야 했다.
"알겠어요."
"고마워."
손님 없이 한적한 1층.
그래서 올리비아는 애슐리 씨를 돕기 위해 2 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홀로 남은 카운터.
나는 점심 준비를 이어 나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안녕."
장난스럽게 웃는 그레이스 씨.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사람들의 생각은 다른가 봐?"
카운터 앞에 자리 잡으신 그레이스 씨.
그러고는 도발적인 눈매로 날 바라보셨다.
"오늘 저녁에 오시기로 하셨잖아요."
오늘 저녁 우리집에서 있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그녀.
오늘 제임스의 단체 손님을 맡이하기전 올리비아와 애슐리 씨에게도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래도 일찍 오고 싶어서 왔어."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나는 뭐라 대꾸하기 어려워서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피했다.
"그런데 애슐리는?"
"오늘 단체가 있어서 위층을 전담하고 있어요."
"올리비아도?"
예전에 실리카 씨를 만나고 있을 때 전화로 그녀에게 소개한 올리비아.
그래서 그레이스 씨는 올리비아를 알고 있었다.
"단체라...무슨 단체야?"
"제 지인 회사 단체인데 회사내 시설 문제가 조금 있어서요."
"유리창이 깨졌나?"
"바로 알아차리시네요."
"밴쿠버에서는 흔한 일이지."
덤덤히 말씀하시는 그레이스 씨.
그녀의 말처럼 밴쿠버에서는 깨진 유리창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1층을 네가 혼자 담당하는 거네."
"네, 그렇게 되었어요. 음료 한 잔 하실래요?"
"그래. 좋아. 음...간단한 라떼 한 잔줘."
그녀에게 나온 라떼.
라떼를 물끄러미 바라본 그레이스 씨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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