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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카페-67화 (67/292)

〈 67화 〉 규칙 (2)

* * *

"장난식으로 말하는 거지만 예술 직종들은 감성적이여서 말이야."

걱정스럽게 말하는 제임스.

그는 관리자의 위치 답게 직원들의 관리도 같이 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말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들 말이야."

덤덤히 말하는 제임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동료들이 피해를 보지 않길 원하는 듯 보였다.

"좋은 상사네."

"다들 나랑 비슷하니까...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어떤 영향?"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무언가를 만들 때 그 감정이 묻어나와 일종의 유리닦이와 비슷하지."

"가끔 네 비유를 이해할 수 없다니까."

"나도 나름 예술가니까."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임스.

그의 예술가스러운 설명을 들어볼 생각이다.

"유리를 잘 만들어서 투명하게 잘 만들어도 주변에 손자국이 계속 묻어나잖아."

"뭐, 그렇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닌 제임스의 말.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감정을 절대로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내 말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묻어 나올 수밖에 없어. 가장 완벽한 유리 공예품에도 결국 손자국이 남는 거지."

"네 말대로라면 장갑을 끼거나 지문이 묻는 걸 신경 쓰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꽤 합리적인 생각이야. 그래서 나는 가급적 지문이 묻지 않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

"그게 네가 이 부분에 깊게 관여하는 이유다?"

"맞아. 나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거든."

"..."

예전에 피트니스 센터에서 인종 차별을 하던 사람을 용서할 정도로 관대한 제임스.

그런 제임스가 버티지 못할 정도의 일이면 그 일은 상당히 심각한 일인 게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 당시 내 몸 상태가 안 좋았고, 스트레스가 극에 쌓여 있었거든."

"고민이 많았네."

"나한테 한 거라면 웃고 넘길 수 있는데...베일리를 향한 인종차별이었지."

"베일리 씨한테?"

경찰인 베일리 씨에게 하는 인종차별.

물론 사복차림일 때는 그녀가 경찰인 걸 못 알아봤겠지만...그래도 그녀가 인종차별받았다는 건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그녀는 원주민­히스패닉 혼혈이니까. 단순히 그녀와 쇼핑하러 갔는데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거든."

"그런데?"

"돌아와 보니 베일리를 뒤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보안 하는 사람한테 뭐라 이야기하는 거야. 그래서 가서 물어 봤지."

"설마..."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하길래 계속 추궁하니 말하더라고. 종업원이 베일리가 도둑일 가능성이 높다고 유심히 지켜보라고 시켰다고 실토했어."

"세상에..."

일부 캐나다 사람들에게 퍼져 있는 좋지 못한 생각.

원주민 분들이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통계상 원주민 분들의 범죄율이 가장 높았기에 종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인종차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베일리에게 바로 사실을 말했지. 그리고 종업원에게 따지자고 말했어."

"그때와 비슷하네."

제임스와 피트니스 센터에서 있었던 일.

내가 제임스에게 따지자고 말했던 걸 기억해낸 제임스였다.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제임스는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멈췄다.

"나 궁금하게 할 생각이야?"

"아, 미안."

"그래서 베일리 씨가 어떻게 했는데?"

"그게...그녀도 알고 있더라고."

"베일리 씨도?"

"어릴 때부터 겪었던 일이래. 자신이 왜소했을 때는 대놓고 다가왔는데 이제는 근육이 많으니 가까이 못 온다면서 너스레까지 떨더라고."

"...둘이 아주 천생연분이네."

제임스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어지간한 성인 남성 두 세 명은 제압하는 베일리 씨.

그렇다 보니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기분 나쁜 감정을 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럼 네가 다 막을 거야?"

"아니, 그때 말한 것처럼 바꿔 나갈 거야."

제임스가 자주 이야기하는 이야기.

나는 그의 변하지 않는 생각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올바른 사람이네."

"다 근육 덕분이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임스.

나는 이 헬 창 애니메이터에게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근육이 도덕성을 가늠하는 지표라면 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이겠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운동하면 돼."

"... 진심이야?"

"저번에 운동 도와달라며."

예전 기억을 언급하는 제임스.

그러자 내가 반박할 말이 사라졌다.

"애슐리 씨와 귀여운 올리비아랑 지내는 것도 좋지만 네 몸을 생각해. 나중에 다치면 이미 늦었어."

"보통 운동하면 다친다는 생각해야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운동이 상처를 낫게 한다고?"

"낫게 한다기보다는 예방하는 거지."

"사람이 참 한결같네..."

"칭찬 고마워."

"이게 칭찬이라 생각하는 거야?"

빙긋 웃는 제임스.

그의 웃음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이제 간다. 회사 돌아가서 보안 생각도 하고 이리저리 알려 줘야지."

"철두철미하네."

"사람들은 스포일러를 싫어하거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

기대감을 부추기는 스포일러는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다음에는 베일리 씨랑 올 거지?"

"나보다 베일리랑 더 친해진 모양이네?"

너스레를 떠는 제임스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장난이야. 나중에 베일리가 쉴때 올게."

"알겠어."

그렇게 손 인사를 하는 제임스.

마지막으로 올리비아가 그를 안아주는 것으로 배웅을 끝냈다.

"제임스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단도직입적인 내 질문.

조금 당황하게 만들려고 짓궂은 질문을 했는데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실례일 수도 있지만,

아이라만과 제임스를 비교해 보았다.

아이라만을 잘 알지는 못 하지만 그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게 다가오는 애슐리 씨.

이번에도 카페에서 가장 바쁜 점심시간을 올리비아랑 단둘이 하느라 고생했을 그녀가 걱정됐다.

"미안 해요. 애슐리 씨.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뒤에 수북이 쌓여 있는 설거지 거리.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조금 쉴 수 있도록 내가 맡을 생각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아뇨...제가..."

그렇게 일어난 작은 소란.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올리비아는 간단하게 이 상황을 종료했다.

"제가 테이블을 닦을 게요. 두 분이서 같이 설거지를 하시는 게 어때요?"

빙긋 웃는 올리비아.

나는 그녀의 해결책에 동의했다.

"똑똑한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올리비아.

그녀는 이미 행주를 들고 있었다.

한 명은 손님을 맞이해야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

무엇보다 평일이라 손님이 오시더라도 한 두 명이라서 설거지를 빠르게 해결하는 게 편했다.

애슐리 씨와 내가 설거지를 준비했다.

뜨거운 물에 설거지 거리를 넣어 두고 그대로 솔질한 뒤 식기 건조기에 넣어 두면 끝.

원래는 세척기도 같이 둘 생각이었는데 공간 부족으로 건조기만 넣게 되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건조기와 세척기가 같이 있는데 가정용이다 보니 자주 세척하는 카페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같이 설거지 하는 건 처음이네요."

애슐리 씨는 옆에서 날 바라보며 말했는데 옆 모습도 아름다운 애슐리 씨라 대답이 조금 느리게 나왔다.

"그러게요."

"후훗."

"왜 웃으세요?"

"긴 시각은 아니지만 그렇게 지냈는데도 아직도 부끄러워하셔서요."

"그거야..."

뒤를 힐끗 보니 올리비아는 이미 멀리 떨어져 테이블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애슐리 씨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애슐리 씨가 너무 사랑스러우시니까요."

"헤헤..."

살짝 볼을 붉히는 애슐리 씨.

그녀는 이런 내 말도 좋으신지 웃음으로 보답하셨다.

"너무 행복하네요."

"어떤 부분이요?"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이요. 그러니까...사랑 받고 있다는 걸 표현 받는 건 행복하구나...하고 바로 느껴져서 좋아요."

"자주 해드려야 겠네요."

"올리비아가 뭐라 할까 봐 걱정이 되네요."

그러면서 뒤를 돌아본 애슐리 씨와 나.

마침 올리비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들려요."

"미안."

"미안 해."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설거지에 집중했다.

"제임스 씨랑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여러 고민이랑 음...그의 책임감?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제임스는 항상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누구보다 책임감이 많은 친구거든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제임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관리직에 있을 수 있고 그를 따르는 동료 직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좋은 친구분이시네요."

"가끔은 그 '좋음'이 도를 넘으니까요."

"예를 들어...운동 같은 거요?"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애슐리 씨.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임스가 말하길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더라구요."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마침 저희 카페가 캐나다 플레이스 근처니까요."

아름다운 해변과 요트들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캐나다 플레이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스탠리 파크라 운동하기도 좋았다.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운동 갈래요?"

"저두요?"

"네, 애슐리 씨랑 같이 운동하면 좋을 거 같아요."

잠시 고민에 빠진 애슐리 씨.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사실..."

내 귀에 작게 속삭이는 애슐리 씨.

올리비아가 들으면 안 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애슐리 씨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진짜예요?"

"네, 기사에서 봤어요...그러니까 음..."

"하체 운동이 그런 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굳이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존 씨... 부끄럽단 말이예요."

"방금 제게 말씀하신 거요?"

대답 대신 내 다리를 살짝 치는 애슐리 씨.

나는 그 귀여운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두 분 언제까지 설거지만 하실거예요?"

"미안."

"금방 끝낼께."

뒤에서 독촉하는 올리비아.

그녀는 이미 테이블 정리를 모두 끝냈다.

그걸 본 나와 애슐리 씨.

둘은 가능한 빨리 설거지에 집중해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모든 뒷정리가 끝나고 카운터에 앉아 휴식을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몬 스쿼시가 벌써 다 나갔네."

"오늘 손님들이 많이 찾으시더라구요."

"저도 레몬 스쿼시 오더만 12 개 받은 거 같아요."

오늘 최고의 인기 메뉴인 레몬 스쿼시.

레몬청을 물에 풀어서 내거나 아니면 스파클링 워터를 사용해 탄산감이 있는 음료로 만들 수도 있었다.

다재다능한 레몬청.

사람들이 더워서 그런지 오늘 스쿼시 주문이 가장 많았다.

"흐음..."

"무슨 생각하세요? 존 씨?"

"아, 오늘 조금 일찍 문을 닫고 레몬청을 많이 만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어서요."

"정말요? 저도 배울래요 존 아저씨."

"우리 카페 비밀 메뉴인데... 이건 가르쳐 주기 어려워."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눈치를 챈 올리비아.

그녀는 내게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제발요."

"장난이야. 장난. 오늘 그러면 일찍 문을 닫고 다 같이 레몬청을 만들죠. 그리고...여름이니까...라임청도 만들면 좋겠네요."

"레몬과 라임이라...으...최고의 조합이네요."

생각만 해도 신 듯 얼굴을 찌푸리는 올리비아.

그걸 본 애슐리 씨는 올리비아가 귀여운지 미소를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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