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풍잎 카페-47화 (47/292)

〈 47화 〉 살리카 법 (3)

* * *

시위 이후 4 일이 지나서 그런지 어느 정도 정리된 상황.

우리 카페 주변은 정말 고맙게도 실리카와 프랭크 아저씨가 정리해 주셨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방치된 리암 씨의 카페.

그의 카페 앞에는 수많은 달걀과 낙서로 얼룩져 있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들.

하지만 누군가 지우고 있는지 한쪽 부분은 깨끗했다.

"애슐리 씨.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저도 도와 드릴게요."

경찰 측에 억류된 상태인 리암 씨.

그는 폭행죄로 경찰소에 계셨다.

한국과 달리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나 경찰측에서 봐주지 않았다.

즉, 내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경찰과 검찰측 판단하에 고소 판결이 진행되었다.

경찰서에 붙잡혀 있는 리암 씨.

그를 대신해 카페를 청소할 생각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걸요."

그렇게 카페 주변을 청소하는 사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숨어 버리는 아이.

그 아이에게 죄를 진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올리비아."

"...존 아저씨..."

내가 부르자 고개를 내미는 여자아이.

리암 씨의 하나뿐인 딸, 올리비아였다.

"괜찮니?"

"네...그런데..."

"내가 미안하구나."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아이지만,

아직 세상을 살기에는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홀로 남아 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내 얼굴을 살피는 올리비아.

리암 씨에게 맞은 걸 걱정하는 눈치였다.

"괜찮아. 아저씨는 나름 튼튼해."

"..."

장난이 통하지 않는 상황.

조금 머쓱해져 올리비아에게 다가갔다.

양 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

거기에 퉁퉁 부은 눈까지.

리암 씨가 자랑하던 그 아이는 많이 위축되고 외로워 보였다.

"지금은 혼자 있니?"

"아뇨, 이혼하신 어머니께서 가끔 들르시는데...안 오셨으면 해요."

낮게 깔린 그녀의 목소리.

내 기억 속에 있는 리암 씨의 전 부인은 알콜 중독자였다.

서슴 없이 자기 딸을 폭행하는 그녀.

하지만 술이 깨고 자기 딸에게 사죄하는 걸 반복하는...전형적인 알콜 중독자였다.

결국 자기 아이를 위해 이혼을 선택한 리암 씨.

하지만 그는 경찰서에 있어서 올리비아를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구나..."

무언가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었지만,

원인이 나였기에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어색한 분위기에 먼저 말을 건 애슐리 씨.

그녀는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나는 애슐리라고 해."

"저는 올리비아예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애슐리 씨의 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토끼 수인은 처음 보니?"

"...네. 처음이에요."

올리비아의 말.

그 말에 애슐리 씨는 자기 귀를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

눈을 떼지 못하는 올리비아.

신기한 듯 계속 귀를 바라보았다.

"신기하네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

그사이에 나는 가져온 버킷에 물을 담아 세제를 풀었다.

낙서와 온갖 더러운 것들 그리고 계란이 뒤섞여 아름다웠던 리암 씨의 카페가 망가져 있었다.

예전에 그에게 커피를 배우면서 자주 들렀던 카페.

그 아름다운 카페를 이렇게 방치해 둘 생각은 없었다.

애슐리와 올리비아가 대화하는 동안.

나는 먼저 리암 씨의 카페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묻어 있는 계란들.

먼저 물을 뿌려 적신다음 솔로 문대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증오가 쌓인 벽.

사건의 시발점이 된 리암 씨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람들의 행동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최근에 슬라임 사건으로 이미 피해를 입은 리암 씨의 카페.

만약 그가 돌아왔는데 망가져 있는 그의 카페를 본다면 절망에 빠질 것 같았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존 씨."

"고마워요 애슐리 씨."

"저도 도울게요."

"고맙구나. 올리비아."

그렇게 셋이 힘을 합해 하나씩 낙서와 더러운 것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계란,

오물,

낙서,

그리고 사람들의 증오심 마저 말이다.

그렇게 카페 주변을 닦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있었네."

"어? 제임스?"

갑자기 나타난 제임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했지만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았다.

오크는 처음인지 애슐리 씨 옆에 붙은 올리비아.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제임스는 처음 보면 위협적이긴 했다.

"네가 퇴원했다는 말을 베일리 한테서 들어서 말이야. 너한테 연락을 할까 했는데 지나가다 보니 네가 보이길래 왔어."

"아, 네 회사가 여기 근처지?"

"맞아. 오늘은 업무가 없는 날이긴 하지만... 내가 관리직이다 보니까 운동하러 가는 길에 확인하곤 하지."

자기 운동용 가방을 보여주는 제임스.

오크 헬창, 제임스는 여전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씨. 저번에 정말 고마웠어요."

"에이, 우리가 남인가요. 잘 지내셨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애슐리 씨와 제임스.

그러다가 제임스는 애슐리 씨 옆에 있는 올리비아를 발견했다.

18 살의 여자아이.

다 컸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을 만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였다.

"안녕? 그쪽은...?"

"아...안녕하세요. 저는 올리비아라고 해요."

"여기 카페 주인인 리암 씨의 딸이야. 지금 카페 청소를 도와주고 있거든."

그러자 카페를 바라보는 제임스.

그는 카페 주변에 얼룩진 낙서들과 오물들을 보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청소가 좀 필요할 거 같네."

"저..."

"응?"

올리비아의 한 마디.

그 말에 제임스는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혹시...우리 아빠를 싫어하시는 분이신가요...?"

올리비아의 조심스러운 질문

그 질문에 제임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사람들은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야."

단호한 제임스의 말.

그 말에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좀 도와줄게."

"운동 안 가도 돼?"

"이것도 나름 운동이지."

빙긋 웃는 제임스.

그는 운동용 가방을 카페 안에 넣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나와 애슐리 씨, 제임스 그리고 올리비아.

그렇게 네 명이서 카페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오기 전에 청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던 오물들.

하지만 제임스가 합류하니 확실히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청소도 나름 재밌네."

"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제임스."

늘 장난기 넘치는 제임스.

청소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지만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왜?"

"...그냥. 네가 생각보다 많이 특이한 사람이다 싶어서."

제임스의 한 마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처지에서는 그렇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내 말은..."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일하는 것뿐이야. 리암 씨는...잠시 사고가 있었을 뿐이지."

"널 때린 사람도 용서하는 건 인간과 이 종족들 떠나 보기 어려운 일이야."

"이래 봬도 어렸을 때 성경 학교도 다녔어."

"퍽이나 그러시겠다."

제임스의 웃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왼쪽 뺨도 내주시겠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건 아니야. 내 말은..."

깨끗해진 벽과 아직 더러워진 벽.

두 벽의 차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름다운 카페가 더러운 상태로 남아 있는 건 보기 안 좋잖아."

"..."

나를 따라 벽을 바라본 제임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알아줄까?"

"우리가 청소하는 거?"

"아니, 우리가 원하는 건 이런 거라는 걸 말이야."

주변을 둘러보는 제임스.

그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애슐리 씨와 올리비아가 있었다.

어느새 친해져 웃으며 청소하는 이들.

그들의 손에 의해 증오로 얼룩진 낙서들이 사라져갔다.

제임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건 간단했다.

"매번 말하지만 넌 너무 감성적이야."

"애니메이터에게 감수성은 필수 불가결이야."

피식 웃는 제임스.

나는 그에게 미소로 대신 답했다.

"아 참, 베일리 씨랑 너에게 고마워. 과일 정말 맛있더라."

"일찍도 말한다."

"퇴원하느라 바빴단 말이야."

"애슐리 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걸 탓하려는 게 아니야. 최소한 전화는 해 달라는 거지."

"미안. 그런데..."

제임스가 한 말.

나와 애슐리 씨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제임스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뭘? 아, 애슐리 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 그거야 네 몸에서 애슐리 씨의 체취가 잔뜩 풍기니까 그렇지."

"나름 샤워를 잘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할걸. 하하."

제임스의 웃음소리.

이 종족들이 사람들보다 후각이 좋다고 들었는데 오크인 제임스가 알아차릴 정도면...

애슐리 씨가 정말 내 몸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는 게 바로 느껴졌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요구를 받는 느낌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조금 표현이 이상하겠지만,

지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헤벌쭉하네...이래서 오늘안에 카페 다 닦아 낼 수 있어?"

"아, 미안 미안."

그렇게 리암 씨의 카페 청소에 집중한 지 3 시간.

제임스의 도움 덕분에 점심시간부터 시작한 청소가 무사히 마무리 지어졌다.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리암 씨의 카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다운타운 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카페로 돌아왔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올리비아.

그녀는 우리를 바라보더니 감사를 표했다.

"감사해요. 존 아저씨, 애슐리 씨 그리고 제임스 씨."

"모두가 해낸 일이야. 그러니까 너도 축하받아도 돼."

내 말에 웃으며 장난스럽게 박수 치는 제임스.

뒤따라서 애슐리 씨가 박수를 치며 올리비아를 칭찬했다.

깨끗해진 카페를 보니 리암 씨가 생각났다.

"오늘 베일리 씨 근무하는 날이야?"

"맞아."

다행히 베일리 씨가 근무하는 날인 오늘.

리암 씨를 보러 가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지금부터 경찰서 가려는데 같이 갈래?"

"좋아. 베일리도 볼 겸 따라갈게."

나와 제임스의 대화를 들은 올리비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암 씨를 보러 가려는데 같이 갈래?"

"네, 갈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올리비아.

뒤에 서 있는 애슐리 씨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슐리 씨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 도구만 정리하고 바로 가자. 너무 늦으면 베일리 씨를 못 만날 수도 있으니까."

빠르게 정리한 청소 도구.

나중에 다시 카페를 청소해야 할지 몰라서 올리비아에게 부탁해 리암 씨의 카페 안에 보관했다.

"차타고 갈까?"

"걸어서 가자.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베일리 씨를 보기 위해 자주 경찰서를 오가는 제임스.

나보다는 그가 더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운타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경찰서.

원래는 서리 쪽에 있는 경찰서지만 최근 이 종족 관련 문제로 다운타운에도 경찰서가 생겼다.

기존의 파출소를 증축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경찰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도착한 경찰서 내부.

"면회 끝나면 연락줘. 베일리가 궁금해하더라."

"알겠어."

그렇게 제임스는 베일리 씨를 보러 갔고우리는 리암 씨를 만나러 갔다.

원래는 면회 요청할 때도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친족인 올리비아의 면회 요청이라 추가 신원 요청 없이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감옥 안에 있는 리암 씨.

그는 면회 요청에 면회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올리비아."

"아빠."

둘의 만남.

안타까운 상황에 미안할 다름이었다.

뒤에 서 있는 우리를 본 리암 씨.

그는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존..."

"리암 씨... 괜찮으세요...?"

"...미안하네."

고개를 숙이는 리암 씨.

나는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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