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전시회 (3)
* * *
박물관에서 식당으로 향하는 길.
태평양이 바로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길을 따라 식당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네요?"
조금 걱정스러워 보이는 애슐리 씨.
저녁 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하는 듯 보였다.
"다행히 여기에 있는 잭이 예약을 해 두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저번에 애슐리 씨에게 미안한 것도 있구요."
머쓱하게 웃는 잭 씨.
당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그의 주문을 받은 건 일한지 하루된 애슐리 씨였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되어 서로 오해가 풀렸지만,
잭 씨는 그때의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매우 미안해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다 풀렸어요. 그리고..."
식당을 둘러보는 애슐리 씨.
그녀는 멕시코 식당은 처음인 듯 보였다.
"아, 멕시코 음식은 처음인가요?"
"네, 맞아요. 헤헤."
예전의 동거인의 문제로 인해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애슐리 씨.
이런 소소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새로움을 느끼는 그녀를 보니 더 많은 것을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 씨는 멕시코 음식 괜찮으세요?"
"네, 가끔은 집에서 부리또 같은걸 해먹으니까요."
집에서 해먹기 간단한 음식인 부리또.
가끔 불고기 소스가 남으면 갈은 고기를 볶아 부리또를 해먹었다.
간편하고 포장하기도 편해서 자주 애용해 먹었다.
"좋네요. 저도 잭도 여기 음식점을 좋아하거든요."
테일러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잭 씨.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이 둘을 이어 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와 애슐리 씨와의 연결점이라...
"존 씨?"
"아, 아니예요."
내게 다가온 애슐리 씨.
그녀를 바라보니 괜스레 머쓱해졌다.
"자, 들어가죠."
도착한 식당.
안에는 멋들어진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 웨이터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예약을 했는데..."
"네, 브라운 씨 맞으시죠? 그리고 일행분까지 합해서 4 명. 예약 확인했습니다."
처음 듣는 잭 씨의 성.
캐나다에서는 흔한 성 중 하나인 브라운이었다.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안으로 안내 받는 우리들.
이동하면서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깔끔한 멕시코 스타일의 식당이었다.
지역으로 따지면 북미에 속하는 멕시코.
그런데도 중남미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중남미 스타일로 꾸미는 식당들이 많았다.
따로 분리된 예약실.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식당이라 조금 걱정이 들었다.
"걱정 마세요. 하하."
내 염려를 걱정했는지 잭 씨가 웃어 보이셨다.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테일러 씨까지.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자리에 앉았다.
"다음에 카페에 오시면 맛있는 음료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네요."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 말이죠? 잭이 엄청 좋아하던데. 저도 가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테일러 씨와 잭 씨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빙긋 웃는 잭 씨.
그가 아이디어를 찾아 헤맬때 우리 카페에서 약간의 힌트를 받은 걸 그녀에게 자주 언급한 것 같았다.
비전문가가 괜히 말했다 싶어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면 애슐리 씨와 단둘이 일하시는 거예요?"
"네.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일해온 나.
그런데 애슐리 씨가 온 뒤로 몸도 많이 나아졌고 일도 많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그녀와 있으면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
"여기에 있는 존 씨가 많이 도와줘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두 분도 보기 좋네요."
테일러 씨의 칭찬.
이걸 그냥 받아들여도 될까 해서 애슐리 씨를 힐끗 보았는데 그녀는 별다른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하게 넘어갈 뻔한순간.
다행히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분이 이 분위기를 풀어 주셨다.
"델 솔 밸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주문은 저희가 선택해도 될까요? 두 분이 꼭 드셔봤으면 하는 음식이 있어서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는 테일러 씨.
나는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저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빙긋 웃는 테일러 씨.
그녀는 잭 씨와 같이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음료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저는 탄산수로 해주세요."
"저두요."
우리의 요청을 받아주신 테일러 씨.
나와 애슐리 씨의 주문과 두 분의 음료 주문까지 모두 마쳤다.
"그러면 다시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음식은..."
웨이터 분의 주문 확인.
모든 것이 일치한 것을 확인한 테일러 씨와 잭 씨는 메뉴판을 접어 웨이터 분에게 돌려드렸다.
"음료 먼저 가져다드릴까요?"
"네, 부탁할게요."
주문이 끝난 상황.
나는 테일러 씨와 잭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다.
"식사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그리고 저희는 이렇게 같이 식사 하는 걸 좋아하는걸요."
빙긋 웃는 테일러 씨.
잭 씨도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이건 저와 그녀의 공통점이죠. 이것 덕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구요."
"흥미롭네요. 이야기해주실수 있나요?"
"하하. 그녀가 허락한다면 얼마든지요."
"잭은 언제나 이래요. 항상 저와 만난 걸 이곳저곳에 말하고 다니죠."
테일러 씨는 잭 씨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허락을 얻어낸 잭 씨.
그는 참아왔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저와 그녀를 만난 건 솔레 서커스라고 말했었죠?"
"네, 전시회에서 말씀해주셨어요."
당시 짧게 설명해주신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잭 씨의 입으로 더 길게 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저는 테일러를 보자마자 한눈에 그녀에게 빠져 버렸죠. 하지만 그녀는 절 몰랐구요."
"맞아요. 저는 잭을 전혀 몰랐어요."
그저 공연자와 관객의 사이.
그런 사이에서 갑자기 연인으로 발전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제 인맥을 총동원해 그녀에게 연락을 했었어요."
사랑에 빠진 한 남자.
이 종족인 그는 겉모습만 다를 뿐 행동은 여느 사랑에 빠진 남자와 똑같았다.
"제 지인이 저에게 관심 있다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한 번 만나 보겠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저는 그 틈을 노렸죠."
달콤한 러브스토리.
둘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저와 연결점을 찾기전이라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그녀와 식사를 같이하기로 마음먹었죠."
"잠깐만요. 잭 씨가 일하시는 곳은 다운타운 아닌가요?"
놀란 애슐리 씨.
테일러 씨와 친해지기 위해서 매일 같이 식사했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맞아요. 다행히 당시 테일러가 일하는 곳은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죠."
"그랜빌 아일랜드 아시죠? 그쪽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차로 15 분 정도의 거리.
그런데도 매일 같이 그녀를 만나러 갔다는 말에 그녀와 잭 씨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분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야기하는 도중 들어온 음료들.
우리는 웨이터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야기하느라 마른 목을 축였다.
"그때 매일 같이 절 찾아오는 잭에게 저도 점점 관심이 생겼고...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죠."
"저...죄송한데 잭 씨 같은 분과 사귄건...?"
조심스러운 애슐리 씨의 질문.
개 수인과 사귄 적이 있냐는 말을 그대로 할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이에요. 사실...직장 동료내에 수인 분들이 많지만 사귀거나 연애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덤덤히 말하는 테일러 씨.
그녀의 말에 잭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처음에 그녀는 절 마치 친구처럼 대했으니까요."
수인과 인간의 연애.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특이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두 분이 식사하시면서 친해지고...서로를 알게 되면서 연애하게된 거예요?"
"맞아요. 당시 잭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조심스러운 테일러 씨의 말.
그녀는 잭 씨의 얼굴을 살폈는데 잭 씨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제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네요...그러니까..."
잭 씨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그 말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
특히 수인이 이끄는 공연예술은 기성 예술인들에게 배척 당하기 쉬웠다.
언제나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생각한 예술계.
하지만 그 어느 분야보다 보수적인 모습도 존재했다.
"저는 처음에 비평가들의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살짝 떨리는 잭 씨의 말.
그는 잠시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이 과거에 들었던 인간 비평가의 말을 꺼냈다.
"잭 브라운의 예술은 프릭쇼에 불과하다."
"...세상에."
프릭쇼.
지금은 사라진 서커스의 형태였다.
과거 기형을 가지거나 장애인 분들을 모아서 만드는 서커스.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있던 기이한 전시회 겸 서커스였다.
기형이나 장애인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인종들을 마치 '동물원'처럼 전시해 놓기도 했다.
지금까지 돌아다니는 끔찍한 사진.
흑인 여자아이를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사진이 남아 있었다.
인종 차별의 대명사 혹은 범죄로 취급되어온 단어.
이런 단어를 개 수인인 잭 씨의 작품에 사용한 것은 그 의도가 다분히 노골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그 비평가는 극우주의 비평가였어요. 물론 그 비평 이후 그는 업계에서 퇴출 당했지만 제 예술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지 단적으로 알 수 있었죠."
인류와 합류하려는 수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려 했던 잭 씨의 예술들.
특히 오늘 전시회에서 본 다양한 형태의 그의 예술들은 그의 생각을 잘 드러냈다.
그런데 그런 예술을 프릭쇼로 폄하해 버린 비평가의 말.
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제 예술에 많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손을 뻗어 테일러 씨의 손을 잡는 잭 씨.
테일러 씨는 그런 잭 씨의 손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테일러가 많이 도와 줬어요. 제가 버틸 수 있게 말이예요."
"그렇군요..."
"제가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했군요."
"아니예요. 덕분에 잭 씨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잭 씨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 가지 부분이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로 부터 상처를 입은 잭 씨.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 준 것도 사람인 테일러 씨였다.
그가 오늘 보여 준 작품들.
그 작품들의 모습이 증오나 차별 혹은 분노 섞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화합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제임스처럼.
사람들을 믿고 있었다.
차별을 받았음에도 처벌하길 원하지 않던 제임스.
그는 자신이 오크임에도, 차별받았음에도 인간을 용서하고 이해했다.
제임스와 같은 방법은 아니지만,
잭 씨는 그의 방식대로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애슐리 씨.
그녀도 상처 받았음에도 나를 믿고 있었다.
내가 그런 믿음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걸 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금 침울해진 분위기.
이번에도 눈치가 좋은 웨이터 분은 맛있는 음식으로 방안의 분위기를 바꿔 주셨다.
"주문하신 음식들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콰카몰리 볼.
그리고 화려한 장식이 눈에 띄는 접시들에 담긴 맛있어 보이는 여러 음식들까지.
내가 보아왔던 멕시코 음식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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