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용의 불꽃 (2)
* * *
옛날 옛적에 한 드래곤이 살았습니다.
그 드래곤은 태어나자마자 홀로 남아 있어서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흉내 내어 그들과 친해지길 바랐습니다.
용이 살던 곳 근처에는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스러웠죠.
그런 사람들은 마을에 가끔 나타나는 드래곤을 신처럼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린 드래곤의 부모가 아이를 걱정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든 것을 착각한 것 때문이었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마을을 돌아다니던 어린 드래곤.
그 드래곤은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늘 외롭던 드래곤에게 이런 관심은 행복한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사람들과 살던 도중 마을이 다른 마을의 공격에 위기를 맞게 되었어요.
어린 드래곤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구해주었습니다.
무사히 마을 사람들을 구한 어린 드래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린 드래곤을 무서워하기 시작했어요.
거대한 입, 그리고 뾰족한 이빨들.
그곳에서 나오는 강력한 화염에 한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했거든요.
어린 드래곤은 그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들을 도와 줬으니 당연히 자신을 더 좋아해 줄 거라 믿었거든요.
그렇게 어린 드래곤은 거리를 두는 사람들과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솔직히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도 거리를 두게 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린 드래곤은 인간의 모습으로 유희를 즐기는 것이 지루해졌어요.
어린 드래곤은 성숙한 드래곤이 되어 새로운 취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공포로 몬스터들을 위협해 금은보화를 쌓아두는 것이었어요.
금은보화.
인간과 달리 항상 아름답고 빛나고 변하지 않는 존재였죠.
늘 변하고 인간과 다른 한결같은 존재.
어린 시절 인간들에게 실망한 감정을 이렇게 풀어나가고 있었어요.
드래곤의 하루는 간단했어요.
부하들이 가져온 금은보화를 확인하고 그 위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죠.
시간이 흐르고 드래곤 앞에 한 인간 남자가 나타났어요.
부하들을 시켜 지키게 했는데,
이 남자는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부하들을 모두 해치우고 드래곤 앞에 섰습니다.
드래곤은 그 남자를 흥미롭게 바라봤습니다.
남자는 드래곤을 보며 악의 근원이다 뭐다 하면서 비난했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심심했던 드래곤은 그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 내용의 끝은 간단했어요.
남자는 왕국에게 속아 드래곤을 홀로 잡으러 온 것이었어요.
왕국...
맞아요.
예전에 드래곤이 지켜줬던 그 마을이 왕국으로 변했던 거예요.
자신이 지켜 주어서 그렇게 왕국으로 변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두려워하고 이용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드래곤은 남자의 오해를 풀고 돌아가게 할 생각이 딱히 없었어요.
그저 부하들이 사라진게 짜증 날 뿐이었죠.
그래서 남자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부하들 대신 자기 둥지를 지키라고 했어요.
남자는 거절하며 드래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드래곤은 그렇게 남자를 제압했고 남자는 드래곤의 둥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둥지에 머물면서 드래곤은 남자와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만났던 인간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남자도 처음에는 드래곤을 경계했지만,
서서히 드래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드래곤은 이런 남자와 더욱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릴때 했던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죠.
남자는 변한 드래곤의 모습에 놀라워 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의 마법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드래곤을 사랑하는 남자.
남자는 드래곤과 함께 세상을 떠돌며 인간들과 사는 법을 알려주었어요.
드래곤은 어릴 때처럼 유희거리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그 남자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와 드래곤.
둘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넓은 세상을 보며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행복한 나날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죽음.
드래곤의 삶에서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긴 시간이었어요.
남자와 드래곤의 시각은 서로 달랐습니다.
드래곤은 자기 심장을 쪼개 남자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만큼 그를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인간의 짧은 삶이 있기에.
그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이예요.
그 말을 들은 드래곤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연 존재.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수 백 년을 산 드래곤이지만 이별은 처음이었답니다.
남자는 드래곤의 손을 잡으며 웃었어요.
평생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리워하겠다고.
남자는 죽고 드래곤은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둥지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드래곤의 삶이 너무 많은 것이 변했어요.
금은보화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답니다.
매 순간 남자가 생각나고 그리고 남자와 같이 여행을 다녔던 것이 드래곤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결국 드래곤은 둥지를 떠났어요.
인간으로 모습으로 말이죠.
"대충 이런 이야기구나."
시나몬 커피를 마시며 덤덤히 말하는 메간 씨.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인 애슐리 씨가 있었다.
"감동적이예요. 흑흑..."
애슐리 씨의 말에 메간 씨는 웃음으로 답했다.
"정신 차려보니 드래곤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구나. 그리고...그 남자를 좋아했던 한 여자의 마음이 싹트게 된 것도 그때였지."
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
그건 겉모습이나 종족을 초월한 무언가였다.
처음에는 적으로 만났던 둘.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종을 초월한 사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셨나요?"
"뭐...그다음에는 덜 감동적이긴 하지만...화풀이 할 대상이 필요했었지."
"화풀이요?"
메간 씨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거대한 화염 주머니인 그곳.
아무래도 그걸 이용한 모양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복수를 원하지 않았지만...난 그렇게 자비롭지는 못했어. 그래서 남자를 속여 내 손으로 죽이려고 했던 놈들을 용의 불꽃으로 잘 구워주었지."
"아..."
그녀의 이야기 속 남자.
그 남자의 정체는 잘 모르지만 왕국 내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었다.
왕국에 위험이 되는 존재.
왕국은 그를 속여 사악한 드래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남자는 그 명령에 속아 가만히 있던 메간 씨를 죽이러 간 것이었다.
나중에 이런 오해는 다 풀리게 되었지만,
메간 씨는 이걸 기억하고 남자의 복수를 대신해주었다.
"예전에는 내가 지켰던 마을...그 마을이 왕국이 되어 내 화염 속에 불타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더구나."
어릴 적 마을을 지켜 주었던 메간 씨.
그 마을을 자기 손으로 불태웠을 때의 감정은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악연이 끝났나요?"
"아니, 악연은 끈질겨서 날 계속 괴롭히더구나. 인간들은 다시 왕국을 세우고, 복수하겠다며 나를 찾아왔어."
복수의 고리.
그녀는 남자의 죽음이후 이 악순환에 갇혀 버렸다.
"복수하겠다는 놈들을 죽이고...뭐, 이렇게 됐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녀.
그녀의 처지에서는 매일 같이 귀찮게 하는 인간들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규모 포탈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수인들이나 다른 이 종족들은 포탈 사건으로 인해 집을 떠나게 되었는데..."
"맞아.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좋았어. 그쪽의 인간들보다 이쪽 세계의 인간들이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말은 통하거든."
"하하...네."
말이 통한다는 말.
그쪽 세계의 사람들을 낮게 보는 건 아니지만...
드래곤이라는 전설 속 생명체를 두려워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으니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반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가상의 존재라 생각하던 존재들이라 그런지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미친 사람들이 용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도 귀찮게 하는 한 인간이 있어서 몰래 처리하려 했는데 알아서 사라지더구나."
"처리요?"
"캘리포니아에 사는 다른 용인들은 잘 처리한 뒤 사막에 묻어두면 된다고 했는데...밴쿠버에는 사막이 없어서 못했단다. 그렇게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했는데... 알아서 사라져 줘서 고마웠지."
캐나다에 사막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스웨스트 준주 쪽에는 곰도 많고 눈도 많아서 티가 안날거예요."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애슐리 씨.
메간 씨의 이야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 좋은 정보로구나. 알려 줘서 고맙군."
어느새 메간 씨의 편이 되어 버린 애슐리 씨.
하긴, 나 같아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감정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귀찮게 구는 인간들.
솔직히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이 종족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을 보면 인간들은 원래 사악한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장의 애슐리 씨의 경우만 보더라도 말이다.
"너는 좋은 인간이다."
메간 씨의 말.
나는 웃음으로 감사를 표했다.
"면죄부처럼 느껴지네요."
"사람들은 신기한 존재야. 종잡을 수 없지. 하지만...내가 사랑했던 남자처럼 선한 존재는 항상 존재한다고 믿는단다."
"사람들을 믿는다라..."
"선한 의지를 믿는다라는 말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구나."
수 백 년을 산 드래곤.
그런 그들에게 듣는 말이라 그런지 내게 와닿는 의미가 남달랐다.
증오의 사슬 속에 갇혀서 수 백 년을 살아온 메간 씨.
그런데도 한 남자를 만나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자가 죽은 뒤에 찾아오는 복수들.
그 복수들을 처리하면서도 선함을 믿고 있었다.
인간의 수명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드래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이 시사하는바는 컸다.
드래곤이 수 백 년 동안 보고 느껴온 것들.
세상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가는 '선함'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남자는 어떤 분이셨어요?"
애슐리 씨의 질문.
메간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애슐리 씨의 질문이 들어오자 흡족하게 웃으셨다.
"남자는...뭐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메간 씨.
그녀는 날 바라보셨다.
"저요?"
"맞아. 저런 느낌이었지. 나도 정확하게 모르겠어. 다른 모습이지만...이런 느낌이었거든."
"이런 느낌이 무슨 뜻인가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군...그냥 딱 보기에 착해 보인다? 이런 느낌인 것 같았어."
드래곤에게 인정 받은 착함.
기분이 묘하게 좋으면서도 이상했다.
"그 남자분이 존 씨처럼 착한 분이셨나 보네요."
"맞아. 그래서 내가 이 카페를 처음 발견하고 단골이 된 이유란다."
우리 카페의 첫 단골손님.
그레이스 씨와 간발의 차이로 첫 단골손님이 되어 주신 메간 씨였다.
그래서 항상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메간 씨에 대한 감동한 상태로 있는데...
"혹시 연애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녀의 입에서 뜻 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