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용의 불꽃 (3)
* * *
"여...연애요?"
갑작스러운 개인적인 질문.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애슐리 씨도 이 질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느냐?"
"아뇨, 없어요. 싱글이예요."
"좋구나. 나와 살아보겠느냐?"
"메간 씨의 제안은 감사하지만..."
나는 애슐리 씨를 바라보았다.
난감해하는 애슐리 씨.
상황을 이해한 메간 씨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애슐리와 살고 있나 보구나."
"사연이 조금 있어서요. 룸메이트예요."
누군가의 사연.
그것을 마음 편하게 남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애슐리 씨와 같은 이야기면 말이다.
그녀의 상처를 덧낼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같이 산다니. 그것만으로도 축복된 삶이 아니겠느냐?"
"그건 맞는 말이예요. 하하."
갑자기 볼을 붉히는 애슐리 씨.
메간 씨의 장난이었다.
"뭐, 좋다. 너에게 흥미가 있는 건 맞으니까."
"저한테요?"
"그래, 태스."
"존이라고 불러 주세요..."
"너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아본적이 있느냐?"
"사랑받는 삶이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받는 삶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가족이라던지, 친구라던지, 아니면 직장동료라던지.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고 모두 작거나 큰 형태만 다른 사회를 가지고 있다.
내 사회는 대부분 한국에 놓고 왔고,
지금 새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저도 사실 이 종족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무슨 말이지?"
"저도 이민자니까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는 이 종족이나 이민자나 취급은 비슷하죠."
차별받고 고통받는 삶.
타지에서 사는 삶은 이 종족이나 이민자들이 비슷하다.
"흐음...그렇군. 인간들은 외형으로도 차별을 두는 구나."
"네, 뭐...그렇죠."
"그러면 사랑 받은 삶을 가져 보지 못한 게냐?"
"아뇨, 그런 의미는 아니예요.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예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롭게 관계를 맺는 그런 단계 말이예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메간 씨.
그 옆에서 애슐리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애슐리씨 그리고 메간 씨 까지.
모두 밴쿠버라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있었다.
5 년이란 시간.
시각은 상대적이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다고 제임스나 마크 씨. 케인 아저씨 같은 분들을 못 믿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내 편.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후우...솔직히...조금 겁은 나구요."
"겁?"
"다시 관계를 쌓아가고...그 사람에 젖어 들고...그런 것들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져요."
20 대와 다른 상황.
30 대의 나는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사랑을 찾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흔한 방어기제였다.
"너는 사랑을 무서워하는구나?"
"네...부정할 수가 없네요."
한국에서 결혼하자고 했던 여자친구.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한 이후 캐나다로 오겠다는 그녀는...그대로 사라졌다.
나도 그녀도.
그게 한계였다.
오랜 시간 사귄 사이.
믿음이란 건 쉽게 부서지기도 하는 거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드래곤의 조언을 받아보겠느냐?"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흔한 말이지. 그냥 해 보라는 말뿐이다."
메간 씨의 말.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에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인간들에게 배반당한 삶.
그 삶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오랜 시간 사람을 사랑해온 존재.
그런 존재가 하는 말에는 힘이 있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난 그때부터 인간들이 좋았어. 언제나 새롭고...신기했지. 무언가를 창조하고 말이야."
메간 씨의 독백과도 같은 말.
나는 그 말에 빠져들었다.
"무언가를 사랑하면...좋아하게 되고...그러면 지켜 주고 싶지."
맨 처음 그녀가 태어난 시기.
그녀가 한 인간 마을에서 추앙 받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인간들에게 배신당하기 전의 이야기.
그런데도 그녀는 그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난 변했지만...인간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어. 내...사랑도...그런 모습이었다."
그녀의 마음속 한 남자.
드래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
그 남자로 인해 메간 씨는 바뀌었다.
"이 세상에서도 나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단다."
"...이런 세상에서도요?"
이 종족 차별이 만연한 세계.
사람들은 5 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보고 믿는 것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틀렸다고 듣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옳고 이 종족들은 틀렸다.
이분법에 갇힌 세상.
이런 세상에서 메간 씨는 무엇을 믿는 걸까?
"너와 같은 존재 말이다."
"저요?"
"그래. 우리를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을 믿는다."
"저는 일개 카페 사장인걸요?"
"대신 시나몬 커피를 끝내주게 잘 만들지."
빙긋 웃는 메간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충분한가요?"
"물론, 차고 넘치지."
바닥이 드러난 시나몬 커피.
그녀는 지긋이 날 바라보았다.
"네 주변은 언제나 따듯해. 그런 따듯함이 널 긍정적으로 이끄는 거란다."
"어르신들이 할 법한 이야기인 걸요?"
"물론이지. 난 수 백 년을 살아왔단다. 당연한 이야기지."
팔짱을 끼는 메간 씨.
웃으며 애슐리 씨를 바라보셨다.
"애슐리는 어떠냐?"
"네?"
당황해하는 애슐리 씨.
그녀는 조심스럽게 메간 씨를 바라보았다.
"너의 생각이 궁금하구나."
"어떤 걸 말씀하시는 지..."
"너라면 잘 알게다. 후후..."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는 메간 씨.
애슐리 씨는 머뭇거리며 나와 메간 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난 이만 가 봐야겠구나."
"가시려구요?"
"이제 너희들이 바쁜 시간 아니더냐?"
손가락으로 시계를 가리키는 메간 씨.
곧 12 시를 가리켰다.
"애슐리 씨. 메간 씨를 초대해도 될까요?"
"초대요? 아..."
내 뜻을 이해한 애슐리 씨.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고 있는 메간 씨.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오늘 퇴근하고 시간 있으세요?"
"데이트 신청이냐?"
흥미롭게 날 바라보는 메간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슷해요. 오늘 업무 종료하고 애슐리 씨와 옷을 사려가기로 했거든요."
머쓱해 하는 애슐리 씨.
그녀의 사정을 말할 수 없어서 이런 식으로 돌려 말했다.
"그렇군. 두 명의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라...꽤 여자를 밝히는 구나."
"아뇨아뇨. 그렇게 절 몰아가지 말아 주세요. 여자 옷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그리고..."
메간 씨의 복장.
내 기준으로는 잘 입는 편에 속했다.
"메간 씨라면 애슐리 씨랑 잘 다니실수 있을 거 같아서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나아진 상황.
애슐리 씨도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점 때문에 겁을 먹었지만 지금은 그런 내색이 전혀 없었다.
이 종족들 사이에도 있는 이런 편견들.
애슐리 씨는 그 부분에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하하. 내가 드디어 애슐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걱정하는 게 좋을 게다. 태스."
"존 입니다...조심하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드래곤은 노린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거든."
장난스럽게 말하는 메간 씨.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키셨다.
그녀의 등에서 다시 돋아나는 날개와 꼬리.
아무래도 날아서 직장으로 복귀하시려는 걸로 보였다.
"일 끝나고 어디서 뵐까요?"
"오후 5 시에 시티홀 역에서 만나자. 그쪽에 옷가게가 많으니까."
런던드럭 근처에 있는 역.
그 주변으로 랍슨 거리와 이어진 여러 거리들에 옷가게들이 많았다.
그녀의 직장 근처이기도해서 만나기도 편했다.
"좋아요. 그때 봬요."
"나중에 보자꾸나."
문을 나가는 메간 씨.
그 뒤로 바로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셨다.
매번 보는 거지만,
용인들의 저런 모습은 정말 멋있는 거 같다.
"저...존 씨?"
"네? 애슐리 씨?"
날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애슐리 씨.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아...아니예요. 이따가 말할게요."
머뭇거리는 그녀.
그녀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밖에 손님들이 벌써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요. 데이트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하도록해요."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
점심시간에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녀와 함께 카운터에 대기하자 기다렸다는 듯 손님들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빙긋 웃는 애슐리 씨.
그녀의 미소를 시작으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 * *
"고생하셨어요. 애슐리 씨."
"헤헤, 고마워요."
첫날이라 걱정이 많았던 하루.
그녀는 내 걱정과 다르게 너무나도 훌륭하게 카페 일에 적응했다.
손님들의 주문을 받거나 해결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손님들의 불만사항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해결하는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가 가진 뛰어난 능력.
그 덕분에 오늘 점심시간에 훌륭히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카페 일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네, 이렇게 직장을 가진 건 처음이예요."
정식으로 근무하는 직장.
물론 파트타이머지만 노동청에 등록된 그런 정규일이었다.
"어제저녁에 노동청에 메일을 보내놔서 내일 아침쯤에 대답이 올거예요."
그녀를 지원하고 신분을 증명하겠다는 내용의 메일.
노동청에 그녀를 고용했다는 걸 알려야 그녀가 노동법에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임금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근무한 것도 정확하게 계산해서 봉급에 포함될거예요."
수습 기간이 딱히 없는 카페.
원래라면 3 개월 수습 기간이 있지만, 이런 작은 카페에 그런 걸 도입할 생각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를 표하는 애슐리 씨.
그녀의 도움으로 인해 일이 한결 편해지고 여유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매일 같이 혼자 준비하고 혼자 뒷정리해야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자 몸도 많이 나아진 느낌이었다.
특히나 항상 고통스러웠던 허리.
장시간 서 있는 작업이다 보니 요통으로 고생했다.
근데 오늘 하루 애슐리 씨가 도와 준 것만으로도 많이 나아졌다.
좋아진 허리.
갑자기 래브 씨가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 이야기.
밴쿠버에 와서 낚시를 해 본적이 없다는 게 생각났다.
"애슐리 씨. 혹시 주말에 낚시하러 갈래요?"
"낚시요?"
"네, 사실 저도 처음이지만...이제 허리가 많이 괜찮아져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낚시라고 하면...바다를 가는 거죠?"
"바다를 본 적이 없나요?"
태평양 연안의 도시 밴쿠버.
그런 곳에서 바다를 못 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당장에 우리 카페에서 조금만 나가면 캐나다 플레이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장소였다.
"아뇨, 바다는 보긴 봤는데...음...배를 타는 건 조금 겁이 나서요."
"아, 그렇군요."
토끼 수인.
그녀에게는 바다를 본 것도 밴쿠버가 처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배를 타고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좋아요."
빙긋 웃는 애슐리 씨.
그녀의 미소가 날 기분 좋게 해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빠르게 뒷정리를 끝낸 상황.
내일 영업을 위한 준비도 모두 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시티홀 역까지는 도보로 15 분.
시간도 넉넉했다.
"잠시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출발하죠."
"옷이요...? 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애슐리 씨.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아...아무것도 아니예요."
먼저 카페 문을 나서는 애슐리 씨.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내 옷에서 냄새가 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