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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카페-57화 (57/292)

〈 57화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3)

* * *

"제가 너무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든 거 같네요..."

헤일리 씨의 말에 모두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못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

내가 아는 철학이라고는 간단한 것들이 전부였는데 분석철학이라던지 세세한 이야기가 나오니 일반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하...연구소랑 대학교 주변만 돌아 다니다니보니 이런 것만 해서 말주변이 없네요."

갑자기 기가 죽은 헤일리 씨.

나와 애슐리 씨 그리고 올리비아는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흥미로웠어요."

"모르는 이야기라 신기했어요."

"정말요?"

다시 환하게 웃는 헤일리 씨.

우리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 누구보다 슬픔을 품고 있었다.

딸랑.

마침 들어오는 손님.

이런 안 좋은 분위기에 손님이 와주시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먼저 움직이는 애슐리 씨.

올리비아도 그녀를 뒤따라나섰다.

"너무 매출 연습만 해서 커피 내린 것도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

올리비아의 대답.

나는 그 말에 눈 뜨고 코 베였다는 한국의 속담이 생각났다.

글썽거리는 헤일리 씨.

아무래도 나까지 가면 큰일이 날 것 같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할 것 같았다.

"존 씨도 바쁘신가요?"

"아뇨, 아뇨. 전 괜찮아요. 헤일리 씨의 이야기에 흥미도 있구요."

"정말요? 고마워요."

그대로 시작된 헤일리 씨의 이야기.

형이상학이 왜 북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석철학의 주류가 되었냐부터 해서.

유럽의 대륙철학과 대비되는 이유 덕분에 이 종족에 대한 다채로운 접근이 가능하다는 말.

마지막으로 철학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수리학이라면서 내 감정을 1 부터 9까지 판단한 다음 조인족에 대입해 비례값을 구하는 등.

다채로운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리철학의 사회 구성주의적 면모는 이 종족을 조금 더 객관화하여 보여주죠..."

"아...네."

전혀 모르는 이야기.

하지만 헤일리 씨는 내 맞장구에 흥이 붙어 이 부분에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론­예측­시험­실패­수용­새로운 이론의 구축의 형식으로 이어져요. 이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존재하죠."

"그러니까...이 종족이 지금 그 상태라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요. 과도기적인 입장이죠. 조인족은 이 부분에 있어서 선두자예요. 그러니까 인간들의 탈 가족 중심에서 벗어나는 핵심적인 키워드죠."

"조금 간결하게 설명해 주실래요?"

"사람과 이 종족은 다르지 않아요."

그녀의 단 한 마디.

그 말에 나는 그녀가 말한 수많은 지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람과 이 종족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에요. 둘은 교집합이자 하나의 존재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종족들을..."

내 시선이 머무르는 곳.

그곳에는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웃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있었다.

날 따라 그곳을 바라보는 헤일리 씨.

그녀는 간결하게 말했다.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존 씨가 알만한 내용으로 설명드리자면 절대적 지식이나 가치의 존재를 무시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이 있다고 전 믿어요. 여기서 모더니즘은 일반 사람들이 혼용하는 모더니티와 관련이 있어요...그러니까..."

"..."

"미안해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존재 가치를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해요. 맞죠?"

"이것도 어려운데요?"

"어쩔 수 없어요."

종이에 숫자를 적는 헤일리 씨.

그 숫자들은 흔하게 보이는 1 부터 9까지의 숫자였다.

"이 숫자 사이에서 당신의 가치를 정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무래도..."

내 손이 가리키는 곳은 7~8.

9은 너무 거만한 것 같고 5나 6은 너무 낮게 보였다.

"하지만 밖에 있는 행인을 상대로 판단한다면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아!"

"맞아요. 그거예요."

이제서야 이해되는 헤일리 씨의 설명.

내 미약한 철학적인 부분이 조금 움직이자 큰일이라도 해낸 듯 기뻤다.

"미안해요. 보통 사람들에게 설명할 일이 많지 않아서요."

대부분의 시간을 서점 알바나 대학교에 지내는 시간으로 보내는 헤일리 씨.

그렇다 보니 이런 부분이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괜찮아요. 이제서야 명확하지는 않지만 헤일리 씨가 말하고자 하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마워요. 이성과 감정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가끔은...이성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걸 준비할 뿐이에요."

"아..."

잭 씨나 래브 씨 그리고 타나야 씨와 다른 방법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헤일리 씨는 헤일리 씨 나름대로 이 종족이 이 세상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헤일리 씨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존재 의의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아를 갖게 될 다음 세대들을 위한 것이었다.

"휴우...오랜만에 즐겁게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네요."

상기된 표정의 헤일리 씨.

그녀는 더운 듯 웃옷을 벗었다.

드러나는 그녀의 몸매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알 수 없는 향이 느껴졌다.

"아, 이런...죄송해요."

그러자 바로 일어서 거리를 벌린 다음 향수 비슷한 것을 뿌리는 헤일리 씨.

그녀는 자기 체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사용했다.

"연구소에 혼자만 있다 보니..."

내 눈치를 살피는 헤일리 씨.

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무슨 일이었죠?"

"아...그게...서큐버스의 몸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땀을 흘리면...자연스럽게 유혹하는 향이 피어나는 거죠."

"아..."

서큐버스,

나는 그녀의 철학 지식에 묻혀 잠시 그녀가 서큐버스인 것을 잊고 있었다.

원래는 인간의 정기를 먹이로 살아가는 이들.

그렇다 보니 본능적으로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존 씨가 있어서요."

"네?"

"제 체취에도 반응이 없으시잖아요. 그만큼 파트너 분과의 관계가 단단하다는 뜻이죠."

"아아..."

애슐리 씨와 나의 관계.

둘의 관계가 잘 유지되다 보니 헤일리 씨의 체향에도 저항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드래곤의 마법이 또 마법을 부린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연애하기 어려웠는데...좀 아쉽네요."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헤일리 씨.

그녀의 표정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네?"

"절 이해해주시는 분은 존 씨 뿐이니까요. 물론 지난 일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하하..."

멀리서 보이는 쫑긋거리는 귀.

나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러면 계속 공부하셔서 대학교 교수가 되시려구요?"

"네, 모교 프로그램도 있고 이 종족 교수 인원이 근 5 년 동안 채워진 적이 없었거든요."

"아아..."

학교 내 다양성을 위해 미리 준비된 자리.

이 종족들의 다양한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 교수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자격에 도달한 이 종족들이 많지 않아 미달인 모양이었다.

"지금 학교 내에도 이 종족 교수님들은 두 분이에요. 한 분은 트롤이시고, 한 분은 오우거시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조합에 잠시 말문이 멈췄다.

"...아! 죄송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처음 들은 분들은 모두 그렇게 당황하시니까요."

트롤과 오우거 교수님이라...

과제를 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올지 까마득해 보였다.

"그래서 트롤 교수님인 윌리엄 교수님의 수강생들은 성적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장난스럽게 웃는 헤일리 씨.

그녀의 말에 나는 그 교수님에게 배우는 학생들의 안녕을 빌었다.

"거기다 오우거 교수님인 마이크 교수님은 머리가 두 개셔서 누구도 컨닝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군요."

하긴 두 개의 머리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데 쪽지시험이든 중간고사든 얄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그분들처럼 되고 싶어요."

"헤일리 씨는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으실 거구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힘이 나네요."

빙긋 웃는 헤일리 씨.

그녀는 다시 웃옷을 입고 몸을 일으켰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와주셔서 고마워요. 헤일리 씨. 그리고 이 책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다음에 봬요."

그렇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헤일리 씨.

그녀가 사라지자 일을 끝낸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내게 다가왔다.

"둘 다 너무 한 거 아니에요?"

"헤헤...미안해요."

"미안해요 아저씨."

나만 두고 도망간 이들.

나는 장난스럽게 이들을 바라보았는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일리 씨라라면 좋은 교수님이 될 거예요."

"다 엿듣고 계셨네요?"

"헤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그래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 때문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애슐리 씨.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이어지려 했는데...

"제발 제 앞에서는 자제해주세요."

올리비아의 말.

그 말에 나와 애슐리 씨는 헛기침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제가 하루 정도 친구 집을 다녀와야겠네요."

"아...아냐. 괜찮아 올리비아."

"맞아 우리는 괜찮아."

나와 애슐리 씨의 눈치를 살피는 올리비아.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난이에요."

"휴우..."

"하아..."

혹시라도 어제저녁에 들렸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애슐리 씨 그녀는 윙크하며 재치넘치게 넘겼다.

"제가 밤에는 이어폰을 끼고 자는 편이라서요."

"..."

"..."

이미 알고 있는 올리비아.

나와 애슐리 씨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딸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새로운 손님이 오셨다.

"어서 오..."

"아름다운 카페네요."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성격.

조인족 특유의 말투가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새의 부리를 가진 푸른 깃털.

날카로운 눈매와 거대한 몸짓으로 보아 매의 모습을 가진 조인족이었다.

우리의 환대와 상관없이 카페를 둘러보는 남자.

그 남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라피라고 합니다. 타나야의 파트너지요."

"아! 안녕하세요. 타나야 씨가 말씀하신 조인족 남자 친구분이 라피 씨였네요."

이제서야 알게 된 그의 정체.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타나야 씨의 파트너였다.

"아름다운 여성분들도 계시네요. 이쪽의 아름다운 여성분은...?"

"저는 애슐리라고 해요."

"아, 애슐리 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존 씨의 파트너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분은...?"

"저는 올리비아라고 해요."

"올리비아 씨라고 하는군요. 반갑습니다."

예의 바르게 말하는 라피 씨.

잭 씨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자유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타나야 씨는 괜찮으신가요?"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타나야는 잠시 전화 때문에 밖에 있어요."

날개 같은 손으로 밖을 가리키는 라피 씨.

그의 말처럼밖에는 전화를 받는 타나야 씨가 보였다.

"타나야가 말하는데 이곳 음료가 정말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게도 소개해주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그날 실리카 씨를 만났을 때 전화했던 것이 기억났다.

자기 파트너와 한 번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신 타나야 씨.

그게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저희가 바쁜 시간대에 온 건 아니죠?"

"가장 좋을 때 오셨어요. 점심시간 때는 살짝 바쁘거든요."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하는 라피 씨.

지금이 11 시라 여유롭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

"점심에 먹을 곳도 걱정했는데 타나야가 여기를 가자고 한 게 이해가 되네요."

예전에 베일리 씨와 같이 점심을 한 적이 있는 타나야 씨.

그래서 다시 점심시간 전에 이곳에 찾아와주신 모양이었다.

딸랑.

"많이 기다렸지?"

"괜찮아. 인사하고 있었어."

빙긋 웃는 라피 씨.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타나야 씨는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다들 잘 지내셨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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