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늑대와 춤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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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춤을.
유명한 영화 제목이다.
한 미군중위가 퍼스트네이션들의 문화에 적응해 그들의 일원이 되어가는 이야기.
주인공은 '늑대와 춤을'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존재.
이 존재는 영화와 달리 진짜 늑대였다.
뾰족한 귀.
그리고 인간형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이빨들까지.
누가 봐도 늑대 수인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
그와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계속 설명하는 잭.
그는 내가 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한 것에 꽂혔는지 날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점심시간 전 한적한 상황.
그렇기 때문에 손님이 왔다는 변명을 하고 갈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슐리 씨는 내 마음도 모른 채 맡은 일을 너무 잘하고 있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
나는 무대예술가 및 현대무용가인 잭의 말을 들어 주어야 했다.
"듣고 있어요?"
그의 뒤로 살짝 보이는 폭신해 보이는 꼬리.
그게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의자를 탁탁 쳤다.
"네, 듣고 있어요."
처음에는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았던 잭.
이제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굴었다.
"이 부분이 말이죠..."
다시 시작되는 알 수 없는 말들.
현대 무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어떻게 말할 것도 없었다.
"저는 현대무용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바로 버스터 키튼을 의도했다는 걸 알아차렸잖아요."
"그거야 제가 오래된 영화 매니아이기도하고... 버스터 키튼은 유명하잖아요."
위대한 무표정.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스턴트 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당신은 다르죠. 제 의도를 파악했고 그리고 바로 말해주었어요."
"...네."
한 마디로 내가 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이야기였다.
"좋아요. 그러면 이건 어때요?"
인간들과 다른 수인들.
그들은 무언가에 매달려 돌고 있는 듯한 사진이었다.
"혹시 영상 보여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마치 미끼를 물었다는 듯 웃고 있는 잭.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었다.
내 눈앞에 놓여 영상.
한 늑대 수인이 하얀 옷을 입고 줄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건물.
그 안에서 줄에 의지한 채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다른 한쪽.
계단이 놓여져 있고 가운데 트램폴린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과 수인들.
그리고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트램폴린에 떨어졌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그들.
무수한 반복이 이어졌다.
"어때요?"
"여기...UBC인류학 박물관 맞죠?"
"맞아요. 주변에 보이는 것들도 인류사와 연결된 것들이구요."
손도끼와 각종 유물들.
그리고 인류사의 족적들이 새겨진 것들이 영상 배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행위예술을 하는 이들.
그중 눈에 띄는 수인들은 인간들 사이에 끼어 있다.
거대한 인류사.
그 흐름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
이질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과 인간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뭐랄까...인간과 수인에 대한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이예요. 그러니까... 반복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니까요."
무의미한 계단 오르기.
처음에는 인간이 오르고 그 뒤에 수인이 올라섰다.
하지만 트램폴린에 떨어진 이후 순서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수인이 올라서고 인간이 올라서는 상황.
이것이 빠르게 반복되다 보니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가운데에 있는 수인이 묶인 끈도 마찬가지였다.
묶인 끈을 축으로 맴돌던 수인 사이로 어느새 한 인간이 들어왔다.
둘은 교차하면서 맴돌았는데 둘이 겹치는 순간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맞아요. 정확해요. 제가 원하는 대답이 그거예요."
방금 전에도 들었던 말.
나는 이걸 또 들으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 의도가 그거예요. 인간과 수인의 경계를 허무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인간과 이종족들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죠."
외형이 확연히 다른 대부분의 이종족들.
반면, 수인들 중 일부는 애슐리 씨처럼 일부 신체부의만 특이할 뿐 인간과 거의 똑같았다.
이점을 이용해 인간과 수인은 다르지 않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혹시 인권운동 같은 건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근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대부분 인권관련된 시위였다.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시위들.
그들은 차별받는 삶에 대한 것들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저는 밴쿠버 시 지원으로 UBC 인류학 박물관에서 이 무용들을 선보일 예정이예요."
"아, 그렇군요."
인종차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BC주 정부.
그들은 다양한 방면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잭 씨가 하고 작업하는 것도 시 정부의 도움을 받아 시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시범 공연을 했을 거로 생각해 잭 씨에게 물었다.
잭 씨는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 긍정적이었어요."
"대부분이라 하면..."
"아시잖아요? 극우단체들 말이죠."
중도보수당인 자유당이 집권하는 캐나다.
다른 국가의 보수당처럼 우익정권이 아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보수당이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이 종족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정당이 이끄는 나라.
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연임하는 정권이었다.
이들을 지지하더라도 이 종족들을 싫어하는 이들은 항상 존재했다.
극우단체.
이들은 무조건적인 이 종족 및 이민자 혐오를 전제로 움직이는 단체였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밥그릇 싸움.
이민자들과 싸우던 이들은 새로운 경쟁자인 이 종족들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차별금지 법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세력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들이 와서 수인들은 춤을 추지 말라고 소리쳤죠. 물론 금방 제지 당했지만요."
그 무대의 책임자인 잭.
그는 시범공연임에도 이런 공격을 받았다.
그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네, 흔한 일이니까요. 저희는 항상 그래 왔구요."
영상 속 계단을 오르는 수인들.
그들은 언제나 인류사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짧은 5 년.
그런데도 이 종족들이 이 사회에 기여한 것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것들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해요?"
"다음 주 부터 할 예정이예요."
"표를 구해놔야겠네요."
나는 웃으며 잭 씨를 바라보았다.
잭 씨는 나를 보고 애슐리 씨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장이 필요하겠네요."
"그렇겠죠?"
"저분...성함이..."
"애슐리예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분이구요."
"아, 그렇군요. 제가 조금 까다롭게 주문을 해서 곤혹스럽게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요. 조금 늦었죠?"
많이 늦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목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괜찮아요."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잭.
그는 가방을 살피더니 표 두 장을 꺼냈다.
"제 공연 티켓이예요. 요즘은 E티켓이 활성화 되어서 그런지 종이 티켓은 이런 식으로 나오네요."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
'인류와 이 종족'이라는 공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건...?"
"제가 괴롭힌 거에 대한 대가로는 조금 작지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어요."
빙긋 웃는 잭 씨.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희의 일인 걸요."
"이 티켓을 드리는 이유가 더 있어요."
"네?"
"애슐리 씨... 그녀가 활짝 웃는 것을 봤거든요. 인간과 수인. 제가 바라는 미래죠. 부디 제 공연에 와주셨으면 해요."
날 지긋이 바라보는 잭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히 받을게요."
"아, 그리고 이건 제 명함이에요. 혹시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
그의 명함.
최근 그레이스 씨도 그렇고 래브 씨도 그렇고 예술 관련 종사자들과 자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영화학교와 BC주 정부의 지원 덕분에 이곳에 예술가가 많았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고마워요. 제 명함은..."
명함홀더에 넣어 둔 명함.
이럴 때를 대비해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임...임...태..."
역시나 내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괜찮아요."
"어렵네요...확실히."
체념하다는 듯 말하는 잭.
나도 그의 명함을 봤는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
영어로 적은 그의 진짜 이름은 꽤 길었다.
"Wind in his hair...머리에 부는 바람이 원래 이름인가요?"
"네, 맞아요. 수인어로는...데르 윈다 데르 아루프 덴 콤프 코모프예요."
흡사 독일어 같은 발음.
늑대 수인어는 거칠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이렇게 직접 들으니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제 이름보다 더 어려운데요..."
"이런 것들은 상대적이니까요."
잭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상대적인 것들.
잭 씨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죠."
짐을 정리하는 잭 씨.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활짝 웃고 있었다.
"가시려구요?"
"네, 존 씨와 대화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전 도와드린 게 없는데요?"
"저는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해법을 말하는 것만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슨...?"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셨고 제 고민에 같이 고민해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것들이 존재하죠."
공연예술가 잭.
그가 가진 고민은 단순했다.
고독한 늑대 같은 그.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고,
그는 내가 한 것에 감사를 표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는 잭 씨.
그러고는 나와 애슐리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 도착하면 꼭 연락 주세요."
카페를 나가는 잭 씨.
"또 오세요."
잭 씨를 배웅하는 애슐리 씨.
그녀는 그를 한동안 보더니 내게 다가왔다.
"두 분 무슨 이야기했어요?"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저는 무용 같은 건 문외한이거든요."
"하지만 잭 씨는 존 씨에게 고맙다고 말했잖아요."
"그는 그의 생각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제가 한 건 그게 전부구요."
나는 잭 씨가 사용했던 컵을 들고 일어섰다.
애슐리 씨는 메이드복 앞에 착용한 에이프런 주머니에서 행주를 꺼내 테이블을 닦았다.
말끔히 정리한 테이블.
점심시간 전 만반의 준비를 끝내두었다.
그렇게 정리하는 도중 애슐리 씨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내게 다가왔다.
"저, 존 씨."
"네?"
"아침에 뵙긴했는데 이 카페에는 드래곤 분들이 자주 오시나요?"
"아, 메간 씨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레드 드래곤으로 보였는데 성함이 메간 씨였군요."
"맞아요. 우리 카페의 단골분들 중 한 분이시죠."
잠시 멈춘 대화.
나는 애슐리 씨가 왜 메간 씨에 대해 물었는지 궁금해졌다.
"메간 씨는 왜요?"
"아...그게..."
아침부터 인기가 많았던 애슐리 씨의 메이드복.
그 메이드복의 열혈팬 중 한 명이 메간 씨였다.
IT게열에서 일하는 메간 씨.
늘 피곤에 쩔어 있는 그녀의 눈을 확 뜨게 한 메이드 복.
그녀는 커피를 주문하는 대신 애슐리 씨와 사진을 엄청 찍었다고 한다.
드래곤과 토끼 수인.
당연히 애슐리 씨가 부담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제가 잘 이야기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는 애슐리 씨.
그런 그녀를 위해서 메간 씨에게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
문 여는 소리.
호랑이도...아니 드래곤도 제 말하면 온더니...
점심시간 전에 먼저 도착한 레드 드래곤.
메간 씨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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