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캠핑 (4)
* * *
짧았던 캠핑이 끝나고 집에 가야 할 시간.
보리스는 주말 동안 사람들이 사용한 캠핑장을 정리하느라 바쁠 텐데도 직접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다음에도 또 와."
빙긋 웃는 그.
예전에는 카페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체크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다.
"너도 언젠가 카페로 한 번 놀러 와."
"여기서 다운타운까지 먼거 알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보리스.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 답게 나는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어. 맛있는 음식과 맥주 준비해 둘게."
"역시 존이라니까."
유리창 너머로 손을 뻗어 악수를 권하는 보리스.
그의 손바닥에서 굳은살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보리스 씨."
"고맙다 보리스."
"감사해요."
각각 보리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일행들.
그 말에 보리스는 늘 그렇듯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했다.
"다음에도 또 오세요. 그리고 언제나 환영입니다."
"고마워."
차를 끌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 * *
"끄응...차!"
기지개를 펴는 메간 씨.
그리고 그 옆에서 서 있는 바네사 씨도 오랜 시간 앉아서 있어서 힘들어 보였다.
일요일 오후 3 시.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지만 원래 계획했던 시간 보다 조금 늦게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4 시간 정도 걸린 거리.
일요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네가 다 했지."
"고마워요. 존 씨."
내게 감사를 표하는 메간 씨와 바네사 씨.
둘은 벌써 집에갈 준비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돌아가시는 길까지 데려다 드릴 수 있는데."
"아니예요. 지하철타고 금방이라서요."
"나는 날아갈 생각이다."
각자 돌아가겠다는 일행들.
그렇다 보니 우리 카페 앞에서 이렇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 참, 메간 씨. 이거."
어제 보리스에게 말해서 잘 보관해 둔 넙치 한 마리.
가장 큰 놈이라 따로 보관해 두었다.
"이거 집에 가져가세요."
"너는?"
"저는 이미 하나 챙겨뒀어요."
트렁크에 놓여져 있는 보관함을 본 메간 씨.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흔쾌히 내가 건넨 넙치를 받아주셨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나중에 또 캠핑가요."
이번 캠핑이 처음인 애슐리 씨.
그녀는 메간 씨와 바네사 씨와의 캠핑이 재밌었는지 다음에도 같이 가자고 하셨다.
"좋다. 주말에는 딱히 할게 없으니 말이다."
"저도 좋아요.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기는 어려우니까요."
애슐리 씨의 제안을 받아주신 메간 씨와 바네사 씨.
친구가 생겨 기쁜 애슐리 씨는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두 분다 고마워요."
"그러면 다음에 봬요."
"나중에 보자꾸나."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메간 씨와 바네사 씨.
우리는 그들을 배웅하고는 짐을 들고 우리들의 집으로 향했다.
애슐리 씨와 나의 집.
예전에는 나의 집이었는데 어느새 그녀와 나의 집이 되어 버렸다.
"짐이 꽤 많았네요."
"그러게요. 캠핑 장비며 낚시 장비나 여러 가지들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한 번 사용한 캠핑 장비와 낚시 장비들.
이것들을 일일이 닦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드래곤이 있었다.
"메간 씨가 아니었으면 오늘 온종일 이것만 닦고 있어야 했을거예요."
"메간 씨의 마법은 언제나 대단하죠."
애슐리 씨의 첨언.
그녀의 말처럼 드래곤의 마법은 정말 현대 사회에 이런 게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대부분 우리끼리만 아는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마법들.
대부분의 마법들은 법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돈을 마구잡이로 만든다든지 말이다.
"그리고...정말 대단해요."
"...네?"
재차 언급하는 애슐리 씨.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마법 덕분이라 하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거든요."
"아...아하하..."
캠핑장에서 일어났었던 일.
그녀의 발정기를 견딜 수 있게 해준 메간 씨의 마법.
만약 그 마법이 없었다면 나는 말라 죽었지도 몰랐다.
내가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느꼈던 것은 조금 많이 다른 편에 속했다.
나는 사냥감이었고,
그녀는 사냥꾼이었다.
"그거 아세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애슐리 씨.
그녀는 날 보며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토끼의 발정기는 주기적으로 와요."
"..."
어제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이야기.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기분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제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빨리는 느낌.
그러니까...나는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다.
"다 존 씨 때문이예요."
"저요?"
"네.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 발정기가 오지 않았거든요."
이미 내게 이야기 했던 과거 이야기.
그녀는 오랫동안 짝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발정기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저랑 있으면서..."
"네, 돌아온 거죠."
빙긋 웃는 애슐리 씨.
그녀는 평소보다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부담스러운가요?"
"아뇨, 괜찮아요. 무엇보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애슐리 씨가 좋으니까요."
다시 마주 보는 우리 둘.
예전처럼 우리의 옷들은 신발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
"하아아암..."
기분 좋은 나른함.
푹신한 침대에 누워 손을 뻗었다.
그곳에 놓여져 있는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7시 정도였다.
대략 4 시간 정도 지난 상황.
예전이었다면 이튿날 일어날 만한 일이지만 메간 씨의 마법 덕분에 잠깐 잠드는 것만으로도 회복되었다.
"애슐리 씨?"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미 일어나 있는 그녀.
아무래도 저녁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오늘 운전하느라 고생하셨잖아요. 그리고 ... 조금 전도 그렇구요."
물광 피부처럼 빛나는 그녀의 피부.
그녀는 날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고마워요."
"오늘은 바네사 씨에게 배운 두부 커리예요. 괜찮아요?"
"두부 커리요? 물론이죠. 캠핑장에서 바네사 씨가 만든 커리를 먹어 봤는데 정말 끝내주더라구요."
비건 커리.
인도쪽 요리들이 종교상의 이유로 비건이나 베지터리안 분들이 많다 보니 이런 요리들이 많이 있었다.
정말 맛있는 비건 요리.
두부를 넣어서 단백질도 챙길 수 있어서 건강한 음식이었다.
"밥은 바스마티로 할게요."
"아직 밥 안하셨으면 제가 할게요."
"제가 해도 되는데."
"괜찮아요. 바스마티 쌀은 저만 아는 곳에 몰래 숨겨두었으니까요."
내 장난스러운 억지에 애슐리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우리 집에 있는 두 종류의 쌀.
하나는 한국에서 자주 먹는 쌀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 요리를 먹을 때 먹는 바스마티 쌀이었다.
물론 인도 요리 뿐만 아니라 동남아 요리나 서남아시아 요리를 할 때도 먹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구비를 해 두었다.
밥솥에 넣어서 밥을 해도 좋지만,
이번 커리를 위해서만 만들 예정이라 냄비 밥을 할 생각이다.
"애슐리 씨 잠시만 옆으로 가주실래요."
"지금 제가 뚱뚱하다고 하시는 건가요?"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애슐리 씨.
그녀의 옆을 비집고 냄비를 올려 두었다.
채반에 미리 씻어둔 쌀.
쌀을 냄비에 옮겨 담고 물을 부어 밥을 지었다.
냄비밥.
바닥에 눌러붙어 귀찮긴 하지만 둘이 먹을양의 밥을 하기에는 이것만한 게 없었다.
"존 씨는 모든 요리를 잘하시네요."
"아니예요. 저도 처음에는 엄청 많이 고생했어요."
"얼마나요?"
"음...자랑할 건 아니지만 나름 자취 경력이 7년이 넘어가거든요."
"7 년이나요?"
"그렇게 되었네요."
군대 전역 이후 계속 혼자 살아온 삶.
물론 중간에 여자친구도 있었고 잠깐 동안 동거도 하거 헤어지고를 반복했지만,
대부분의 삶은 자취로 점철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배달요리에만 빠져 몸 관리를 안했더니 체중이 두 배로 불었던 기억이 있었다.
나중에 운동도 시작하고 식단 관리도 시작하게 되면서 자취 요리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 영상도 많이 보게 되고 요리 실력도 부쩍 늘었다.
"대단해요."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예요. 저도 그러니까..."
"짝을 찾고 있었던 거군요?"
"...네."
원래는 반쯤 포기했던 연애 생활.
그런데 이제는 애슐리 씨가 내 삶에 깊게 파고들었다.
같이 지낸 지 긴 시각은 아니지만,
시간이 이 감정들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운명.
이거 말고 딱히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우린 서로 너무 잘 맞네요."
"그러게요."
애슐리 씨와 나의 대화.
둘은 이런 대화하면서 서로를 더욱 자세히 알아갔다.
"그러고 보니 애슐리 씨의 이전 세계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네요."
"궁금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당연히 궁금하죠."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반칙이예요."
짐짓 화난 듯한 애슐리 씨의 목소리.
그녀는 날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요?"
"제가 거부할 수가 없잖아요."
"귀엽네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낯 부끄러운 말임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 단어 좋네요....헤헤..."
귀까지 빨개지는 애슐리 씨.
커리를 젓는 그녀의 손이 빨라졌다.
"애슐리 씨?"
"아, 미안 해요. 제 과거 이야기를 물어보셨죠?"
"네, 그러니까...밴쿠버에 오시기 전의 이야기 말이예요."
"흠...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모두 설명하기는 부끄러운지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냥 세상에 관심이 많은 토끼 수인 중 하나였어요."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토끼 수인.
산에 위치한 숲속에서 지내던 그녀는 가끔 산을 찾아오는 인간들을 보는 게 전부인 그런 삶을 살았다.
"그때 이야기한 낚시 이야기도...?"
"맞아요. 산에 가끔 사람들이 와서 낚시를 하곤 했거든요. 저는 숨어서 그들이 무얼 하는지 지켜봤어요."
"어린 시절부터 특별했네요."
"숲속은 꽤 지루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보는 걸 일종의 취미로 삼았어요."
그렇게 점점 성인이 된 애슐리 씨.
그녀는 토끼 수인의 규칙에 따라 결혼해야할 때가 왔었다고 한다.
"20살에 결혼이요?"
"그것도 최대한 늦춘거예요. 인간과 토끼 수인의 개념은 좀 다르거든요."
"정확하게...어떻게?"
"그러니까 ...음... 아이를 낳는 게 가장 중요하죠...그러니까..."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애슐리 씨는 숲을 벗어났다.
"그러다가 포탈을 건너신거예요?"
"건넜다기보다는 끌려갔어요. 나무를 붙잡고 버텨봤는데 안 되더라구요."
강력한 포탈.
인근에 있던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는 사라졌다.
포탈은 일방 통행이었고,
밴쿠버에 떨어진 수많은 이 종족들은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뭐 저번에 말했던 것과 같아요."
"미안 해요."
"아니예요. 이야기를 못할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날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애슐리 씨의 미소.
그녀는 날 보며 작게 말했다.
"여기서 제 운명을 찾을 줄은 몰랐거든요."
"...방금 그 말 엄청 감동적인 거 아세요?"
"너무 영화 대사 같아서 좀 그랬나요? 헤헤..."
"아뇨,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마워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존 씨는 고맙다는 말을 좀 줄여도 될 거 같아요."
"그건 어려울 걸요. 죽을 때도 고맙다고 하면서 죽을 거 같아요."
"뭐예요. 그게."
이렇게 대화하면서 만들어진 저녁밥.
맛있는 두부 카레와 바스마티 쌀이 완성되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어때요?"
"영화 보면서 말이죠?"
이제는 척하면 알아듣는 사이가 된 우리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맛잇는 저녁 식사를 즐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